072화.
늦었잖아
내게로 닿아 오는 선이한의 무게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벼웠다. 선이한은 미동도 없었다. 까만 머리칼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차갑게 식어 갔다.
“선이한….”
닿지 않을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이 흘러나왔다. 선이한이 의식을 잃은 것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랐다. 너무 큰 고통이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눈을 감은 선이한의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웠다.
‘일단 지혈을 해야 돼.’
선이한의 몸을 받쳐 안고 상처 부위의 옷을 쥐었다. 피에 젖은 천이 손안에 감겨 왔다. 아직도 피가 울컥 쏟아지는 중인지 뜨겁고 축축했다. 두려움에 손이 떨렸다.
지익.
옷을 찢어 내자 마르고 하얀 어깨가 보였다. 쇄골 바로 위쪽으로 섬뜩하게 뚫린 상처가 보였다. 그 주위로 파란 빛무리가 지글지글 모여들고 있었다.
‘어…?’
상처 부위가 점점 아물어 갔다. 새빨간 피가 점점 멎어 가며 하얀 살갗이 기워졌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 파란빛이 선이한에게로 완전히 흡수됐다.
여린 살갗을 다급하게 쓸며 어깨의 피를 닦아 냈다. 다시 확인해 봐도 상처는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진한 흉터뿐이었다.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선이한이 말했던 적이 있다. 자기는 아직 죽을 수 없다고. 다쳐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네가 느꼈던 고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선이한.
선이한의 입에 물렸던 천을 빼냈다. 투명한 침에 붉은 피가 가느다랗게 지익 늘어져 붙어 나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입 안으로 말랑하고 붉은 혀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선이한의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뻔했지만 애써 정신을 차렸다. 말캉한 혀를 꼼꼼히 눌러 가며 살펴도 상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깨문 건 아닌 듯했다. 아니면, 깨문 상처도 이미 나았거나.
“누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어…?”
내가 너한테 구해 달라고 했어? 나 대신 다쳐 달라고 했어?
축 늘어진 선이한의 몸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선이한에게서는 피 냄새가 났다. 평소의 부드러운 비누 향기를 덮을 만큼 비릿하고 아픈 냄새.
뱉어 내지 못한 말이 마음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온몸이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절망이었다. 뜨거운 절망.
“선이한. 내가 아카데미에서 왜 방어 마법 학부로 들어갔는지 알아?”
고개를 들어서 선이한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선이한의 하얀 뺨을 쓸자 내 손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핏자국이 진득하게 흔적을 남겼다. 아까 칼날을 빼낼 때 손에 생긴 상처 때문인 것 같았다.
“지키고 싶어서. 더 이상 아무도 내 눈앞에서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선이한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였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너를 지키고 싶어.”
너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송하견 형님이 나를 밀쳤던 일. 그때도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지금은 감히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이 마음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나는 너만은 온전하게 지켜 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이 오지 말 걸 그랬어.”
차라리 나 혼자 왔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공격의 낌새를 더 빨리 알아차렸거나, 덫을 해제할 때 미리 방어 마법을 둘러 뒀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마을 대표의 의도를 파악했든가.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너는 나를 구했고, 나는….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일까.’
나는 자격이 없었다. 감히 너의 옆에 있고 싶다고 바랄 수 없었다.
네가 내게 기대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채 기대기를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선이한에게 클린 마법을 써 줬다. 피로 젖었던 선이한이 다시 새하얀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이한을 안아 드니 마른 몸이 내게로 닿아 오는 감각이 생경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전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너무 두려웠다. 뭐가 두려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깨어난 선이한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았다.
의식이 없어서 달랑 흔들리는 선이한의 목을 조심히 받쳐 안고 널브러진 마을 대표의 앞에 섰다.
그는 이마에 시뻘겋게 핏줄을 세우고 분노하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포획 마법으로 묶어 놓았는데도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 댔다. 그에게 걸어 뒀던 침묵 마법을 풀었다.
“으흑, 죽어! 똑같이 당해야지. 너희 같은 것들은 쓸모도 없…!”
이성을 잃은 듯이 거칠게 내뱉는 목소리에 바로 침묵 마법을 다시 걸었다. 지금 이성을 놓고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건 나였다. 증오스러운 낯짝을 걷어차고 싶었다. 똑같이 당해야 된다고? 생각 같아서는 이 사람을 이대로….
아니, 이게 먼저가 아니다. 무슨 이유든지 용서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상황은 파악해 둬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이를 꾹 깨물고 마을 대표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손에 닿는 옷감조차 불쾌했지만 애써 텔레포트 마법을 외웠다.
후욱.
숙소의 1층으로 돌아온 것과 동시에 시야가 핑 돌았다. 무리하게 마나를 사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덫 마법을 해제하느라 또 마나를 소모하고 그 상태로 세 명분의 텔레포트 마법까지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주혁아, 무슨 일이야. 이한이는 왜 그렇고.”
내게로 급하게 다가와서 부축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박율 형님이 내 품에 안겨 있던 선이한을 조심히 안아 들었다. 그리고 선이한의 고개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하고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박율 형님은 마법으로 의자를 끌어와서 나를 천천히 자리에 앉혔다. 나는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들 무사히 돌아와 있었구나.’
내가 괜히 따라간 거였다.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걸. 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할걸. 섣불리 결정하지 말걸.
이건 실수 같은 게 아니다. 내 잘못이었다. 내가 제대로 정신을 차렸더라면 선이한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딱, 하고 손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박율 형님이 포획 마법과 침묵 마법이 걸린 채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마을 대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이 사람한테 건 마법 풀어. 형이 그대로 걸어 놨어.”
마법을 해제하자 빠져나가던 마나가 멎어서 울렁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숨이 찼다. 이건 마나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선이한을 보기가 괴로워서였다.
박율 형님이 공중에 만들어 낸 붕대가 내 손에 저절로 감겼다. 상처가 났었다는 것도 이제야 기억났다.
아니,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었다. 내가 선이한 앞에서 감히 아프다고 생각할 자격이 있을까.
박율 형님은 여전히 선이한의 등을 차근히 다독이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차갑게 식은 선이한의 몸을 마법을 써서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생각하자 마음이 또 내려앉았다. 박율 형님이 내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나무 계단을 빠르게 밟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있다가 급하게 나온 듯 보이는 라엔 형님과 송하견 형님이었다.
“아니, 지금 다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민주혁. 마셔.”
송하견 형님이 순식간에 만들어 낸 물약을 탁자 위에 올렸다.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라엔 형님이 손을 살짝 튕겨서 물약의 뚜껑을 열고 내 앞으로 그걸 띄워 줬다.
약에서는 달콤한 맛이 났다. 긴장됐던 몸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걸 느끼자마자 약을 다시 뱉어 내고 싶었다.
나는 지금 괜찮았다. 아까도 괜찮았고. 당연히 그렇겠지. 선이한이 나 대신 안 괜찮으니까.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송하견 형님은 박율 형님의 품에 안겨 있는 선이한의 상태를 신중하게 살폈다. 평소처럼 침착한 표정이었으나 선이한의 여린 손목을 들어 올려서 맥을 짚어 보는 손이 가늘게 떨려 보였다.
“…이상은 없어. 저번처럼,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라엔 형님이 선이한의 창백한 손을 두 손으로 꾹 감싸 쥐었다. 입술을 짓씹은 라엔 형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주혁아. 무슨 일이 있었어.”
박율 형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순간 무겁게 내려앉은 적막 사이로 여름의 풀벌레 소리가 기어들어 왔다.
박율 형님이 머리를 쓸어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목에 핏대가 서는 것이 보였다. 선이한을 안고 있는 손에는 힘줄이 솟았다.
박율 형님은 한숨처럼 깊게 숨을 내쉬더니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주혁아, 고생했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손에 힘 풀고. 상처 다시 터지니까.”
박율 형님이 침묵 마법을 해제하자 마을 대표의 말이 곧바로 쏟아져 나왔다.
“늦었잖아. 이제야 오면 상황이 뭐가 해결돼? 당신네들이 하는 게 뭐가 있어. 그러고도 용사야?”
“지금 이유는 들어 보려고 봐드리고 있는 겁니다. 제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박율 형님의 목소리가 고요했다. 텅 빈 것 같기도 했고 오히려 너무 가득 차서 틈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을 대표가 침을 퉤 뱉고 조소했다.
“자기 동료들 일에는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응? 아쉽게 됐어. 저 신관만 아니었어도 원래 계획대로… 윽.”
“말이 안 통하네.”
“박율 형.”
송하견 형님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얼굴이 조금씩 질려 가는 마을 대표 앞에서 박율 형님이 눈을 찬찬히 깜빡였다. 그러고는 곧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당히 하고 있어. 하견아.”
박율 형님은 말한 것처럼 정말 딱 적당한 때에 마을 대표의 목을 졸랐던 마법을 풀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고르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내려다봤다. 마을 대표가 핏발 선 눈으로 박율 형님을 번뜩이듯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됐고, 마물을 처리한다고 했지. 마물이라고 정의 내리는 기준이 뭡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왜 그랬는지 이유나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당장 대답 안 해? 마물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어.”
“안 되겠네.”
박율 형님이 손을 살짝 흔들어 마을 대표의 입을 다시 막았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이한이는 눕혀 두고 와야 하겠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박율 형님이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하고 나무 계단을 밟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자리에 선 라엔 형님의 붉은 머리칼이 살짝 휘날렸다. 주변에서 마나가 뭉쳐서 파직 튀는 것 같았다. 라엔 형님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나를 내리누르고 있는 듯했다.
탁자 위의 허공에 플라스크 하나가 그 자리에서 빙글 돌며 떠올라 있었다. 플라스크 입구로 풀잎 같은 것들이 부서져 들어가자 안에 있는 액체의 색이 조금씩 변했다.
“자백제는 오랜만인데.”
송하견 형님은 차가운 시선으로 마을 대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을 대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손을 말아 쥐었다. 흰 붕대에 핏물이 배어 나왔다. 어느새 내려앉은 밤이 창 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