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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107화 (107/109)

< -- 107 회: 귀환 -- >

성황은 괴물의 앞을 가로막았다. 호위도, 무기도 없이 홀로 선 성황이었지만 괴물은 바로 덤벼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존재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존재들과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모습이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파우론이시여! 여기 당신의 적이 있나이다!"

성황의 외침에 응답이라도 내려지듯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와 성황의 몸을 감쌌다.

빛의 기둥에서 뿜어지는 힘은 괴물조차 한 걸음 물러나게 했다.

"크르르르."

무서운 힘이었다. 그런데 괴물은 도망가지 않고 적의를 드러냈다. 성기사들과 싸우며 조금만 불리해져도 도망치던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롸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는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어둠의 기둥이 내려와 괴물을 감쌌다.

먼저 기둥이 사라진 쪽은 성황이었다. 온 몸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얼굴은 확인할 수도 없는 상태. 몸의 윤곽만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잠시 뒤, 검은 기둥도 사라졌다.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 같은 크기의 검은 그림자가 서있을 뿐이었다.

"역시 너였군, 라스틴."

"이번에는 좀 다를 거다, 파우론."

파우론은 성황의 몸을 빌어서, 그리고 라스틴은 괴물의 몸으로 강림했다.

"숨어서 뭐하나 했더니 이런 치졸한 짓이나 하고."

"시작은 네가 했지 않나?"

라스틴은 파우론의 말을 반박했다.

원래 이 세계는 라스틴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파우론이 술수를 부려 라스틴을 믿는 이들을 망하게 했다.

과거에 벌어진 싸움의 여파로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어나갔다. 사막이 많아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던 개발이 덜 된 지역들이 살아남은 정도.

하지만 사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게 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막을 벗어나려 했지만 당시에는 어려웠다. 때문에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세계에서 라스틴의 영향력은 모두 사라졌다.

"그때는 내가 실수했다. 하지만 이번에 싸우게 되면 너한테도 좋을 건 없는 것 아닌가?"

"그래, 없지. 하지만 네가 계속 쓰게 놔둘 수도 없으니까."

"지금 여기서 싸우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다. 모든 인간이 죽으면 신앙을 바칠 존재가 없는 불모의 땅이 될 뿐이다. 그리고 넌 싸운 만큼 힘을 잃게 될 거고."

"크크크크. 그거야 해보면 알지."

라스틴의 웃음에 파우론은 불쾌해졌다.

"불리해지는 건 너다."

대화가 끝나자 바로 격돌하는 두 존재.

빛과 어둠이 충돌했다. 주먹질이나 발길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체를 활용한 자잘한 기술이 아니었다. 보유하고 있는 힘의 충돌이었다.

자신들의 힘의 원천을 두고 누가 더 강한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한 번의 충돌로 땅이 움푹 파이며 크레이터가 생겼다. 먼지구름이 피어나며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졌다.

지켜보고 있던 알테스의 표정이 굳었다.

'미친 힘이군.'

교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을 비롯한 마법사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기에 마법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부심이 깨졌다.

'이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인간이란 그릇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란 것이 존재했다.

'저들과 대등해지려면 인간이어선 안 돼.'

인간의 그릇에 한계가 있으니 더 강한 힘을 얻으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다른 존재로 거듭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이만 물러나야겠다."

"계속 안 보는 겁니까?"

"저들의 싸움을 지켜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산다는 보장은 없어."

성주혁은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아깝다. 파우론 잡는데 도와주면 엄청난 포인트를 벌 수 있는데.'

퀘스트가 뜬 탓이었다.

퀘스트에는 파우론을 잡게 되면 무려 1만 스탯 포인트를 준다고 나왔다. 성주혁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포인트였다. 그것도 죽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싸우는데 옆에서 돕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하지만 죽을 순 없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목숨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는 성주혁 일행이었다. 1만 스탯 포인트가 탐나지만 목숨은 하나였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고 싶은데 강해지기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치열한 전투를 뒤로하고 알테스와 성주혁 일행은 살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의 충돌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단숨에 끝날 것 같았지만 두 신은 모든 힘을 쏟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닌 힘이 모두 소진 되는 쪽이 지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한 번에 다 쏟건 여러 번 나눠서 쓰건 결과는 힘을 더 많이 가진 쪽의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싸움 이후에 얻을 보상의 안전이 중요했다.

세계를 놓고 싸우는 두 신은 세계가 망가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세계라는 것은 두 신에게 힘을 주는 매개체였다.

인간의 강력한 믿음은 두 신에게는 힘이 되어주었다.

인간의 신앙에서 얻은 힘은 신들의 전쟁에서 쓸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다른 신을 죽이면 죽은 신이 보유했던 세계를 모두 얻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보통 잘 일어나지 않았다. 공멸하게 되는 경우에는 제3자가 이익을 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직접 존재를 걸고 싸우기보다 힘의 원천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떻게 아직까지 버티는 거지?'

세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둘 다 힘을 줄여 충돌한지 10일이 지났다. 주변은 이미 초토화 된 상황이었다. 땅이 뒤집힌 것은 물론 인근의 생명체들은 모조리 가루가 되었다.

물이 마르며 사막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마나의 흐름마저 꼬이는 중이었다.

'슬슬 바닥이 날 때가 되지 않았나?'

성질 같아선 한꺼번에 힘을 쏟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힘을 쓰면 세계가 망가진다. 충격의 여파로 세계의 흐름이 완전히 뒤엉키면 인간은 살 수 없게 된다. 이후 지성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 다시 신을 믿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영원히 사는 신의 입장에서는 찰나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전쟁을 치르는 입장에서는 잠깐의 빈틈도 위험했다.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서로 상대가 가진 힘을 소모시키기 위한 충돌이었다. 가진 힘은 바로 강림을 이끌어낸 육체에 담긴 힘들이었다.

성황은 강력한 믿음과 몸에 지니고 있던 성물로 그릇을 만들었고 괴물은 흡수한 좀비와 인간들을 통해 성장하며 그릇을 만들었다.

효율면에서는 성황이 훨씬 앞섰으나 어찌된 일인지 라스틴은 계속 버티고 있었다.

다시 3일이 지나자 파우론은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이제 하루치 밖에 안 남았는데.'

힘이 점점 소진되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조해진 파우론은 라스틴을 바라보았다. 어둠은 옅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선택의 순간이 왔다.

이대로 곱게 패배를 받아들이게 되면 세계는 라스틴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파우론 또한 라스틴이 했던 것처럼 안배를 하며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훗날을 기약할 생각이 없다면 세계를 붕괴시키면 된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하면 된다. 모두 패자가 되는 길이다. 전쟁을 한 양측 다 막대한 손해를 안고 끝난다. 하지만 같이 손해를 보니 덜 억울하다.

'어떻게 할까?'

아주 짧은 순간 파우론은 갈등했다. 보유하고 있는 세계는 많았다. 그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잃다보면 큰 차이가 나게 된다.

안배와 공멸 사이에 갈등하던 파우론은 결국 공멸을 선택했다. 그러나 상황은 파우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렀다.

모든 힘을 모아 부딪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라스틴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며 작게 변한 괴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뭐?'

라스틴의 힘이, 어둠이 흩어지고 있었다. 아주 작게 흩어지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어디냐?'

파우론은 라스틴의 행동에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이런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쿠와아아아아악!"

괴물이 시끄럽게 떠들자 추적을 위한 집중이 잠깐 흐트러졌다.

퍽!

바로 괴물을 쳐 죽였지만 잠깐 사이에 놓친 라스틴의 힘의 잔재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길. 그릇만 망가졌네.'

강림을 위한 그릇, 그것이 바로 성황이었다. 강림이 끝나고 파우론이 몸을 떠나게 되면 성황은 얼마 못가 죽게 된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힘을 담은 대가인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성황은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외의 변수로 인해 쓸 수 없게 되자 성질이 났다.

'빨리 다음 적합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성황의 몸을 떠나며 파우론은 초조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파우론이 떠나고 성황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신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성황을 위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성황은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외로이 숨을 거두었다.

성황 사후, 대사제 하나가 성황 대리가 되었다. 교단은 혼란에 휩싸였다. 괴물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그 대가가 성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오러마스터들과 대사제들은 이로써 북부를 약탈하고 있는 남부군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직 신운성의 정체를 모르기에 하는 낙관일 뿐이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의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북부 출신의 병사가 올리는 보고를 들은 신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북부인을 받아들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사로잡은 수많은 북부인들은 파우론을 부정하고 노예로 전락했다. 하지만 오래전에 노예로 전락했던 자들 중에 다시 목숨을 걸고 해적이 된 이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국민으로 받아주었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파우론의 신자와 구분이 불가능했다.

신앙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신이나 상징물을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얼마든지 거짓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제국민이 된 북부인들은 같은 북부인을 속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에게도 진정한 자유를 알려주어야 한다.'

라는 신운성의 말 때문에 오히려 사명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제국민 사이에 서서히 퍼지고 있는 정서 중 하나가 바로 파우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사명감을 가진 이들은 스파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북부 전역에 퍼져 정보를 수집해 신운성에게 전해왔다. 이 때문에 신운성은 군대 운용이 더욱 쉬워졌다. 강한 적은 살짝 피하고 약한 적들부터 각개격파를 했다.

기습은 기본이었다. 적이 지나가려는 길에 매복한 뒤에 습격은 일상이었다. 때로는 방어선을 우회해 적의 후방을 급습하기도 했다.

혼란이 한 번 일어나면 군대는 쉽게 무너졌다.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두 파악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세가 죽으면 북부군은 혼란 속에 흩어졌다. 가끔 죽을 때까지 반격하는 정예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성기사들이 드디어 온다니 환영해주어야겠군. 위치를 계속해서 보고하도록 해라."

병사가 물러가자 신운성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옛날에는 이 길로 도망쳐 왔는데.'

아비트에서 리겔강을 쭉 따라 올라가 산맥을 지나 타넬호까지 진출했다. 과거 글을 처음 배웠던 곳까지 온 것이었다.

'전부 휘저어주겠어. 무너질 때까지!'

신운성은 타오르는 눈빛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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