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회: 귀환 -- >
죽음의 숲에서 등장한 괴물은 북부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허허, 남부의 마족들이 약탈을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괴물이 나타나다니. 이건 분명 악마들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대사제들은 분노했다. 북부 해안에서 연일 벌어지는 약탈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 아무리 경계를 해도 어려웠다. 해안선 전체를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해안선 아무 곳에서 내린 뒤 안쪽으로 약간 들어와 인근 마을을 유린하고 돌아가면 보호해줄 수가 없었다. 가끔 털리는 대도시는 언제나 내부에서부터 교란이 있었다.
어떻게 내부에 적이 침투했는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죽은 시체 중 하나가 북부인이란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전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부인은 북부인을 납치한 후 개종시켜 해적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해적들의 세력은 점점 강해졌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조선소를 짓고 해군을 늘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배를 만들기 시작하면 모조리 불태우거나 가지고 가버렸다. 배가 없으니 바다를 견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해안선을 약탈당하니 해안 지역 영주들은 점점 힘을 잃게 되었다. 결국 해안 지역을 모조리 비워버리는 수단을 취하게 되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적들은 강을 타고 올라오는 수를 썼다.
강을 통하면 북부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배를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일이 계속 터지니 북부는 점점 약화되어 갔다. 섬들은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가 되었다.
사람이 계속 잡혀가 줄어들고 버려지는 땅이 늘어나니 물자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졌고 하층민들 사이에 점점 불온한 세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부의 해적들만으로 골치 아픈 상황인데 괴물까지 등장했다.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황의 말에 대사제들은 모두 침묵했다.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에 성황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현재로선 없는 것 같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괴물을 잡기 위해선 성기사들의 막대한 희생이 필요할 거라고 했습니다."
"남부의 마족들에 괴물까지. 정말 크나큰 시련이군요."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아닙니다."
성황은 굳은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더니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금기를 해제하겠습니다."
"금기라하시면?"
"마법사들에게 연락을 하세요."
"하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과 지금은 그들과 타협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이 협조하면 '마법'을 인정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불신자들입니다!"
"파우론님을 믿지 않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아니죠. 하지만 우리의 적은 아마도 라스틴인 것 같습니다. 절대 패해서는 안 됩니다."
성황의 말에 대사제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적이 라스틴이라는, 과거 파우론과 대적해서 싸우던 신이라면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성황의 뜻은 모든 신전에 알려졌다. 이후 마법사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마(魔)'라고 여겨지며 숨어살아야 했던 마법사들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법.
오러 연공법과 달리 교단에서 완전히 금지했던 마나 사용법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마법사의 파괴력은 오러 마스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을 무너뜨리고 강의 흐름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법사의 힘이었다. 심할 경우 멀쩡한 숲을 생명이 살기 힘든 땅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파괴력이 마법을 금지로 지정한 진실 된 이유는 아니었다.
마법은 익히고 싶다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천적인 재능이 필요했다.
마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의 크기가 마법사로서의 성장을 좌우했다. 이 재능이 결여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법을 익힐 수 없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마법은 신을 믿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대사제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지닌 마법사들이 있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을 믿는 자들과 같은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법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사냥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법사 사냥은 언제나 교단에 큰 피해를 안겨주었다. 선천적으로 마나를 느끼며 사용하는 마법사는 마법으로 성기사들을 몰살 시킨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마법사들을 적극적으로 쫓는 일은 줄어들었다.
분노한 마법사들도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격은 못했다. 워낙 수가 적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마법사는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데 재능을 가진 이를 찾기가 어려워 숫자를 늘리는 것도 힘들었다.
때문에 복수보다는 숨어사는 쪽을 선택한 마법사들이었다.
그런 마법사들 중 하나인 알테스는 기묘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남부인으로 보이는 이들이었지만 남부인이 아닌 이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성주혁이라고 합니다."
성주혁. 신운성과 함께 죽음의 숲을 탈출했던 남자는 동료들을 이끌고 계속 쫓겼었다. 북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적대적이었다. 이에 성주혁 일행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버리고 살인마가 되었다.
죽이고 도망치는 나날은 계속 이어졌다. 사냥당하는 맹수와도 같은 삶이었다. 동료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 모두 합해 10명이 되었다.
동료가 남기고 간 기어를 통해 더 강해지며 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파우론을 믿는 이들을 쉬지 않고 죽여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짐승처럼 쫓기는 것은 피하질 못했다.
만약 상점에서 먹을 것과 무기를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강한 존재도 먹지 않고는 계속 싸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쫓기지 않아도 된다.
바로 알테스와 만났기 때문이었다.
"교단에서 쫓는 악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찾아와 본 것뿐이다. 도울 생각은 없었어."
"그래도 감사합니다."
성주혁은 보았다.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힘의 파괴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피부가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손짓 한 번에 불길이 일어 사람을 태우기도 했다. 발걸음 한 번에 땅이 흔들리기도 했다.
적이었다면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운 존재이지만 적의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피부색만 가지고 징그럽게 쫓기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럼 이만 헤어지지."
"잠시만요."
"뭔가?"
돌아서려던 알테스는 걸음을 멈췄다.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갚겠다며 들러붙으려고 하지 않은 건 칭찬하지."
"도와주시면 은혜를 갚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 참."
성주혁이 무릎을 꿇자 나머지 동료들도 함께 도움을 요청했다.
원래는 그냥 가려고 했던 알테스의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성주혁의 언행에 호감이 조금 생긴 탓이었다.
"뭐 나쁠 거야 없겠지."
알테스는 교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교단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존재가 마법사였다. 알테스의 스승이 그랬고, 스승의 스승 또한 교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때문에 교단에 쫓기고 있는 성주혁 일행이 들러붙는다고 해서 딱히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없었다.
싸우게 되면 싸우면 될 뿐이었다.
교단의 눈치를 보기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못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알테스는 성주혁 일행을 이끌고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중간에 덤벼드는 이들은 모두 태워 죽였다.
북부의 사정이 점점 악화되는 동안, 신운성은 드디어 유드족의 족장 자리에 올랐다. 나이가 많은 보나르가 아들들을 잃은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었다. 이후 보나르의 다른 자식들이 후계 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부족이 분열될 위기에 처했었다. 이때, 카딘을 중심으로 뭉친 전사들이 신운성을 새로운 족장으로 밀었다.
중간에 잡음이 많았지만 결국 족장의 자리는 신운성의 것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부인인 아미야의 아버지 호안바트가 벨로트족의 족장이 사망하자 신운성을 족장으로 추대했다. 졸지에 두 부족의 족장이 되자 신운성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충성을 맹세한 전사들도 있었다. 결국 신운성은 여러 부족을 거느린 대족장이 되었다.
대족장이 된 신운성은 연합 내부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적질로 온 남부가 재미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신운성을 거스를만한 사람은 없다고 봐야했다. 남부의 모든 배들이 신운성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신운성이 개척한 해상 유통로는 남부인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다.
옛날 같으면 무력으로 빼앗으려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연합의 달콤함을 맛본 연합 수뇌부는 연합을 깨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연합이 깨지면 다시 유목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사치를 맛 본 이들에게는 두려운 이야기였다. 때문에 신운성의 것을 빼앗으려다 연합이 와해될 위험이 크기에 공격하는 일은 배제했다.
결국 남은 것은 신운성을 중심으로 권력층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권력층을 형성하게 되면 사치를 포기할 필요도 없었고 전쟁이 끝난 뒤 연합이 와해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최고의 권력은 신운성이 차지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과실을 맛볼 수 있기에 결국 신운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 자리에 오르시지요."
즉위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신운성은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황금빛 독수리가 수놓아진 옷이었다.
남부인들에게 독수리는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존재였다. 가끔 길들이기도 했지만 독수리는 남부인들에게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새였다. 때문에 길들인다기보다는 모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신운성은 단 위에 놓은 의자를 보았다. 고급스러운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는 비싼 재질로 만들어진 천으로 된 쿠션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등받이 부분은 귀금속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황좌였다.
천천히 황좌에 오른 신운성은 홀 안에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모두 자신의 신하가 되기로 맹세한 연합의 수뇌부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루앙제국이다. 남부인 그리고 사막인이 하나가 된 성스러운 도시의 이름에 충성을 맹세하라."
"루앙제국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것을 맹세하옵니다."
이제 남부 부족 연합이란 존재는 과거가 되었다. 모든 부족의 권력자들이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순간 제국이 탄생했다.
"모두 즐겨라! 이 좋은 날을 마음껏 즐기고 기억하라! 우리가 하나 된 날이다!"
신운성은 파티를 열었고 수많은 이들이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이제 황제가 됐네?"
"아직 멀었어. 사막과 남부는 통일했지만 북부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돌아가는 걸 보면 우리가 이기겠던데?"
"그거야 지금 얘기지. 다른 부족의 족장들이 내게 충성을 맹세한 건 사치 때문이야. 만약 그들이 전쟁을 잊고 부패하게 되면 전쟁이 어찌 될지는 몰라."
"그럼 어쩌려고?"
"이제 본격적으로 쳐들어가야지. 해안선과 강가를 모두 초토화 시켰으니까 조금씩 간 보면서."
"오빤 정말 나쁜 남자야."
서은하는 신운성의 남성의 상징을 툭 쳐주고는 품에 안겼다. 뜨거운 신음이 황후와 황제의 입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요즘 연재가 불규칙한 점 사죄드립니다.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