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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104화 (104/109)

< -- 104 회: 귀환 -- >

'노예? 웃기지 마.'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지노스였다. 파우론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신에게 죄를 지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대로 북부로 도망친다고 해도 갈 곳은 없고 숨어살아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노예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유혹적인 선택지는 죽음이었다. 기왕 죽는 것 아무 인간이나 하나 길동무 삼아 같이 죽으면 덜 억울할 것 같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남부인을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남부인을 죽인다면 그것은 파우론이 원한 일. 하기 싫어.'

파우론에게 버림받았기에 파우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하기 싫은 지노스였다.

하지만 노예도 되기 싫었다. 그냥 죽는 것도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도망쳐주지.'

결국 지노스는 도망자의 삶을 선택했다.

노예가 되어 하게 된 일은 사막으로 움직이는 일이었다. 사막인들을 따라 움직이게 된 지노스는 답답했다.

'하필 사막이냐?'

사막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도망칠 의욕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사막의 열기에 지노스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일은 힘들었다. 돌을 깎아 운반하고 쌓는 연속이었다.

힘든 노동 끝에 주어지는 약간의 식사와 휴식이 없었다면 며칠 만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일하는 건 싫어.'

도망치고 싶다. 첫날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쉽게 도망가지 못했다. 도망가 봐야 사막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죽을까?'

'전부 다 죽이고 같이 죽을까?'

'그건 싫어.'

계속 맴도는 불완전한 사고의 고리는 지노스를 혼란에 빠트렸다. 고민은 해결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썩을 놈. 돈이나 날려라.'

결국 도망치게 된 지노스는 자신을 샀던 신운성을 떠올리며 낄낄 웃었다.

도망치고 하루. 지노스는 낮에 움직이는 것을 포기했다.

낮에는 어딘가의 바위 그늘에서 쉬었고 밤에는 열심히 움직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해질 무렵에 일어나 움직이던 지노스는 도마뱀 한 마리를 보았다.

도마뱀은 멀뚱하니 멈춘 상태. 돌을 든 지노스는 가만히 다가가 한 번에 내리쳤다.

도마뱀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튀었다. 지노스는 얼른 도마뱀을 들고 피를 쭉쭉 빨았다. 비릿한 맛이 났지만 갈증에 시달리는 지노스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지노스는 껍질을 벗겨내곤 속살을 생으로 씹었다.

살기위한 발악이었다.

목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살겠다는 목표마저 잃게 되면 죽음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가족을 비롯해 재산과 권력 그리고 사랑까지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파우론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삶이 끝나니 가슴이 텅 빈 탓이었다.

우걱우걱.

생도마뱀의 맛은 인간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비릿한 냄새와 물컹한 단백질이 씹히며 미각을 훼손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토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먹으면서도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지노스였다.

'사막 때문인가?'

무엇이든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끔찍한 음식도 먹게 만들었다.

생도마뱀을 씹던 지노스는 웃었다.

'이건 누구의 뜻일까?'

사막에서 지노스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지만 지노스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죽을 고비가 여럿 있었으나 버텨냈다. 중간에 운 좋게 버려졌던 사막 부족의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고 도마뱀과 기타 사막 생물들을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움직였다.

그냥 한 군데서 계속 쉬어도 되지만 지노스는 계속 움직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진정으로 자유를 찾았다고 느낀 순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있게 되니 자꾸 잡념이 늘어났다.

그래서 떠났다.

버림 받았다는 상처가 주는 고통은 상당히 깊었다.

다시 시작된 방황 끝에 지노스는 또 다시 고통 받았다. 몸을 혹사시키는 고행이었다. 스스로를 내버려 둘 수 없어 가는. 그리고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도착한 곳은 라스틴의 신전이었다.

신전에 들어선 지노스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익숙한 느낌에 이끌렸다.

문 앞에 선 지노스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이 안은 도대체?'

신성력이 느껴졌기에 지노스는 홀린 듯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환한 빛이 쏘아져왔다. 지노스는 피하지 못하고 빛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음성이 울렸다.

'위대하신 라스틴님의 종이 되겠는가?'

'라스틴?'

'그렇다.'

'난 파우론의 성기사였다.'

'하지만 네 안에 그의 신성력은 없다. 위대하신 라스틴님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힘.

좋은 말이다. 힘이 있다면 어렵게 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노스를 이끄는 것은 힘에 대한 유혹이 아니었다.

'좋다. 되겠다. 어차피 버림받은 몸. 파우론과 대적해 복수하겠다.'

삐뚤어진 지노스는 라스틴의 성기사가 되었다.

죽음의 숲.

파우론의 성기사들은 숲 안에서 지속적으로 좀비를 죽이며 정화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오랫동안 지속해온 작업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좀비들이 밀려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질려서 도망갔겠지만 성기사들은 그러지 않았다.

파우론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성기사들을 더욱 불타게 했다. 지겨운 반복 작업으로 인해 영혼이 울부짖어도 묵묵히 정화 작업을 해나갔다.

머리를 박살내고 시체를 태우고.

그러한 작업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이젠 숫자를 세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찾아왔다.

"응?"

성기사 하나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크어어어어어어어엉!"

작고 희미한 맹수의 울부짖음이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놈이 나오려는 것 같다. 마스터들에게 연락 하도록."

쿵! 쿵!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였다.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마수?'

아주 오래전 교단의 기록에서나 전해지는 존재를 떠올리며 성기사들은 긴장했다.

쿠웅! 쿠웅!

나무를 헤치며 나타난 것은 거대한 거인이었다. 하지만 그냥 거인이 아니었다. 기괴한 모습을 한 끔찍한 괴물이었다.

온 몸에 사람의 머리가 혹처럼 붙어 있었다. 괴물의 머리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거대한 입만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이 성질을 내자 좀비들이 쓰러지며 밀려났다. 성기사들도 괴물의 몸에서 뿜어지는 소리의 파동에 비틀거렸다. 소리의 파동이 고막을 때려 현기증을 느낀 탓이다.

"피해!"

괴물은 잠깐 휘청거리는 성기사들을 잡기 위해 거대한 팔을 뻗었다. 수많은 얼굴이 붙은 기괴한 거대한 팔에서는 검은 고름이 뚝뚝 떨어지며 악취가 풍겼다.

그야말로 죽음의 냄새.

표적이 된 성기사는 다가오는 죽음의 냄새를 피해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콰앙!

땅을 때리는 굉음과 함께 흙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우론님을 위하여!"

정신을 차린 성기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덤벼들었다.

신성한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오러가 하얗게 빛나며 허공을 갈랐다. 눈부신 빛의 검은 괴물의 살을 가르자 검은 피가 솟구쳤다.

지독한 악취에 토할 것 같아도 성기사들은 꾹 참고 다리를 공격했다. 거대한 괴물은 잽싸게 자신의 다리로 붙어 칼질하는 성기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무릎에도 오지 않는 성기사들이 다리를 난도질하니 화가 났다.

"주아아아아아아!"

팔을 휘둘러도 잘 맞지 않았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기사들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러나 괴물도 당하기만 하진 않았다.

"쿠롸악!"

숨을 들이키자 목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성기사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공격했다. 그때 괴물이 다시 팔을 휘둘렀다. 성기사들은 이미 익숙한 듯이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덤벼들려는 찰나!

"퉤!"

괴물의 입에서 거대한 검은 고름이 쏘아졌다.

마주 달려오던 성기사는 뒤늦게 이를 알고 피하려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성기사는 빛의 검으로 검은 고름을 베어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빛의 검이 검은 고름에 닿자 일순간 정화되는가 싶었지만 검은 고름의 양이 너무 많았다.

성기사는 검은 고름에 휩싸이더니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려도 입을 막은 검은 고름 때문에 소리는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검은 고름이 내부까지 녹였다.

"쿠케케케케케케!"

괴물의 입에서 기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성기사들은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괴물은 위로 높이 뛰어오르더니 거세게 땅에 내려섰다.

콰아아아아앙!

팔로 땅을 내리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진동에 성기사들은 뒤흔들렸다. 이틈에 괴물은 팔을 뻗어 성기사 하나를 낚아채 머리를 똑 땄다.

피분수가 터지며 괴물의 얼굴로 튀었지만 괴물은 좋다고 웃으며 성기사를 한 입에 넣고는 씹었다.

"으아아아아아! 죽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성기사들은 분노해 덤볐지만 괴물을 어쩌지 못했다. 성기사를 먹은 괴물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기 때문이었다.

"후르르르르르릅!"

더구나 괴물은 검은 고름에 녹아버린 성기사도 고름과 함께 마셔버렸다.

"모두 물러나라!"

뒤늦게 나타난 오러 마스터가 이를 보고 성기사들을 뒤로 물렸다. 이어서 오러 마스터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괴물을 이기지 못했다. 조금만 불리해져도 주변에 널린 좀비를 주워먹으며 몸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기사들은 철수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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