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 회: 권력 -- >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루앙에 신운성이 무사히 도착하자 연합은 뜨겁게 끓어올랐다.
"얘기 들었어? 북부의 도시 하나를 털었데!
"여자와 아이들을 끌고 온 모양이야!"
"그때 참가했던 사람들 전부 단단히 한 몫 잡았다고 하더라고!"
사람들 사이에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전리품의 분배는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여자와 아이들은 타우스와 부하들에게 나누어졌다. 가족을 갖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여자들을 납치한 이들은 여자들에게 파우론을 부정할 것을 강요했다.
몇몇 여자들은 끝까지 거부했지만 대부분 파우론을 부정하고 자신들을 납치해 온 남자를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고 험한 꼴을 당하느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아내로 살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배를 만드는 장인들은 모조리 조선소에 보내졌고 신운성은 자신의 몫과 부하들의 몫에서 일할 가량을 떼어 연합 수뇌부에게 전쟁 자금으로 기부했다.
한 번 약탈하고 돌아온 배들에 실린 보화는 엄청났다. 일할일 뿐인데도 연합 수뇌부 전체가 침을 흘릴 정도였다.
이쯤 되자 온건파였던 이들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단 한 번의 약탈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연합에서 직접 보낸 것이 아니라 양보를 요구하기도 어려웠다.
'이대로 가다간 유드족과 약탈을 하는 이들이 주류가 된다.'
탐욕과 위기감이 동시에 밀려든 탓에 다음에는 자신들도 약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우리도 함께 가게 해주시오."
다른 부족들은 급기야 신운성을 찾아왔다.
'됐다. 이제 슬슬 넘어오겠군.'
여러 부족의 인물들이 배에 타기를 원했다. 속셈은 간단하다 함께 출정해 한 몫 잡고 싶은 것이다.
"하고 싶으면 배를 따로 만들어서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신운성은 일단 한 번 튕겨주었다. 그냥
'네, 그렇게 하세요.'
하면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고마워해도 나중에는 잊는 게 보통이다. 뭔가 해줬다고 다 은혜갚음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잊어먹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뭔가 좀 해주고 입 닦기도 한다.
그러니 뜯어 낼 수 있을 때 챙기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한 번의 거래를 통해 서로 줄건 주고받을 것 받고 그 자리에서 끝내버리면 편하다.
'저 놈이 언제쯤 은혜를 갚을까?'
하고 마냥 기다리며 감정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물론 돈독한 인간관계는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어차피 타인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가족주의를 적용하는 건 아름다워 보일 순 있어도 지극히 비효율적이지.'
전쟁 중이다. 그러니 비효율적인 일은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 좋다.
"그야 그렇지만 배는 모두 하크님이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 만들어 쓰시면 될 일을."
"하하, 그러지 마시고......."
찾아온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애원하자 슬슬 용건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방문자들도 눈치가 있기에 신운성이 뭔가 요구하리란 걸 알고 웃으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사실 내가 그대들과 이 좋은 일을 같이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같은 남부인이지 않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데 내가 사략단을 만들어 배를 빌려주는 형식을 취할 테니 배를 빌리면 약탈물을 일정 부분 대가로 지불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럼 만약 배가 침몰하거나 허탕을 했을 경우에는 어찌할 겁니까?"
"일단 진상 조사를 해야겠지만 배를 잃었을 경우에는 새로 배를 빌릴 때 좀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허탕을 쳤을 경우에는 그냥 넘어가야죠. 어차피 약탈물의 일정 부분을 받는 거니까요. 대신 일부러 빼돌린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방문자들은 모두 수긍했다. 신운성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이후 납부할 약탈물의 비율을 조정하고는 모두 계약서를 작성하고 돌아갔다.
계약서를 손에 쥔 신운성은 슬쩍 웃었다.
'이걸로 해적들 모집은 끝났군.'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온건파들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배 만드는 장인들만 잘 관리하고 조선소를 더욱 크게 지으면 내가 갑이다.'
해적질은 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배를 팔지 않고 빌려만 준다면?
배를 잃은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잃지 않게 된다면 약탈 한 번으로도 배를 만들 정도의 자금을 모을 수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운성은 남부의 모든 해안은 물론 북부까지 이어지는 곳에 항구 도시를 개발해 해상 유통망을 건설할 생각이었다.
'장기전은 소모전. 결국 체력이 강한 쪽이 이기는 법.'
때문에 전쟁 중이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한다고 전부다 끌고 가서 싸우다보면 일할 사람이 없어지게 되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니 전쟁 도중에도 경제는 계속 돌아갈 수 있게 신경 써야만 한다.
'연합은 부족 체제여서 이런 쪽으로는 무지한 편이니.......'
상인이 있고 현명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10년 혹은 20년씩 싸우는 전쟁에 대한 경험은 없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고 기록에 남은 것도 자세하지가 않다.
라스틴과 파우론의 신자들이 싸우던 시절의 이야기는 신화취급 당하는 실정이었다.
'약탈, 그리고 노예로 노동력 증강. 이것만이 살 길이다.'
전쟁을 하게 되면 노동력에 공백이 생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선 살고자 하는 적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력의 공백을 메우면 경제는 계속 돌아가게 된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더 강력한 부를 쌓는 사람들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었다.
신운성과 계약한 이들의 이야기는 금방 연합에 퍼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상인 마르시드는 신운성을 찾아왔다.
"제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시죠."
"직접 약탈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약탈물을 배 임대료로 받아도 그것을 처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배를 만드는 조선소도 운영해야 하고요. 아울러 배에서 사용되는 물품과 식량도 취급해야 할 텐데 모두 다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마르시드의 의도는 간단했다. 신운성을 대신해 자잘한 일을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상인에게는 이런 큰 일이 꼭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상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권력이 된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신운성은 별 다른 흥정은 하지 않고 마르시드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직접 챙기기에는 일이 많으니 차라리 마르시드가 다 해주면 편리해진다. 물론 마르시드가 중간에 농간을 부릴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것쯤은 적당히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니까.'
권력만 꼭 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 손에 굴러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권력을 쥐고 승리를 이끌어야만 했다.
'왕이 되는 거야. 그러면 돼.'
왕이 되지 못한 영웅들의 말로는 비참한 편이다. 영웅은 정치적으로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숭상하는 영웅은 언제고 권력을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영웅을 죽여 숭배하거나 아니면 죄인으로 만들어 몰락시킨다.
권력을 쥐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왕이 될 수 있다. 물론 왕이 되고 난 이후에는 결실을 나누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잘못하면 신흥 왕조는 몇 년 가지 않아 무너지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더 필요해.'
사략에 대한 일까지 해결한 신운성은 여유가 생기자 인벤토리에 챙겨두었던 책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신운성의 힘은 오러 마스터라는 지위와 영웅이라는 위치였다.
'지금의 위치를 계속 고수하려면 역시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뒤에서 지휘를 하는 자는 빛을 보기 힘들다. 전면에 나서서 계속 승리하는 자는 영웅이 되기 쉽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최전방에서 계속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러니 죽지 않고 계속 영웅으로 남으려면 막강한 힘이 필요했다. 또한 라스틴이란 존재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도 힘이 있어야 했다.
책을 펼쳐 본 신운성은 실망했다.
'이건 그냥 평범한 잡서군.'
나름 세상의 이치에 대해 논하려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이치의 중심이 파우론이란 신이었기에 신운성은 잡서 취급했다.
'세상에 신이 달랑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구에 존재하는 신들 외에도 기어를 통해 엮이게 된 라스틴이란 신도 있었다. 때문에 책의 내용은 한 마디로 이치에 맞지 않았다.
책을 집어던진 신운성은 또 다른 책을 꺼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파우론에 대한 찬양이 적힌 책이었다. 잠시 읽어보던 신운성은 집어던졌다.
'이것도. 또 이것도.'
책을 계속 꺼내 읽던 신운성은 슬슬 화가 났다. 꺼내는 책들이 모두 파우론 찬양에 가까운 것들뿐이었다.
'설마 그런 귀족이었을 줄이야.'
한숨을 내쉬며 신운성은 마지막 책까지 꺼냈다가 결국 절망했다. 신운성이 털었던 귀족은 뼛속까지 신앙심으로 무장한 귀족이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파우론에 대한 찬양이 가득한 책들을 비싼 돈을 들여가며 수집했다.
오러 연공서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귀족 거리에 있던 귀족들의 집에서 챙긴 책들은 대부분 파우론 찬양에 대한 책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책들은 오래된 이야기책이었다.
'망했군.'
안타깝게도 오러 연공서는 하나도 없었다. 역사서 같은 것도 없었다.
'앞으로 꾸준히 찾다보면 뭔가 좀 나오겠지. 그나저나 이것들은 모두 폐기감이다.'
신운성은 책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웠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파우론을 찬양하는 책들을 모조리 집어 삼켰다.
시간이 흐르며 남부에 남겨졌던 북부군의 거점들은 하나씩 함락 당했다. 식량이 다 떨어지자 싸울 힘이 남지 않은 이들은 결국 항복한 것이었다. 거점 안에 있는 성기사나 오러 마스터가 반대했다. 하지만 연신 항복하면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고 떠들어대는 것도 남부군이 북부인들을 데려와 항복한 이들을 살려주었다는 얘기를 목청껏 외치게 하니 거점에 살던 사람들의 마음은 기울었다.
한 몫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남부에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성전을 의식해 한 행동이 아니기에 목숨이 위험해지자 결국 생존을 택했다.
생존을 택한 이들이 거점에서 탈출하려 하자 성기사들과 귀족들이 마구잡이로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곳은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함락 당했다.
배고파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힘이 넘치는 이들이 도망치면 죽이겠다며 칼질을 하니 눈이 돌았다.
굶어 죽으나 반항하다 죽으나 매한가지니 마음속의 분노라도 표출하고 죽겠다는 심보로 덤벼들거나 도망쳤다.
결국 그렇게 남부의 거점들은 모조리 무너졌다.
"항복하지 않겠소?"
마지막 남은 남부에 있는 북부군 거점. 기사들 몇 명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지만 항복하면 노예가 될 텐데."
"우리 정도의 전력이라면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과연 저들이 받아주겠소?"
"받아들이게 하면 되지 않소?"
기사들은 성기사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신앙심이 별로 없는 자들도 수두룩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성기사를 비롯해 반대하는 이들을 우선 제압한 이후 협상을 하면 어떻겠소? 어차피 저들도 큰 피해는 입고 싶지 않으니 우리의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거 아니겠소?"
"그럼 그렇게 합시다."
이기적인 기사들에 의해 결국 마지막 남은 거점도 떨어졌다. 그리고 거점을 지키던 성기사 중 하나인 지노스는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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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습니다. 여러가지로 많이 힘드네요.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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