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1 회: 권력 -- >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코벵에 있던 남부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차지하는 것에는 성공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갑자기 바다에서 놈들이 기습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놈들이 배에 불을 질러 수많은 배가 불탔습니다."
"저런!"
타우스의 거짓말에 사제와 성기사들은 속아 넘어갔다.
"기사분들은 마지막까지 싸우시다 돌아가시고 결국 코벵은 다시 빼앗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건가?"
"저를 비롯한 병사들은 사막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식량과 물을 훔치고 남부인들을 죽이면서 버텼습니다."
"훌륭하다!"
성기사 하나가 칭찬했다. 배와 지휘관을 잃은 상태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택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절망에 빠지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자살을 하거나 목숨을 건 마지막 공격을 하는 선택이었다.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다니 정말 훌륭하다!"
성기사는 연신 타우스를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계속 말하도록."
"그렇게 지내다보니 남부인들도 경계가 심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배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판사판이란 생각에 남은 이들과 배를 모조리 빼앗아 타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다 걸려서 전투가 있었고 간신히 배를 다시 빼앗아 타고 도망쳐왔습니다."
"파우론님이 돌보셨도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이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대들이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도 모두 파우론님의 돌보심이 틀림없다. 오늘은 이만 되었으니 푹 쉬도록."
타우스가 피곤해 하면서도 자세를 바로하고 경건한 표정을 지으려 하자 사제가 대화를 다음날로 미뤘다.
뒤돌아 배정된 방으로 향하는 타우스는 속으로 성기사와 사제들, 그리고 귀족들을 비웃었다.
'내가 할 짓이 파우론의 돌봄이 있어서라고? 하하하! 그렇다면 배교도 파우론의 뜻이겠네.'
타우스는 성기사와 사제들의 얘기를 통해 파우론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 믿지는 않았지만 파우론은 신이었다. 의식을 지배하는 중심축이었다. 그런 대상에 대항한다는 것은 심리적 부담감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기사와 사제들의 말이 결정적으로 타우스에게 정신적 자유를 안겨주었다.
'신은 날 강제하지 못한다.'
함부로 신의 뜻을 거론한 것이 오히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다음날, 타우스는 사제와 성기사들과 다시 만나 얘기를 해야만 했다. 코벵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일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타우스와 함께 온 이들은 쉬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남게 된 타우스가 한 일은 신운성이 부탁한 일이었다. 귀족이나 사제들 중 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타우스는 여기 저기 기웃거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리를 하다가 잡히면 차질이 오기 때문이었다.
'그냥 밖이나 돌아다니자.'
밖으로 돌아다니던 타우스는 귀족들이 사는 거리 근처로 향했다.
'턴다면 이 놈들이지.'
성기사나 사제들을 터는 것은 사실 비효율적이었다. 그들은 가진 재산이 별로 없다. 권력도 마다하는 이들이 재산에 관심을 둘 리가 없다. 하지만 귀족들은 달랐다.
존재 자체가 탐욕 덩어리였다.
'그럼 시작해볼까?'
타우스는 귀족 거리에서 귀족가의 병력 배치와 규모들을 파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알아낸 정보는 밤늦게 술에 취한 척 부두까지 나가 신운성을 만나 전해주었다.
거사일이 되었다.
신운성은 조용히 창고를 벗어나 귀족들의 거리로 향했다.
'짭짤하겠어.'
신운성은 가장 취약한 집 몇 곳만을 목표로 삼았다. 전부 털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인원도 부족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수고했다."
"이런 걸 가지고 뭘요."
"부두에 배는 확인했나?"
"전부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레던님이 온 것도 확인했습니다."
레던은 도착하면 배에 불을 잠시 켜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램프를 살짝 가리는 식으로 불빛을 이용한 신호를 보내 의사전달 하는 것이었다.
"완벽하군. 그런데 이 집에 책이 많다고?"
"네, 집주인이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 어쨌거나 시작하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신운성은 귀족가의 집안으로 스며들었다. 벽을 타고 올라가 창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모두 잠들었군.'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남자는 죽였다. 이후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책은 모두 인벤토리에.'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고 보이는 책들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타우스의 예상대로 책을 많이 가진 남자였다.
이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보초들이 슬쩍 돌아봤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없다 문이 열리니 방의 주인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긴장을 푼 것이었다.
긴장을 푼 대가는 죽음이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이들의 목을 따버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보초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후 두 사람은 집안을 뒤져 모든 사람들의 목을 땄다. 죽지 않은 것은 여자와 아이들뿐이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재갈을 물리고 팔을 묶었다.
"데려가."
타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신운성이 지시한 물품들을 챙겨 부두로 향했다.
부두 근방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던 이들은 타우스가 부하들을 보내 모두 처치했다.
"빨리 움직여!"
타고 왔던 배에 여자와 아이들을 태우고는 가지고 온 물건들을 채워넣었다.
"배 채우려면 밤새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요."
"잔말 말고 얼른 음식하고 식수나 챙겨."
"넵."
타우스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신운성과 서은하도 바빴다. 귀족가를 몇 집 턴 뒤에는 목표를 상인들로 바꾸었다.
중간 규모의 상인들이 사는 집을 털고 물건을 챙겼다. 귀금속과 공예품을 다루는 상인에서부터 무기와 방어구를 다루는 상인까지 다양하게 털어 막대한 물품을 배로 실어 날랐다.
"거기 뭐하는 거야?"
가끔 순찰을 돌던 병사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가까이 다가온 타우스의 부하들에게 모두 목숨을 잃었다. 똑같은 병사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긴장을 푼 것이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병사들은 쓰러졌다.
"상인들은 됐다. 이제부터는 여자들을 집중적으로 납치한다."
"흐흐흐, 알겠습니다."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타우스와 부하들은 명령을 받자 바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모두 점찍어둔 여자를 납치하려는 것이었다.
"어제 내가 말한 집 알지? 그 여자 꼭 데려와야 해. 안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 내가 차지한다."
"걱정 말고. 너나 조심해."
원한을 사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직접 향하지 않도록 타우스와 부하들은 서로 짝을 이루어 다른 이가 대신 납치해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으읍!"
한 밤중에 몰래 집안에 들어온 괴한이 입에 재갈을 물리고 팔을 묶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며 하는 반항에 당할 정도면 해적질을 해먹기는 어렵다.
이번에 따라온 이들은 모두 타우스 밑에서 한가락 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 병사 두셋은 혼자 상대할 정도로 실력이 좋은 이들이었다.
여자를 납치하고 배에 식량과 식수를 싣는 일이 끝났다. 중간에 소란이 있었지만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같은 병사 옷을 입은 이들이 움직이는 일이라 모두 경계를 푼 탓이었다.
"좋아. 꽉 찬 배들부터 먼저 출항하고 남은 배의 인원들은 나를 따라 조선소로 간다."
"조선소는 왜요?"
"조선 장인들을 납치할 생각이다."
"남자를요?"
"남자라도 쓸모 있는 이들이지. 잔말 말고 따라와."
신운성은 조선소에서 만들어지는 배를 보고는 조선 장인들을 납치할 결심을 했다.
'이들이 나의 계획을 더욱 앞당겨 줄 거다. 그리고 이들을 잃으면 북부의 해군력도 그만큼 뒤쳐진다.'
기술의 우위가 전투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우수한 무기를 지닌 이가 살아남을 확률은 단순히 계산할 때는 더 높다고 볼 수 있었다.
조선소에 들린 신운성은 조선 장인들의 입에 모조리 재갈을 물리고 포박했다. 반항하려던 이들은 날카로운 단검 앞에 저항을 포기했다.
"데려가!"
타우스가 조선 장인들을 끌고가자 신운성은 내부를 둘러보며 설계 도면을 찾았다.
'여기있다.'
커다란 종이에 그려진 설계도면을 찾은 신운성은 이것을 챙겨 다시 돌아온 타우스에게 건네주었다.
"중요한 거니 잃어버리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타우스가 직접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을 확인한 신운성은 이제 약탈을 마무리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조선소에 기름을 뿌렸다. 만들어지고 있는 배들과 조선소 내부에 여기저기 기름을 뿌리고는 시간을 두고 불이 붙도록 조종하고는 기름에 담궜던 밧줄에 불을 붙였다.
불길은 밧줄을 타고 빠르게 조선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시내에 불을 질러보자."
"네!"
타우스는 즐겁게 대답했다.
"불이야! 불!"
"불을 꺼!"
신운성과 타우스 그리고 부하들은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불을 질렀다. 수십 곳에서 한꺼번에 불을 지르니 혼란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불을 지른 이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불이 났다고 소란을 피웠다.
자다 깬 사람들은 불을 끄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불길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목조 건물을 노리고 불을 질렀기 때문에 한 번 불이 붙자 불을 끄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냥 무너트려! 불이 번지지 않게 해!"
방화의 중심 표적이 된 아비트의 상인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불은 끄지 못했다.
혼란을 조장했던 신운성은 부하들과 함께 부두에서 이를 바라보다 떠났다.
이들이 떠나는 순간까지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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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제 금요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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