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8 회: 권력 -- >
레던과 다후트는 휘하의 전사들과 함께 신운성이 명한 술래잡기를 했다. 결과는 의외로 다후트의 승리였다. 레던이 실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은 그다지 노련하지 못했다. 반면 다후트는 뛰어난 통솔력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레던의 에이드족이 다후트의 팔리마족에게 밀린 이유가 이거군.'
레던은 용맹했다.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전사들의 움직임은 다후트의 팔리마족이 더 좋았다. 그 결과 다후트의 전투력이 레던에 미치지 못함에도 팔리마족이 에이드족을 압도했던 것이었다.
"다후트. 이제부터 날 대신해서 이곳을 관리해라. 여기 부족의 근거지는 베랑. 그리고 바닷가에 세워질 해안 요새의 이름은 히렌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후트가 자세한 설명을 듣는 동안 레던은 한쪽에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 날, 모든 것이 결정되자 일단 모두 되돌아가기로 했다. 신운성은 다후트에게 통솔을 맡기고는 레던에게 다가갔다.
"실망스러운가?"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를 뿐이야. 넌 용맹하고 잘 싸우니까 네가 크게 빛날 자리는 전장이다."
단 몇 마디의 칭찬이었지만 레던의 표정은 조금 풀어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제 곧 코벵으로 나아가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때부턴 네 역할도 중요해 진다. 꽤 많이 싸워야 하거든."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칭찬은 사람에게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레던의 아랫사람이나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말했다면 똑같은 말을 해도 위로가 마음에 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칭찬을 한 대상이 신운성이었다. 이제는 전쟁 영웅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젠 전사들의 중심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신운성에게 인정받는 것을 레던은 가장 원했다.
자신을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하는 위로와 칭찬은 금방 마음에 스며든다.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마음이 열린 상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앙으로 다시 돌아온 신운성은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조선소 건설을 서둘러 더 큰 배를 만들 것을 종용하는 한 편 베랑과 히렌의 건설도 서둘렀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자 온건파쪽에서 다시 소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탓이었다.
"너무 무리해 북부로 진출했다간 우리도 북부군과 같은 꼴을 당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더구나 아직 북부군의 거점을 모두 차지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전쟁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온건파도 루앙의 내성을 차지하고 권력자로서 맛 볼 수 있는 편의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정을 원했다.
계속 전쟁에 매달려서 남부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온건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온건파의 욕망은 안정을 추구했다.
반면 강경파는 더욱 강하게 맞붙는 것을 원했다. 상대를 아예 말살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진정한 안정이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때문에 신운성의 공격 계획에 찬성하며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이 일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었다.
또한 대립에는 단순히 방법의 차이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권력.
양 세력은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붙임으로써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이곳 루앙을 차지했다고 너무 안심하는 거 아닙니까? 여긴 원래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족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와 결국 내주어야 했었죠. 북부인들은 우리를 모두 몰살시키려하고 있는데 천천히 상황을 보는게 말이나 됩니까?"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저들과 우린 이미 공존하기 힘듭니다."
강경파의 주장은 먹혀들 것 같았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하크의 노예들을 보십시오. 결국 그들처럼 파우론을 부정하게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우리가 더 강해진다면 파우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죠."
"그게 무슨! 그럼 교단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참 가만히 있겠습니다!"
말다툼은 더욱 심해졌다. 서로 주장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고 일리도 있지만 감정싸움으로 격화되자 절대 양보 하지 못하겠다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연합에 파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결국 변한 것은 없군.'
신운성은 답답했다. 연합은 결국 빙 돌아서 처음 상태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합이 없던 시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러난 남부인과 싸우고자 주장한 남부인들로 나뉜 것처럼.
'문제는 이번에는 강제적으로 통합이 어렵다는 거지.'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니 상대방을 무력으로 억누를 수도 없었다. 같은 편에게 무력을 동원할 경우에는 항상 명분이 있어야 한다. 명분도 없이 무력을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은 경계하거나 배척하기 마련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각자 원하는 부족들만 원정을 가는 겁니다. 연합이 아닌 각 부족의 부담으로요. 그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권리에 대해서는 그럼 아무런 주장도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러죠."
온건파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신운성이 보기에 여기에는 음흉한 심계가 숨어 있었다.
'부족의 힘이 약해지면 발언권도 약해지고 결국 연합을 자신들 뜻대로 이끌겠다는 거군.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은근슬쩍 편승할 것이고.'
얌체 같은 짓이었지만 신운성은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보다 원하는 일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온건파가 얌전히 따라 와주었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뿐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온건파고 강경파고 할 것 없이 달려들게 만들어주지.'
신운성은 유드족과 사막부족들의 모든 역량을 새로운 배를 만드는 일에 쏟았다. 그와 동시에 타우스를 시켜 항복한 자들 중에 쓸 만한 자들을 부하로 삼게 만들었다.
1달 후.
"타우스. 부하들 교육은 어떻게 됐나?"
"걱정 없습니다.
타우스는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신운성은 타우스의 뒤에 도열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때 북부군이었으나 이제는 남부인이 된 이들이었다. 하얀 피부 때문에 루앙에서는 아직 차별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신운성의 소유라고 생각해서 남부인들은 학대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운성은 이제 '해적'이 될 이들을 바라보았다.
'독이 바짝 올랐군.'
눈빛만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기세였다. 더구나 이들 앞에 선 신운성은 한 때 자신들을 때려죽이던 사람이자 정복자였다. 감정을 좋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매질과 타우스의 유혹에 모두 신운성의 병사가 되기로 결정을 내린 이들이었다.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도 일단 따르겠다고 했다.
배신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운성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너희들이 날 미워하는 걸 잘 안다.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놈도 있겠지."
신운성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걸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날 죽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능력이 있으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명심해라. 날 죽이려다 실패하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게 해주겠다. 끌고 와!"
신호를 보내자 엉망진창으로 얻어터진 북부인 하나가 끌려왔다.
"이 녀석은 허락도 없이 숙소를 이탈한 것도 모자라 여자를 범하려 한 놈이다. 즉, 나를 아주 우습게 알았다는 뜻이지."
옆에 서 있던 레던에게 검을 빌린 신운성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날카로운 검의 끝으로 남자의 옷을 이리저리 긋자 옷이 조각나며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이내 벌거숭이가 되었다.
"꽉 잡아라."
전사들이 남자를 꽉 잡자 신운성의 검은 남자의 가슴에서 하복부로 천천히 기어 내려갔다. 살짝 긁히며 피가 맺히자 남자는 덜덜덜 떨면서 자비를 구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너 같은 놈을 두 번 봐야 할 정도로 난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이 움직였다. 날카로운 날이 남자의 상징을 싹둑 잘랐다. 비명과 함께 피가 튀었다. 그러다 남자는 기절했다.
"치료해."
신운성은 돌아서서 해적이 될 이들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현장을 보았음에도 기가 죽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난 저 녀석을 편히 죽일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 저 녀석은 치료를 받을 거다. 그리고 완전히 낫게 되면 고문할 것이다."
남자의 상징을 잘랐던 검이 허공에 춤을 추웠다. 그러다 제일 앞에 선 남자의 어깨에 닿았다. 남자는 행여나 자신을 해치려는 것인가 싶어 덜덜 떨었다. 검은 팔을 타고 흘러내려 손끝에서 멈췄다. 차가운 검의 감촉에 남자는 소름이 돋았다.
"우선 손톱을 하나씩 뽑을 거다."
툭하고 손등을 치자 남자는 얼른 팔을 당겨 뒤로 숨겼다.
신운성은 그 옆에 선 남자의 앞에 서서 다시 검으로 손을 가리켰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끊어줄 거다. 물론 전부 자르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맨 앞의 마디부터. 하나씩."
줄을 선 이들의 앞을 지나치며 신운성은 끔찍한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렇게 손가락을 다 잘라내면 다음에는 어딜 자를까? 당연히 발가락이지. 일단 발톱을 하나씩 뽑으며 다시 고통을 안겨주겠다. 계속 치료해주고 밥도 잘 먹일 거니까 금방 죽지는 않을 거다."
얘기를 듣는 이들은 의심했다.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내가 그냥 겁주려고 하는 거 같다고? 물론 겁주려는 의도가 맞아. 그러니까 겁 안 나는 놈은 내 말을 거역해봐. 어떻게 되는지는 본인이 직접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신운성은 강력하게 자신의 뜻을 주장하며 밝히기보다 상상력을 자극했다.
"죽여 달라고 비명을 지르게 만들어 줄 거야. 손가락이 모두 잘려서 음식을 손으로 들고 먹기 어려워지면 돼지처럼 땅에 고개를 박고 먹어야겠지. 손바닥으로 음식을 들어 먹으면 손도 잘라줄 거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마지막 남자 앞에서 피식 웃으며 말한 신운성은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말에 잘 따르는 녀석들은? 어떻게 해줄까? 답은 이미 알고 있겠지."
신운성과 눈이 마주친 타우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타우스는 현재 상황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타우스와 동료들은 부하를 거느리게 되었고 앞으로 북부의 여자를 잡아오면 가장 먼저 선택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해적.
약탈하는 범죄자이지만 전쟁 중에 약탈은 기본이었다. 신운성이 내건 약속은 타우스와 동료들을 매우 흡족하게 만들어주었다. 현재 거처도 마음에 들지만 앞으로 해적질로 얻게 될 재화는 철저히 세운 공에 따라 나눠주겠다고 했다.
남자들의 눈이 조금 빛났다. 타우스도 같은 북부인이었지만 지금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타우스와 그의 동료들이 먹고 마시는 것도 보았다. 포로로 잡힌 자신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돼지처럼 사육되라는 말은 안 하겠다. 하지만 너희들은 날 위한 사냥개가 되어라. 철저하게 사냥개로 사는 동안에는 죽이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신운성은 검에 오러를 일으켰다.
눈부신 오러가 검에서 일어나자 남자들은 다시 공포를 느꼈다.
오러를 줄기줄기 뿌리는 검은 바닥을 한 번 쓸었다. 그러자 돌로 된 바닥이 쩍 갈라졌다.
"나하고 싸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받아주겠다."
검을 레던에게 넘긴 신운성은 조용히 떠났다.
"자! 봤지! 무서운 사람이니까 함부로 뭔가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 번 뿐인 삶인데 고문 당하다 죽으면 억울하고 아쉽잖아! 안 그래?"
타우스가 분위기를 추스르자 북부인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타우스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한 잔씩 돌릴 테니까! 가자고!"
훗날 악명 높은 해적으로 알려질 '하크 해적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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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덥네요. 모두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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