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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93화 (93/109)

< -- 93 회: 혈전 -- >

신운성의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유혈의 현장에서 날뛰는 자들은 인간 같지가 않았다.

악마.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인간을 마구 절단 내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마스터들은 사방을 피로 물들였다.

전사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며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다.

'물러날 수 없다.'

약간의 불안이 심장을 쿡쿡 찔렀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흘려대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한 전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물러날 수 없었다.

"드디어 왔다!"

전사들이 버틴 이유.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신운성은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졌다.

전사들이 신운성을 영웅으로 여기며 충성을 맹세한 이유는 그가 오러 마스터이자 승리를 안겨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적과의 싸움에서 꼭 필요하기에 사람들은 신운성의 그늘 아래로 모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친다면 전사들은 동네 꼬맹이들처럼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신뢰를 무너트리고 도망친 영웅을 계속 떠받들어줄 이유도 사라진다.

때로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물러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신운성에겐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싸운다!'

메이스에 오러를 집어넣고 달렸다. 적이 눈치 채도록 기합을 내지르거나 하지 않았다.

상대는 여섯.

하나라도 빨리 없애려면 은밀한 기습이 최선.

하지만 기습은 통하지 않았다.

"하앗!"

콰앙!

기세를 제압하려는 기합과 함께 노기사 한 명이 검을 내질렀다. 오러로 빛나는 검은 메이스에 묵직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큭!"

메이스를 놓칠 것 같았다. 버티기 어려워 몸을 축으로 회적하며 충격을 완화하며 방패를 무기처럼 휘둘렀다.

콰앙!

빙글 도는 자세와 함께 방패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지만 다시금 검에 막혔다.

상대는 그저 그런 기사와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에 막히자 몸의 회전도 멈춘 상태. 신운성은 불안정한 자세에서 재차 찔러들어오는 공격에 노출되었다.

그 순간 서은하가 방패를 날려 검을 막아주었다.

콰앙!

전보다 더 강한 충격음이 울리며 공기를 진동시켰다. 순식간에 일어난 공방에 다른 북부 기사들이 강한 적의 개입을 알아차리고 관심을 돌리려 했다.

'위험!'

신운성은 서은하의 방패가 적의 공격을 막은 틈을 이용했다. 몸을 낮추며 바닥을 구르다시피하며 메이스를 휘두르자 서은하의 메이스를 막아내려던 노기사는 아래에서 갑자기 들어오는 공격에 주춤하고 물러나려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 신운성은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기어코 정강이를 박살냈다.

피가 튀며 노기사가 쓰러졌다. 그 순간 3개의 검이 날아왔다.

황급하게 구르며 방패를 집어 던지자 기사 하나가 오러로 방패를 쪼개버렸다.

신운성은 황급히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들고 서은하의 등 뒤로 돌아들어가던 기사를 향해 던졌다.

"뒤에 조심!"

서은하가 뒤로 구르며 빠질 때 뒤쪽에 서 있던 기사는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며 신운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길!'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한 명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2:5였다.

오러 마스터 한 명 상대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한 판국에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려니 심장이 미친 소 마냥 날뛰었다.

두려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 신운성은 외쳤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

신운성의 외침에 전사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신운성이 어떻게든 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무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기세가 무너졌다.

전사들은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북부군은 그런 남부 전사들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서 전사들이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말을 탄 상황도 아니고 기마병이 활약할 수 있는 넓은 평야도 아니었기에 북부군은 추격전으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신운성과 서은하는 가까스로 그란을 비롯한 오러 마스터들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전후좌우, 마스터들의 매서운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서은하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해!"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상황. 서은하의 외침에 신운성은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이제 전사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전사들이 도망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 빠져!"

신운성은 폭발적으로 오러를 운용했다. 마지막 일격이라는 생각으로 오러를 뽑아내 휘두르자 기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뛰어!"

그 틈에 신운성과 서은하는 포위망을 뚫고 달려 나갔다.

"어딜!"

뒤로 물러났던 그란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서은하가 방패를 던졌다.

날아오는 방패를 쪼개는 사이 신운성과 서은하는 빈틈 사이로 빠져나가 죽어라 달렸다.

"잡아!"

그란의 눈에 다른 것은 보이질 않았다. 오러 마스터가 왔으니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성기사들은 일제히 신운성의 뒤를 쫓았다.

폭발적인 속력으로 인해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다 똑같은 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던 신운성은 슬쩍 뒤를 보며 한 명이 앞으로 달려 나오자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뽑았다.

뒤쫓던 성기사는 신운성이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숨기자 약간 거리를 두고 모퉁이를 돌려고 했다.

신운성이 모퉁이 부근에서 단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본 성기사는 피식 웃었다.

이에 신운성을 단검을 던지지 못하고 다시 달렸다. 그 순간 성기사는 다시 거리를 좁혔다. 루앙 내부를 휘젖는 추격전이 이어지자 성기사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뒤를 쫓기만 해선 잡기 어렵다 판단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것이 악수였다.

'흩어졌다.'

루앙 내부의 길은 건물의 위치를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확인한 신운성이었다. 도망치면서도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며 달렸다.

'흩어졌다면 한 놈씩!'

각개격파를 위해 신운성은 달리기를 멈추고 뒤에 붙은 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들고 있는 것은 메이스와 단검뿐이었다.

신운성이 성기사 하나와 격돌하자 서은하도 다른 성기사와 전투에 돌입했다.

1:1의 대결은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문일지십 덕분에 적의 공격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상대의 노림수가 모두 눈에 보였다. 더구나 철심을 통해 알게 된 마나의 움직임과 마나 사용법이 합쳐지니 사각 지대에서 뻗어오는 공격들까지 알 수 있었다.

신운성과 서은하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성기사들에게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단검과 메이스를 들고 싸우는 것은 약간 어색했다. 검을 방패로 막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피하며 메이스로 막고 단검을 찔러 상대를 당혹스럽게 했다.

'좋아! 빨리 끝낸다.'

상대의 움직임이 자신보다 약간 느리다는 사실을 알게된 신운성의 눈은 늑대처럼 빛났다.

이빨을 드러낸 늑대는 웃으며 공격에 들어갔다.

쾅! 콰광! 쾅!

단검과 메이스가 연달아 휘둘러지며 막히자 충격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성기사는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공격 속도가 빨라지자 점점 뒤로 밀렸다.

똑같은 공격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빤한 것임을 알면서도 성기사는 계속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반격을 하기에 뒤이어 들어오는 공격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었다. 공멸을 각오한다면 반격할 수도 있었으나 목숨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공격 속도가 점점 늘어나며 성기사는 자신이 불리함을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신운성은 공격 속도를 한층 더 올렸다.

오러 마스터에 오르면서 능력치가 향상한 덕분에 낼 수 있는 속도였다. 신속의 힘이 더 빠른 공격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퍼억!

성기사의 팔을 쳐내자 검을 잡은 팔이 터져나갔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검이 떨어지는 상황!

재차 휘둘러진 메이스는 머리를 박살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뜨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신운성은 서은하를 상대하던 성기사를 죽여버리곤 쫓기던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 만난 것은 북부군 병사들이었다. 두 사람은 맹렬하게 병사들을 처 죽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신운성은 새로운 퀘스트를 받게 되었다.

적을 처단하라! (무한 반복)

파우론을 믿는 자들을 처단하라!

보상: 10명 처단 시 스탯 포인트 1, 포인트 동전 1개

실패: 없음

잠시 짬을 내 퀘스트를 확인한 신운성은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죽일 걸 그랬나?'

코벵에서 포로를 잡지 않고 모두 직접 죽였다면 막대한 스탯 포인트를 벌 수 있었다.

'아니야. 전부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신운성은 생각을 바꿨다. 능력치를 좀 얻는다고 전쟁이 더 쉬워지지는 않는다. 전투에서 죽지 않을 확률은 올라가지만 전쟁 자체를 바꿀 정도로 강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덕분에 루앙을 쉽게 점령할 기회를 얻었다.'

타우스가 아니었다면 루앙을 이렇게 단기간에 혼란에 빠트리기는 어려웠다.

'죽일 놈들은 아직 많아!'

무엇보다 사람은 아직도 많았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서둘러 북부군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북부군 병사들이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일 정도였다.

한 명을 죽이면 그만큼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무섭게 몰아쳤다.

"으으! 악마다! 빨리 마스터들에게 알려!"

이제는 신운성과 서은하가 악마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병사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루앙을 적시기 시작했다. 비명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어둠을 밝히는 횃불은 점점 줄어들었다.

겁에 질린 이들은 결국 건물 안에 들어가 문을 꼭 걸어 잠궜다.

이후 그란과 마스터들이 두 사람을 잡기 위해 쫓아다녔지만 신운성과 서은하를 잡을 순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정확하게 길을 찾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그란과 성기사들은 매번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렇게 쫓고 쫓기던 와중에 새벽이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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