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기어-92화 (92/109)

< -- 92 회: 혈전 -- >

해질 무렵, 배들은 천천히 루앙의 부두를 향해 나아갔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왔다!"

척 보기에도 사람이 많이 탄 배들이었다. 기사 한 명은 얼마 전에 들렸던 타우스를 떠올렸다.

"코벵에 고립되었던 병사들을 데려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저렇게 사람이 많으면 오다가 다 쓰러지거나 했을 텐데."

"뒤쪽에 수송선들이 천천히 따라오는 건지도 모르죠."

상황을 잘 알 수 없다면 의심부터 해봐야 하건만 아군의 깃발을 단 배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무엇보다 전후 사정을 생각하며 천천히 살피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중성벽을 가지고 있지만 벌써 성벽 하나를 점령당한 상황. 양 군 사이에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었으며 두 번째 성벽에 달린 성문이 곧 파괴될 것 같다는 소식이 돌고 있었다. 모두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남부군과의 난전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때에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너무나 시기적절한 지원군의 도착이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할 때까지 그 어떤 공격도 없었다. 해가 지며 어둑해진 상황이라 배에 탄 이들의 피부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

"앞으로 네 역할이 중요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내가 신호를 줄 때까지 절대 허튼 짓 하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타우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루앙의 기사와 병사들은 타우스를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인물이라 의심은 없었다. 떠나던 날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졌었지만 그날 사건의 진정한 범인을 알지 못하기에 타우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수완에 감탄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병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금 당장 전투가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이 녀석들 전부 파우론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지만 기사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진정 파우론님을 위한 군대군요. 그럼 얼른 갑시다."

기사와 병사들이 앞장섰다. 나머지 인원은 알아서 인솔하겠다 말한 뒤 타우스는 300명의 동료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타우스의 동료들은 모두 북부인과 같은 하얀 피부를 가졌기 때문에 불빛에 드러나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중간에 신운성과 서은하가 섞여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는 이는 없었다.

부두에서 루앙 안쪽으로 향하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에는 이런 식이군.'

루앙 안쪽에는 큼직한 건물이 여럿 있었다. 모두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잡은 건물들뿐이었다. 건물은 크고 길은 좁았다.

'점령하려면 고생 꽤나 하겠어.'

도시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골목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꽤 복잡해질 것 같았다.

신운성은 루앙을 둘러보며 머릿속에 담았다. 한 번 본 것만으로 대충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때였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뒤쪽에서 소란이 일어나며 전투가 벌어졌다.

'발각됐군.'

타우스가 다급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이에 신운성은 메이스를 뽑고 방패를 들고 움직였다.

타우스의 동료들은 길을 비켜주었다. 순식간에 앞장서던 기사와 병력들에 이르는 길이 만들어졌다.

퍼억!

기사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어 돌아섰는데 그것이 끝이었다. 머리가 박살나 더 이상의 사고는 이어지지 않았다.

"으악!"

놀란 북부군 병사들이 외쳤지만 순식간에 잡혀 죽었다. 오러 마스터인 신운성과 서은하가 함께하는 300여 명의 병력을 막기에는 무리였다.

"일단 성문까지 돌파한다. 성문을 열어주는 것이 우선이야."

신운성의 말에 타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랐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신운성이 동료를 죽이는 것을 본 북부군은 적이 나타났음을 알렸지만 신운성 또한 같은 말을 외쳤다. 이에 타우스와 다른 이들도 함께 외치니 혼란이 가중되었다.

"적이 나타났다! 부두에 적이 나타났다!"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적이 나타났다며 밀려오니 지원을 위해 달려온 이들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먼저 지키고 있던 이들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이 놈들이 적이다! 정신 차려!"

하지만 신운성의 공격이 먼저였다. 오러 마스터가 휘저으니 그나마 버티던 북부군은 순식간에 와해됐다.

신운성과 타우스는 계속 적이 나타났다고 외치며 움직였다.

타우스를 비롯한 아군의 모습에 잠깐 혼란에 빠진 이들은 공격 한 번 못해 보고 죽었다. 외부에서 적이 밀려오는 상황인데 내부에서 적을 맞이하니 혼란이 더욱 가중 되었다.

"성벽이 뚫린 모양이야! 내성까지 후퇴해야 해!"

잘못된 정보가 한 번 퍼지자 혼란이 극에 달했다. 성 내부를 휘저으며 움직이는 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기에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물러난다! 내성으로 물러나!"

멀쩡한 성벽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외부에서 성벽을 점령하고 공격하던 남부군은 기세를 타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남부 부족 연합의 전사들을 확인한 신운성은 재빨리 타우스와 동료들을 이끌고 후퇴하는 이들의 뒤를 쫓았다.

'지금 저들과 합류하기에는 일러!'

무엇보다 전투 상황이었다. 같은 연합군이라고 해도 전투의 흥분으로 인해 피아 구분을 잘 못할 수가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치부하는 상황에서 타우스와 동료들을 이끌고 나타난다면 공격 받기 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적이라니!"

"부두에서 갑자기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군이라고 했잖아!"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뭐?"

그란은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것보다 대응이 먼저였다.

"어쨌거나 모두 내성에 집결하도록 해! 그리고 부두 쪽에서 오는 병력은 안으로 들이지 말고 싸우게 해!"

"그러면 희생이 큽니다."

"부두에서 적이 밀려왔다며! 그럼 누가 아군인지 어떻게 알아? 시키는 대로 해!"

부하가 나가고 나자 그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집기를 부셨다.

"으아아아아아!"

완벽하다고 생각한 방어 계획에 구멍이 났다.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일이 틀어졌다.

분노로 인해 눈에 핏발이 선 그란은 검을 뽑았다.

"마스터를 모두 불러."

밖으로 나온 그란은 다시 달려온 부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설마 싸우시려는 겁니까?"

"그래."

"그럼 지휘는 어떻게 합니까?"

"네가 해."

"네?"

"네가 해라. 지금 상황에서 지휘라고 할 게 뭐가 더 있나?"

농성을 벌이는 일이었다. 오래 버틴다면 6개월이었다. 내성에는 물자가 집중되어 있었기에 성이 무너지지만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있었다.

'모조리 죽여주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란은 적이 필요했다.

뜨거워진 머리를 식힐 피를 뿌려줄 적이.......

적들이 혼란에 빠져 내성 안으로 향하고 있었으나 어느새 내성의 문이 닫혔다.

"왜 성문을 닫았나! 열어라!"

기사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외치자 병사 하나가 성벽 위에 올라와 외쳤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죽으라고!"

"어쩔 수 없습니다!"

기사는 욕을 하면서 뒤돌아섰다. 신운성은 기회를 보았다. 기사와 다른 병사들을 따르는 척 한 것이다.

"모두 창고로 간다!"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신운성과 타우스 일행도 뒤를 따랐다.

'아직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운이 좋았다.'

일부러 약간 멀리 떨어져 있던 무리와 합류해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

"너! 얼른 가서 막아!"

남부 전사들이 밀려오는 모습에 기사 하나가 신운성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퍼걱!

신운성은 기사의 머리를 박살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공격할 기회만 노리던 이들이 동시에 북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맡는다!"

기사를 박살낸 신운성은 후드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자 달려오던 남부 전사들은 멈췄다. 적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서로 싸우기 시작하더니 신운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함을 깨달아 주춤한 덕분에 혼란이 가중되지 않았다.

"많은 수의 적들이 내성에서 농성하려고 한다. 그리고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창고를 중심으로 저항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움직여!"

"알겠습니다!"

전사들은 곧바로 다른 적들을 찾아 움직였다.

'이제 이쯤해서 옷을 갈아입어야지.'

남부 전사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북부군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위험했다.

"모두 옷을 갈아입는다!"

서은하를 제외한 이들은 모두 훌러덩 옷을 벗더니 가지고 있던 짐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서은하는 근처의 건물에 들어가 신운성이 지키는 와중에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까지 잘해 주었다. 우리는 잠시 성을 벗어난다."

신운성은 바로 공격에 들어가지 않았다. 타우스 덕분에 외성 공략이 쉽게 진행된 덕분이었다.

"더 싸우지 않아도 됩니까?"

"너희들은 충분히 공을 세웠다. 더 이상 무리할 필요는 없다."

신운성의 확언에 모두 표정이 밝아졌다. 무리하게 전장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신운성의 태도에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강제로 병사로 징집되었을 땐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신운성이 타우스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향해도 막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사들은 모두 신운성과 서은하를 알아보았다. 덕분에 빠져나오는 일은 쉬웠다.

"이제 쉬고 있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성안으로 들어오진 말고. 자칫하면 적으로 오인 받는다."

타우스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동료들과 함께 휴식에 들어갔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다시 전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혈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죽어라아아아아!"

수많은 전사들이 악을 쓰며 공격하는 이들이 있었다. 적은 모두 6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옷을 입은 6명의 기사들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전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저건 오러 마스터?'

그란을 위시한 오러 마스터들이 내성 밖에서 날뛰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