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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91화 (91/109)

< -- 91 회: 혈전 -- >

루앙.

떠나올 때는 도시였지만 되돌아오니 거대한 성이 되어 있었다. 성벽은 까마득히 높아 기습은 쉽지 않아 보였다. 성벽 중간에는 불을 밝힐 수 있는 공간도 있어 몰래 기어오르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루앙의 북부군 또한 높은 성벽으로 인해 기습을 나오긴 힘들었다. 성문을 열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기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니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신운성은 타우스를 끌어들인 사실을 함구했다. 한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공성을 시작한다."

정면 공격. 많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한다고 하니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공격은 무조건 성문에 집중한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비효율이다."

어두웠던 표정들은 다시 밝아졌다. 성문에만 공격을 집중한다는 작전은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성문을 뚫죠?"

"성문을 부술 수 있는 수레를 만들어야지."

간단한 그림을 그려 보여주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붕과 옆쪽에 방패처럼 보호해줄 판을 설치해 원거리 공격을 방어하는 기다란 수레였다. 중간에는 성문을 때릴 거대한 망치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것만 있으면 정말 성문을 열 수도 있겠습니다."

"적도 바보가 아니니 무슨 수를 생각해 낼 거다. 우선 이걸로 적의 반응을 살핀다."

공성 무기는 금방 만들어졌다. 병력이 넘치다보니 재료를 구하고 조립하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 공격은 없었다. 다만 성문쪽으로만 공격이 집중되었다. 그것도 전사들이 사다리를 들고 뛰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성문을 공략할 전사들이 공성무기를 움직일 뿐이었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가운데 공성무기가 접근하니 공격이 모두 집중 되었다. 화살이 무수히 날아왔지만 지붕을 뚫지 못했다. 그래서 불화살이 사용되었지만 불화살도 박히지 않고 모조리 튕겨 나갔다. 이에 위에선 기름이 부어졌다. 이후 불이 붙자 전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방패를 든 채 도망쳤다.

성문을 부수는 것이 실패했다. 성문 앞에 공성무기가 타다 남아 거치적거리는 상황이었다.

공격이 실패하자 사기가 좀 떨어졌다. 위안이라면 죽은 전사가 별로 없다는 것.

신운성은 또 다른 것을 만들게 했다. 이번에는 공성차와 투석기를 만들게 했다. 공성차는 성벽의 높이만큼 만드는 것이기에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전사들은 무작정 성벽으로 돌진을 시키지 않으니 작업에 순순히 응했다.

높은 성벽으로 돌진해 어쩌다 기어오른다고 해도 성벽을 사수할 수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그러니 차라리 헛짓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오래 사는 길이었다.

작업은 고되지만 죽는 것보다 나으니 전사들은 더 불평하지 않았다.

뚝딱뚝딱 공성용 무기가 만들어지고 시험이 이어졌다. 공성차 같은 경우에는 무게의 하중을 이기며 움직여야 하기에 조심스러웠고 투석기의 경우에는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기에 문제가 있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1주일 정도 남았나?'

자신이 정한 한계 시간을 계산하던 신운성은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공성차와 투석기는 그럭저럭 완성되었다. 돌을 날려보고 성공하자 전사들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기뻐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실패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패배한다면 좋은 말이 나올 순 없다.

마지막 공격을 위해 지휘부가 소집되었다.

"이번에는 총공세를 펼칠 생각이다."

한 마디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지금까지는 그저 상대의 반응만 살핀 정도였다. 하지만 총공세를 펼치게 되면 막대한 희생이 나오게 된다.

"우선 투석기로 성벽을 집중 공격한다. 전사들은 대기하고 있으면서 적의 기마병을 견제한다. 이 작업은 며칠 걸릴 수 있다. 성벽 한 쪽이 무너지거나 성문이 부서지면 공성차를 움직인다. 그리고 방패를 들고 모두 일제히 진격한다."

성벽을 공략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공을 가장 많이 세우는 부족에게는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해주겠다.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루앙에 대한 권리를 조금 더 넘겨주겠다."

어려운 일을 하라고 시켰으면 그에 대한 보상을 줘야 한다. 신운성이 루앙에 대한 권리를 들먹이자 눈이 빛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죽음이 두려워 대충 싸우는 자들이 나온다면 연합에 그대로 보고하겠다."

이쯤 되자대부분의 부족 대표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루앙을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루앙을 점령하지 못하면 보상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다.

신운성이 내건 보상은 오직 승리할 경우에만 맛 볼 수 있는 것. 패배하게 된다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대충 싸우는 시늉만 하다 물러날 생각을 한 이들도 있었는데 신운성이 강수를 뒀다.

이렇게 되면 '너 때문에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란 소릴 듣게 되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이번에 패배하면 신운성은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몰락하는 자가 같이 죽자며 끌어들이면 난감해진다.

"그리고 이번 전투의 총지휘는 카딘이 맡는다."

신운성은 카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이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럼 하크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다른 방향에서 루앙을 공략할 것이다."

"그게 어느 쪽인데요?"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된다. 만약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못할 테니 그렇게 알도록."

목숨을 건 위험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처음에는 가장 쉽고 좋은 일을 맡는가 싶어 의심했지만 죽으러 간다고 하는데 일부러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물론 말로만 위험하다고 하는 건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어찌 되었건 루앙 공략군의 최고 책임자는 신운성이었다. 신운성이 뒤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손짓만 해도 죽어라 싸워야 할 판이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투석기가 성벽을 타격하기 딱 좋은 위치에 설치되었다. 몇 번 시험 삼아 커다란 돌들을 날리자 북부군은 소란스러워졌다.

"불화살! 불화살을 날려!"

투석기를 불태우기 위해 불화살을 쐈지만 투석기가 불타기도 전에 남부군 전사들이 재빠르게 불을 꺼버렸다. 하늘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로 화살을 몇 번 날려봤지만 이도 소용없었다.

남부군은 화살에 대비해 투석기를 가릴 정도로 큰 초대형 방패를 만들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수백 개였다. 초대형 방패 뒤에 숨어 작업을 했기에 화살 공격은 통하질 않았다. 불화살은 초대형 방패 위쪽에서 뿌려주는 물로 쉽게 껐다. 바다가 근처였기에 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북부군의 화살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1000명이 개인당 10발씩만 쏴도 1만발이다. 3000명이 두려움이 느껴지도록 하늘을 아예 화살로 수놓을 정도로 쏘다보니 10만발의 화살이 금방 소모되었다.

"화살! 화살 더 가져와!"

투석기가 계속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살 공격을 멈출 순 없었다. 화살이 현재 북부군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원거리 공격이었다. 남부인들이 성이나 별다른 방어 시설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필요 없다 생각하고 투석기 같은 것을 만들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적의 투석기로 인해 성벽에 타격이 심합니다."

"화살 재고가 위험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바닥납니다."

무기는 무한하지 않다. 화살과 같은 경우에는 쏘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렵다. 여럿이 함께 쏘는 경우에는 대충 날아가기만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드는 수고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밤에 오러 마스터를 보낼까?"

"그들까지 잃게 되면 위험합니다. 다른 거점에 한 명씩 나가있고 여기에는 5명뿐이지 않습니까? 만약 적들이 더 많은 수를 데리고 왔다면 필패입니다."

"교단의 모든 마스터가 동원 됐다면 이런 일도 없을 텐데."

그란은 잠시 북부에 남아있는 전력에 대해 아쉬움을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야습은 하지 않는다. 대신 제2성벽으로 모두 철수하라고 하고 우리도 투석기를 제작한다."

"알겠습니다."

전투는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화살 공격은 뜸해졌다. 이에 남부군은 더욱 신이 나서 바위를 날렸다. 밤새도록 이어진 투석 공격에 새벽이 될 때쯤 성벽은 조금씩 금이 가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격! 돌격하라!"

성벽이 여기 저기 무너지자 카딘은 돌격을 명했다. 성벽이 무너지는데도 안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얼른 성벽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전사들이 돌격하는데도 화살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이에 전사들은 신이 나서 성벽을 기어올랐다.

제일 먼저 성벽을 기어오른 전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북부군이 성벽을 버리고 후퇴한 탓이다.

"어?"

전사는 주변을 살펴보다 놀랐다. 성벽 안쪽에 또 다른 성벽이 있었다. 약간의 공간을 두고 뒤에 세워진 성벽은 높이에선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거기엔 수많은 궁수들이 대비하고 있었다.

"젠장!"

화살이 날아오기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등 뒤에 매달았던 방패를 들었다. 전사들이 성벽 위에 올라가면 어김없이 화살 공격이 날아왔다. 느린 반응을 보인 전사들은 대부분 화살을 맞았다.

"벽 뒤에 또 성벽이 있다! 조심!"

"활과 화살을 가져와!"

전사들은 하나둘 성벽 위로 올라갔다. 무너진 성벽 사이로 또 다른 성벽이 보였지만 전사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성벽 사이에 서게 되면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완벽하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이중 성벽이라니."

지휘를 하던 카딘은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지휘했다.

"점령한 성벽 위에서 화살 공격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투석기를 분해해 성벽 위로 올릴 수 있는지 확인해! 공성차는 빨리 성벽에 갖다 대!"

공성차가 성벽에 붙자 남부군은 더욱 빨리 성벽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다. 공성차를 통해 기어 올라가 성벽에 무기를 조달하기 시작하자 전사들은 반격을 날렸다.

화살이 오가는 공방전은 치열했다. 대량의 화살이 무차별로 오갔다. 북부군은 궁수가 쓰러지면 다른 병사가 활을 들고 화살을 쐈다. 수십명씩 조를 짜서 한꺼번에 날리기 때문에 명중률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십 명이 한 지역에 광범위하게 쏘면 아무리 방어하고 있어도 대충 서너 명씩 화살을 맞았다. 하지만 화살로 인한 피해는 북부군이 더 컸다.

전사들 대부분은 활의 사용에 매우 익숙했다.

희생자는 계속 늘어났다.

화살을 가슴에 꽂고 하늘을 보며 숨을 거두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진짜 전투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신운성은 이중 성벽이 존재한단 이야기를 듣고 긴장했다. 루앙 내부의 구조는 자신이 알던 것과 판이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래도 간다.'

이번 일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보통 때라면 하지 않을 일.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쌓아올린 것을 지키기 위해선 싸워야 했다. 싸워서 이기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지면 모든 것을 잃는 도박이었다.

'심장은 괜찮다고 말한다.'

신운성은 자신의 강운을 믿으며 모험을 걸었다.

25척의 배가 전사들을 태우고 조용히 루앙을 향해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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