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4 회: 사막으로 -- >
바다는 잠잠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파도뿐인 상황이었다. 새도 없고 구름도 없다.
"미치겠네."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사막 전사는 구운 도마뱀을 씹으며 투덜거렸다. 전사의 임무는 남쪽에서 배가 나타나는 것을 감시하는 것. 하지만 경계라는 것은 굉장히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언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에 대비해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지루하고 피곤한 일. 만약 혼자서 계속 감시하라고 했다면 전사는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잘 보라고. 괜히 놓쳤다가 나중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나쁜 놈. 나중에 두고 보자."
바다를 바라보던 전사는 이를 갈면서 뒤에서 낄낄 거리는 동료를 돌아봤다. 여유롭게 누워 도마뱀 고기를 뜯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얄미웠다.
"꼭 이렇게 뚫어져라 봐야 하나? 배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다고."
"아니야. 노닥거리다보면 경계가 소홀해지니까 계속 봐야지. 잘못해서 지나가는 거 못 보면 어쩔 건데? 우리 연락 못 받았다고 뒤쪽에 있는 애들이 떠들면 그땐 망하는 거야."
"어?"
대화를 하던 도중 무엇인가 나타났다. 수평선 끝에 걸쳐 나타나는 물체들을 본 순간 '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타났다! 빨리 연락해!"
동료의 외침을 듣자 여유롭게 쉬고 있던 전사는 얼른 일어나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반짝이는 금속 방패를 들어 한쪽 방향으로 햇빛을 반사시켰다.
"신호 빨리!"
배를 발견한 전사는 재빨리 천으로 방패를 가렸다가 치우기를 반복했다.
빛을 이용한 신호는 빠르게 전달되었다. 깜빡이는 불빛이 계속 반복되니 먼 곳에서 불빛이 깜빡이며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런 형식으로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는 빠르게 코벵으로 전해졌다.
"적이 올라오고 있다고?"
"네, 숫자는 4척이라고 합니다."
"얼마 안 되는군."
보고를 받은 신운성은 생각에 잠겼다.
'수송선을 보낸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들의 거래 내역을 보면 아직 거래를 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는 건 저쪽에서 이상을 감지했다는 뜻.'
연락선과 코벵에 남겨져 있던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신운성은 북부군의 보급 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병력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4척이라고 하지만 전원 기사들이 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신운성은 적의 배들을 침몰시키기로 결정했다.
'보급품이든 뭐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수송선이라면 약탈하는 것이 이득이지만 아닐 경우에는 맞서 싸워야만 했다. 만약 적선에 기사들이 잔뜩 타고 있다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 위험도 있기에 깔끔하게 침몰시키는 편이 좋았다.
"출항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전사들은 코벵의 부두를 향해 달렸다.
모든 배들이 동원 되었다. 20척에 달하는 배에는 전사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적선이 보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있던 전사 하나가 외치자 신운성은 명령을 내렸다.
"적선을 향해 돌격한다! 불화살을 준비하라!"
배가 점점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4척의 적선들은 흩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신운성과 전사들이 탄 배가 자신들의 것과 같기에 경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배가 점점 가까워지자 적선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니 배에 탄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른 것을 본 탓이다.
"돛을 향해 공격!"
20척의 배에서 일제히 불화살이 날았다. 4척의 적선은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불에 휩싸였다.
"적의 배에 너무 접근하지 마라! 지나치면서 화살만 쏴라!"
화살 세례에 갑판 위에 있던 적선의 선원들이 불을 끄지도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에는 화살 세례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기사들이었다.
환하게 빛나는 갑옷은 화살을 튕겨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불화살은 계속 쏘아졌고 돛은 홀라당 타버렸다. 결국 배의 속도가 죽어버렸다.
불은 계속해서 번지려 했지만 필사적으로 물을 뿌려 막는 상황. 하지만 여기에 기름주머니를 단 화살이 박히며 사정이 변했다.
물과 섞이지 않은 기름이 갑판 위에 번지다 불을 만나자 순식간에 불길이 일었다.
"으아아아아아!"
화살을 피해 있던 선원들은 불을 피해 도망치다 물에 뛰어들었다.
기사들은 계속되는 공세에 결국 지쳐서 배 안으로 숨었다.
남아 있는 것은 아직도 갑옷을 빛내는 오러를 뿜어내는 오러 마스터들뿐이었다.
"오러 마스터들인 것 같습니다."
"5명이나 보내다니. 직접 부딪쳤다면 위험할 뻔 했다."
신운성의 주변에 있던 전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신운성의 결정에 불만을 품었던 전사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배를 약탈해서 얻게 될 전리품이 탐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말을 듣길 잘 했지.'
운이든 아니면 분석에 의해 적의 속셈을 알아냈든 중요한 것은 오러 마스터들과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속도가 완전히 죽어버린 4척의 배는 20척의 배들에 둘러싸여 계속 화살 공격을 받았다.
계속된 불화살과 기름주머니를 단 화살이 날아와 배를 두들기니 결국 배는 화염에 휩싸였다.
오러 마스터들과 기사들은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무거운 갑옷을 입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은 어려웠다. 더구나 신운성과 서은하는 오러 마스터들을 놓치지 않고 추적해 기어코 죽이고 말았다.
가라앉지 위해 필사적인 오러 마스터를 배 위에서 때려잡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결국 성기사들과 오러 마스터들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모두 수장됐다.
루앙.
"대체 왜 소식이 없는 거지?"
그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연락선에 이어 성기사들까지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코벵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사막 부족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없나?"
그란은 대번에 사막 부족을 지목했다. 코벵에서 일이 생겼다면 사막 부족을 통하지 않고는 뭔가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막 부족이 남부인들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래, 남부 녀석들이 뭔 재주로 갑자기 코벵에서 일을 벌였겠어."
사막 부족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부족이었으니 아마 경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다가와 갑자기 기습한다면 기사들도 당해내긴 어려웠다. 연회를 열어 모두 취하게 만든 후 목을 따는 방법 외에도 수단은 많았다.
"남은 수송선이 있나?"
"배는 더 이상 없습니다."
"젠장."
코벵이 함락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대비는 소홀했다. 그 결과 함선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그란은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수송선을 만든다. 모든 역량을 조선에 집중하도록."
"하지만 배를 만들려면 기술자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기술자를 키워. 어떻게 해서든 배를 만들어 단숨에 바다를 건너야 한다."
코벵에 문제가 있다면 코벵을 거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평소 쓰던 방법으로는 코벵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북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도 코벵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니 결국 싸워야 한다.
코벵에 갔던 성기사들 중에는 오러 마스터들도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싸운다고 해도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울 지도 몰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수송선을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수송선의 경우 이것저것 다른 물자를 싣기 때문에 장거리 항해는 힘들지만 배에 식량과 물로만 가득 채운 수송선이라면 한 척 정도는 잘하면 단숨에 아비트까지 갈 수도 있었다.
'코벵을 피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겠지.'
더구나 멀리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까지 합한다면 거리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래도 뛰어 넘는다.'
북부에서 무엇인가 눈치를 채고 조치를 취해주면 좋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지원이 끊길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부터 확장은 멈춘다. 모든 물건을 자급할 수 있는 체계로 변환한다."
코벵이 차단된 상황은 위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이 오래 간다면 북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전에 돌입한 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현재 남부에 내려와 있는 성황군과 북부인들의 수가 남부인들보다는 적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맞이한 그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남부에서 올라오던 성기사들을 박살낸 신운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적은 몇 척이지?"
"총 10척입니다. 모두 전선입니다."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배들이 대규모로 남하하는 중이었다. 거리는 약 반나절 거리. 준비를 할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화살 재고는 어떻지?"
"5000발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5000발. 개인이 소지하기에는 많지만 군대가 소지하기에는 적은 수였다. 1천명이 5발씩만 쏴도 다 떨어지게 된다.
"저 번에 막 쓴 것이 원인입니다."
"오러 마스터들을 잡는데 화살만 썼다면 싸게 먹힌 셈이다."
맞는 말이었다. 보고를 하던 레던도 공감하는 얘기였다.
"문제는 이번에는 같은 방법으로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화살이 다 떨어지면 그 다음에는 결국 접현한 후 난전을 벌여야만 했다. 아니면 적의 배를 그냥 놔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적이 여기까지 왔다면 쉽게 돌아가진 못할 텐데요."
"그래, 그게 중요하지."
배들의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진 않을 테니 적당히 해먹고 다음 단계로 움직여야겠지.'
신운성은 수송선의 성능을 보고 누군가 직접 단숨에 건너고자 한다면 가능하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선에는 병력이 가득 타고 있을 테니 코벵에서 물을 보급할 수밖에 없다. 식량은 없어도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버티기 힘들 테니까."
사람 수가 적었다면 화물을 더 실을 수 있으니 항해 거리를 더욱 늘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보급은 필수였다.
"일단 배를 타고 나가서 맞이해주자. 배의 돛이나 태워주자고."
호기로운 말에 전사들은 모두 함성을 내지르며 사기를 북돋웠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이길까?"
배에 올라타는 사막의 전사들은 신운성이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올지 기대되었다. 하지만 신운성이 내린 명령은 별로 대단한 게 없었다.
"불화살을 다 쏘면 접근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이거 참."
전사들은 이런 식으로 이길 수 있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바다에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의 전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기를 든 병사들이 잔뜩 탄 북부의 전선들을 보며 사막의 전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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