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3 회: 사막으로 -- >
처음 도착한 것은 루앙에서 온 연락선과 수송선들이었다. 이들은 고요한 코벵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정박했다. 배들도 멀쩡했고 멀리서 봐도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경계심이 약해진 것이 문제였다.
정박한 이후에 코벵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도 벗어나지 않은 것은 더 큰 실수였다.
신운성은 떠나지 않고 있는 이들을 보며 기습을 명했고 결국 모든 선박은 나포되었다.
연락선 안에 있던 보고서들은 신운성이 보관했다.
"수송선의 물건들은 어찌할까요?"
수송선에 실린 것은 무기와 각종 생필품을 사기 위해 보내는 남부에서 획득한 자원들이었다. 대부분 짐승을 사냥해 얻은 가죽과 고급 석재들이었다.
"석재들은 옮기기 힘들겠지?"
"낙타에 쪼개서 싣는다면 가능하긴 합니다."
"아깝네."
낙타는 사막에서 귀중한 생물이었다. 돌이나 나르라고 혹사 시키는 것은 좋지 않았다. 더구나 고급 석재는 사치품이었다.
"석재는 내려서 일단 창고에 넣어두고 가죽만 옮긴다."
가죽들도 질이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고급품을 바라보는 전사들의 표정은 무척 좋았다. 이번에는 전투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사소한 충돌만 있었기에 대부분의 전사들은 고급 가죽을 보며 군침만 흘렸지만 신운성이 원하는 자에 한해서 가죽과 전리품으로 배정했던 식량을 바꿔준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전사들은 전부 가죽으로 바꾸길 원했다.
그렇게 바꾸고도 가죽은 아직 한참 남았다.
"훈련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이제 멀미하는 전사는 없습니다."
"배의 성능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계속하도록."
신운성은 할 수 있다면 배를 타고 해적질을 해볼 생각이었다.
'소수로 적의 해안가를 초토화 시킬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다.
'북쪽을 칠까? 남쪽을 칠까?'
장단점이 있었다. 북부 해안가를 공략하면 수많은 물자를 약탈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비트만 털어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손실도 금방 복구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활동하는 해적이 신운성 하나라면 큰 피해를 입히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적들이 대규모로 함선을 만들어 밀고 내려오거나 오러 마스터를 총동원한다면 신운성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남쪽은 별로 먹을 것이 없는데.'
기껏해야 루앙이 고작이었다. 문제는 루앙에 상륙해도 남부인들이 세워놓은 방벽이 건재하다면 시내를 털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냥 여기서 끊어먹는 게 제일 낫겠다.'
북쪽도. 남쪽도 별로 좋지 않다는 판단이 서자 신운성은 계속 끊어먹기로 했다.
결심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배들이 북쪽에서부터 남하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드디어 코벵입니다!"
"음, 순조롭군."
북부에서 출발한 보급선단의 책임자는 코벵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에 잘만하면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겠지.'
가져온 것은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무기들이었다. 전쟁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물건을 공짜로 주는 법은 없었다. 몇몇 영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쟁상인으로 돌변했다. 휘하의 길드들을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 코벵에서 교역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아비트에서 주로 교역을 했지만 아비트는 영주의 소유였다. 때문에 세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코벵은 소유자가 없었다. 때문에 모든 것이 자유였다.
보급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교역에 가까웠다. 선단의 책임자는 보급 물자 외에도 여러 가지 물품들을 배에 실었다. 그 중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역시 고급술이었다.
일반인들이 마시는 술은 양은 많지만 돈은 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실어 와야 했기에 이윤을 남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급술들은 얼마든지 재량껏 받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필수 보급 품목에서 제외된 것이기 때문에 정해진 가격이 없는 탓이었다.
'지금쯤이면 남부의 고급술들이 다 떨어졌을 거야.'
남부의 점령지에는 고급 양조장이 없기에 할 수 있는 장사였다.
선단의 책임자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부두에 정박을 명했다. 그리고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사람들이 안 나오나?"
배가 부두에 들어오면 항상 나와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곤 거래를 위해 다가오는 상인들도 존재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책임자는 선원들에게 내려서 코벵을 살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뭔가 불안한데.'
이상한 침묵이 무척 기분 나빴다.
"아무도 없습니다! 텅 비었어요?"
"뭐?"
불안하다고 생각한 책임자는 얼른 도망칠 생각을 했다.
'물이 부족하지만 그건 술로 채우면 돼!'
원래 보급품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되지만 지금 상황은 특별하니 손을 댄다고 크게 책임을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 들려온 보고가 책임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창고에 고급 석재들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뭐?"
고급 석재가 잔뜩 쌓여있다는 말이 욕망을 부추겼다.
'코벵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돈 안 되는 싸구려 술과 식량을 내려놓고 석재로 바꿔서 가져가면 이득이다!'
탐욕의 계산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눈 한 번 깜빡이는데 계산이 끝났다.
'아주 잠깐 물건 바꿔 싣는 동안 무슨 일 있겠어?'
책임자는 배의 식량과 싸구려 술을 창고로 옮기고 석재를 싣도록 명령을 내렸다. 코벵에 아무도 없다면 석재의 임자는 없다는 소리였다. 코벵을 더 뒤지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탐욕과 함께 공존하는 불안 때문에 석재만 챙기기로 했다.
안이한 탐욕은 선단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석재를 싣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잘 됐군."
신운성은 피식 웃었다.
"레던, 다후트. 너희들이 나설 차례다."
"저들이 믿어줄까요?"
"숫자가 적으면 별로 경계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저들도 궁금할 테니까."
신운성과 서은하는 얼굴까지 가리는 복장을 하고는 레던과 다후트의 무리에 뒤섞였다.
레던과 다후트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운성의 명령이기에 사막의 상인인 것으로 위장해 코벵을 향해 움직였다.
대충 짐을 실은 낙타를 이끌고 코벵으로 다가가자 반응이 왔다.
"당신들은 뭔가?"
북부어로 물어보는 질문에 예전에 북부의 말을 배웠던 사막 전사 하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리. 상인. 물건 산다."
"상인? 여기 사는 사람들 봤나?"
"못 봤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뭔가 이상했지만 숫자가 별로 되지 않기에 선단의 책임자에게 보고했다.
"그래? 그럼 거래를 해야지. 사막 부족에게는 식량과 싸구려 술을 아주 비싸게 팔면 되겠어. 하하하하!"
내심 버리고 가는 것 같아서 아깝게 생각했는데 사막 부족과 거래를 하게 되니 선단의 책임자는 기분 좋게 웃었다.
'보석 같은 거나 잔뜩 가지고 있으면 좋겠는데.'
선단의 책임자는 탐욕에 눈이 멀어 마음속에 피어난 불안을 경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죽음이 되돌아왔다.
"우리 배 구경하고 싶다. 배 처음 본다."
신운성은 일부러 어눌하게 말하며 부탁했다.
"그래? 타지는 말고 부두에서만 보도록."
선단의 책임자는 별로 의심하지도 않고 답했다. 책임자의 눈은 다후트가 꺼낸 가죽 주머니에 온통 쏠려 있었다. 가죽 주머니 안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신운성은 탐욕에 눈이 먼 책임자를 슬쩍 비웃어주곤 부두로 향했다.
부두에서는 석재를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배의 선원들만으로 작업을 하고 있기에 작업 진척은 매우 느렸다.
"배가 12척이군."
"사람 수송은 안 하나봐. 사람이 별로 안 보여."
"가자."
신운성과 서은하는 바로 몸을 날렸다. 작업을 하던 선원들은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을 하지 못했다. 신운성과 서은하가 날뛰며 배에서 배로 넘어가며 돛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이! 뭐하는 거야!"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기보다 하고 있는 일이 자신들에게 해롭다고 생각한 몇몇 선원들이 화를 내며 외쳤다. 전혀 예상하고 있던 일이 아니었기에 신운성과 서은하의 행동에 반응이 느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돛 처리 완료."
서은하의 말에 신운성은 몸을 날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원의 머리를 부수고는 차버렸다. 머리가 박살난 시체는 그대로 바다에 빠졌다. 그러자 비상이 걸리며 선원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했지만 신운성과 서은하는 오러 마스터였다.
나타나는 사람을 모조리 박살내자 선원들은 기가 질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배의 돛이 모두 잘린 상황이었다. 더구나 배가 부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시간이 걸렸다.
결국 선원들은 도시로 도망쳤다. 그러나 코벵에서는 사막 전사들이 날뛰고 있었다. 소수였지만 모두 기사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전사들이었기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몇몇은 사막으로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멀리서 지켜보던 사막 전사들이 놓치지 않고 모조리 잡았다.
"살려주십시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선원들이 항복하기 시작했다. 배에서 내려 도망가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선원들은 모두 포박 당했다.
"이거 정말 싱겁군."
"기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책임자만 기사급이었고 나머지는 그냥 잔챙이였습니다."
레던은 거래를 하던 도중 선단의 책임자가 검을 뽑자 그대로 목을 날려주었다.
놀라서 반응하는 사람과 죽이려고 작정하고 기다리던 사람의 차이는 컸다.
"그런데 항복한 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다 죽입니까?"
전사들은 저항을 하지 않는 선원들을 일단 죽이지 않고 포박만 해두었다.
잠시 고민하던 신운성은 선원들에게 다가갔다.
피와 살점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메이스를 들고 다가가자 선원들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사, 살려주십시오!"
신운성의 실력은 이미 봐서 잘 안다. 기사를 훌쩍 뛰어넘는 것 같은 전투력에 질려 모두 겁에 질린 양떼들처럼 배를 떠나 도망치려고 했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집단에게 이성적인 판단은 어려웠던 탓이다.
"나를 따라 해라.
'나는 악신 파우론을 부정한다.'
"그, 그런."
누군가 반항하려 하자 신운성은 가차 없이 머리를 박살냈다.
"따라 해라."
살고 싶으면 신을 부정하라는 말에 선원들은 결국 따르고 말았다. 신을 부정하라는 말에 반항할 정도의 강단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살려달라고 애원할 일도 없었다.
결국 그렇게 모두 신을 부정하는 말을 하게 되자 신운성은 한 마디만 남겼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남부의 일꾼이다."
선원들은 그렇게 노예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비가 오다 멈추더니 더워져서 몹시 끈적하고 기분이 좀 그렇네요.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모두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