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1 회: 사막으로 -- >
사막 전사들의 충성을 받아낸 신운성이 계속 코벵을 향해 진격하는 동안 미완성의 요새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좋아! 완공이 얼마 안 남았다!"
사람을 잔뜩 투입해 공사를 하니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사람이 지치면 곧바로 다른 인력으로 교대하며 밤낮 가리지 않고 공사를 진행한 덕분이었다.
다치는 사람도 가끔 나왔지만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요새가 완공되자 요새를 지킬 전사들만 남고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물러났다.
요새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은 곧 그란에게 전해졌다.
"예상보다 빨리 완공했군."
"저쪽의 입장에서도 불안해서 서둘러서 그렇습니다."
"비는 언제쯤 올 것 같지?"
"그거야 파우론님만 아시는 일이죠."
"어쩔 수 없군."
그란은 5명의 성기사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요새를 감시하며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파우론님을 위한 일입니다.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5명의 성기사는 모두 오러 마스터였다. 북부에서는 죽음의 숲 정화에 나서서 좀비를 잡고 있다가 부름을 받고 남부로 내려온 상황이었다. 내려와서 할 일이 별로 없어 따분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죽음의 숲으로 가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없어도 정화 작업에 별로 어려움이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꼭 비오는 날 기습해야 합니까?"
"행여나 피해가 클까봐 그러는 거지요. 그리고 도망치는 것들은 전부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성황군의 오러 마스터들이 잠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오기 시작했다. 굵직한 빗방울이 천지를 뒤엎으며 세상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젠장. 비가 오고."
요새를 지키는 연합 전사는 투덜거렸다.
"소리 내지 마. 위치가 드러나면 안 돼."
"젠장. 알아. 안다고."
신운성의 기습을 통해 연합 전사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때문에 적이 했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경계했다. 요새 주변에는 불을 피우기 위한 길이 만들어졌다. 비를 막기 위한 지붕이 요새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 아래 타오르는 불은 비가 내려도 금방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5명의 성기사들은 신운성과 같이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얼른 끝냅시다."
"그럽시다."
오러 마스터들은 모이기 힘들다. 오러 마스터란 전력을 많이 가진 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파우론을 믿는 성기사들 중에 오러 마스터는 꽤 많았다.
만약 교단이 세계 정복을 시도했다면 세상은 교단이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단은 정치에 관심 없었다. 정치에 물들게 되면 사욕이 생기고 그로 인해 신을 모시는 마음이 약해진다는 원칙주의가 정치를 멀리하게 했다.
"밤이고 비도 오니 쳐들어오는지 알아도 못 막을 겁니다."
"저쪽에 오러 마스터도 없으니 조심하기만 하면 됩니다."
오러 마스터라고 몸에 칼이 안 박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사와 오러 마스터와는 전투력이 판이하게 달랐다.
"갑시다."
성기사들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요새를 향해 다가가자 요새의 전사들은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화살은 하나도 성기사들을 해치지 못했다.
투구로 안면까지 가린 성기사들의 갑옷은 오러로 빛나고 있었다.
오러로 빛나는 갑옷은 모든 화살을 튕겨냈다.
빛나는 오러로 전신을 감싼 기사들이 불을 넘어 다가오자 요새의 전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오러 마스터다! 오러 마스터가 5명이나 나타났다!"
기사도 갑옷에 오러를 주입하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주입한 상태로 여유롭게 한참 걸어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흐읍!"
요새의 성벽 앞에 선 성기사가 뛰어오르자 연합 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공격했다.
스윽.
성기사의 검이 무기와 함께 전사들을 양단했다.
스스스슥!
성벽 위에 올라선 성기사들은 거침없이 달렸다. 하나만 해도 상대하기 힘든 오러 마스터가 갑자기 다섯이 몰려오니 막질 못했다.
"물러난다! 요새를 포기하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요새 책임자는 후퇴를 명했다.
'제기랄 이런 일이.'
유드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요새를 차지하게 된 다미르족의 전사 대장 야브노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욕심을 부린 것이 탈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저들이 천천히 진격해 오는 것은 결코 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는데!'
오러 마스터가 5명이나 야밤에 기습해오니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 남부의 모든 전사들이 모였다면 오러 마스터 5명을 상대할 방법이 있기는 했다. 남부 전사들 중에도 오러 마스터는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중요한 전력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어이없는 사고로 잃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전력이기에 연합에서는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특히 성기사들과의 전투를 생각해 아껴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항상 수련을 하거나 다른 전사를 가르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령을 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에 방심한 것이 문제였다. 그저 그런 전력으로 대충 힘겨루기나 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 실수였다.
'알려야 한다. 오늘 있었던 일은 꼭 알려야만 해!'
패배했다고 모두 끝은 아니다. 패배를 했으면 패배를 한 과정을 아군에 알려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게 될 경우 아군은 똑같은 방법에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미르족은 서둘러 물러났고 오러 마스터들은 너무나 쉽게 요새를 점령했다.
너무나 쉽게 요새를 내주고 돌아온 야브노의 보는 연합 수뇌부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일로 인해 유드족의 족장 보나르의 입지는 살짝 줄어들고 포레앙족의 족장 에퀼을 비롯해 요새를 포기하자 했던 사람들의 발언권이 더욱 강해졌다.
사막 전사들은 요새가 함락된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진격했다. 그리고 결국 코벵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저기가 코벵입니다."
"벽은 없네."
"방심하고 있다는 증거죠."
진지하게 경계를 했다면 성벽을 세우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코벵에는 벽이 없었다.
"일단 물러나서 며칠 푹 쉬자. 힘을 모아야 하니까."
신운성은 목표를 발견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행군한 이상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신운성 혼자 싸운다면 휴식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사막 전사들이 필요했다.
'단숨에 제압해서 보급물자와 배를 탈취해야 해.'
보급물자를 노리는 신운성은 피해 없이 손에 넣길 원했다. 서은하와 함께 싸운다면 질 리가 없지만 한꺼번에 모든 병력을 상대하지 못하니 결국 적이 대응할 시간을 주게 된다. 그때 누군가 후퇴하며 불이라도 지른다면 아까운 보급물자만 낭비하게 된다.
'전리품은 많을수록 좋은 법.'
신운성은 코벵을 한 번 노려본 후 되돌아갔다.
며칠 후, 밤이 되자 사막 전사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달도 뜨지 않은 밤이어서 앞을 제대로 구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닥을 천천히 기어서 코벵 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피부를 가진 사막 전사들은 그야말로 그림자와 같았다.
수천에 달하는 그림자들은 어둠 속을 기었다.
코벵의 경계는 허술했다. 공격 받을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불은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보초는 없었다. 거리에 술에 취해 떠드는 이들이 간혹 있을 뿐이었다.
'딱 좋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신운성은 전사들에게 신호하고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먹이를 덮치는 악어처럼 빠르게 바닥을 기었다. 나머지 그림자들은 서서히 포위하며 배를 향해 먼저 나아갔다.
기습의 시작은 요란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떠들던 취한 기사 하나를 본 순간 신운성은 눈을 감고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비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위치를 전부 파악했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목격자가 없다고 확인된 순간 기사의 운명은 정해졌다.
살금살금 뒤로 다가가 입을 막고 단검으로 목을 찔렀다. 공격 당한 기사의 몸은 펄쩍 뛰며 반응을 보였지만 신운성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몸은 제멋대로 몇 번 날뛰다 축 늘어졌다.
'우측의 집. 모두 잠들었군.'
슬금슬금 걸어 우측의 집에 들어가자 술에 취해 잠든 병사들이 한데 뭉쳐 자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간 신운성은 한 명씩 목을 찔러 죽였다.
중간에 발버둥친 병사로 인해 깨어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서은하가 목을 따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 속의 피 냄새는 진해졌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확실하게 병사들을 모두 죽였다.
전사들은 신운성이 세운 작전대로 배에 먼저 올라탔다. 도망치는 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배에는 지키고 있는 사람이 적었다. 더구나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은 모두 잠든 상태. 경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잠든 상대를 죽이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전사들은 빠르게 배에 탄 인원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배는 모두 접수했나?"
사막 전사들은 배를 차지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모인 전사들은 배를 확실히 모두 접수한 것을 확인한 뒤에 보급물자가 쌓인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동 중에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누구냐!"
부주의는 아니었다. 보급물자가 쌓여있는 곳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대답을 대신 한 것은 사막 전사의 검이었다.
"으아아아악!"
검에 맞은 남자는 긴 비명을 질렀고 그것을 시작으로 코벵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날뛰기 시작한 사막 전사들로 인해 코벵에 있던 북부인들은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했다.
잠든 상황에서 모두 한꺼번에 깨어난 것도 아니었고 급하게 움직이다가 매복해있던 적에게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전투가 시작되자 신운성과 서은하가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조용히 적을 죽였다면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박살내고 다녔다.
기사고 성기사고 할 것 없이 모두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코벵의 거리는 피로 물들고 있었다.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들은 북부인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다. 불리함을 느낀 몇몇 병사들은 코벵 밖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잡는 사막 전사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막으로 도망쳐야 말라죽을 운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모두 끝났습니다."
"보고해."
코벵에 있던 북부인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살아남은 것은 여자와 어린아이들 뿐. 사막 전사들은 몇 명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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