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0 회: 사막으로 -- >
황폐한 사막이 멀리 보이자 연합군 전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막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전사들은 사막인들이었다. 하지만 사막인들에게도 사막은 두려운 존재였다.
사막은 결코 얕봐선 안 되는 존재였다. 그곳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칫 잘못해 길을 잃게 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
단 하나 뿐인 생명을 잃고 싶지 않다면 항상 조심해야 했다. 익숙한 곳이라고 방심했다가는 비쩍 말라죽을 수도 있었다.
'다시 돌아왔군.'
사막 전사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사막은 이들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고향이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남부에서 보낸 시간은 고향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선한 공기와 넉넉한 물, 그리고 식량.
아주 간단한 것들이 사막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몸에 느껴지는 축축한 새벽의 공기는 축복이었다. 북부인들과 달리 이제는 따뜻하게 맞아주는 남부인들의 행동은 가슴을 열어주었다. 무엇보다 사막인과 남부인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영웅 하크'라 불리는 신운성이었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냥 남부에서 살다 남부에서 뼈를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시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싸운다! 이긴다!'
사막인들의 눈은 집념으로 빛났다. 이제는 자신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어준 남부를 잃지 않기 위해선 북부인들과 싸워야 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간다."
사막의 초입에서 신운성이 쉬어간다고 명령을 내리자 모두 멈췄다. 너무 일찍 쉬는 감이 있었으나 토를 다는 사막 전사는 없었다.
"여기서 코벵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지?"
"최단 거리로 간다면 한 달쯤 걸릴 겁니다."
"그럼 더 걸릴 수도 있다는 거네?"
"식량은 충분하지만 물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신운성의 보좌를 맡은 레던은 공손히 답했다. 원래라면 호안바트가 와야 했지만 호안바트에게는 전사들과 함께 남부에 남은 사막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주었다. 신운성을 등에 업은 호안바트가 뒤에 남는 사막인들의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신운성의 곁은 레던이 따르기로 했다. 레던은 신운성의 곁을 따를 수 있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영웅의 곁에서 공을 세운다면 세력을 불리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군나 현재 레던과 적대적인 부족의 전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신운성이 사막 전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한 적대적인 팔리마족은 레던을 건드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신운성은 빨리 코벵을 함락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막의 길을 제일 잘 아는 전사들이 서로 아는 지식을 합쳐 도출한 결과였기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젠장.'
팔리마족의 다후트는 속이 쓰렸다. 자신들의 앙숙인 에이드족의 전사가 영웅의 곁에 찰싹 붙어 있는 꼴이 계속 신경을 건드렸다.
'그 놈이 진짜.'
후회스러웠다. 좀 더 일찍 신운성과 혈연을 맺었다면 자신이 신운성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직접적인 노골적인 견제는 없었다. 하지만 은근히 짜증나는 일이 벌어졌다. 신운성의 곁에 레던이 붙은 후 사막인들 중 상당수가 레던을 중심으로 뭉쳤다. 웬만하면 신운성과 혈연을 맺고 싶지만 그럴 배경이나 실력이 없기에 신운성의 주변인과 친분을 쌓아 거리를 좁히려는 것이었다.
이때 레던은 은근히 팔리마족을 따돌렸다. 또한 에이드족과 팔리마족의 관계를 아는 다른 전사들이 슬쩍 팔리마족을 무시했다. 레던이 신운성의 곁에 붙어 있으니 팔리마족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결과였다.
부족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에 함부로 분열을 일으킬 순 없었다. 홀대를 받는 정도였지 노골적인 착취가 아니었으니까.
'두고 보자고.'
다후트는 앙심을 품고 레던을 노려보았다.
사막 행군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많은 수의 낙타와 수레가 동원된 탓에 이동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사막의 길을 잘 아는 전사들은 낮에는 쉬며 밤에 이동하는 것을 권장했다. 밤에 하는 이동은 어렵지 않았다.
'대단하군.'
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찾는 전사들의 행동을 신운성은 눈에 담으며 감탄했다. 별을 보며 방향을 잡는 것은 신운성도 아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 번이라도 길을 간 적이 있는 이들에게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단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고 길을 가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별은 그저 별일 뿐.
'그나저나 마나 사용법은 정말이지.......'
오러 마스터에 오른 직후 마나 사용법을 계속 수련했다. 오러 연공법을 더 파고 들어야함에도 신운성은 마나 사용법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사막에 흐르는 뜨거운 기운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남부의 자연이 이상한 것은 사막에서부터 마나의 흐름이 뒤엉켰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얻게 된 능력으로 스스로 알아낸 사실이었다.
'오래된 기운들은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있어.'
사막을 황폐화 시켰던 힘이 가득한 것을 느낀 신운성은 한껏 마나를 빨아들였다. 혼탁하게 뒤엉켜있었으나 실타래를 풀듯 조심스럽게 분리해 흡수하자 몸 안에 쌓이는 마나가 더욱 많아졌다.
'이대로 계속 모은다면 또 한 번 더 몸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오러 마스터의 벽을 넘으면서 경험했던 일을 다시 경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신운성이 자신이 겪은 일을 서은하에게 알려주며 도와주었다. 그리고 사막에서 행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서은하는 오러 마스터에 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오러 마스터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생겼다. 대단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더 대단한 것은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
'어떻게 해서든 꼭 친분을 쌓아야 한다!'
신운성의 그림자 속에 항상 머물기에 서은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젠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서은하가 그저 그런 전사가 아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사라는 사실을.
사막 전사들의 신뢰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높아졌다.
오러 마스터 부부라면 그저 그런 전사로 남을 리가 없었다. 향후 연합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운명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두 사람이 연합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는 한 사람들이 두 사람의 그늘 아래로 모여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사들 스스로 그러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연합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간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오러 마스터 부부가 연합을 포기하고 버릴 정도라면 이미 그런 조직에는 승산이 없어 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맙다."
공격을 위해 행군 중이라 성대한 축하 같은 것은 하기 어려웠다. 조용히 도마뱀 고기를 씹으며 축하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모두 단순한 축하 인사를 건낸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충성하겠습니다! 제발 받아주십시오!"
팔리마족의 다후트는 충성을 맹세하며 신운성 앞에 엎드렸다.
"충성?"
"그렇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레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신운성이 말리며 나서니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지?"
"앞으로 우리 사막인을 더 좋은 땅으로 인도해주실 분이 하크님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제 부족을 모두 거둬주십시오!"
"부족을 나에게 바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다후트는 팔리마족의 전사 대장이었지만 차기 족장으로 내정된 후계자이기도 했다. 부족 내부의 상황은 부족마다 달랐다. 족장의 아들이 전사들의 중심이 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것이 어려울 때는 혼인 관계를 통해 전사들의 대장이 족장과 혈연을 맺었다. 그렇기에 차기 족장인 다후트가 부족을 바치겠다고 말해도 부족 내부에서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했다.
'이대로 밀려 날 순 없다!'
이성을 잃은 것일까? 아니다. 다후트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모든 계산을 하고 나서 하는 행동이었다.
"그래?"
신운성은 다후트의 의도를 금방 꿰뚫어보았다.
'혈연으로 이어지기 힘드니 이런 수를 쓰는 건가?'
사막 전사들이 모두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부족을 바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소리였다. 아내를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을 기세였다.
혈연을 잇기 위해서는 호안바트를 통해야만 했다. 셋째 부인인 아미야는 호안바트의 딸이니 자신의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신운성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반대 의사를 밝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운성도 아미야의 의견을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세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주변인들과 함께 이익을 도모한다는 소리다. 어느 한쪽에만 손해를 계속 강요한다면 그것은 곧 적대 관계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후트는 혈연이 아닌 충성을 맹세했다. 혈연보다는 뒤로 밀리는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혈연 못지않은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사막 전사들이 신운성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전사들의 태도가 또 바뀔 수 있었다.
'충성이라.'
말로 하는 충성은 믿기 힘들다. 하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충성한다고 말하면 상하 관계가 뚜렷해진다. 이후 신운성의 명령에 불복하는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거짓말을 말한 것이 되니 지킬 수밖에 없다. 뒤에서 음모를 꾸밀 순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불복하는 일을 벌이는 것은 어려웠다.
'다후트를 받아준다면 다른 이들도 전부 충성하겠다고 하겠군.'
전사들의 눈빛이 매우 뜨거움을 느낀 신운성은 미소 지었다.
'마침 잘 됐어. 호안바트와 레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생각했는데.'
호안바트는 신운성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가면 가진 권력을 놓고 충돌하게 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 레던이 새로 생겼다. 레던은 뛰어난 전사이기에 잘만 키운다면 많은 전사들을 이끌며 호안바트의 대항마로 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호안바트에 비해 레던은 너무 곧고 정직했다.
'셋이라면 안정적이지.'
달랑 둘이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면 다른 쪽이 결사반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셋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권력이 분산되는 만큼 신운성의 입김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신운성은 미리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목숨을 원하신다면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와 제 부족을 받아주십시오!"
머리를 조아리는 굴복적인 자세를 서슴지 않는 다후트였다.
"내게 충성한다면 네 목숨은 내 것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쓰겠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내 왼쪽에 서라."
다후트는 서둘러 일어나 신운성의 왼쪽에 섰다. 그리곤 오른쪽에 시립하던 레던과 눈을 마주치고는 눈을 부라렸다.
다후트와 레던이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신운성은 받아주었다. 신운성과 직접적으로 원한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레던과 카리나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회를 걷어찰 순 없었다.
"충성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받아주십시오!"
다후트를 받아주니 수많은 사막 전사들이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신운성은 흐뭇하게 웃으며 전사들의 충성을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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