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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74화 (74/109)

< -- 74 회: 인간관계 -- >

다음날 아침, 신운성은 수레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방패로 전면과 머리 위를 방어 할 수 있는 손수레였다.

"어떻게 된 건가? 아무 것도 못한 건가?"

"적의 대응에 준비할 것이 필요해서요. 적의 대응이 바뀌었으니 이쪽도 다른 방법으로 나가야죠."

"그런가?"

다른 부족의 유력자 하나가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이후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질문을 던지고는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평판이 금방 깎이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해서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신운성이었다.

전투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신운성이 그냥 되돌아오긴 했지만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즉, 아직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니 무조건 실패했다고만 말할 수도 없는 상황. 신운성조차 어찌 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그래도 좀 더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많은 인력이 달려들어 신운성이 요구하는 것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걸 가져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아마 근처에 가기도 전에 발각될 겁니다."

"그냥은 안 가져가죠."

신운성은 마차 또한 요구했다.

여러 대의 마차에 손수레를 잔뜩 싣고는 창과 삽을 실었다.

"그럼 갔다 오지요."

저녁이 되기 전에 요새 근처에 도착한 신운성은 휴식을 명했다. 전사들은 약간 피곤해했지만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기에 아직 힘이 남아돌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한다. 불복하면 목을 쳐버리겠다."

살벌한 이야기에 전사들은 침을 삼켰다.

신운성은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설명했다. 그러자 전사들의 눈빛이 점점 강해졌다.

밤이 깊어지며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자 신운성과 전사들은 마차를 끌고 불의 경계선 앞에 도착했다.

말과 마차는 다시 멀리 되돌려 보내고 손수레를 미는 전사들과 활을 든 전사들이 남았다.

"시작하자."

손수레를 미는 전사들은 서서히 불을 향해 다가갔다.

파파팍!

불빛에 의해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등골이 오싹한 소리였지만 화살이 날아올 각도와 힘을 계산해 만든 방어용 손수레는 뚫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낀 전사들은 씨익 웃으며 삽을 들었다.

이윽고 삽질이 시작되었다. 손수레에 실린 통에 흙을 담은 뒤에 불을 향해 뿌렸다. 흙들은 불을 바로 끄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 강도 없고 물을 구하기도 힘드니 흙으로 대신했다.

처음에는 맹렬했던 화살 공격이 뜸해졌다. 화살의 숫자에 한계가 있으니 무한정 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데 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대신 기마병들이 요새에서 출격했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에 전사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삽질을 하던 전사들이 멈추지는 않았다.

"온다. 준비해!"

삽질을 하지 않고 대기하던 전사들은 활을 들고 준비했다. 공격하기 위해 튀어나오는 순간 화살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소리가 더욱 가까워지자 삽질하던 전사들은 멈춘 뒤 커다란 창을 꺼냈다. 그때 신운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모두 물러난다!"

돌발 상황이었다. 원래는 적이 다가오면 화살을 날린 뒤, 창을 들어 기마병을 견제하려 했다. 손수레 뒤에서 창을 내민다면 기마병들이 쉽게 어쩔 수 없었다.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계속 돌격한다면 창에 의해 말만 다칠 뿐이었다. 그러나 북부의 기마병들은 정면으로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불의 경계선을 넘어 후방에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다급하게 손수레를 뒤로 뺀 뒤에 방진을 형성했다. 어둠 속에 숨었다고 하지만 불빛을 등지게 되면 음영이 생겨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가깝다.'

준비를 마치자 적들이 근처에 도달했다. 이에 신운성은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피해는 용납 못한다.'

신운성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화살을 연속해서 날렸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이 다가오니 기척을 느끼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둠을 마주하며 날린 화살들은 많이 빗나갔지만 명중하기도 했다.

"커헉!"

마지막 소리를 내지르며 낙마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는 가운데 적은 바로 코앞까지 왔다.

활을 내팽개친 신운성은 방패를 들었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오는 무기가 내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집중!'

신운성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며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아직은 흐릿하고 조악한 영상. 그러나 놀랍게도 영상 속에 나타난 적과 우군의 위치가 현실의 위치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은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다!'

꽈앙!

눈을 감고도 휘둘러지는 무기를 막아냈다. 기마병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뒤이어 다른 기마병이 처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이번엔 신운성이 좀 더 빨랐다.

퍼억!

재빠르게 몸을 낮추며 말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오러를 머금은 메이스가 말의 옆구리를 곤죽으로 만들자 기마병은 쓰러졌다. 이후 신운성은 계속해서 달려드는 기마병들을 향해 달려들어 말을 공격했다.

서은하는 신운성의 뒤에 바짝 붙어 신운성이 미처 죽이지 못한 적을 확인 사살했다.

단 둘이서 엄청난 전과를 올리고 있었지만 연합 전사들은 제대로 싸움을 볼 수 없었다. 빛을 등진 상태에서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란 어려웠다.

다만 소리를 통해 싸움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는 것은 가능했다.

'이 어둠 속에서 어떻게?'

곧 들이닥칠 기마병에 대비하던 전사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었다. 간혹 지나쳐온 기마병들이 달려들긴 했지만 이미 방향을 잡고 작은 방진을 형성한 전사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방어에 성공했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 공격하는 순간 방향을 잡은 전사들이 일제히 긴 창으로 공격해 한 명씩 잡아냈다.

잠시 뒤,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피해가 커지자 기마병들이 되돌아간 것이었다.

"후우......."

적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신운성은 대담하게 횃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주변에 쓰러진 기마병들의 목을 베어냈다. 전사들도 신운성을 따라 자신들이 잡은 기마병의 목을 베었다.

잡은 적의 수는 총 19명.

기마병이 정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더구나 사망자 한 명도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적의 목을 모두 벤 신운성은 철수를 명했다.

'더 있어봐야 좋을 건 없지.'

이미 한 번 써먹은 방법이 계속 통할 상대가 아님을 직감한 신운성은 바로 물러났다.

새벽의 빛과 함께 되돌아온 전사들은 적의 목을 가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냥 돌아와서 실망하기도 했지만 다음 날 적의 목을 가지고 귀환하니 신운성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으로 변했다.

부족 통합에 있어서는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연합이었지만 정작 이겨야 하는 중요한 적에게는 계속 밀리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지만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연합의 수뇌부들은 바로 이 사실을 소문내며 신운성을 영웅으로 포장했다.

남부의 희망이 되어줄 전사.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갔다. 더구나 함께 했던 전사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많은 전사들이 흥분했다.

어둠 속에서 잘 싸우는 전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신운성처럼 하지는 못했다.

주변이 떠들썩해진 가운데 신운성은 씻고는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신운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전투를 금방 치르고 돌아온 전사를 피곤하게 끌고 다니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 사항이었다.

"어제 알아보라 하신 일 알아봤는데. 지금 말씀드려요?"

"그래. 말해봐."

아미야는 호안바트를 통해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찾아와 여동생을 정략결혼 상대로 내민 레던은 굉장히 강한 전사였다. 하지만 레던이 속한 부족의 수는 적었고 적대하는 부족, 팔리마족의 수가 많았다.

'숫자냐 뛰어난 전사냐.'

자세한 상황은 알기 힘들었지만 호안바트가 양 쪽에 전사를 보내 서로에 대해 은근슬쩍 물어본 결과 어느 정도 전투에 대한 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숫자가 많으면 좋다. 하지만 뛰어난 전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저울질을 하던 신운성은 결국 레던을 선택했다. 팔리마족과 손을 잡으면 더 많은 수의 전사를 얻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팔리마족이 신운성의 밑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던의 경우는 달랐다.

'아예 내 밑에 들어오려 하겠지.'

먼저 찾아와 여동생을 내밀 정도니 관계를 맺으면 찰떡같이 달라붙을 확률이 높았다.

'어설픈 동맹은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건 지지해줄 확실한 세력이 필요할 뿐이었다.

신운성은 곧 레던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밤, 레던이 카리나와 함께 찾아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시죠."

카리나가 레던의 동생이니 레던이 가족 관계에서는 위였지만 레던은 어설프게 굴지 않았다. 혈연을 맺었다고 그 순간 그걸 아무렇게나 이용해먹으면 효용은 끝날 수도 있다. 신운성이 카리나를 멀리하며 상대하지 않으면 끝이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4번째 부인을 맞아들이는 일이기에 큰 결혼식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레던과 신운성의 아내들 그리고 몇몇 지인들이 동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의식을 치렀다.

"우리 앞으로 잘 해보자."

"네."

단 둘이 남게 되자 신운성은 카리나를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정략결혼의 대상이라 해서 소홀히 대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었다.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다.'

남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운성.

가족의 필요에 의해 정략결혼을 한 카리나.

신운성은 순종적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떨고 있는 카리나를 내려다보았다.

'어쩔 수 없어도 즐겁게 살자.'

머릿속으로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전투에 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모두 털어냈다. 머리를 비운 신운성은 천천히 카리나의 옷을 벗기며 나신을 눈에 새겼다.

빛나는 검은 피부의 촉감은 부드러웠다. 신운성은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애무해나갔다.

처음 받는 애무에 카리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조금씩 흥분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아......."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아득한 느낌에 신운성을 꼭 끌어안았다.

단단한 기둥을 품에 안았지만 심장의 박동은 더욱 빨라지며 영혼은 방황했다.

'좋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리나는 몸 안으로 들어오는 낯선 감각에 아파했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부드러운 애무에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카리나는 밤새 노래를 불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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