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 회: 인간관계 -- >
공을 세운 신운성에 대한 평가는 삽시간에 퍼졌다. 아주 작은 공이지만 공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이 연합 전사들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 동안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었다. 하지만 어둠을 이용한 대담한 공격을 성공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고 유인해서 어둠 속에서 처리한 아이디어 자체를 생각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에 옮겨 성공하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는 선구자는 고생하지만 이미 생긴 길을 따라가는 후발주자는 좀 더 편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전사들이 떠나고 난 뒤 신운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집에 도착하자 맞이한 것은 페르나였다.
"별 일 없지?"
"없어요."
원래라면 첫째 부인인 서은하가 집에 남아 관리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서은하는 항상 신운성을 따라다니기에 페르나가 관리하고 있었다.
"아미야는?"
"일하고 있어요."
사람을 잡느라 피를 뒤집어썼던 신운성과 서은하는 씻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식사 후에는 잠시 술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 때 사람이 하나 찾아왔다.
"누구십니까?"
"에이드족의 대전사 레던이라고 합니다."
레던이라 불린 남자는 대전사 치고는 굉장히 젊었다. 검은 피부를 가진 강렬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전사답다는 생각은 들어도 대전사라 칭해질 정도로 연륜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대전사라고요? 젊은 나이에 대단하시군요."
"저보다야 북부인들의 목을 베어온 하크님이 더 대단하시죠."
레던은 신운성을 칭찬했다. 계속 이어지는 칭찬에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여 신운성은 잠시 뜸을 들이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사막인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제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주실 수 없겠습니까? 영웅과 동생을 꼭 맺어주고 싶은 못난 오라비의 욕심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레던의 이야기에 신운성은 웃으며 질문했다.
"정말 그게 이유입니까?"
웃는 것과 달리 차가워 보이는 시선에 레던은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우리 부족은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전사의 수도 적죠. 사막에 있을 때 다른 부족과 큰 전투가 있었고 그때 전사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숫자가 부족하기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움츠러든다면 공을 세울 수 없고 그것은 부족의 위치가 격하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벨로트족의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인 신운성이 작지만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에 레던은 바로 찾아왔다. 젊은 전사와 이어진다면 부족 전사의 수가 적어도 영광을 조금 나눠 가질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속내를 모두 밝힌 레던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때 싸웠던 부족이 연합에 있습니까?"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사막 부족들이 모두 한 편인 것은 아니었다. 서로 간에 불화가 있는 부족들도 있었다.
'이 자는 나의 힘을 빌어서 연합 내부에서 힘을 키우고자 하는 거였군.'
이용하려는 생각이 보였다. 이에 신운성은 저울질을 하기 시작했다.
'레던을 받아들이면 날 적대하는 부족이 생기겠지.'
같은 연합이니 대놓고 적대 행위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사건건 신운성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하거나 뒤에서 욕을 하며 평판을 깎아내리는 짓은 가능했다.
평화로운 조직을 원한다면 레던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못해.'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리다보면 적대 세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영웅이라도 영웅을 질시하며 추락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신운성이 권력의 정점에 가까워지는 순간 시기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예상되는 적이라면 미리미리 뭉개놓는 것도 좋지.'
세력이 미약하면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진 못한다.
여기서 문제는 레던이었다.
'이 인간하고 손잡는 게 좋을까? 아니면 적대 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손잡는 것이 좋을까?'
머릿속으로 저울질하는데 레던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신운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저울질 하고 있다는 걸 느꼈나보네.'
상대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레던과 손잡는 것이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단 대답은 보류하는 게 좋겠지.'
급하게 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칼자루를 쥔 것은 신운성이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레던의 표정에 실망의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거절이 아니니까. 부인을 들이는 중대사인데 이제 겨우 얼굴을 마주한 사람에게 허락을 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렸습니다."
레던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런 모습이 신운성에게는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어찌되었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레던이 돌아가고 나서 신운성은 아미야를 불렀다.
"부탁이 있다."
"에이드족하고 적대하는 부족에 관한 조사 맞죠?"
"그래. 호안바트님에게 물어보면 될 거다."
"다녀올게요."
아미야는 근처에 자리를 잡은 벨로트족 전사와 함께 호안바트를 찾아갔다.
많은 일이 있던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신운성은 연합에서 더욱 이름이 높아지는 일을 겪게 되었다.
다수의 전사들이 신운성의 흉내를 내 기습하려다가 오히려 반격 당해 피해를 입고 돌아온 것이었다. 적에게 확실한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북부인들도 바보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해는 북부인들이 아주 약간 더 많은 정도. 이 정도로는 성공적인 기습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전사들은 신운성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냥 얘기로 듣거나 곁에서 볼 때 쉬워 보여도 직접 하면 어려운 일이 많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어려움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어려운 일을 진짜 별 것 아닌 것처럼 해낸 것으로 보인 사람에게 감탄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힘든 일을 너무나 쉽게 한 것처럼 보이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사들은 신운성의 야간 기습에 대한 능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둠 속에서 싸우는 신운성의 능력은 자신들보다 훨씬 위라고.
이러한 인정은 곧 연합 수뇌부에도 알려졌고 명령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좀 더 나가주었으면 하네."
완곡한 어조였지만 부탁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신운성은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수의 전사들이 배정되었다.
30명의 기마병.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였다. 말을 탄 기마병 30명이라면 이미 수준급의 전사라는 소리였다. 말이란 것이 귀한 이동 수단이며 전투 수단이기 때문에 실력이 없는 자들에게는 말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신운성의 밑에 편성된 30명은 정예란 소리였다.
붉은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신운성은 다른 전사들이 공격했다가 쓴 맛을 보았던 미완성 요새를 바라보았다.
'좀 변했군.'
적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근처까지 올 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것을 깨닫고 야간 감시 방법을 바꾸었다.
'접근하기 전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거네.'
말을 탄 기마병들이 요새 부근을 돌아다니며 쌓아놓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들은 요새 주변을 환하게 밝힐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불의 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래서야 접근은 어렵겠네.'
쓴 맛을 보았던 전사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사들은 사방에서 포위하듯 한꺼번에 공격했었지만 적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북부인들이 켜놓은 불로 불화살을 만들어 날리기도 전에 요새 쪽에서 화살 다발이 날아왔다고 했다. 정확히 겨눈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화살이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뿌려지니 결국 피해자가 나왔다.
'미묘한 거리야.'
불의 장벽이 요새와 아주 멀리 떨어졌다면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요새에서 쏘는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기습은 어렵다. 그렇다면?'
신운성은 머리를 굴렸다. 어둠을 이용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수많은 방법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역시 피해 없는 방법은 찾기 어려웠다.
'나랑 은하라면 문제없지만 나머지는.......'
전사들이 어둠 속에서의 싸움에 얼마나 익숙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여기서 피해를 입으면 소용없다.'
피해를 입은 전사들과 같이 피해를 입으며 약간의 전적을 올리면 겨우 얻은 명성은 거품처럼 꺼질 뿐이었다.
"나머지는 멀리 떨어져서 대기. 여긴 내가 간다."
"알겠습니다."
전사들은 뒤로 물러났다. 전사의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신운성이 어떻게 싸우나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대장은 신운성이었다.
"가자."
서은하에게 간단히 말하고 방패를 든 신운성은 불을 향해 달렸다.
불빛에 몸이 드러나자 어둠속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하지만 쏘아진 화살들은 목표를 맞추지 못했다. 화살이 닿기 전에 두 사람은 방패로 튕겨내며 불빛이 비추지 못하는 어둠 속으로 숨었기 때문이었다.
화살 공격은 멈췄다. 하지만 기마병들이 요새에서 출격했다.
살벌한 말발굽 소리가 밤을 뒤흔들었다.
목책 부근을 휩쓸 것처럼 기마병들의 기세는 난폭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마병들 이외에도 보병들이 나타났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확실히 잡아 죽이겠다는 거군.'
그때였다. 무엇인가 날아오는 것 같아 방패를 들자 화살이 방패에 부딪쳤다. 그 순간 신운성은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내 뒤에 불!'
불빛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정면에서 볼 땐 음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책 위에서 볼 땐 위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숨으면 끝이지만 같은 높이에서 본다면 불빛을 등진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으로 나와 있다.'
목책 안에서는 볼 수 없으니 결국 어두워짐과 동시에 보초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는 소리였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불의 장벽을 넘어 사라지니 공격이 멈췄다. 기마병들의 수색도 멈췄는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불을 꺼야 한다.'
어둠 속에서 활약하기 위한 방법은 그뿐이었다.
불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하자.'
서둘러서 좋을 것은 없었다. 신운성은 전사들을 이끌고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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