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 회: 인간관계 -- >
유드족 족장 보나르는 소식통을 통해 신운성이 벨로트족 전사 대장의 딸을 맞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란 것은 사방에 알림으로서 효력이 생기는 것이기에 숨길 일이 아니어서 쉽게 정보를 얻었다.
'분명 아내들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보나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락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들어가는 비용도 많다. 허락을 받기 위해 말을 걸려면 친분을 쌓아야 하는데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3명이라.'
어려운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3번째도 아니고 4번째라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4번째 부인쯤 되면 영향력이 상당히 많이 줄기 때문이었다. 신운성이 푹 빠질 만큼 딸이 잘해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을 수 있었다.
'꼭 당사자하고만 혈연을 맺으란 법은 없지.'
보나르는 고민했다.
'누가 더 좋을까?'
물망에 오른 대상은 카딘과 호안바트였다.
'벨로트족 족장 아들하고 혈연을 맺어두면 나중에 좋겠지만.......'
하지만 벨로트족 족장 아들은 이미 부인이 여럿이었다. 때문에 다음으로 영향력이 높은 호안바트를 생각했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내가 너무 많아.'
결국 남은 것은 카딘이었다.
'카딘과 내 딸이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보나르는 아내를 불러 앞으로 페르나와 친하게 지내며 여러 가지로 도와주라고 명했다. 페르나가 신운성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자신이 잡은 카딘이란 연줄이 빛을 발하기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신운성이 아미야를 받아들이고 나서 벨로트족의 전사 2명이 신운성의 밑으로 들어왔다. 모두 호안바트를 따르던 전사들이었다. 벨로트족으로서는 타지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기 때문에 현지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연합 내에서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 거군.'
세력이 약하면 똑같은 소속이라 하더라도 불리한 일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선 세력을 불려야 했다. 상대가 자신들을 소모품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날 밀어주겠다는 거겠지.'
이미 성공한 권력자와 관계를 맺으려면 대가를 많이 치러야 한다. 더구나 대가를 치른 뒤에도 제대로 된 보답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덜 중요한 사람과 함께 성공하는 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물론 이러한 투자는 실패 위험이 크지만 성공했을 때의 과실이 더 달콤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하고도 일맥상통한다.'
거부? 거부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전사들을 통해 힘을 모은다.'
신운성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은 하나였다.
바로 전사들의 정점에 서는 것.
지금은 중요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전사들의 입지가 강해진다는 소리였다. 여기에 확실한 공적을 세우는 전사 세력의 정점이 된다면 족장들 못지않은 권력을 쥘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확실하게 각 부족의 전사들을 다독일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결혼을 통한 인맥 관리였다.
'유드족과 벨로트족은 이만하면 됐고.'
신운성의 관심은 다시 전쟁으로 향했다.
'공을 세워야만 해.'
공을 세운다는 것은 이름을 알린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 크건 작건 일단 공을 세워야 할 때였다.
10명의 전사들이 신운성을 따라 정찰을 나왔다. 5명은 유드족이었고 다른 5명은 남부 부족 출신 전사들이었다. 벨로트족 전사들은 아직 북부인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했기에 따라올 순 없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잡힐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나만 따라와."
신운성은 정찰대의 책임자가 되었다. 유드족 전사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카딘과 혈연을 맺은 것은 물론 족장 보나르의 인정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른 부족 전사들도 신운성의 실력에는 못 미치는 이들이었기에 인정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사막에서 낙타를 탄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이동한 곳은 평원이라 부를 수 있는 곳. 나무는 없고 풀만 잔뜩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땅이 모두 평평한 것은 아니었다. 울퉁불퉁 여기저기 언덕이 있는 그런 지형이었다.
"여기서부턴 더 못 갑니다."
못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적의 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그렇지."
"밤에는 모두 방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소용없습니다."
"괜찮아."
북부인들은 낮에는 일하면서 요새를 지었다. 요새 주변으로는 나무로 된 방책이 설치되어 있어 기마병으로 휩쓸고 지나가기는 어려웠다.
"지금부터 돌아가면서 한숨 잔다."
정찰대의 책임자가 신운성이니 전사들은 일단 따랐다. 부당하다며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도망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족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불복할만한 명분도 없이 거부하는 것은 부족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전사들은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해는 서서히 저물어갔다. 붉은 노을이 조금씩 검게 물들어가며 사물의 분간이 조금씩 어렵게 되었다.
"가자."
정찰대는 조용히 움직였다. 달리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멀리 미완성의 요새 목책 위에는 불이 피워졌다. 접근하는 이들을 구분해내기 위한 불이었다. 불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을 피워놓고 사람은 어둠 속에서 불이 비추는 곳을 감시할 뿐이었다.
달빛도 없는 밤이라 이런 불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여기서부턴 말에서 내려서 간다. 2명이 말을 지키도록."
전사 2명이 남고 8명은 신운성과 서은하와 함께 움직였다.
신운성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전사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의아해졌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저마다 생각은 달랐다. 불안은 요새가 가까워지며 더욱 증폭되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에 들어선 신운성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여기에 불 피운다."
"여기서 불을 피우면 발각됩니다."
"괜찮아. 위험한 일 안 하니까. 그냥 적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는 것뿐이야."
정찰대는 시키는 대로 불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신운성은 전사들을 불이 비추지 못할만한 곳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전사 하나가 불을 피우는 것에 성공하자 그가 가지고 있던 활을 받은 신운성은 전사와 함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유인하는 겁니까?"
"뭐 그런 것도 있고 적이 어떻게 하나 반응도 봐야 하고."
일종의 간보기였다. 전사는 그제야 안심하며 신뢰를 보였다. 다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 요새가 시끄러워지는 기색이 보였다. 사람은 없는데 불만 피워놨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 했다.
"이제부터 조용히. 적이 온다."
말을 탄 이들이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느껴졌다.
가만히 땅에 귀를 대고 있던 전사 하나가 적의 숫자를 알아냈다.
"20명 넘는 것 같습니다."
"모두 활 준비해."
전사들은 신운성의 의도를 깨달았다. 불을 피워 적을 유인한 뒤 어둠 속에서 저격하는 것이었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그다지 잃을 건 없었다. 낮이라면 금방 발각되겠지만 달도 없는 밤에는 어둠속에 숨으면 모래사장에 떨어진 바늘 찾는 것처럼 어려워진다.
적은 횃불도 들지 않고 달려왔다.
불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정찰대는 적들이 불 주변에 모이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적들은 불에 더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용의주도하군.'
신운성은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적의 모습을 보고 쏴야 확실히 맞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적들은 곧 물러났다. 전사들은 하나도 걸려들지 않아 아쉬워했다. 하지만 신운성의 노림수는 끝이 아니었다.
어둠속에서 웃은 신운성은 서은하와 함께 불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전사들은 그런 신운성을 그저 지켜보았다.
달리면서 화살촉에 기름먹은 헝겊을 매단 신운성은 화살에 불을 붙이자마자 쏘았다. 이후 잽싸게 어둠 속으로 숨었다.
찰나의 순간 적의 화살이 날아와 불 주변에 내리 꽂혔다. 적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신운성을 발견하고 화살을 쏜다고 해도 단숨에 잡는 것은 무리였다.
불화살 한 발을 어둠을 가르고 날았다.
어둠을 밝힌 불화살은 목책에 꽂히며 나무를 불태우려 했다. 하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던 적은 물을 부어 불을 꺼버렸다.
"이 근처에 강이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저 곳에 우물을 팠으니 근처에 수맥이 있는지도 모르죠."
"그렇단 말이지?"
적의 방비를 확인한 신운성은 어떻게 공략할까 생각했다. 적이 방심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대군이 모여 방비를 하고 있으니 적은 숫자로는 어떻게 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신운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은 오늘 밤 세운다. 그게 어떤 것이든.'
"여기서 기다려. 갔다 오겠다."
"네? 위험합니다."
"말 타고 기다리고 있어. 그렇다고 그냥 가진 말고."
"알겠습니다."
전사들은 수긍하고 말았다. 모두 다 같이 가자고 했으면 미친 짓이라며 거절할 수나 있었겠지만 혼자 가겠다는 걸 어떻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신운성은 혼자가 아니었다. 서은하와 함께 움직였다.
어둠 속을 걷는 두 사람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사막에서 도마뱀인간들과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했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이제 어둠은 친숙한 친구와 같았다.
어둠을 이용해 적당한 거리에 접근한 뒤에는 멈춰야만 했다. 불빛이 요새 주변을 상당히 밝혔기 때문이었다.
'불빛을 보니 양 옆쪽에는 없고 그럼 불빛의 아래쪽에서 감시하고 있겠군.'
망루 위에 불만 피워져 있었다. 촘촘한 망루 위에 사람은 없었다. 다만 수상해보이는 구조물이 조금 보였다. 망루 아래쪽에 일부러 어두워보이게 만든 공간들이 많았다.
'목책 전체에 위의 불빛을 차단할 지붕까지 만들었다 이거겠지.'
낮에는 가까이 가지 못해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가까이 와서 보니 적들이 어떤 식으로 목책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런 지붕이 있다면 화살이 직격하니 않는 이상 무서워 할 것도 없겠군.'
정말 거북이처럼 방어에는 철저한 상태였다.
하지만 신운성은 눈을 감고 조용히 감각을 집중시켰다.
'저기다.'
마나의 흐름을 확연하게 느끼는 신운성이었다. 멀었다면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상황에서 정신을 집중하니 아주 미약한 인간의 마나를 느끼게 되었다.
'간다!'
신운성은 주저하지 않고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슬쩍 불빛을 받아 반짝였으나 감시하는 보초들은 이를 본 순간 숨통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적이다! 적이 근처에 왔다!"
순간 바로 소란스러워지며 기마병들이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목책 주변을 휩쓸고 다니면서 적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숨은 신운성과 서은하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에 불과했다.
20명이 나왔지만 차례차례 쓰러졌다. 가슴에 단검이 박고 낙마하는 기마병이 늘어나자 기마병들은 혼비백산해 다시 되돌아갔다.
"암살자다! 암살자가 근처에 있다!"
"불을 더 밝혀! 어서!"
하지만 그 사이에 신운성은 쓰러진 자들의 목을 잘라 정찰병들에게 돌아갔다.
"가자."
목을 베어 수급을 챙긴 것만 6명이었다. 목책에 숨어 감시하던 이들까지 하면 숫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새벽이 되기 전에 되돌아온 신운성은 6개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신운성을 뒤따랐던 정찰대 전사들은 물론 수많은 다른 전사들이 감탄하며 신운성을 주목했다.
"이거 공을 세웠군 그래."
"고작 6명이 무슨 공이겠습니까?"
"아니야.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대신 내일도 갔다 올 순 있나?"
"가야죠. 조금이라도 숫자를 줄여야 편한 거 아니겠습니까?"
"부탁한다."
신운성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남은 전사들을 통해 신운성의 무용담이 전사들 사이에 퍼졌다.
"이야, 머리 좀 썼네."
"그러니까 적들이 그렇게 반응했다 이거지?"
워낙에 방비가 철저해 접근할 생각을 못했었지만 신운성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모두 부족에서 한 실력하는 이들이 경쟁심을 느낀 것이었다.
"그 녀석이 했는데 나라고 못할 건 또 뭐야?"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다수의 전사들의 적의 미완성 요새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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