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 회: 밝혀진 정체 -- >
지도는 벨로트족 부근의 지형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지도라고 하지만 사막의 지도이기에 굉장히 정보가 부족하기도 했다.
다른 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가 하면 특정한 바위에 이름을 붙여놓기도 했다.
"기준점을 찾지 못하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어쨌든 우린 필요 없는 거니까 가지라고."
호안바트는 후하게 인심을 썼다.
"호의 감사합니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나중에 우리 부족이 남부로 가게 되면 잘 부탁한다."
"당연한 말을."
호의는 공짜가 아니었다. 신운성이 고개를 숙이자 호안바트는 웃으며 돌아갔다.
'지도가 있으니 다행이네.'
지도가 나타내는 것이 신전이라는 보장은 없었으나 일단 아무런 단서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지도로 남길 이유는 없다.
'빨리 찾으러 가봤으면 좋겠지만.'
호안바트가 지도를 줬지만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허락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모든 일이 다 해결되기 전에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지.'
신운성은 수련을 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지도를 구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을 때 호안바트는 심각한 얼굴로 전사들을 지휘했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부족과 전쟁이다."
"도와드릴까요?"
"손님에게 싸우게 할 순 없으니 그냥 여길 지켜줬으면 좋겠군."
지켜달라는 말은 어디 가지 말란 말을 돌려서 한 것. 신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안바트와 전사들이 떠나자 나이든 전사들이 남아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침략자들이 나타났다.
'수는 약 30명 정도 되는 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였다. 갑작스런 타 부족의 등장에 남았던 전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된 건지."
"설마 지기야 했겠습니까?"
"몰라. 어쨌거나 저 놈들이 여길 어떻게 찾았는지 의문이군."
전투는 곧 시작되었다. 30명의 타부족 전사들은 벨로트족의 건물을 향해 돌진해왔다. 신운성은 건물 입구를 지키기 위해 나이든 전사들과 함께 준비했다.
"방패로 앞에서 조금만 막아주시게."
"그러죠."
빠르게 접근한 적들은 낙타에서 내려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입구가 낮기에 낙타를 타고 돌진할 수 없는 탓이었다.
고막을 때리는 기합과 함께 짓쳐든 적을 향해 방패가 휘둘러졌다. 오러를 머금은 방패와 적의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적이 날아갔다.
"오러다!"
적중에 오러를 사용하는 이가 적은지 뒤에 서있던 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거 별거 아닌 모양인데?'
어려운 전투를 예상했건만 적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적은 애송이들이다!"
벨로트족의 나이든 전사들은 적의 약점을 대번에 꿰뚫어보았다. 이후 벌어진 것은 살극이었다. 앞을 막아준 것은 신운성과 서은하였다. 공격에 실패한 적이 약점을 보일 때면 나이든 전사들은 바로 빈틈을 찔렀다.
"커헉!"
기다란 장창에 몸을 찔린 적은 빠르게 무력화 되었다. 결국 이기지 못할 것 같자 다시 낙타를 타고 도망치려 했으나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벨로트 전사들이 일제히 던진 단검과 시미터가 적의 등에 꽂혔다. 신운성과 서은하도 지지 않기 위해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들을 뽑아 던졌다.
30명이 덤볐지만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고맙네. 앞에서 막아준 덕분에 쉬웠어."
"별말씀을."
적의 시체를 처리하며 전리품을 챙긴 전사들은 모두 신운성과 서은하를 칭찬했다. 더구나 신운성이 오러까지 쓰자 놀라워하기도 했다.
"듣기로는 상인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네, 하지만 이쪽도 재능이 있더라고요."
"정말 복 받았군."
"그렇죠."
신운성은 담담하게 대응했다. 자랑할 필요도 없고 너무 겸손 떨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반응을 살필 뿐이었다.
'적어도 경계하지는 않는군.'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경계한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대치되기에 더 안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함께 싸운 덕분인지 나이든 전사들은 신운성과 서은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적의 습격이 있은 후 며칠 뒤, 호안바트가 전사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이를 갈았다.
"칼미타르족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절단이 당했습니다."
"뭐라고? 그러면 복수는?"
"지금부터 해야죠. 일단 놈들의 족장과 전사들을 다 죽였으니 본거지만 찾아서 정리하면 됩니다."
호안바트는 평소의 순해 보이는 인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이 건드리면 그대로 들이받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마도 유인하려고 했던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래도 여길 잘 막아서 다행입니다."
칼미타르족은 호안바트를 비롯한 전사들을 유인해낸 뒤 본거지를 칠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하크와 한나의 도움이 컸네."
남았던 전사들의 말에 호안바트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사례는 나중에 하지."
호안바트는 바로 칼미타르족의 근거지를 치기 위해 전사들을 새로 보충했다. 적과의 전투로 인해 죽거나 부상을 입은 이들이 있기에 나이 많은 전사들 중에 적당한 이들과 교체했다.
"그럼 뒤는 잘 부탁합니다."
호안바트가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안바트는 무수히 많은 전리품과 함께 여자와 아이들을 데려왔다.
부족이 다른 부족에게 망하게 되면 결국 흡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흡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식수 문제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호안바트가 족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 최근 두 개의 부족을 없애고 여자와 아이들을 데려온 것이 문제였다. 전사의 수가 적기에 다른 건물로 이주를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숫자가 적은데 따로 살게 되면 방어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럼 내보내는 겁니까?"
우울한 이야기였다. 죽이는 것은 상처가 많이 남는 일이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 중에 도움이 아무 것도 못하는 이들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게 된다. 천수를 누리고 죽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물만 마시다 말라 죽는다.
"좀 더 물이 많았다면 모르지만........"
사막 부족들의 건물 안에는 물이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깊숙한 곳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계속 사용하면 마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신기하게도 다시 물이 차올랐다.
"더 많은 물이 나오는 건물을 찾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언제 될 줄 알고."
"그럼 어떻게 합니까? 결국 나이 든 사람들을 내보내는 겁니까? 차라리 다른 부족 출신 여자와 아이들을 내보내죠?"
"으음. 그럴 거면 차라리 데려오질 말았어야지. 그리고 그들이 원한을 품고 우리의 위치를 다른 부족에 알려주면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뿐이다."
"으음."
고민으로 인한 침묵이 길어졌다. 그러다 문득 호안바트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럼 차라리 남부로 보내죠. 더 많은 사절단과 말입니다."
"그거 괜찮군."
족장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신뢰를 위해서는 남부인들 사이에 부족의 일원이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편이 좋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사막에서는 굉장한 짐이 된다. 일을 하지 못하는데 식수와 식량을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노인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계속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아이들을 돌봤다.
"그럼 차라리 하크와 한나도 같이 보낼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절단과의 조율이 잘 된 다음에 보내야죠. 조건이 나쁘다고 그들이 안 받아준다고 하면 두 사람으로 인해 우리 부족의 위치만 드러나는 꼴이니까요."
"어쩔 수 없군. 그럼 그렇게 하지."
회의가 끝나고 새롭게 사절단이 구성되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대규모 인원이었다. 많은 노인들이 사절단의 일원이 된 것이었다.
사절단을 다시 보내고 난 뒤, 호안바트는 소녀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아이는 내 딸이네."
"아미야라고 합니다."
온 몸을 가리고 얼굴만 드러낸 아미야란 소녀의 피부는 어둠처럼 검었지만 은은히 빛이 나기도 했다.
'이 사람 대체 왜?'
딸을 외간 남자에게 소개해주는 행동에 신운성은 일단 경계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크고 여기는 제 아내 한나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미야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서은하를 바라보았다.
의아해진 신운성은 해답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호안바트를 바라보았다. 호안바트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신운성을 향해 웃었다.
"하하, 내가 보답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 딸을 자네 부부의 시녀로 써주게. 그게 내 보답일세."
"네? 보답이라뇨?"
"일전에 우리 부족을 위해 싸워주지 않았나? 손님이 목숨을 걸고 부족을 도와줬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딱히 시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거둬주시죠.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니야. 내 체면을 생각한다면 꼭 받아주게. 날 염치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
말을 하면서 웃고 있는 태도에 다른 의도가 있음을 짐작하는 것으 어렵지 않았다. 신운성은 호안바트를 데리고 아미야와 서은하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저번에 결혼을 사양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욕심이 나서 그러지. 자네 같은 사람과 우리 부족이 이어지면 좋으니까. 오러를 쓰는 전사는 어딜 가나 대우를 받네."
"그래도 전 남부인입니다."
"그래, 하지만 내 딸은 사막인이지. 그러니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좀 좋나? 나는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서 좋고. 딸은 강한 남자를 만나서 좋고."
딸을 안기려는 태도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호안바트는 속셈을 전혀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부딪쳐 왔다.
"저는 한나를 사랑합니다. 여자를 계속 받는 것은 한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시녀라도 좋네. 자네 곁에 그냥 두기만 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그래야 자네의 마음에 짐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호안바트는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하고 원수가 되고 싶지 않다면 시녀로 받아주게. 꼭 건드리지 않아도 좋아. 자네가 좋은 혼처를 찾아주면 되는 거니까. 대신 자네만큼 강한 남부인이었으면 좋겠군."
순해빠진 얼굴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호안바트였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덥다보니 글이 잘 안 써지네요. 머리도 멍해지고.
다음편은 지금부터 쓰겠지만 언제 올린다고 보장은 못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