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 회: 밝혀진 정체 -- >
'건물에 대해 언급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결국 그곳에 부족민들이 살기 때문이었다.'
기룬타우가 족장으로 이끌던 부족의 전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신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자체는 크지 않아. 하지만 사람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분명 지하에 어떤 식으로든 넓은 공간이 있는 것이 분명해.'
안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지금은 어떤 방법이 없었다. 괜히 안으로 들어갔다가 적으로 몰린다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신전은 어디 쯤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다. 신전만 찾는다면 바로 사막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시 신전이 묻혀있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상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신전을 찾으면 또 퀘스트가 생길까?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로 목줄을 죄면 어쩌지?'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으면 '죽음'이란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런 퀘스트가 계속 주어진다면 결국 퀘스트를 내리는 존재가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만 했다.
'빌어먹을 라스틴.'
신앙은커녕 원망만 커졌다.
"오빠,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퀘스트 때문에. 신전을 찾게 된 이후에 또 이상한 퀘스트 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긴."
지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지낸다는 것은.
서은하는 힘없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제쯤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최소한 파우론의 신자들을 다 죽이면?"
"어느 세월에......."
핵무기를 날릴 수 있다면 순식간에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무기를 들고 하나하나 죽여야 하는 세상이니 늙어 죽기 전에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니면 전부 다 개종시키면 되지 않을까?"
"개종?"
"응. 강제적으로라도 개종시키면 일일이 죽일 필요는 없잖아."
"그것도 오래 걸릴 것 같아."
"어쩌겠어. 살려면 뭐든 해야지."
"응."
미래는 밝지 않다. 결코 밝지 않다. 항상 어둠에 쌓여 있는 미래를 밝히는 것은 자신의 힘. 재능이든 행운이든 노력이든 뭐든 가져다 불태워 밝히는 수밖에 없다.
"정말 평화로운 때가 오면 둘이서 아무도 모르는 데서 편안히 있고 싶다."
"맞아. 그 호수 같은데 같이 배 타고 나가고 싶다."
서은하는 언젠가 사진으로만 봤던 예쁜 풍경을 떠올렸다. 사막이라 그런지 물이 많은 풍경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배 타고 나가다가......."
신운성도 기분이 좋아졌다. 서은하의 반짝이는 눈에 이끌려 살짝 끌어안고는 키스하고 말았다.
"오빠, 힘내자."
"그래."
가슴에 맺혔던 우울함이 조금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기운 차린 가슴은 사막의 열기를 빨아들이며 더욱 뜨거워졌다.
'그래, 뭐가 되었든 계속 앞으로 나가는 거야. 언젠가.......'
평화를 되찾겠다는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이때 신운성은 몰랐다. 자신의 결심을 완벽하게 깨트릴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룬타우의 부족은 연신 주변을 살피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몰려갔다. 꽤 규모가 컸다. 호기심은 느낀 신운성은 뒤를 몰라 쫓았다.
천천히 이동한 사막 전사들은 약 5일간 이동해 다른 부족과 대치하게 되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만난 두 전사 무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낙타를 타고 돌진하며 상대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낙타에서 떨어진 이들은 떨어진 이들대로 처절하게 저항했다.
팔이 잘리고 목이 잘리고 내장이 흐르고.
피가 뿌려지자 사막의 모래는 게걸스럽게 피를 흡수하며 몸을 붉게 물들였다.
생명을 앗아가기 위한 전투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모든 생명력을 불태워서라도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집념이 느껴질 정도.
상처를 입고도 상대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휘두른다. 팔이 잘릴 각오로 시미터를 막고 상대의 눈을 후빈다.
살기 위함 몸부림은 곧 끝났다. 기룬타우의 부족 전사들이 모두 패배했다.
'족장과 호위가 없어서 진 걸지도.'
승리한 사막 전사들은 부상자를 추슬러 뒤로 보내고는 진격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기룬타우의 부족이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기룬타우의 부족들은 끝났다.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목이 잘렸다. 노인들도 죽었다.
건물 밖으로 끌려나온 이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신운성은 담담했다.
곧 이어 사막 전사들은 어린 아이와 여자들을 끌고 나왔다. 아이들이 울면 여자들이 달랬다. 그리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자에게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니 사막 전사들도 여자들을 험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단지 조금 흥분한 전사들이 자신의 전리품으로 챙긴 여자들을 성적으로 희롱할 뿐이었다.
사막 전사들은 이어서 건물 안에 있던 물품을 대량으로 챙기고는 떠났다. 아직 떠나지 않은 전사 4명이 남은 것으로 보아 가져갈 물품이 더 많이 남은 것으로 보였다.
'기다리면 비워지겠군. 그 전에 저들의 본거지나 확인해두는 것이 좋겠다.'
신운성은 기다릴까 싶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사막 전사들의 뒤를 몰래 따랐다.
다른 부족의 본거지를 알아낸 이후 신운성은 다시 움직이는 전사들의 뒤를 쫓아 되돌아왔다. 이후 사막 전사들은 건물 안의 모든 물품을 챙겨 모두 떠났다.
신운성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떠나고 약 3일 정도 꾹 참았다. 그러자 사막 전사 3명이 나타나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살피더니 나와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운성은 사막 전사들이 멀리 떠나는 것을 확인한 뒤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건물 안으로 들어가선 신운성은 내부가 상당히 잘 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절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은 것이 아니다.'
땅을 파내며 갱도를 만들듯이 지은 건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건물 내부의 통로 호화로운 대리석들이 깔려 있었다. 벽면도 반질반질했다. 여기 저기 모래가 쌓여 있긴 했지만 꾸준히 청소한 흔적이 보였다.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던 신운성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묻힌 건물이야.'
땅 아래 파묻혔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이 주변을 몽땅 사막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렇지 않고는 멀쩡한 건물이 땅 아래 파묻힐 일이 별로 없었다.
'전쟁이 이렇게 만들었나? 대체 어떻게 싸우면 이렇게 되는 거지?'
어쩌면 사막 지대는 처음부터 사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신운성의 뇌리에 스쳤다.
'핵무기?'
막대한 땅을 단숨에 사막으로 만들 수 있을 만한 무기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핵무기. 하지만 문명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세상에 핵무기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어떻게 싸우면 이렇게 될까?'
핵무기와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이 격돌했다는 식으로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신전을 찾으라고 했으니 어쩌면........'
생각해보면 대륙을 남과 북으로 갈라버리는 일을 해버린 것은 바로 사막이었다.
'사막이 있던 곳은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일 수 있다.'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신운성은 건물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쓸 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천조가리 하나까지 사막 전사들을 싹 긁어갔다.
"여기선 별로 찾을 게 없는 거 같아 오빠."
"그래, 나가자."
소득은 별로 없었다. 단지 라스틴과 파우론의 신자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했을 거라는 사실만 짐작할 수 있었다.
건물을 나선 신운성은 사막 전사들이 떠난 곳을 향해 움직였다. 낙타를 타고 이동한 신운성은 빙 돌아서 반대 방향에서 접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근을 감시하던 사막 전사들이 나타나 앞을 막았다.
"멈춰라! 어디 놈들이냐!"
"사막을 헤매는 중입니다. 사막의 부족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신운성은 일부러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낙타에서 비틀거리며 내렸다.
"저희는 남부를 대표해 사막의 부족을 찾던 사절단의 호위였습니다. 중간에 길을 잃어 사막을 헤매게 됐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신운성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하니 사막 전사들은 무기를 내렸다.
"젠장, 다른 놈들은 뭐하는데 이 녀석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막지 못한 거야?"
"얼마 전에 전투가 있어서 빈틈이 생긴 거겠지. 요즘 흥청망청했잖아."
"젠장. 대장한테 깨지겠군."
전사들은 투덜거리면서 신운성과 서은하를 근처에 있는 바위 그늘에서 쉬게 했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쇼."
"감사합니다."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물주머니를 건네는 것을 보아 적대감은 전혀 없어 보였다.
신운성이 먼저 물을 마시고 물주머니를 건네자 서은하는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후드가 벗겨져 얼굴을 보이게 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자도 함께 이런 곳에 오다니. 설마 여자를 바칠 생각이었소?"
곁을 지키던 전사는 옷 밖으로 드러난 몸매만 보고도 서은하가 여자임을 알아챘다.
"제 아내도 저와 같은 전사입니다.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한 터라 이렇게 같이 다닙니다."
"허, 대단한 부인이군. 힘들겠어."
비꼬는 것인지 부러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에 신운성은 그저 웃었다.
잠시 기다리자 전사들의 대장이 함께 나타났다.
"나는 벨로트족 전사의 대장 호안바트라고 한다."
"유드족의 전사 하크입니다."
호안바트는 굉장히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키가 큰데다 근육도 상당해서 힘이 상당히 강해 보였다. 하지만 강해보이는 몸과 달리 얼굴은 너무나 순해 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신운성은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단, 기룬타우와 만났던 것은 모조리 함구했다. 알릴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군. 사막을 헤매다가 여기까지 오다니."
"제가 운이 좀 좋은 편이죠. 죽을 고비를 좀 많이 넘겼거든요."
"그런가? 운이 좋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 환영한다."
호안바트는 기룬타우가 그랬던 것처럼 일단 사막에 온 손님으로서 대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운성이 벨로트족의 거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부족의 율법에 외인은 안으로 들이지 못하도록 해서 말이지."
"밖에서 지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천막을 쳐줄 테니까. 푹 쉬라고."
호안바트의 명령에 전사들이 움직여 건물 근처에 천막을 쳐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천막의 안은 아늑한 느낌이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좋아, 그럼 난 족장님에게 얘기를 전해야 하니. 푹 쉬고 있으라고."
호안바트는 전사들에게 무엇인가 명령을 내리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남은 전사들은 웃으면서 편의를 봐주었지만 신운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편의를 봐주면서 감시를 하려는 거겠지.'
시선이 불편하긴 했지만 목적을 위해선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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