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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60화 (60/109)

< -- 60 회: 서전 -- >

식사는 조용히 끝났다. 신운성은 서은하와 함께 조용히 살짝 무리에서 물러나 자리를 잡는 척했다.

"오빠, 아무래도 나 보는 눈빛들이 좀 이상해."

"알아. 있다가 슬쩍 도망치자."

문제가 터질 것 같으면 그 전에 도망치는 것이 현명하다. 나중에 이상한 놈으로 찍히거나 혹은 남부인과 사막인 사이에 안 좋은 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신운성은 도망칠 생각이었다.

'내가 죽으면 뭔 소용인데?'

원치 않는 세상에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죽는다면 더 억울하다.

눈치가 이상하면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신뢰? 언제 보았다고 신뢰인가? 환대를 해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신뢰할 사이는 아니었다.

신이 지켜보고 있다고 해서 꼭 정의가 실현되리란 법은 없다. 더구나 신운성은 파우론도 라스킨도 믿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정의가 신운성을 구할 리도 없었다.

죽음의 숲에 처음 떨어졌을 때 느꼈던 불신이 되살아났다.

의심! 절박함!

신운성과 서은하는 자리를 잡는 척 하다가 어둠 속을 향해 뛰었다. 그러자 갑자기 사막 전사 하나가 따라왔다.

"어디 가나?"

"부부의 일입니다!"

이쯤 되면 알아서 물러설 만도 하지만 사막 전사는 끈질겼다.

'좋은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정말 손님으로 대접할 생각이라면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감시할 리가 없다고 신운성은 판단했다.

물러서지 않고 따라오는 사막 전사를 다시 마주한 것은 모닥불이 아주 작은 점처럼 보일 때였다.

어둠을 등지고 선 신운성의 모습은 대부분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상태. 밤하늘에 뜬 달빛이 아니었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왜 그렇게 끈질기게 따라오지?"

"손님이 위험에 빠지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뭐하는데 이렇게 멀리 나온 거지?"

"부부간의 일을 치르기 위해 선데 남들 보는데서 할 수 없으니까."

"그 것 좀 보면 어떤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

사막인들은 정말 성에 대해 관대할지도 몰랐다.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정말 걱정이 돼서 따라나왔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운성의 마음 속에서 사막인들은 이미 서은하를 노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말을 하며 신운성은 사막인에게 다가갔다.

"뭔가?"

"잠깐 보여줄게 있어서."

그리고 가까이 다가선 순간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난도질했다.

스스스스스슥!

빛이 충만한 낮과 달리 밤에는 모든 것이 조금 더 빨라 보인다. 신운성의 팔의 움직임에 사막 전사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난도질당했다. 맨 손으로 다가와 약간 긴장을 푼 것이 문제였다.

팔 가슴 목 옆구리 얼굴.

날카로운 단검은 순식간에 피부를 갈라버렸다. 갈라진 피부에서 피가 뿜어졌다. 공격했던 신운성은 피를 뒤집어쓰면서도 사막 전사를 노려보았다.

"커헉."

사막 전사는 비명을 지르려했지만 소용없었다. 갈라진 구멍으로 공기가 새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사막 전사가 쓰러지자 습관처럼 몸을 뒤진 신운성은 무기를 빼앗았다. 사막 전사가 차고 있던 단검과 시미터. 그리고 목걸이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까지 챙겼다.

"가자."

신운성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얼마 뒤, 기룬타우는 신운성과 서은하가 돌아오지 않자 전사들을 보내 수색을 시켰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자 이를 갈며 추격을 명했다.

"찾아!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끌고 와!"

기룬타우의 분노에 찬 외침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역시 은하가 목적이었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던 신운성과 서은하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치기는커녕 은밀히 되돌아왔다.

현재 있는 곳은 사막. 어디로 도망간다 해도 멀리서 보면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사막인들. 사막인들의 안방과 같은 사막에서 이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판단한 신운성의 선택 하나였다.

'모두 죽인다.'

위협이 될 존재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우선 기습이다.'

전사들이 모두 오러를 쓴다면 정면으로는 불가능했다. 방패와 메이스를 쓰기 때문에 오러 사용도 오래 못하니 금방 지칠 게 분명했다.

때문에 신운성은 어둠을 이용한 기습을 하기로 했다. 사막 전사들도 수색을 위해 짝을 지어 흩어진 상황. 뭉쳐 있지 않은 지금이 적을 제거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다.

어둠은 습격자에겐 언제나 좋은 무기였다.

적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고 몰래 다가갈 수만 있다면 최고였다. 태양이 뜬 환한 대낮에는 고개만 돌리면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어둠이 짙게 깔린 상황에서는 구분하는 것이 힘들다.

어둠을 타고 흐르는 바람처럼 신운성과 서은하는 조용히 움직였다. 여러 번 해본 짓이라 이제는 아주 익숙했다. 암살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어둠 속의 움직임이었다.

사막 전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모두 욕심에 눈이 먼 족장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두 사람의 실력을 확인하기도 전에 욕심 때문에 전사들을 내보내 잡으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

적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숫자가 적다고 방심한 것이 탈이었다.

결국 암살자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두 사람에 의해 전사들은 아침이 되기도 전에 모두 시체가 되었다. 남은 것은 불가에서 호위 전사와 한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기룬타우뿐.

'두 놈 남았다.'

어둠 속에 흩어진 사막 전사들을 죽이는 것은 거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쉬웠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신운성의 전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오러를 쓰는 상대를 만나도 맞상대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능력치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적의 위치를 먼저 발견해 선공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이 겹치자 무시무시한 결과를 이뤄냈다.

신운성은 단검을 뽑아 손에 들고 적당히 가늠했다. 그리고 서은하에게 무기를 모두 맡기고 천천히 접근했다.

"잡았나?"

찾지도 못했는데 잡았느냐고 묻는 기룬타우. 서은하로 인해 정신머리가 없기에 뭐가 우선인지도 제대로 분별을 못했다. 기룬타우의 머릿 속은 온통 서은하로 도배가 된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짧은 은발 아래 초롱초롱한 눈. 시선을 잡아끄는 목선과 은은히 빛나던 피부. 그리고 살짝 놀란 표정. 기룬타우는 서은하가 도망쳤다고 생각하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실루엣만 보고 아군이 접근했다고 생각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왜 대답이 없나? 잡았냐고!"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단검이었다.

"끄윽!"

단검을 봤다고 생각한 순간 가슴에 단검이 박혔다. 기룬타우는 심장이 꽉 막히는 느낌에 힘없이 쓰러졌다.

"이놈!"

뒤에 서있던 호위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서은하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이밀었다. 호위의 일격은 서은하의 방패에 막혔다. 호위는 당황하지 않고 재차 공격하려 움직이는데 신운성이 움직여 방해했다.

2:1의 싸움.

호위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공격했지만 아직도 힘이 넘치는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하니 손발이 어지러워지다 결국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사, 살려줘."

호위의 머리를 박살내고 나자 쓰러져 있던 기룬타우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애원했다.

"남의 아내를 탐한 녀석이 말이 많군."

"아니.... 그......."

기룬타우는 필사적으로 뭔가 말하려 했지만 신운성은 바로 머리를 날려버렸다.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였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시체를 다 모으자. 그리고 묻어야지. 다른 사막 부족이 발견하지 못하게."

어차피 사막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증인이 있지 않은 이상 누가 죽였는지 알 수도 없다.

드문드문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한 곳에 모였다. 옷이 벗겨지고 모든 소지품을 빼냈다. 이후 사막 전사들의 낙타를 모았다.

"이것들은 어떻게 해?"

"죽여서 고기로 만들까?"

"익히려면 땔감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사막에서의 또 다른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기가 있어도 익혀 먹을 땔감이 부족하면 익혀 먹기가 어렵다.

"그럼 그냥 죽일까? 우리가 타고 다니다 누가 알아보면 골치 아프잖아."

기룬타우와 전사들이 타던 낙타는 크기가 달랐다. 종이 다른 것처럼 우람하고 튼튼해 보였다. 사막에서 또 다른 사막인들을 만나게 되면 어쩌면 의심받게 될지도 모르니 쓰고 싶어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풀어주는 건 어때?"

"왜?"

"낙타들도 살고 싶으면 집이든 어디든 가지 않겠어?"

'은하의 말대로 된다면.'

기룬타우의 부족이 사는 곳을 알아낼 수 있는 확률이 있었다. 어차피 갈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넓은 사막을 마냥 헤매며 뒤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좋아. 해보자."

신운성과 서은하는 뒷정리를 모두 마쳤다. 사막 전사들의 단검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시미터는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낙타의 등에 걸린 안장에 걸어놓았다. 이후 주머니 안에 든 소지품들 중 돈이 될 것 같은 것만 빼내고 안장에 매달았다.

"가라!"

낙타들의 옆구리를 찰싹 치자 낙타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서둘러 자신들의 낙타를 타고 뒤를 따랐다.

낙타들은 길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일정한 방향으로 흩어지지도 않게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며칠 움직이고 나자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거리가 먼 탓이라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이 가면 꽤 커 보일 것 같은 건물이었다. 낙타들은 건물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낙타들을 쫓지 않았다. 낙타들과 함께 사막 부족을 만나게 되면 의심을 사게 되기 때문이었다. 낙타의 주인들을 죽인 자라고 의심받게 되면 골치 아프니 아예 거리를 두고 관찰하려는 속셈이었다.

낙타들은 예상대로 건물 앞에 멈췄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곧바로 돌아들어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고 나왔다.

이후 소란이 일어난 것 같았지만 멀리서는 자세하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고민하던 신운성은 바로 부족을 향해 다가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조금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 달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사막의 생활은 피곤하고 지루하긴 했지만 물과 음식을 상점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두 사람에겐 조금 더운 곳에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낙타를 몰아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멀리 떨어졌다.

뒤늦게 건물에서 전사들이 뛰쳐나와 낙타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개중에는 되돌아온 낙타들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고 했지만 한 번 집으로 되돌아온 낙타들은 기룬타우가 죽은 곳으로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운성은 사막의 바람과 함께 유유히 사막인들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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