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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59화 (59/109)

< -- 59 회: 서전 -- >

신운성과 서은하는 바로 사막인들의 거처로 안내되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곳에서 계속 지내야만 했다. 행여나 어떻게 될지 몰라 두 사람은 밤에는 자는 척했지만 사실은 번갈아가면서 잤다.

다행스럽게도 사막인들은 별 다른 시도를 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언제나 함께 먹었다. 바로 눈앞에서 조리해서 먹으니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동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사막인들은 잡아 놓은 도마뱀을 구워 먹고는 하루 종일 뭔가 씹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신운성은 가까이 다가갔다.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않고 안 심심합니까?"

"심심? 이거 씹고 싶나?"

기이하게 생긴 식물이었다. 비쩍 마른 나뭇가지처럼 생긴 것을 사막인들은 질겅질겅 씹었다.

"이게 뭡니까?"

"좋은 거. 씹어 보면 알아."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사막인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낯선 이방인들을 인도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책임자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책임자와 대화를 나누고 사막 부족들의 호감을 사 남부와 한 편이 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잊혀진 라스틴의 신전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혹시 사막에 오래 된 건축물 같은 거 없습니까?"

"건축물? 그건 왜?"

사막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경계심이 눈에 어리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에 관심이 있어서요. 옛날 신전이라든가 그런 건 어땠을까 궁금하거든요."

"특이한 녀석이군. 전사라고 하지 않았어?"

"전사라고 건물에 관심 없는 건 아니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만."

사막인의 표정에서 경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제가 북부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에."

"호오, 그런데?"

"그때 북부의 건물들을 봤는데 굉장히 방어적이더라고요. 전투 치르는 것도 한 번 봤고요."

"그래? 거기 전투는 어때?"

신운성은 성을 중심으로 한 전투를 묘사해주었다. 모두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거짓말도 좀 섞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길이 없는 사막인은 흥미를 보이며 계속 들었다.

"그래서 요번에 전쟁이 나고 생각했죠. 우리도 북부인처럼 건물을 지어놓는다면 방어할 때 참 편하겠다고요. 그 뒤로 건물 같은 것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 거였어?"

경계는 풀린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무엇인가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에서 신운성은 정보를 얻었다.

'뭔가 있긴 있나보네. 말 안 하는 거 보니.'

대화 도중에 어떤 사실을 일부러 외면한다는 사실도 하나의 정보다. 대화를 하면서 계속 표정을 살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이기도 했다. 상대의 말 뿐만이 아니라 음성, 눈빛, 상대의 얼굴 근육의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살펴보니 자연히 정보가 모였다.

'빨리 찾는 편이 좋은데.'

보상이 탐나기도 하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니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급할수록 서두르면 상대에게 휘둘리기 마련이었다.

혼자서 신전을 찾으려면 아무런 힌트도 없이 사막 전체를 뒤져야 할 수도 있었다. 이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사막에서 사는 사막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건물이라. 사막에 오래 된 건물이 있긴 하지만 다 무너져서 봐도 쓸모 없어."

"그래요? 그래도 한 번쯤 꼭 보고 싶네요. 뭐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거든요."

서로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래? 언제 기회가 되면 데리고 가지."

"감사합니다."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순 없었지만 신운성은 적당히 감사 인사를 하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사막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면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사막인들도 오러 연공법을 익힙니까?"

"우리? 어떨 거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익힐 것 같은데."

"익혀 우리도. 나도 오러 사용자야."

사막인이 허리춤에 꽂아둔 단검을 천천히 뽑아 오러를 주입했다. 신운성은 살짝 긴장하며 물러섰다.

"대단하시군요."

"이 친구 겁먹었나? 왜 물러서고 그래?"

"그냥 좀 긴장해서요."

사막인은 피식 웃고는 다시 단검을 집어넣었다. 신운성의 입장에서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맨 손으로 근거리에서 단검을 든 상대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허리춤에 단검이 있기도 하고 필요하면 인벤토리에서 바로 꺼내 상대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단검 싸움에서 시간은 금이었다.

아주 약간의 차이로 단검이 훑고 지나가면 끝이다. 단검의 고수라면 무기를 뽑을 시간에 팔이고 목이고 몇 번이고 벨 수 있다. 빛처럼 빠르게 단검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당하고 마는 것이다.

사막인은 별로 싸울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웃어 넘기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자네 말 배우는 게 굉장히 빨라. 굉장히 똑똑한 모양이야."

"제가 말을 좀 빨리 배웁니다. 그래서 재능을 살려 상인이 되어볼까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전사가 됐죠."

"전사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전사의 재능도 조금 있어서요. 대신 검 같은 건 잘 못 다룹니다. 방패랑 메이스를 쓰는 게 전부죠."

"그래?"

사막인은 신운성이 멀리 놔둔 무기들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와 메이스가 확실히 검보다는 익히기 쉽기 때문이었다.

이후 여러 가지 잡담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는 곧 끊어졌다. 사막인이 중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으려고 하니 대화가 자주 끊길 수밖에 없었다. 소재가 떨어진 신운성은 어쩔 수 없이 서은하와 함께 조용히 기다려야만 했다.

며칠 후, 사막인들이 몇 명 더 도착했다.

"만나서 반갑군. 얘기는 들었다. 내 이름은 기룬타우다. 아로크족의 족장이지."

"반갑습니다. 유드족의 하크입니다."

신운성은 족장이 직접 올 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쩐지 수행원이 많다고 했더니 중요한 인물이었군.'

척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전사들이 기룬타우의 뒤에 서 있었다.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우리가 그쪽을 도우면 뭐가 좋지?"

"무엇을 원하십니까? 남부인과 화합을 한다면 사막이 아닌 남부인들과 더불어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 사막을 벗어나는 거. 좋은 얘기긴 해. 하지만 사막 부족 전체가 파우론교의 신자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위험도 있지."

"그들은 단순히 갈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남부인 전체를 마족으로 규정했습니다. 다음에는 사막 부족들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죠."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기룬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 부족은 태어날 때부터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북부인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사막을 벗어나려 한 적이 있었지만 흑인이란 사실 때문에 차별을 받았었다. 다수 속에 흑인이 한 명 있으면 뭐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전부 흑인 탓이라며 매도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었다.

장사를 위해 거래를 할 때는 상관없지만 좀처럼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너무나 대조적이다 보니 이질감을 넘어서는 것이 어려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남부인들이 우릴 배신한 것도 우린 잊지 않고 있다."

"배신이라뇨?"

"갑자기 배를 타고 교역을 하지 않았나? 덕분에 우린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었지."

남부인들이 사막을 통하지 않고 배를 통해 교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사막의 안내자로 살면서 얻는 이득이 상당했는데 갑자기 교역로가 변경되니 사막인들의 수익은 대폭 줄어들었다.

교역으로 얻은 이익으로 필요한 물건을 풍족하게 공급한 탓에 사막 부족들의 인구는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교역로가 바뀌니 사막인들의 생활은 힘들어졌고 결국 부족간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살기 위해선 다른 부족을 죽이고 자원을 차지해야만 했다.

"그걸 배신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저는 잘 모르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점 용서해주시죠."

"크흠."

기룬타우도 자신의 말이 억지임은 알고 있었다. 좀 더 나은 교역로가 있어서 그쪽으로 움직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다보니 감정적이 되어 억지를 부렸었다. 그런데도 신운성이 고분고분하게 머리를 숙이니 민망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북부인들의 잔인한 결정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부인들과 함께 하시는 편이 사막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기룬타우는 고민했다. 전쟁이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분만으로 싸움에 참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전쟁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 목숨을 걸고 싶을 만한 가치를 얻을 수 없다면 무의미한 전쟁일 뿐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지."

기룬타우는 결정을 뒤로 미뤘다.

밤이 되자 기룬타우를 비롯한 이들이 둥글게 모여 식사를 준비했다. 사막에 손님이 왔으니 일단 접대하는 의미로 양을 한 마리 잡은 것이다.

"사막에서 양이 큽니까?"

"물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더 이상은 사막의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네."

"그렇군요."

잘 구워진 양고기였다. 소금으로 간이 된 양고기를 냄새가 났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부드러운 갈비 부분을 대접 받았다.

"이거 좋은 부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먹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분위기를 깨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온 바람은 고기를 먹느라 고개를 들고있던 서은하의 후드를 벗겨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받아 빛나는 서은하의 얼굴에 기룬타우를 비롯한 사막인들은 침묵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서은하를 보느라 모두 동작을 멈췄다.

서은하는 화들짝 놀라 다시 후드를 썼지만 얼굴은 이미 다른 이들에게 보인 상태였다.

"허허."

얼굴을 다시 가리자 기룬타우는 아쉬움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의 눈에 기이한 열망이 담기기 시작했다.

'젠장.'

신운성도 그것을 보았다. 기룬타우를 비롯한 사막인들의 눈에 어린 감정을.

'이거 위험하겠는데?'

유드족의 전사들과는 조금 달랐다. 유드족의 전사들은 신운성이 이미 부족의 일원이 된 상태여서 서은하의 얼굴을 보고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같은 부족 전사의 아내를 빼앗는다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달랐다.

신운성을 죽이고 서은하를 차지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인이 참 아름답군."

기룬타우는 신운성을 바라보며 칭찬했다. 신운성은 억지로 웃었다.

'오늘 밤, 어쩌면 위험하겠는데?'

좋지 않은 예감이 스멀스멀 가슴 안쪽으로 기어들어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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