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의 기어-57화 (57/109)

< -- 57 회: 서전 -- >

'이게 뭐야?'

사막에 들어서자마자 신운성은 신음을 흘렸다. 새로운 퀘스트가 업데이트 된 것을 보고 확인했더니 당혹스럽게 만드는 퀘스트가 떠 있었다.

* 잊혀진 라스틴의 신전을 찾아라!

악신에 의해 무너진 신앙의 흔적을 찾아라.

보상: 스탯 포인트 500, 포인트 동전 50,000개

실패: 찾지 못하고 사막을 벗어날 경우 죽음.

'죽어?'

이런 퀘스트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실패할 경우에 대한 페널티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음이 페널티로 나왔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젠장.'

보상은 마음에 들었지만 페널티가 계속 눈에 밟혔다. 죽음을 피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는데 의외의 상황이 닥치니 피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오빠, 퀘스트 봤어?"

"그래. 어쩔 수 없어 해야지."

사막에 들어선 감상을 느끼기도 전에 퀘스트로 인해 기분이 몹시 나빠진 신운성과 서은하였다.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영원히 사막을 벗어날 수 없어.'

낙타를 타고 사막을 향해 들어가는 신운성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사막. 물을 찾기 힘들어 생명이 살기 어려운 땅.

남부의 사절이 들어선 사막은 완전한 모래사막은 아니었다. 딱딱한 땅과 말라버린 돌들이 반기는 사막이었다. 풀은 보이지 않았다. 선인장도 없었다.

생명이 없기에 생명이 내는 소리도 없었다.

'조용하다.'

잡음이 없었다. 사막에 깊숙이 들어서게 되자 들리는 소리가 매우 적었다. 신운성은 갑자기 귀가 막힌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 소리와 자신의 숨소리, 그리고 곁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소리뿐이었다. 그나마 들리는 소리도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거리감에 혼란이 왔다.

'혼자서 사막에서 오래 돌아다니다간 미칠 수도 있겠군.'

미묘하게 다른 감각이 위화감을 안겨주었다. 태양의 뜨거움보다 적막이 더 두렵게 다가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절단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정해진 방향은 사람이 있을만한 곳. 사막의 부족들은 항상 자신들이 접근했으면 했지 근거지까지 이방인을 데리고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이들의 위치를 아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거래를 했던 장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갈 뿐.

뜨거운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왔다.

뜨겁게 달궈진 땅에서 열기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움직이기에는 밤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별자리를 보며 바다를 항해하듯 나아간다면 어디론가 갈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사막에 대해 잘 모르는 남부인들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전혀 몰랐다. 신운성도 몰랐다.

말린 고기를 씹어 먹은 신운성은 자꾸만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젠장.'

모든 게 불편했다. 문명사회에서 살다 온 신운성에게는 모든 것이 불편한 세상이었지만 사막은 더 불편했다. 물이 없으니 씻는 것조차 조심해야 했다.

'잊혀진 신전은 또 어떻게 찾으란 걸까?'

사막의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신전의 위치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운성의 상념은 계속 이어졌다.

'그나저나 라스틴이라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존재가 라스틴인가?'

지금까지는 어떤 존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운성은 퀘스트를 보고 감을 잡았다.

'예전에 영향력을 잃은 신이 다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걸까?'

이름조차 몰랐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 가지는 확실했다.

'라스틴이 날 여기로 보낸 존재의 이름.'

신전을 찾으라고 했을 뿐이지만 괜히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을 시키진 않았으리라 신운성은 판단했다. 지금까지 하게 된 퀘스트만 보더라도 목적은 분명했다.

'경전에도 나와 있던 이름이었지.'

파우론이 몰아낸 악신, 라스틴.

'신이라면 직접 싸울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영향력을 두고 다투는 것으로 보아 다른 문제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겠지.'

원망과 분노가 샘솟았다. 좋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파우론의 편에 서서 라스틴의 모든 것을 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파우론 또한 별로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신운성을 비롯한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존재니까.

'빌어먹을 신들의 싸움에 장기 말 노릇이나 해야 한다니.'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하늘이 더 보기 싫어진 신운성은 눈을 감았다. 더 생각해봐야 화만 날 뿐이었다.

사막에서의 여정은 계속 되었다. 노인들의 조언을 더듬어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분지가 있었다. 분지라고 해도 멀리서 보면 땅인지 분지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상태였다.

"여기가 확실한가?"

"아마 맞을 거야.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돌아갈 분량을 생각한다면 며칠 못 기다릴 텐데."

넉넉하게 준비해온다고 했지만 사막에 처음 들어온 이들의 물 소모량은 빨랐다.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을 벌써 써버린 상태. 돌아갈 때 쓸 물을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사막 부족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순 없었다.

"적당히 하다가 돌아가야지. 어쨌거나 사막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니까."

사절단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린 돌아갈 수 없는데.'

신운성과 서은하는 사절단이 하는 얘기에 답답해졌다.

'무슨 이유를 대고 남던가 해야지.'

잊혀진 신전을 찾지 못한다면 돌아가도 죽음이 기다릴 뿐이었다.

"잠깐 주변 좀 둘러보고 올게요."

"그래? 다녀와."

신운성과 서은하는 낙타를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적당히 움직이다 밤이 되어 길을 잃은 것처럼 없어지면 되겠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절단은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할 것이고 그대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았다. 두 사람이 중요하긴 하지만 남부인의 일이 더 중요하니 아마 지체하지 돌아갈 터였다.

'페르나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어쩌면 죽었다고 알려질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관계가 페르나는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다.

'카딘이 잘 보살피겠지.'

유드족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운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었다. 퀘스트를 깨기 전에는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멀리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사절단은 걱정하며 주변을 살펴볼까 했지만 그냥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자신들마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막에 대한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열사의 땅을 방황하는 두 사람은 계속해서 방황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꼭 우주를 닮아있었다. 황폐해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홀로 뚝 떨어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일주일 동안 방황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오빠, 좀 쉬었다 가자."

"그래."

사막은 혹독한 곳이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점과 인벤토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은하는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생수통을 꺼내 낙타가 쓸 물통에 부어주었다. 죽음의 숲에서 챙겨놓았던 생수통은 물을 받아놓는데 최고였다.

"사막의 부족은 대체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남는 걸까?"

"분명 그들만의 비밀이 있겠지."

사막 중간에 찾은 커다란 바위가 만들어낸 그늘에 앉아 상점에서 구입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신운성과 서은하의 유저 정보창에는 상점 포인트가 쌓여있었다. 아껴 쓴다면 수십 년 정도 사막에서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신전을 찾기만 하면 더 많은 동전을 얻게 된다.

"그런데 괜찮을까?"

"뭐가?"

"전쟁."

괜찮다고 말할 순 없었다. 아직 상황은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남부가 약간 불리한 상태로 보였다.

'성전이니. 북부인들이 모두 단결한다면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겠지.'

아직 남부는 하나가 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힘을 다 모아도 북부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불리하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괜찮지는 않겠지."

"페르나는 괜찮을까?"

서은하의 입에서 페르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신운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싸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멀리 뒤쪽으로 빠진다고 했으니까."

"그렇겠지?"

신운성은 왜 페르나를 언급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계속 둘만 있고 싶은 걸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신운성이 잃게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서은하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은하야."

"응."

"걱정하지 마. 난 네가 최고로 중요하니까."

"응."

손을 살며시 잡아주자 품으로 기대어왔다. 날씨가 더운데 서은하의 체온을 느끼게 되자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주변에 두 사람을 볼 만한 존재는 낙타뿐이었다.

분위기에 취하자 입술이 가까워졌다.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숨결이 오고갔다.

이성을 녹여버리는 열기에 서로를 더듬는 손길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때 낙타의 울음소리가 신운성의 귀에 꽂혔다.

'안전한 곳이 아니면 안 돼.'

다른 존재의 소리에 집중이 깨지자 신운성은 이성을 되찾았다.

관계를 맺고 있는데 사막의 부족이 나타난다면 낭패였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신운성이었다.

더위 속에서 체온을 공유하다보니 땀이 흘렀다. 결국 신운성은 잠시 서은하를 밀어내고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자."

휴식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사의 땅은 모든 것을 녹여버릴 기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 사함은 하염없이 낙타를 타고 이동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