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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56화 (56/109)

< -- 56 회: 서전 -- >

북부의 영주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모두 편지를 받았다.

성황의 이름으로 보내진 편지였다. 이번에는 군대를 보내라는 것이 아니었다.

"공을 세운 자에게 파우론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영지의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

한 마디로 미끼였다. 열심히 싸워 점령한 땅은 가져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혹은 공에 따라 땅을 나누어주겠다는 소리.

처음 성전을 위해 군대를 보내라고 할 때는 주저하던 이들도 제대로 된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다. 보내지 않으려고 해도 가겠다는 사람들을 막기는 어려웠다.

야망이 있지만 영주 계승권에서 밀리는 젊은 귀족들과 독립하고 싶은 생각을 가진 기사들이 성황군에 합류했다.

서전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곧 폭풍이 될 군대가 아비트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말타기를 배워야 한다."

가뜩이나 수련할 것이 많은데 이제는 말타기까지 배워야 하게 되자 신운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말타기는 꼭 배워야만 했다.

말을 탈 줄 모르는 전사는 반쪽에 불과했다.

오러 마스터가 말을 탈 줄 모르면 상대하지 않고 도망가면 된다. 마스터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말을 따라 잡는 것은 어렵다.

전쟁 중이었지만 사드하는 신운성을 완벽한 전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있다가 카딘하고 루앙으로 정찰 갔다 와. 가서 빈틈이 보이면 목을 베오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제는 적을 괴롭힐 때였다. 적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지도 모르지만 조금씩이라도 피해를 입혀야 승산이 조금 더 올라간다.

전사들과 함께 움직이게 되자 신운성은 어설프게나마 말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오러는 빨리 배우는데 말은 서툴군."

"타 본 적이 얼마 없으니까요."

"그래, 지금부터 배우면 되지."

카딘은 어색하게 말을 타는 신운성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옆에 라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우리 부족 전사들만 너무 힘든 거 아닌가 몰라. 이러다 힘의 균형이 깨지는 거 아냐?"

"이번이 처음하는 정찰 임무인데 벌써부터 불평하면 되겠냐? 두고 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어휴. 그냥 쉬고 싶으니까 하는 소리지. 고지식하긴."

라말은 투덜거리며 다시 멀어졌다. 카딘은 이에 신경 쓰지도 않는지 계속 신운성에게 말에 대한 조언을 할 뿐이었다.

해질녘에 출발한 전사들은 어둠이 짙게 깔릴 때쯤 루앙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불에 탄 루앙은 형편없이 망가진 상황이었다. 성황군은 전사들이 만들었던 방벽을 경계로 한치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 지어지지 않은 부분을 완성하려고 공사중이었다.

"역으로 우리에게 써먹겠다는 뜻이군."

"저렇게 되면 공격이 쉽지 않은데."

"일단 루앙 시내부터 조심해서 살펴보자."

전사들은 말에서 내려 조용히 루앙에 접근했다. 혹시라도 성황군이 불탄 시내에 숨어 있다가 기습을 가할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색은 느렸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성황군은 불탄 루앙에는 관심도 없는지 뒤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느긋하군."

무뚝뚝하기만 하던 카딘도 이번에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적이 절대 서두를 생각이 없다니 농락당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계속 싸울 걸 그랬나?"

"아니야. 만약 계속 있었다면 저들도 뭔가 했을지도 몰라."

"하긴 뭘 해? 이쪽은 아예 관심도 안 두는데."

몇몇 전사들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투덜거렸다.

"우리끼리 싸워서 뭐하냐? 일단 적에게 어떻게 피해를 줄 지 그것부터 생각해보자."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아봤지만 별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들었던 담은 역으로 자신들을 경계하는 데 이용 되고 있는 상황.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활이라도 쏠까?"

"그게 낫겠군."

밤이라 주변을 밝히기 위해 피운 불 근처에서 보초를 서던 이들을 화살로 잡았다. 그러자 성황군 진영이 시끄러워지며 사방으로 성기사들이 튀어나왔다.

"튀어!"

무시무시한 기세로 주변을 휩쓸고 다니는 성기사들의 모습에 전사들은 깜짝 놀라 도망쳤다. 루앙을 벗어나 말을 타고 도주한 뒤에야 성기사들이 추격을 멈추었다.

"무서운 놈들."

"함정을 파고 기다린 모양이다."

공격당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성기사들의 모습에서 적들이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잠잠해지면 다시 가보자."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잠잠해졌을 무렵. 전사들은 다시 벽에 접근했다. 하지만 이제는 불빛 근처에 서있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불빛 근처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불 근처에 서있게 되면 표적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적들이 보초 서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결국 전사들은 몇 명 잡은 것 빼곤 큰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지루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잔뜩 웅크린 성황군을 딱히 공격할 수단이 없는 남부 부족 연합은 그저 계속 기습할 전사들을 번갈아 보내며 신경을 긁어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쟁에 진척이 없는 상황.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신운성은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말타기는 물론 활쏘기까지 어느 정도 수준급으로 하게 된 것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전사라고 해도 부끄럽지는 않겠어."

"감사합니다."

"고맙긴. 앞으로 부족을 잘 지켜주면 돼."

부족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사드하였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합니까?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적이 잔뜩 웅크리고 있으니 큰 피해를 입히기가 무리였다. 점령이니 뭐니 한다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면 기습이든 각개격파든 시도할 텐데 적이 움직이지 않으니 모든 작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다."

"뭡니까?"

"사막을 건너면 된다."

사드하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막의 하늘과 이어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까?"

"있다."

"그럼 그들도 우리 연합에 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들의 피부는 검은 색이야. 이번 성전하고 상관없으니 오히려 북부인들의 편에 설 가능성도 있지."

"그럼 그들하고도 싸우게 되는 겁니까?"

"모르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하지만 사막을 우리가 차지하게 된다면 루앙을 통하지 않고도 사막 중간에 위치한 코벵을 함락시키고 아울러 북부로 들어가는 관문인 제르모도 손에 넣을 수 있다."

사드하의 눈이 빛났다.

"그렇게 되면 루앙의 성황군은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거다. 적의 보급로는 길어지고 위험하니 전쟁은 남부에게 유리해 질 수 있어."

신운성은 사드하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사막의 부족들이야. 그들의 선택이 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막의 부족들이 과연 남부의 편을 들까? 그들에겐 어차피 남의 전쟁과 마찬가지인데 마족으로 낙인 찍혀 멸망할 선택을 하긴 쉽지 않겠지. 오히려 북부의 편을 들어 남부를 몰살하는데 손을 빌려줄 가능성이 더 높아.'

사드하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신운성은 추측해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목 졸려 죽는 것과 같은 상황. 뭔가 하지 않는다면 적에게 계속 유리한 상황이 펼쳐진다.'

사드하가 했던 이야기는 부족 연합의 족장들도 생각하고 있던 선택지였다.

"사막을 끌어들이든 길을 빌리든 해야 합니다."

"하지만 괜히 긁어서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면 어떻게 합니까?"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회의는 3일 동안 계속 같은 주제로 빙글빙글 돌았다. 어디론가 의견이 가는가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새로 논쟁을 시작했다.

회의에 참여했던 족장들은 슬슬 미쳐갔다. 같은 말이 계속 오고가니 이제는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주고받으며 고성을 질렀다.

"그만! 그만! 그만!"

참다못한 족장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소릴 질렀다.

"우리끼리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니 이제 그만 합시다!"

다른 족장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논쟁을 벌이느라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사실 칼자루는 자신들이 쥔 것이 아니었다.

"사막의 부족에게 사람을 보냅시다. 최대한 인원은 적게, 대신 사막 이외의 땅을 그들에게 양보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보내봅시다. 함께 싸울 수 있으면 좋지만 그냥 못 본 척하고 길만 빌려달라고 하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거절하면요?"

"그만!"

누군가 다시 논쟁을 시작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칼 같이 잘라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으음......."

3일 간의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사막으로 가는 사절에는 신운성도 포함되었다. 요즘 들어 계속 발전하고 있던 신운성은 전사들 사이에서 점점 평가가 올라가 강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절에는 많은 인원을 보낼 수 없으니 소수의 정예가 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때문에 신운성이 뽑히게 되었다.

거절을 한다면 안 갈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족장의 체면을 구기게 되는 일이 되니 부족 내부에서 견제가 심해질 수 있었다. 해서 신운성과 서은하는 사절에 참가하기로 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때문에 말에 이어 낙타 타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남부인들도 낙타는 별로 타지 않기에 잘 타는 사람은 없었다. 사막과 가까운 곳에 사는 부족이 낙타를 말 대신 사용할 뿐이었다.

출발까지는 잠시 시일이 걸렸다.

그리고 준비 기간 중에 남부를 초토화 시킬 전력들이 아비트를 떠나고 있었다.

"우웨에에에에엑!"

배를 처음 타본 사람들은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병력을 실은 배들은 남쪽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배에 타고 있던 지노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영주의 자식들과 기사들에 대한 연민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야망 때문에 피를 흘리게 될까?'

지노스 산 에르나스. 에르나스 신전의 성기사 지노스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한숨을 내뱉었다.

'다 부족한 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책이 지노스를 괴롭혔다. 2명의 악마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쫓다가 놓친 것이 원인이었다. 보고를 올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노스가 올린 보고가 불씨가 되어 결국 남부인 모두를 마족으로 규정하고 멸망시키는 성전으로 이어졌다.

'파우론님이시여. 진정 제게 원한 것이 이것입니까?'

지노스가 계속 자책하는 와중에도 배는 쉬지 않고 남부로 향했다.

거친 폭풍이 될 바람이 계속 남쪽을 향해 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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