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 회: 인연의 고리 -- >
한바탕 소동이 일었지만 유드족의 전사들 외에 신운성의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드족 전사들은 사드하의 엄명에 따라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함구했다.
신운성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서은하까지 오러 마스터에 오를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은 부족 내의 권력 구도를 단숨에 뒤바꿀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다가는 부족이 분열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만약 신운성과 서은하가 오러 마스터에 반열에 들게 되면 많은 부족민들이 두 사람을 따르게 될 터였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두 사람이 족장과 반목하게 되면 파벌이 생길 수 있었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족장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이 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경우였다.
사드하는 누구의 편도 아닌 부족의 편이었다. 누가 족장이 되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사드하는 존중받았다. 괜히 건드려봐야 좋을 것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다 사드하를 따르는 많은 전사들의 반감을 사게 되면 불리해지니 아예 건드리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신운성은 다시 깨어난 이후 왠지 자꾸 친근하게 구는 전사들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비약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에 이해를 못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친근하게 구는데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죽음의 숲이었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봤겠지만 현재 있는 곳은 좀비가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더구나 신운성 자신은 부족의 여자와 결혼까지 한 몸. 전사의 일원으로 받아주기 위해 친근하게 군다고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건 없었다.
"재능은 정말 넘치더군.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오러 연공법을 수련하지. 내가 직접 가르치겠다."
사드하의 말에 토를 다는 전사는 없었다. 보통 신입 전사는 숙련된 전사가 가르치지만 신운성과 서은하는 다른 대우를 받을 만했다.
신운성과 서은하가 오러의 재능을 확인하는 시각, 복수를 마쳤던 성주혁은 쫓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동료들이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15명뿐이었다.
갑자기 만난 성기사들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접근했다.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돌아왔다.
"파우론님을 믿습니까?"
"그게 누굽니까?"
동료가 반문을 하는 순간 성기사의 검이 동료의 몸을 갈랐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몸이 갈라진 동료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이들이 몇 명 덤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기사의 검에 순식간에 절단됐다.
"후퇴!"
성주혁은 도주를 명령했다. 정면으로 싸워서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적과 싸우기 위해 동료를 죽음에 몰아넣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복수를 해야 했지만 전력이 너무 약했다. 때문에 일단 후퇴를 명했다.
이후 성주혁은 계속 쫓겼다. 성기사 무리들이 잘 뛰긴 했지만 신체 능력이라면 성주혁 일행도 만만치 않았다.
계속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먼저 지친 것은 성기사들이었다. 맨 몸인 성주혁 일행과 달리 성기사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했다.
장장 하루에 걸친 추격전의 승자는 성주혁 일행이 되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놈들이 지쳤다. 조용히 추격하자."
성주혁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죽음의 사선을 함께 넘은 동료를 허무하게 잃은 분노는 덮을 수 없었다.
성기사들은 천천히 흔적을 따라 뒤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이에 성주혁은 눈을 빛냈다.
"놈들이 우릴 추적중이다.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해."
"혹시 우릴 그 살인자 놈들하고 한 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생긴 건 비슷하잖아. 피부색도."
"아니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야."
성주혁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을 다시 되새기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놈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물었다. 파우론을 믿냐고."
"설마......."
동료는 파우론을 모른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리고 죽었다.
"이 세계의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자 죽였다."
성주혁 일행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교의 자유 속에서 살아왔기에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성주혁의 말을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종교의 자유 속에서 살아왔다고 하나 지구의 종교에도 다른 신을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민족을 적대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두려운 사람은 빠져도 좋다. 하지만 난 복수하겠다."
성주혁은 변했다. 처음 죽음의 숲을 벗어날 때에만 해도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배제해왔다. 하지만 죽음의 숲을 벗어난 이후로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배신을 용서하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배신을 용서하지 않는 만큼 동료를 건드리면 불 같이 화냈다.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성주혁을 보며 동료들은 모두 웃었다.
"빠지긴 누가?"
"혼자만 너무 폼 잡지 마라."
동료들의 말에 성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씨발.'
정말 좋은 동료들이었다. 그래서 분노는 더욱 컸다.
'용서 안 한다. 파우론이고 뭐고 다 부셔버리겠어.'
성기사들은 성주혁을 계속 쫓았지만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를 좁히지 못하니 답답했다. 그러다 결국 지쳐서 쉬게 되었다.
근처에 악마로 추정되는 이들이 있으니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다. 2명씩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깊은 밤이 되자 죽음이 찾아왔다.
성주혁 일행은 잠자는 이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불을 피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조준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결국 자고 있던 성기사들은 너무도 간단하게 목숨을 잃었다.
불침번을 서던 성기사들은 분노해서 일어났다. 그때 한쪽에서 횃불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쫓았다. 그러다 함정에 빠졌다. 이후 몰려든 성주혁 일행이 함정에 빠진 성기사를 처리했다.
정면으로 싸우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전투도 기습하면 손실 없이 적을 해치우는 것도 가능했다. 성기사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을 쫓는다는 생각에 방심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냈기에 전투에 관한 학습이 소홀했던 것도 문제였다.
영주 휘하의 기사들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다녔지만 성기사들은 일반인들과 함께 전쟁을 치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야밤에 습격당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완전히 경험 부족이라고 봐야 했다.
"빌어먹을 놈들. 그런데 퀘스트 창 봤어?"
"봤다."
* 적을 처단하라! 2 (무한 반복)
파우론의 성기사를 처단하라!
보상: 1명 처단 시 스탯 포인트 1, 포인트 동전 1개
실패: 없음.
퀘스트창은 성기사를 죽인 이들에게만 떴다.
"성기사를 죽이면 스탯 포인트를 얻는다니."
"그럼 죽여야지. 씨가 마를 때까지."
성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잠도 자지 않고 행군한 끝에 죽은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동료의 시체 곁에는 기어가 떨어져 있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빠르게 오러 연공법을 익혔다. 재능이 뛰어났던 만큼 학습 속도도 빨랐다.
'정신력이 마나와 연관이 있었나.'
신운성은 자신의 정신력 능력치를 보고 놀랐다. 정신력이 75까지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놀라서 서은하에게 물었더니 서은하는 53까지 올랐다고 했다.
마나를 느끼는 능력에 정신력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신운성은 나중에 정신력을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공을 마쳤다.
연공을 마친 이후에는 서은하와 함께 무기술을 수련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왜 꼭 메이스를 쓰겠다는 거지? 오러를 쓰게 되면 검이 더 편한데."
"검은 뽑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요."
"대신 메이스는 짧잖아. 정면 대결에서 불리해."
"그래서 방패를 들죠."
신운성은 방패와 메이스를 고집했다.
"방패는 오러에 잘린다."
"방패에 오러를 입힐 수도 있다면서요?"
"그래. 하지만 비효율적이야."
사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신운성의 고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운성의 전투력은 준수하다고 봐야했다. 일반인과 싸운다면 방패와 메이스를 든 신운성을 이길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검을 든 신운성은 형편없었다. 검을 처음 잡아 본 어린 아이 같았다.
방패와 메이스는 따로 익히는 방법을 배우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방패를 든 팔을 들면 공격을 막거나 흘리고 메이스는 휘두르면 된다. 방패를 사용하는 것에도 기술이 있지만 검만큼 복잡하거나 하진 않다.
반면 검만 들고 싸우게 되면 완전히 사정이 변한다.
검을 들게 되면 상대의 공격과 움직임에 맞춰 움직여줘야 한다. 상대 검을 막으며 반격하는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전투에서 불리해진다.
사용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금방 익히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검의 경우에는 한 번 공격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 쓰는 연계 동작까지 익혀야 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했다.
신운성이 괜히 방패와 메이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러만 줄기줄기 뿌린다고 꼭 이기는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계속 전투를 거듭하며 겨우 감을 잡게 된 방패와 메이스였다. 익숙한 무기를 놔두고 다른 무기로 전환하려니 쉽지 않았다. 자꾸 방패를 쓰던 습관이 튀어나왔다.
"정말 검술에는 소질이 없군."
다시 한 번 검을 가르치기 위해 간단하게 대련하던 사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러 마스터에 이를 존재가 검술에는 소질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럼 방패를 써도 됩니까?"
신운성은 방패를 쥐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방패가 미약하게 빛났다.
"방패는 면적이 넓어서 마나 소모가 빠르다. 검에 비하면 비효율적이야."
기사들이 방패를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성기사들도 방패까지 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검을 차고 다닌다.
"그럼 마나를 더 많이 모으면 되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패술과 함께 검술도 익혀. 어차피 방패하고 메이스 사용하는 건 이미 익숙해졌으니 시간이 많이 남지 않나."
"알겠습니다."
이후 신운성은 하루의 대부분을 수련에 할애했다. 수련을 위한 교관은 매번 바뀌었다. 사드하가 오러 연공법에 대해 알려주었고 카딘은 단검술을 가르쳐주었다. 라말은 답답해하면서도 유드족의 시미터를 이용한 검술을 기초부터 가르쳐주었고 다른 전사들은 맨손 격투 상대를 해주었다.
수련을 하는 신운성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남들은 일주일 걸릴 성장을 신운성은 하루 만에 했다. 옆에서 봐도 눈에 보이는 눈부신 성장에 유드족 전사들의 눈은 더욱 강렬해졌다.
'이대로 가면 우리 부족에도 오러 마스터가 나온다.'
전사들의 바람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신운성은 점점 더 강한 전사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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