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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51화 (51/109)

< -- 51 회: 인연의 고리 -- >

둘째 부인을 받아들이겠다는 대답을 들은 사드하는 웃으며 카딘에게 말했다.

"네 여동생 누구 좋아하는 사람 있냐?"

"물어보겠습니다."

"빨리 물어봐."

사드하의 질문에 카딘은 반문하지 않고 자신의 여동생을 찾았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냐?"

"없는데 왜?"

"그럼 결혼해라."

"뭐?"

"그렇게 알고 있어."

카딘의 여동생은 갑자기 결혼하라는 말에 얼떨떨해 했다. 그리고 막 뭐라고 하려던 찰나 불 같이 화를 내며 반대하고 나선 것은 카딘의 아버지였다.

"누구 맘대로 내 딸을 결혼시켜?"

"사드하님이 물어보라고 했어요. 하크란 녀석하고 결혼시킬 사람 찾는 중입니다."

"뭐? 사드하님이?"

기세 좋게 으르렁거리던 카딘의 아버지는 움찔 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드하는 별명과는 달리 부족 사람들 전부 잘 아는 뛰어난 전사였다.

"페르나. 어쩔 수 없구나."

"아버지......."

갑작스런 말에 페르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싫은데.'

페르나는 결혼하기가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부족의 남자들이 페르나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키가 무척 큰 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 벌어진 일이 문제였다.

어린 시절, 페르나는 컸다. 키가 큰만큼 힘도 강했다. 얼마나 강했는지 부족 꼬맹이들은 아무도 페르나를 이기지 못했다. 여기까지였다면 간혹

'나중에 커서 꼭 내가 뭉개야지!'

하고 생각하는 놈들이 나올 법 하다. 하지만 페르나는 손속이 잔혹하기까지 했다.

부족 꼬맹이들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패버렸다. 이때 각인된 공포가 페르나를 기피하게 된 현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나이 든 이들 중에서도 페르나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페르나의 어린 시절을 잘 아니 가정에 불러들이면 삶이 고단해질 것 같아서였다.

페르나 또한 부족 사람들하고 결혼하긴 싫었다. 모두 다 약해빠졌다면서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반발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여기에 혼자 사는 것을 불쌍히 여긴 카딘의 아버지는 페르나를 더욱 애지중지했다.

이런 저런 이유가 합쳐지니 페르나는 홀로 늙게 생겼다.

혼기는 이미 지나갔고 아이를 이미 여럿 낳았어야 할 나이에도 페르나는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둘째 부인이라뇨. 원래 부족 사람도 아닌데."

"페르나."

반박하는 페르나의 말을 자른 것은 카딘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담담한 음성이었으나 페르나는 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카딘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낀 탓이었다.

"진짜 싫으냐?"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실력은 확실한 전사다. 너도 실망하지 않을 거다."

결국 페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서부터 페르나를 귀여워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카딘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부족 꼬맹이를 패고 다니던 페르나라고 하더라고 카딘을 거스르는 것은 어려웠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간다."

결혼식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사드하의 주도하에 간소하게 식이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예물 같은 것들도 그다지 없었다. 그냥 몸만 움직여 살던 곳을 바꾸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전사들과 카딘의 가족들이 모여 고기를 나눠 먹는 정도로 연회는 끝났다.

연회가 끝나자 신운성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야 했다.

'이것 참.'

신부는 그래도 신부옷을 입고 있었다. 화려한 옷감을 몸에 두른 페르나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신운성의 신경은 문 밖으로 향해 있었다.

일을 치르는 동안 서은하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괴로울 텐데.'

서은하의 마음을 알지만 거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 좀 봐요."

자신이 아닌 문 밖으로 신경이 쏠린 것을 본 페르나는 약간 심술이 났다.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문제가 아닌데."

신운성의 입장에선 누가 둘째 부인이 되든 상관없는 문제였다. 오러 연공법을 배우기만 하면 되니까.

"나도 알아요. 사정 들어서.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첫날밤이에요."

페르나는 성질을 최대한 죽이고 말했다. 신혼 첫 날 신랑과 싸워서 쫓겨났다는 말까지 나도는 것은 싫어서였다.

"그래. 첫날밤이지. 자자."

신운성은 담담하게 페르나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이윽고 알몸이 된 두 사람은 잠자리에서 한 몸이 되었다.

애정이 없는 씁쓸한 기계적인 관계가 시작되자 페르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를 본 신운성은 문득 페르나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그래, 네가 뭔 죄냐.'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키스했다.

스쳐지나가는 연민이 담긴 부드러운 키스에 페르나는 깜짝 놀랐다. 조금 거칠게 느껴졌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페르나는 서러움을 느끼며 신운성을 꼭 끌어안았다.

문 밖의 서은하도, 안기는 페르나도 모두 서러운 밤이었다.

페르나와의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 사드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진정한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

"얼른 오러 연공법이나 가르쳐줘요."

"그래, 라말! 일단 기초를 알려주라고."

오러 연공법의 기초는 사실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하다고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러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나'라고 명명한 기운을 몸 안에 축적해야 했다. 성기사나 사제들이 얻는 신성력은 신에 의해 주어지는 힘. 하지만 그 힘도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힘이다.

오러 연공법을 만들어낸 이는 바로 여기에서 계속 깊이 파고들었다.

'세상은 신이 만들었다면 결국 신의 힘도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나 있는 힘. 그렇다면 자신들의 안에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호흡을 통해, 혹은 식사를 통해 세상의 힘이 몸 안에 들어오고 사용하면서 빠져나간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러 연공법의 창시자는 세상에 가득한 힘의 정체를 '신성력'이 아닌 '마나'라고 명명했다.

오러 연공법은 바로 이 마나를 몸에 받아들이는 방법을 의미했다.

하지만 오러 연공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선행 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재능을 확인하는 것.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자질이 없는 이들은 오러 연공법을 익힐 수 없다. 이는 팔이 없는 사람이 검을 휘두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검을 입에 물고 휘두른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혹은 몸통에 묶고 온 몸을 비튼다면 휘두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비효율적이다.

때문에 모든 오러 연공법의 기초는 바로 이 마나를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특이한 것은 오러 연공법 창시자 이후 마나를 느끼는 수많은 방법들이 파생했으며 이는 귀중한 비전으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걸 마셔봐."

"이건 뭡니까?"

"마나를 더 쉽게 느끼게 해주는 약이지."

"수상한 약은 마시고 싶지 않은데요."

의심스러워하며 신운성이 병을 도로 내밀자 라말이 웃으며 내용물을 설명해주었다.

"몸에 해로운 것은 없어. 그리고 이걸 마시지 않으면 기초만 몇 년 동안 익혀야 할지도 몰라."

결국 신운성은 약을 마셨다. 그 순간, 현기증이 일어났다.

"으음......."

몸의 균형이 흔들리며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감각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빨리 감각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봐. 약효가 있는 걸 보니 재능은 있나보네."

라말은 한 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현기증을 느낀 신운성은 죽을 맛있었다.

'돈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지러워 바닥에 누워있는데도 세상이 계속 도는 느낌에 정신이 없었다. 허리를 중심으로 몸이 이리저리 마구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어디에 써먹는지도 몰랐던 정신력이 마구 상승한다는 메시지에 신운성은 이를 더욱 세게 악물었다.

'느끼자. 여기서 더 느껴야 해.'

신운성은 저항을 포기하고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현기증이 더욱 심해짐과 동시에 정신력이 올라가는 메시지가 더욱 빠르게 많이 울렸다.

'시끄러워.'

신운성은 계속 속이 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저항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신운성을 바라보던 라말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 봤나?'

무엇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점점 눈이 커졌다.

"어........?"

신운성의 피부색이 점점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라말은 큰 소리로 사드하를 불렀다. 다른 전사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며 조언을 하고 있던 사드하는 자신을 찾는 소리에 투덜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러나 라말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모여! 주변을 지켜라!"

사드하의 눈은 환희에 물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신운성의 몸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라말이 준 약은 부족 전사들의 비약이었다. 그리고 비약에는 얽혀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약을 먹고 몸이 빛나는 사람은 오러 마스터에 오를 재능을 가진 자다.'

몸이 빛나지 않았던 이들 중에도 오러 마스터에 오른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몸이 빛났던 이들은 모두 빠른 시간 안에 오러 마스터에 올랐고 부족의 부흥을 이끌었었다.

전사들은 모두 주변을 지켰다. 신운성의 몸이 빛나는 것을 가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중간에 방해 받아 영향을 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신운성의 몸은 계속해서 빛났다.

황금빛은 시간을 더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결국 신운성은 황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강렬한 빛이라니. 얼마나 강한 오러 마스터가 탄생하는 걸까?'

사드하는 감격에 빠졌다.

전쟁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강력한 우군이 탄생하니 정말 공교롭다고 할 수 있었다.

'잘 가르쳐야겠어.'

사드하는 부족이 신운성을 얻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운은 끝나지 않았다. 신운성 다음에 비약을 먹은 서은하마저 몸에서 강한 빛을 발했다. 신운성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은색으로 빛났다.

사드하는 웃다가 자꾸 입이 찢어질 것 같아서 고생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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