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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46화 (46/109)

< -- 46 회: 인연의 고리 -- >

"이걸 보내야 해 말아야 해?"

성전이 선언 되었다는 사실을 영지 안에 있는 신전 소속의 사제에게 전해들은 한 영주는 고민에 빠졌다.

영주들에게 있어 신전은 난감한 존재였다.

무시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끌어들이자니 꺼림칙한 그런 존재.

과거 왕국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세계를 호령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왕들이 스스로를 높여 하늘이라 칭하며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파우론의 성황은 분노했다. 인간의 교만함을 심판한다는 성황의 선언에 왕국들이 무너져 내렸다.

성황이 모든 왕국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 조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성기사들이 뛰어나긴 하지만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모든 기사들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사력만 따진다면 왕국들이 더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왕국의 백성들은 파우론의 신자였다. 기사들 중에서도 독실한 신자들이 존재했다.

성황과의 전쟁은 그야말로 밑 빠진 통에 물 붓기였다.

성황이 있는 대신전을 점령했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신도들이 있는 곳이 곧 신전이었다.

모든 신도들을 다 때려잡기 전에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기나긴 전쟁에 왕국의 재정은 파탄이 났다. 그리고 영주들은 독립을 선언했다. 왕이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혼란의 시대가 열렸다.

성황은 신전이 정치에 참견해선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 하며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교만했던 왕들만 처단한 뒤 물러났다.

이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차라리 성황이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면 질서가 유지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설 명분이 있던 존재가 권력을 놓아버리니 결국 영주들은 서로 치고 받는 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영주들 간의 다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잠시 쉬거나 혹은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금방 배신하고 서로 원수가 되는 일도 잦았다.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형제를 배신하는 경우도 흔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성전을 위해 군사를 보내라는 전언은 반갑지가 않았다.

"만약 내가 보냈는데 딴 놈이 쳐들어오면?"

망하는 거다.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고."

안 보낸다면 성전에 참여하지 않은 영주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는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영주는 고민에 빠졌다.

성기사 지노스는 죽음의 숲을 빠져나간 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인원이 움직였다고 했지.'

많은 인원이 움직인 방향으로는 이미 다른 성기사들이 추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노스는 홀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흔적을 보면 여기가 숲의 남쪽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역방향으로 계속 흔적을 찾으며 이동하던 지노스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신운성과 살인자들이 마주쳤던 자리에서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이었어. 문제가 생겼어. 그리고 여기서 북쪽으로 다시 움직였다. 그렇다면.......'

지노스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바로 티몬이었다.

티몬은 얼마 전 영지전이 벌어졌었다. 영주 어닐이 죽었다. 신부를 납치했던 자가 죽었기에 지노스는 꼴좋다는 생각을 했지만 개인적인 감정과 조사는 별개였다.

티몬이 망하긴 했지만 티몬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 중에는 살아남은 사람들도 많았다.

지노스는 병사들에게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티몬의 영주가 죽던 날 성안을 휘저은 것이 갈색 피부를 가진 이들이란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역시 이놈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증언을 확보한 지노스는 바로 티몬의 새로운 영주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바로 수색에 들어갔다.

흔적은 계속 드러났다.

배를 태워준 사공이 갈색 피부를 가진 남녀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여자가 아주 예뻤는데 배를 탔던 사람들이 뒤를 쫓아갔었다는 말까지 들었다.

'마녀인가? 남자를 현혹시키다니.'

지노스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추적은 계속 이어졌다. 혼자 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렸을 수도 있지만 성기사가 신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어떤 이는 생업을 팽개치고 따라 나서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지노스는 데런을 만났다.

"아! 봤어요. 도둑놈들입니다. 우리 집 닭들을 잡아먹었어요. 너무 불쌍해서 제가 인정 베풀었는데 돈을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찾는 겁니까?"

"그들은 죽음의 숲에서 나온 악마들입니다."

"허억!"

신운성과 서은하를 욕하던 데런은 덜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파우론님이시여, 제가 어리석어 그들과 함께 하였으니 부디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데런이 기도를 올리자 지노스는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데런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함께 지낸 시간이 꽤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이름이 신운성과 서은하라고요?"

"그렇습니다. 부부라고 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이 망할 것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덕분에 저는 형님에게 혼났죠."

"알겠습니다. 혹시 어디로 간다거나 하는 말은 들었습니까?"

"전혀요. 비밀이 꽤 많았거든요. 하지만 아마도 남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티몬에서 왔었다고 했었으니까 다시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겠죠."

"감사합니다."

얘기를 들은 지노스는 다시 추적에 나서려 했다. 그러나 데런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조아렸다.

"성기사님. 부디 저도 악마들의 추적에 참가시켜주십시오. 제 죄를 사할 기회를 주세요!"

지노스는 잠시 데런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보다는 그들에 대해 잘 알 테니 빨리 알아보실 수 있겠죠.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

데런은 신이 나서 무기를 챙기고 브리먼의 아내에게 외쳤다.

"형님이 나 찾으면 성기사님 따라 갔다고 해요!"

"미쳤어? 가긴 어딜 가!"

"언제까지 신세 질 생각 없으니 가보겠수! 잘 계셔!"

데런이 지노스를 따라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성기사와 함께 다니면 숙식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성기사와 함께 악마를 쫓는 자들이라고 하면 존경받기도 한다. 공을 세우면 명예기사직이 주어지기도 한다. 권력은 없지만 파우론의 신전에 가면 먹여주고 재워준다.

'어디 두고 보자. 서은하.'

더구나 데런은 아직도 서은하를 잊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르노의 손녀 히넬을 노리고 있었으나 서은하를 만난 뒤에는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음흉한 마음을 품은 데런은 지노스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데런이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브리먼은 코웃음을 쳤다.

"병신. 그래도 동생이라 불쌍해서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끝까지 병신 짓이네. 당신도 더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너! 가서 당장 히넬한테 결혼하자고 해."

"네? 제가요?"

"그래. 데런 녀석이 떠났으니 히넬하고는 네가 결혼해라. 아르노의 기술을 전수 받은 여자니까 잘만하면 부자 될 거야."

"네, 아버지."

평소 데런이 노렸던 히넬이란 아가씨는 결국 브리먼의 큰 아들과 결혼했다.

아비트.

신운성은 매일 짐꾼으로 일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친분도 조금 생겼다.

"하크. 오늘도 잘 부탁한다."

"걱정 마시죠."

남부에서 온 마르시드라는 상인이었다. 마르시드는 신운성과 마찬가지로 준주민이었다. 5년째 아비트에서 상인으로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처음에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도였지만 신운성에게 호기심을 느낀 마르시드가 말을 걸면서 친해졌다. 피부색이 같았기 때문에 오는 일종의 동질감이 마르시드에게 호감으로 작용한 것도 있었다.

이후 신운성은 부두가 아닌 마르시드와 계약을 맺어 일하게 되었다. 계속 짐꾼으로 일하고 있지만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것은 물론 친분이 있는 사람까지 만들었으니 신운성은 이득이라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느꼈다. 상인과 친해졌으니 적당히 친분을 유지하며 더 좋은 자리를 잡고 가끔 만나는 기사들과 친분을 어떻게든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상인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 정보를 얻기에는 가장 가까이 해야 할 부류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가슴 속에 다시 불안이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미약하던 것이 어느 순간 화산처럼 폭발했다.

"허억!"

일을 하던 신운성은 갑작스러운 심장의 움직임에 통증까지 느꼈다. 심장마비가 왔나 싶었다. 하지만 심장의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 참을 수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뭐냐?'

다시 일어선 신운성은 갈등했다. 지금은 일하던 도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불안에 태평하게 일을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뭔가 또 일어나나?'

신운성은 짐을 내려놓고 움직였다. 우선 서은하를 찾아야만 했다.

서은하는 항상 같은 곳에서 기다렸다. 때문에 어디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빨리 여길 떠나야 할 것 같아."

"떠나?"

"응. 떠나야겠어."

힘들게 겨우 자리를 잡았나 싶더니 다시 떠나게 생겼다. 안정을 추구하는 여자라면 떠나지 말자며 말렸겠지만 서은하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빨리 가자. 짐은 다 챙겨뒀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두 사람이었다. 일하던 도중이었지만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가?"

"마르시드한테 부탁해보려고. 남쪽으로 가는 배에 타게 해달라고 하게."

신운성은 바로 마르시드에게 찾아갔다.

"어? 일하다 말고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남쪽으로 가는 배에 태워주세요."

"뭐야. 일하다 말고."

"제가 사실 굉장히 불안해져서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일단 제 얘길 들어보세요. 제가 웬만하면 이러지 않는데 말이죠. 제가 전에 티몬에 있을 때 지금 같은 불안을 느낀 적 있어요. 그리고 티몬이 망했죠. 그 전에는 집에 강도가 들 뻔 했는데 꿈에 강도랑 싸우는 꿈을 꾸고 일어났어요. 그래서 겨우 최악은 면했어요. 이번에도 뭔가 큰 일이 아비트에 벌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떠나려고 합니다."

마르시드는 갑자기 장황한 소릴 늘어놓는 신운성의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의심했다. 하지만 상인으로 오래 생활해본 경험에 의하면 신운성은 거짓을 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거 진짜야? 그럼 큰일인데.'

상인은 불안에 민감하다. 나쁜 일에 휘말려 재산을 몽땅 날리는 일은 흔하게 일어났다.

'아비트에 투자한 돈이 아깝지만.......'

벌어들인 돈은 투자한 돈 그 이상이었다. 여기서 포기하고 떠난다면 상당한 손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시드는 결국 신운성을 믿기로 했다.

'저 놈 말을 믿어보는 게 좋겠지. 어차피 아무 것도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시작하면 그만이니까.'

마르시드는 돈보다 안전을 선택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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