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5 회: 인연의 고리 -- >
죽음의 숲 동북쪽. 루미노 영지의 한 마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크하하하하!"
진한 갈색의 피부를 가진 남자는 애원하는 아이의 목을 잘라냈다.
"아아아아아악!"
아이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본 아이의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목이 잘린 아이를 안아주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또 다른 자가 뒤에서 붙잡고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마을에 재앙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둠과 함께 나타난 악마들은 사람을 죽이고 마음껏 유린했다.
"하하하하하하!"
잘린 아이의 목을 들고 즐겁게 웃던 악마는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공처럼 허공으로 날아간 머리가 땅에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본 아이의 엄마는 계속 아이를 향해 움직이려 했지만 갈 수 없었다.
"나쁜 놈들! 저주를 받은 놈들!"
숨어 있던 노인이 참다못해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왔다. 노인은 이를 악물고 악마 같은 놈들을 때려잡으려 했다. 한 마을 사람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모습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더 살아봐야 얼마나 산다고!'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린 노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죽어라 악마!"
하지만 악마로 불리는 자들은 히죽 웃으며 노인을 단숨에 때려잡았다.
작은 마을이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단 2명의 남자가 모두 해치웠다.
"얼마나 올랐냐?"
"하나."
"거 진짜 안 오르네. 어쨌거나 다음은 어디로 갈까?"
"아무데나 가면 되지 뭘. 자유 몰라? 자유. 피곤하게 굴지 말자고."
"새끼야. 성주혁한테 잡혀서 죽은 놈 생각 안 나? 그 자식들 우리 쫓고 있잖아."
"아, 정말. 얼른 능력치 올려서 다 때려잡던가 해야지."
마을을 유린한 악마들은 바로 악마의 숲에서 성주혁과 함께 빠져나왔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기어에 욕심을 내고 살인을 저질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얼른 반복 퀘스트나 하러 가자고."
"알았다. 에이."
살인자들은 쫓기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푹 빠졌다. 만나는 이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고작 3명이었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살인자들을 상대할 순 없었다.
그렇게 1000명의 인간을 살해했을 때 퀘스트 창이 떴다.
말을 배우라는 퀘스트는 아직 완료하지 못했지만 새로 뜬 퀘스트는 쉬웠다.
* 적을 처단하라! (무한 반복)
파우론을 믿는 자들을 처단하라!
보상: 10명 처단 시 스탯 포인트 1, 포인트 동전 1개
실패: 없음
살인을 하며 강해질 수 있다니 살인자들이 딱 좋아하는 퀘스트였다. 복잡하게 무엇인가 배우고 하는 것은 직성에 맞지 않았다. 보다 자유롭게 마음껏 힘을 누리고 싶은 살인자들은 이후 눈에 불을 켜고 사냥감을 찾아 움직였다.
하지만 살인자들은 추격하던 성주혁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고 결국 1명이 죽는 결과로 이어졌다. 성주혁 일행에게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아무도 죽이진 못했다.
"얼른 강해져야지. 그 놈들 사냥하고 기어 합성하면 어떻게 될 지 생각해봤냐?"
"그땐 아무도 우리 못 막지."
"크크크, 그래 그거야."
그때였다.
멀리서 화살이 날아와 한 명의 가슴에 박혔다.
"컥!"
놀란 다른 남자는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 때 성주혁 일행이 나타나 포위했다.
"더는 못 간다. 이 새끼들아."
"에잇!"
홀로 남게 된 살인자는 동료의 가슴에 단검을 박았다. 그러자 기어가 나타났다.
"막아!"
살인자가 기어를 주워들어 합성을 하기도 전에 수많은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결국 살인자들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다 끝났어."
조형민이 기어를 들어 성주혁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
기어는 무리를 이끌고 있던 성주혁과 조형민이 나눠 가졌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말을 완벽하게 배워야지.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해보고."
성주혁 일행은 복수를 마쳤다. 성주혁은 처참하게 유린당한 마을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복수를 위해 추적하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죽음이 가득한 마을에서 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는 성주혁을 따르는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주혁 일행은 천천히 마을에서 멀어졌다.
모두가 떠나고 침묵만이 내려앉은 마을의 시간은 그래도 계속 흘렀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마을 밖에서 한 남자가 들어서며 눈물을 흘렸다.
"아아......."
남자는 범해지자 목이 부러져 죽은 아내를 보곤 눈물을 흘렸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생각나 얼른 아이를 찾아 눈을 돌렸다.
목이 잘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쁜 예감에 남자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디를 봐도 자신의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어디 도망쳐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더 멀리 뒤졌다.
"아아, 로디......."
잘린 머리를 품에 안은 남자는 절규했다.
파울론의 신전 에르나스.
에르나스란 의미는 간단하다. 에르나스란 사람이 파울론을 위해 신전을 지었기에 에르나스란 이름이 붙었다. 신전의 경우에는 지명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신전을 짓는데 공헌한 이들의 이름을 붙였으며 오히려 이들이 이름이 곧 지명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에르나스님은 악의 무리들을 주살하며 이렇게 외치셨지.
'악의 추종자들에게 영원한 안식 있으라!'
멋들어진 옷을 입은 미남자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검을 치켜든 자세를 취했다. 웃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에는 온화함이 흘러넘쳤다. 아이들은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자가 해주는 에르나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성기사 지노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이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데."
"급한 일입니다."
"얘들아.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아아!"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지노스라 불린 미남자는 자신을 부른 사제를 따라 움직였다.
"무슨 일입니까?"
"죽음의 숲이 수상합니다."
"네?"
"얼마 전 올라온 보고입니다. 루미노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한 일이 있습니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을 마을 주민이 보았다고 합니다."
사제의 말에 지노스는 의문을 느꼈다.
"그냥 도적 무리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남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처음 보는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사제는 계속 걸으면서 얘기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인근에서 계속 일어나던 학살이 일어난 곳을 조사하다가 중요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학살당한 방향을 쭉 연결하면 죽음의 숲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으음......."
죽음의 숲이 언급되자 지노스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대사제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네, 지금 각 교단에 명령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정체불명의 무리를 쫓는 것과 동시에 죽음의 숲을 조사해야 합니다."
"서둘러야겠군요. 정말 악마들이 나타났다면 큰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노스는 사제를 남겨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숲 앞.
한 무리의 성기사들이 사제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음침한 곳입니다. 저주 받은 땅답습니다."
"전부 태워버리고 정화해야 하건만."
죽음의 숲을 태워버리려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의 숲은 타지 않았다. 강력한 저주가 깃든 나무들은 파우론의 신성력을 품은 사제들이 정화하려 해도 정화되지 않았다.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냥 내버려둘 뿐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싸우는 것은 가능했다.
"들어갑시다. 악마들이 다시 나타났다면 안식을 주어야만 합니다."
성기사들은 안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들을 발견했다.
"으음, 악마들이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군요. 망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성기사들은 좀비들의 목을 쳐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비들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에게 덤벼들었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에게는 좀비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너무 많습니다. 우리만으로는 망자들에게 안식을 내리기 힘듭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다시 돌아 나왔다.
이후 죽음의 숲에서 망자들에게 안식을 내려주기 위해 사방의 신전에서 성기사와 사제들을 파견했다.
한편, 대신전에서는 성황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보고 들었습니다. 악마들이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진한 갈색 피부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생존자들의 얘기에 의하면 처음에는 이상한 말을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며 우리들의 말을 금방 배워 사용했다고 합니다."
"악마들이 분명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대사제들이 모두 악마들에게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건 확실히 해야죠. 하지만 갈색 피부란 것만으로 처단하기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한 대사제가 우려를 표명했다. 처단에 이의는 없으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걱정한 발언이었다.
"무고한 자들이 있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모두 파우론님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한 것입니다. 무고한 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악의 씨를 뿌리 뽑을 수 있다면 우린 주저해선 안 됩니다."
"으음......."
과격한 발언에 우려를 표명한 대사제는 신음을 흘렸다. 분위기는 강경책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던 성황이 입을 열자 대사제들은 모두 침묵했다. 성황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성황의 말에 대사제들은 모두 일어나 외쳤다.
"아버지 파우론의 빛을 세계로!"
성황이 머무는 대신전에서 성전이 선언 되었다. 성전 선언은 빠르게 각 신전을 퍼졌다. 그리고 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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