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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42화 (42/109)

< -- 42 회: 퀘스트 -- >

데런은 자신의 형에게 엄청 깨졌다. 자신이 없는 동안 낯선 사람을 들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지 말아요. 여기 돈도 받았잖아요. 우리 이참에 여관이나 해보면 어때요?"

"퍽이나! 지나가던 강도들에게 털릴 생각 아니면 꿈도 꾸지 마라."

"에이. 나쁜 사람들 아니라고 해도 그러네."

"사람은 모르는 거야! 어딜 함부로 사람을 믿어!"

"아유.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어쨌든 내일은 쫓아내. 더는 못 받아준다."

데런은 알겠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그 여자 정말 예쁘던데. 어휴. 젠장. 미치겠네.'

데런은 서은하를 본 뒤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었다. 자꾸 서은하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로 피가 몰리고 흥분되니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없었다.

이색적인 얼굴이었지만 고운 선은 귀족 같았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건강해 보이는 피부는 매혹적이었다.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꾹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곁에 근육질의 남편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슬쩍 살펴본 결과 두 부부는 절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확 그냥 저질러버려?'

나쁜 마음이 꾸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유혹은 있었지만 그저 꾹 눌러 참았을 뿐이었다. 혼자였기에 신운성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젠 형이 돌아왔다.

형과 아들들은 덩치가 컸다. 큰 만큼 싸움도 잘했다. 브리먼이 돌아오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젠 자신이 이기지 못해도 브리먼과 그 아들들이 있으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적당히 봐서 누명을 뒤집어씌우면 되는 거야. 그럼 지들이 어쩔 거야. 이방인 주제에.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내가 차지하면 되는 거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 외지 사람과 다툼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지인을 탓하고 같은 동네 사람들을 감싼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지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자기네 동네 사람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어도 외지인을 나쁘다고 말하기도 한다.

외지인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데런이 신운성을 죽인다고 해도 적당히 변명을 하면 모두 믿어줄 터였다.

'좋아. 오늘 밤에 해치우는 거야!'

데런은 창고에 갔다가 두 사람이 아직 안 온 것을 보고 아르노의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숨어 기습할 생각이었다. 브리먼에게 말하고 했다가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타박을 받을까봐 일부터 저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런은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이미 떠난 뒤였다.

신운성은 아르노의 집을 나섰다. 망토를 걸치고 후드를 뒤집어쓰니 그림자 때문에 얼굴이 전부 보이지는 않았다.

"앞은 잘 보여?"

"응."

시야 확보에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신운성은 바로 떠나기로 했다.

인사?

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 다시 볼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브리먼의 집을 멀리 돌아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행여나 근처를 지나다가 마주칠까 싶어서였다.

3일을 그렇게 걸었다. 그 동안 사람들을 길에서 마주치기도 했었지만 습격하기 위해 뒤따르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두려워하며 멀리하거나 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과 마주칠 때 은근히 무기에 손을 얹고 움직이니 다들 경계하며 피하기 바빴다.

얼굴을 가리니 여러모로 편했다.

신뢰를 얻기는 어렵지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는 쉬웠다.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수상한 자들이니 가까이 엮이지 않으려는 행동이 확연히 보였다.

다소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강을 따라 움직이는 배에 올라탔다.

루스강의 지류인 엘텐강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약간 커다란 배는 중간에 통행세를 내기 위해 멈추기는 했지만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아무에게도 참견하지 않고 방해 받지도 않았다. 다소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배에 탄 이상 돈만 내면 참견하지도 않았다.

엘텐강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움직이다 보니 유리크스 산맥이란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맥의 끝자락을 지나쳤을 뿐이었다.

거대한 산이 멀리 보였다. 하얀 눈이 봉우리 근처에 쌓여있는 산이었다.

배는 유리크스 산맥을 지나 타넬호라는 곳에서 멈췄다. 엘텐강이 타넬호와 만나면서 끝나기 때문이었다.

타넬호는 바다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였다. 탁 트인 호수의 모습에 처음에는 바다와 만난 줄 알았지만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호수임을 깨달았다.

'무식하게 크네.'

바다 같은 호수 이야기는 지구에서도 들어본 적도 있고 사진을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상이 참 넓어.'

배를 타고 움직이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크기를 실감할수록 마음은 어두워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파우론의 신자가 있는 줄 알고 싸우란 걸까?'

퀘스트에 의하면 파우론은 '적'이었다.

적을 더 알라며 경전을 읽으라고 퀘스트를 줄 정도니 정말 때려잡는 걸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고개를 흔들며 배에서 내린 신운성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도시로 향하지 않고 외진 곳으로 향했다.

'문자를 알 만한 사람을 찾아서 먼저 배우자.'

배로 움직일 때는 사람과 접촉하지 않았다. 괜히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멀리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쫓기는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움직이다보니 멀리 오게 되었다.

타넬에 도착하자 쫓기던 기분은 많이 가셨다.

'아직도 불안하네.'

아주 미약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요즘 너무 걱정이 많은 건가?'

그러나 불안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신운성이었다. 가슴에 느껴지는 불안을 무시하지 않고 움직여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 죽음의 숲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은 어때?"

"좀 나아졌지만 여전하네."

"그래?"

서은하는 더욱 주변을 경계했다. 신운성이 불안하다고 하니 서은하의 신경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두 사람은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멀리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선 계속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이 많이 가신 상황이 되자 마냥 도망치듯 이동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일단 적당히 살펴보자.'

티몬 이후 도시는 접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 마주한 곳은 마을이었다. 성벽도 없었다.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또한 마을을 선택해 접근할 생각을 한 이유는 바로 데런과 아르노 때문이었다.

외진 곳에 사는 사람은 경계심이 강할 수밖에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히려 마을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기에 외지인에게 아주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문자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자경대로 보이는 청년 둘이 지키고 있었다. 길옆에 있는 바위위에 앉아 잡담을 하던 청년들은 두 사람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얼른 일어섰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요?"

"티몬에서 왔습니다."

"티몬? 거기 사는 사람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티몬에서 살기 힘들어져서 그러죠. 영지가 망하고 집도 빼앗겼고 일감도 없으니 어쩝니까? 떠나야지."

"수적은 아니었고?"

티몬의 악명은 자자했다. 강으로 티몬까지 이어져 있기에 종종 피해를 입은 이들이 떠들던 소식이 타넬까지 전해진 탓이다.

"수적이면 목이 잘렸겠죠."

신운성이 불쾌해하자 자경대의 청년은 입을 닫았다. 수상한 인물이라 앞을 막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살 생각인가?"

"그건 아니고 잠시 쉬었다 다시 움직이려고요. 그냥 아주 멀리 가고 싶네요."

"그래?"

자경대의 청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경고했다.

"쉬다 가는 건 안 되고. 먹을 거나 좀 구해서 떠나."

"알겠습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모습은 어딜 가나 비슷했다. 신운성이 움직이자 한 청년이 뒤를 따라다녔다. 얼른 일을 끝내고 떠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여기 빵과 물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건 우리 집에 있어."

"좀 팔아주시죠."

신운성은 동화를 주고 빵과 물을 약간 구했다. 그리곤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혹시 마을에 글을 아는 분이 있습니까?"

"글? 촌장님이 아는데 그건 왜?"

"글을 배워볼까 싶어서요. 이번에 길에서 사제님을 만나 경전을 받았는데 글을 모르니 읽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

청년은 별 의심도 하지 않고 촌장의 집으로 안내했다. 파우론의 신자들 중에는 경전을 읽기 위해 글을 배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우론의 신자들이 모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글을 배우고 싶다고?"

"네, 배우고 싶습니다."

"쉽지 않을 텐데. 나도 시간이 없고."

"얼마를 내면 됩니까?"

"하루에 은화 10개는 줘야지."

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평민보다 높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글을 그냥 가르쳐주지 않았다. 꽤 많은 돈을 요구했기에 돈이 없다면 배우기 어려웠다.

더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1000개나 되는 문자라니.'

굉장히 비효율적인 문자였다. 소리문자였다. 하지만 문자들이 전부 다 형태가 다르듯 소리도 달랐다. 어쩔 때는 두 문자를 붙여 써서 다른 소리를 내기도 했다. 굉장히 불규칙적이었다.

'이래서야.......'

보통사람이라면 한참 걸릴 일이었다. 기억력이 나쁘면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자주 쓰지 않다가는 잊어버리겠네.'

배우는 데 돈이 많이 들고 배우기도 어려웠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문자를 배우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신운성은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이해했다.

'그래도 나한테 통하는 얘기는 아니지.'

신운성은 촌장이 한 번 쭉 말해준 것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얻은 알약 덕분이었다. 잊어버릴까 싶었지만 문자를 보는 순간 아예 각인이라도 되듯 외워졌기에 걱정을 덜었다.

"아무래도 돈이 부족해서 계속 배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크흠.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생각나면 또 오라고."

촌장은 내심 아쉬워하며 신운성과 서은하를 내보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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