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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41화 (41/109)

< -- 41 회: 퀘스트 -- >

'겨우 됐다.'

신운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데런이 활을 겨누고 있었지만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활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방패가 있으니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신운성은 싸울 생각을 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것이 목적이었다. 덩치 큰 남자와 조금 덜 큰 남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뒤였다.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데런의 눈에 띄도록 슬쩍 움직였다.

낯선 이방인이기 때문에 경계심은 극도로 달해 있었다. 때문에 신운성은 필사적으로 진실과 거짓말을 섞었다. 일부러 저자세로 나갔다. 고압적인 자세로 나갔다면 상대의 반감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계획적인 것인지 아르노가 늦게 나타났다. 덕분에 극단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깜빡 했다고 하지만 계획적인 것 같은데.'

신운성은 노인 아르노에 대한 평가를 미뤘다. 겉보기에는 그저 고집스럽고 조심스러운 노인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철저한 계산속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냥 쉬게 해줄 수는 없어. 우리도 사정이 좀 안 좋아. 창고에서라도 쉬겠다면 쉬었다가."

신뢰가 쌓였다고 해도 집안에는 들이지 않는다. 창고에 들이는 것도 도난의 위험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물건을 도둑맞는 것이 목숨을 도둑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위험을 감수하기 싫을 땐 그냥 도와주길 거부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신운성도 바라던 바였다. 갑자기 집 안에서 재워준다고 했으면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았다. 서로 상대를 모르기는 피차일반이었다.

'계속 은하를 힐끔거리네.'

얼굴을 가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지만 지금 가릴 순 없었다. 얼굴을 가린 상태로 상대의 신뢰를 얻는 것은 어렵다.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심하고 경계부터 할 뿐이다.

"그런데 그냥은 안 되고."

처음에는 호탕하게 허락하는 듯 했으나 데런은 은근슬쩍 대가를 요구했다. 신운성은 주머니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 건넸다.

"음, 이걸론 좀 부족한데. 하나 더 없어?"

데런은 뺀질거리며 눈을 빛냈다. 하나 더 꺼내주며 신운성은 데런을 자세히 살폈다.

'조심해야겠어.'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최대한 감추려고 하지만 탐욕이 눈에 보였다.

"여기요."

신운성은 은화를 하나 더 꺼내주었다. 은화 두 개를 받고 만족한 표정을 지은 데런은 안을 향해 소리쳤다.

"형수님! 창고에 손님 좀 받을 게요!"

"그이 허락도 없이 뭔 소리야!"

"에이! 괜찮아요. 아르노씨가 나쁜 사람들 아니래요!"

"나중에 보자 너!"

마지막에 집 안에서 형수라는 여자가 나오더니 데런을 향해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럼 이쪽으로."

데런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허름한 창고였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좀 쉬고 있으라고."

그때 계속 따라다니던 아르노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내가 준 고기는 어떻게 했나?"

"숲에 잠시 놔뒀어요. 그걸 들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서요."

"그래? 얼른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짐승이 물고 가기 전에."

"네."

신운성이 움직이자 은하도 같이 일어났다. 그때 아르노가 다시 물었다.

"왜 쉬지 않고? 아프다며?"

날카로운 노인네. 신운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하고 떨어져 있는 걸 싫어해서요. 지그까지 험한 일이 좀 많아서요."

"그래? 거 참 안 됐네. 젊은 사람이."

아르노는 헛기침을 하며 데런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번에 맡긴 거 다 손질했으니까 가져가고 집에 혹시 가죽 있으면 넘겨."

"매번 감사합니다. 어르신."

데런과 아르노는 멀어져갔다. 그 사이 숲으로 잠깐 가서 인벤토리에서 고기와 경전을 꺼낸 신운성은 창고로 돌아왔다.

아르노가 돌아간 뒤에 데런이 창고로 다시 찾아왔다.

"어때? 지낼 만 해?"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먹을 건 어쩔 거야?"

"고기가 있으니 구워먹을 생각입니다."

"장작은 음....... 인심이다. 그냥 써."

"감사합니다."

신운성은 가까워지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던 사람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먼저 나서서 친해지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묻기 전에 얘기를 먼저 꺼낸다면 의중을 들킬 우려가 있으니 꾹 참았다.

"그런데 댁 같이 생긴 사람은 처음 보는데 어디서 왔어?"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오긴 했는데 길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그래? 어디 남쪽에서라도 왔나?"

"잘 모르겠습니다."

신운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답하는 것 자체가 난처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준비된 답이었기에 부자연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거 이상한데? 어쩌다 오게 됐는데?"

"친하게 지내던 상인이 있었습니다. 파우론님의 신자셨는데 그분을 따라 신전을 보고 싶었습니다. 파우론님에게 축복을 받아야 진정한 부부라고 해서요."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결혼하려 했다는 거네?"

"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신을 믿지 않고 위대한 영혼을 믿었으니까요."

"흠. 그거 신기하네. 위대한 영혼이라니."

"저도 그냥 얘기만 듣고 자랐습니다. 본 적은 없죠."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데런은 흥미를 느꼈는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그분을 따라 이동하는데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 분이 돌아가시고 저희는 쫓기게 되었죠."

"그리고?"

"그리고 모르겠습니다. 계속 쫓기고 싸우고 했습니다. 싸움을 못했다면 진즉에 아내를 빼앗기고 죽었겠죠."

"흠, 정말 안 됐네."

신운성의 거짓말이 먹혀들었다. 데런은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그냥 믿었다.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했다면 빈틈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신운성은 되도록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빼고 요점만 간단하게.

덕분에 거짓은 탄로 나지 않았다. 출신에 대한 것도 얼버무릴 수 있었다.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같았다면 그냥 티몬이나 케토 출신이라고 해도 믿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운성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생김새도 피부색도 달랐다.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진실을 섞어 거짓말을 했다.

실제로 죽음의 숲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상인의 이야기는 거짓말이지만 쫓기고 싸운 것은 사실이다. 서은하가 아내는 아니지만 현재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또한 파우론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경전을 읽어야만 했다.

"그런데 혹시 글을 읽을 줄 아는 분이 있습니까?"

"글? 그건 왜?"

"제가 이걸 읽고 싶어서요."

대화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신운성은 용건을 꺼냈다.

"경전을 읽고 싶은 건가?"

"네, 돌아가신 분이 항상 지니고 계시던 것이라 겨우 챙겼습니다."

"다른 것은 왜 놔두고? 상인이면 돈도 많았을 텐데."

"파우론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고향을 떠났는데 경전을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대단하네. 그나저나 난 글은 모르고 아마 이웃집 아르노씨라면 알지도 몰라. 오래 살았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나중에 찾아뵈어야겠네요."

"그래, 그럼 푹 쉬라고."

"감사합니다."

데런은 돌아갔다. 가끔 찾아와 말을 걸거나 했지만 딱히 이상한 짓을 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운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아르노가 준 고기는 대충 구워서 먹는 척하고 땅에 묻었다.

대신 상점에서 산 음식을 몰래 먹었다.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신운성과 서은하는 창고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가로 은화를 꼬박꼬박 내야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돈은 넘쳤다. 지금까지 챙긴 주머니에 꽤 많은 돈이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틀이 지나자 브리먼이 아들들과 함께 돌아왔다. 브리먼은 은빛 털을 가진 여우를 메고 당당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우리 수탉 먹은 여우 새끼 잡아왔다!"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창고에 있던 신운성과 서은하는 슬쩍 긴장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사냥을 갔던 남자들이 돌아왔다. 그만큼 위협이 커졌다는 의미였다. 데런이 받아주긴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데런도 마냥 호의를 가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노 만큼 계산적이었다. 더구나 가끔 서은하를 볼 때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슬슬 아르노에게 가보자.'

신운성은 서은하를 대동하고 아르노의 집으로 향했다. 브리먼과 그 자식들이 집으로 들어가다 안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보고 반응했다.

"누구냐?"

"형님. 제가 잠깐 받아준 사람들이에요. 사정 들어보니까 딱하더라고요."

"뭐?"

브리먼은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없는 동안 낯선 이를 집 근처에 받아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화 내지 마시고요. 그런데 그쪽 두 사람은 안 쉬고 왜?"

"잠깐 아르노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그래? 갔다 와 그럼."

브리먼은 화가 났지만 일단 참는 모습을 보였다. 신운성은 이를 보고 아르노에게 글을 배운 이후 바로 떠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신뢰받기는 어렵겠어.'

사람들이 좋았다면 함께 지내며 새로운 신분을 만들 기회로 삼았겠지만 무리였다. 낯선 이방인을 선뜻 받아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더구나 서은하의 미모가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했다.

'한 번에 안 된다고 실망할 건 없어.'

신운성은 자신을 달래며 아르노의 집으로 향했다.

"뭐하러 왔나?"

"아르노씨가 글을 알지도 모른다고 해서요. 경전을 읽고 싶은데 글을 몰라서요."

"그래? 하지만 어쩌지? 나도 모르는데."

"데런씨가 아르노씨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했는데요."

"아, 그 자식 말은 믿지 마. 반, 아니 열에 아홉은 허풍일 뿐이니까. 그리고 남은 하나도 진짜일 때가 있지만 대부분 소문이야."

역시 데런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건가요?"

"음, 이건 어때? 내가 내일 도시로 가는데 같이 가면 글을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주지."

"도시는 좀......."

신운성은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도시로 갔다가 아르노가 갑자기 경비병에게 넘겨버리려 한다면 쫓길 뿐이었다.

"왜?"

"도시에서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요."

"그래? 거 참."

아르노는 슬쩍 서은하를 보았다.

'이 인간들. 좀 이상한데.'

신운성은 기분이 몹시 안 좋아졌다. 갑자기 마구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떠나는 게 좋겠다.'

접촉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을 버렸다.

"그럼 얼굴 가릴 옷이나 좀 샀으면 합니다. 있죠?"

"물론. 대신 은화 좀 내야 해."

"여기 있습니다."

신운성은 은화 두 개를 주고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후드가 달린 낡은 망토를 두 벌 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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