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0 회: 퀘스트 -- >
뒤를 쫓던 남자들을 경험한 뒤 신운성과 서은하는 사람들을 피해 움직였다. 인간을 기피하는 동물과 같은 행동이었다. 계속 움직이던 두 사람은 외딴 곳에 있는 집을 발견했다. 언제나 그렇듯 집을 발견하면 일단 관찰했다.
사람이 몇 명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장은 어떤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루를 꼬박 관찰한 뒤 밤이 되면 두 사람은 조용히 집에 접근해 안을 살폈다. 대충 지어진 집에는 틈이 많았다.
'두 사람. 노인 하나 젊은 여자 하나.'
위협적인 요소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노인이나 여자라고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섣불리 사람을 믿었다가는 황천으로 갈 수 있었다.
"계십니까?"
신운성이 문을 두드리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뉘슈?"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잠깐 쉴 곳을 찾는데 도와주시죠."
"그냥 가던 길 가시구려.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다른 집이 나오니 거기 부탁해 보시오."
문도 열지 않고 하는 대꾸에도 신운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도와주시죠. 부탁입니다. 제 아내가 많이 아픕니다."
"아내?"
여자가 있다는 말에 노인이 문에 달린 작은 창을 열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어디 있소?"
"여기."
신운성이 앞으로 잡아끌자 서은하는 힘든 표정을 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커험, 알았소. 그런데 그 무장들은 뭐요?"
노인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무기를 든 낯선 이방인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빈손으로 다닐 수 없어서 구한 겁니다. 습격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허허."
노인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기를 든 자를 집안에 들일 수 없으니 그냥 가시오."
고민은 짧았다. 결국 노인이 받아주지 않자 신운성은 돌아서야만 했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인가?'
난감했다. 경전을 읽기 위해선 글을 배워야 했다. 정보를 습득하고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알아야만 했다. 그런데 세상은 이방인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럼 먹을 것이라도 좀 주시죠. 돈은 내겠습니다."
"흐음......."
노인은 조금 고민하더니 신운성을 창가로 불렀다.
"고기 한 덩이 있는데 얼마나 줄 거요?"
"은화 한 개면 됩니까?"
"그럼 두 덩이 주지."
창문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고기를 받은 신운성은 그대로 길을 떠났다.
"쉽지 않네."
"그러게."
고기는 인벤토리에 저장했다. 강운이 15나 되기 때문에 15 종류의 아이템을 보관하는 것이 가능했다.
짐이 없는 상태에서 움직인 두 사람은 노인이 가르쳐준 길을 계속 따라 움직였다. 노인이 말하던 집은 금방 나왔다.
사람이 많은 큰 집이었다. 밤이 되었지만 아직도 집안이 시끄러웠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다시 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새벽이 오자 브리먼은 아들들을 깨우기 위해 움직였다. 고기를 잔뜩 먹고 잠든 아들들의 거시기는 우뚝 솟은 상태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건강한 놈들이구먼."
아들들의 건강함을 확인한 브리먼은 크게 외쳤다.
"일어나 이놈들아! 언제까지 쳐 잘 거냐!"
우렁찬 브리먼의 외침에 눈을 뜬 것은 아들들만이 아니었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다른 가족들도 깨웠다.
"형님, 아침은 좀 조용히 맞이합시다."
"시끄러. 닭이 없으니 내가 대신 하는 거야."
"그럼 얼른 가서 수탉 한 마리 사오던가요."
"사오면 뭐해? 여우가 또 물어가 버릴 텐데."
"그럼 여우를 잡던가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여우 잡으러 갈 생각이다."
"아이고, 얼른 잡으세요. 제발."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일어난 가족들은 모두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곧 전쟁이 벌어졌다. 딱딱한 빵을 넣고 끓인 스프를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고기와 빵이 녹아든 걸쭉한 스프를 나무 스푼으로 긁어 먹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전투적으로 식사했다. 꽤나 시끄러운 식사가 끝나자 여자들이 식기를 정리했고 브리먼은 아들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아, 더 자고 싶다."
브리먼의 동생 데런은 투덜거리며 침대에 누으려했지만 어림 없었다.
"자긴 뭘 자. 어서 가서 일해."
"조금만 쉽시다. 저는 아침에 약해요."
"아침에 약한 게 아니라 술 마신 탓이겠지. 어쨌든 얼른 가서 일해! 안 그럼 밥 먹을 때 쫓아낼 거야!"
"쳇."
데런은 브리먼과 나이차이가 꽤 나는 형제였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브리먼과 마찬가지로 사냥꾼의 아들로 태어난 데런은 할 줄 아는 게 사냥뿐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다리를 다친 뒤로는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 때문에 한 동안 방황하기도 했지만 형인 브리먼에게 정신 나도록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는 형과 함께 살게 되었다.
투덜거리면서도 데런은 장작을 패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다리가 다쳐서 사냥을 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장작 패기를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지진 않았다.
"이대로 늙어 죽는 건가?"
장작을 그루터기에 올려놓은 데런은 문득 자신의 분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힘이 넘치는 분신은 고개를 번쩍 들고 인사했다.
"이웃집 히넬이 내 마음을 받아주면 좋겠는데."
히넬은 브리먼과 이웃한 집에 사는 처녀였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어서 내심 노리고 있었으나 히넬의 할아버지인 아르노가 계속 방해했다.
"젠장!"
힘차게 욕을 하며 장작을 팼다.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한 때 사냥꾼으로 돌아다니던 가락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일을 끝낸 데런은 그루터기에 앉아 땀을 식혔다. 땀을 한 바탕 흘리며 일했더니 개운한 느낌이었다.
'배고프다.'
더불어 허기가 느껴지자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때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뭐였지?'
무엇인가 숲에서 살짝 움직인 것이 보였다. 사냥꾼으로 활동하며 사물 분간에 익숙했던 데런은 금방 이상함을 발견했다.
'뭔가 저기 있는 거 같은데.'
형인 브리먼이 집에 없는 동안에 데런이 할 일은 간단했다. 집을 지키는 것. 형수와 아직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데런이 브리먼을 대신해 할 일이었다.
집으로 들어갔던 데런은 무기를 가지고 나왔다.
검은 벽에 기대어놓고 활을 들고 숲을 향해 조준했다. 이어서 경고도 없이 화살을 날렸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공격하려는 것이 보였을 테니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었다.
팅!
화살이 금속에 맞고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데런은 얼굴을 찌푸렸다.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그만 나오는 게 어때?"
경고를 날리자 숲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둘 다 키가 크고 갈색의 피부를 가진 이들이었다.
'처음 보는 놈들이네.'
데런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김새가 너무 이질적이었다. 피부색과 얼굴 형태가 굉장히 낯설었다.
'소문의 남부 사람들인가? 희한하게 생겼네.'
술집을 전전하다 어디서 얻어 들은 정보가 퍼뜩 떠올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볼 일이었다.
"뭐하는 놈들인데 남의 집을 훔쳐보는 거야?"
"죄송합니다.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나쁜 뜻이 없으면 무기를 버려."
데런의 말에 남자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우리도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는 못합니다. 활을 먼저 쏜 것도 그쪽이지 않습니까?"
"그럼 꺼지던가."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저기 저쪽에 살던 노인이 이쪽으로 오면 하루 머물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들었습니다."
"뭐?"
데런은 남자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히넬이 행여나 나쁜 짓을 당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 집 사람들한테 뭔 짓 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가서 확인해 보시죠."
"야! 로디! 얼른 나와 봐!"
"네? 왜요? 싸우던 중 아니었어요?"
"너 얼른 아르노씨 집에 가서 다들 무사한지 보고. 아니 아니다. 잠깐만."
말을 하던 데러은 남자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너. 패거리 숨겨 둔 거 아냐?"
"아닙니다."
"아니다.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그냥 무기 버리고 이쪽으로 와. 싫으면 꺼지던가."
"활을 내려놓으시면 무기를 버리죠."
무기를 먼저 내려놓는 것은 양쪽 다 꺼리고 있었다. 행여나 상대방이 그냥 공격하면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 쪽만 당할 뿐이었다.
"그럼 거기 뒤에 있는 놈부터 버려."
데런의 말에 앞에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 뒤에 서서 주변을 살피던 여자가 메이스를 내려놓았다.
"방패는?"
"이건 무기가 아니니 봐주시죠."
"좋아. 내가 활을 내리면 너도 메이스를 내려놔."
"그러죠."
데런이 활을 내리자 남자도 메이스를 내려놓았다. 무기를 내려놓는 행위가 이어지자 겨우 약간의 신뢰가 생겼다.
"그럼 천천히 얘길 해보자고. 왜 우리 집을 살핀 거지?"
"사실 도착한 건 어제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무척 시끄럽더군요. 혹시나 도적들이 사는 집이 아닌가 싶어 주저했습니다."
"뭐 도적?"
데런은 어이가 없었다.
"네. 여러 번 험한 꼴을 당할 뻔해서요. 제 아내를 노리고 덤빈 놈들 상대하는 것만 해도 힘들었습니다."
남자의 말에 데런은 뒤에 선 여자를 자세히 살폈다.
'젠장. 예쁘잖아?'
묘한 색기가 흐르는 입술과 볼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살짝 드러난 목선이 욕망을 충동질했다.
'제길.'
데런은 남자의 말이 어느 정도 믿겨졌다. 도적으로 취급 받은 것은 기분 나빴지만 여자의 모습을 보니 습격 얘기는 진짜로 있을 법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면 데런도 덤벼들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그래서 계속 살폈다?"
"네, 제 아내가 몸이 좀 안 좋은 상태입니다. 더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일단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우린 도적이 아니라 사냥꾼이야."
"사냥꾼도 도적이 되지 말란 법은 없죠."
"못 믿겠으면 그냥 가!"
약간의 신뢰는 생겼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믿기는 어려웠다. 숲에서 떨어져 살 때는 이런 일을 조심해야만 했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면 약탈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이 있어서 와봤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아저씨. 무사했네요? 걱정했잖아요!"
"걱정하긴 뭘 해? 그나저나 왜 저 사람들하고 그러고 있어?"
나타난 사람은 바로 아르노였다. 볼 일이 있어 브리먼의 집으로 왔다가 대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제 저 사람들 봤어요?"
"봤지. 고기도 거래했어."
"그래요?"
"그래. 나쁜 사람들 아니야."
아르노의 중재에 데런은 긴장을 풀었다. 진짜 약탈자들이었다면 아르노가 편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한테 우리 집 알려줬다면서요? 그럼 아저씨 이름이라도 말해주고 보내던가요. 식겁했네."
"응? 내가 안 알려줬던가?"
아르노의 말에 데런은 물론 대치하고 있던 남자도 쓴웃음을 지었다.
"아, 어쨌거나 아침부터 이게 뭔 꼴인지. 잘 됐네. 내 이름은 데런이요. 사냥꾼이었지."
"운성이라고 합니다."
"운성? 희한한 이름이네. 어쨌거나 부인이 아프다니 좀 쉬었다 가쇼."
"감사합니다."
데런은 신운성과 겨우 악수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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