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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9화 (39/109)

< -- 39 회: 퀘스트 -- >

"이게 전부야."

푹 쉰 이후 아침이 되자 식사를 하고는 집을 뒤졌다. 집 안에서 찾은 물건들은 별 것 없었다. 사냥과 가죽 가공을 위한 도구들과 약간의 돈, 그리고 두루마리 하나와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책은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 보였다. 무엇인지 모를 가죽으로 된 표지에는 간단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 역삼각형이 들어가 있는 문양이었다.

호기심에 책을 펴보자 갑자기 음성이 들렸다.

- 파우론의 경전을 발견했습니다.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어?"

* 파우론의 경전을 읽어라.

적의 사상을 알아야 공격할 수 있다.

성공: 스탯 포인트 100, 포인트 동전 10,000개

실패: 없음

퀘스트 내용은 간단했고 의미는 분명했다. 알폰이 악마를 언급했을 때 했던 예상이 적중했다.

'미친.'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악마 취급을 받던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함께 말을 섞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알폰의 눈빛이 아직도 선했다.

"후우......."

"왜 그래?"

"너도 이거 잠깐 봐."

경전을 읽어보려 했던 서은하는 곧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운성의 가슴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기어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기어는 스스로 '행운'을 상징할 뿐 신운성에게는 '저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기어 없이는 살 수도 없었다. 낯선 곳에서 목적도 없이 방황하는 삶은 더욱 싫었다.

"끝까지 해보자. 끝까지 가면 되는 거야."

"응."

서은하가 품에 안겨왔다. 꼭 안고 체온을 느끼자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누군가의 더러운 농간 속에서 그래도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경전은 읽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는 바로 이해가 되더니 경전은 아무리 봐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말과 문자는 다르다는 건가?'

막대한 퀘스트 보상이 걸려있기에 신운성은 인벤토리에 저장했다.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집 안의 물건을 대충 수습한 뒤에는 옷을 갈아입었다. 집 안에 있던 남자의 옷이 맞지 않아 상점에서 튜닉과 바지를 샀다. 서은하도 갑옷을 벗고 다시 예전 차림으로 돌아갔다.

"이 옷들 태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혹시 모를 추적자가 있을 것을 대비해 티몬의 병사와 기사들이 입었던 옷들은 벽난로에 넣고 태웠다. 그리고 갑옷은 땅을 파고 남자의 시체와 함께 묻었다.

"가자."

대충 수습이 다 되자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이동은 단순했다. 숲의 가장자리로 계속 움직이다 벌판이 나오면 그대로 가로질렀다. 그렇게 며칠이고 움직이다 보니 멀리 거대한 분지가 보였다.

"저긴 어디지?"

거대한 분지 위에는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분지 아래쪽에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강물이 끊임없이 삼켜지는 것이 보였다.

"저쪽으론 가지 말자."

건물을 보자 서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신운성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같았기에 더 동쪽으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가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만 했다.

"건너시게?"

뱃사공이 있었다. 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강을 건넌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거대한 분지쪽으로 향했다. 또한 분지 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려고 했다.

"얼마?"

"두 사람이니까 동화 30개."

신운성은 은화 하나를 주었다. 사공은 히죽 웃으며 은화를 챙기며 엄살을 부렸다.

"이거 귀하신 분이네. 그런데 제가 거슬러 드릴 돈이 부족한데......."

"있는 대로 줘."

사공은 동화 30개를 주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동화가 부족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신운성은 따지지 않았다. 문제를 만들어 주의를 끌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

별 문제없이 넘어가자 뱃사공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배에 정원이 다 타자 배가 천천히 강물 위를 전진했다. 뱃사공은 능숙한 솜씨로 노를 저었다.

"그나저나 소식 들었어?"

"뭔데?"

"얼마 전에 티몬이 망했데."

"뭐? 어쩌다?"

"우리 소영주님이 티몬 영주의 목을 벴잖아. 그런데 얼마 뒤에 티몬하고 사이가 안 좋은 영지들이 점령했다나봐."

"아니, 그 좋은 곳을 왜 다른 데 양보하셨지?"

"모르지. 높으신 분들이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거 아니겠어?"

심심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런 사람들하고는. 그건 하르켄 놈들 때문이야."

"뭐?"

"하르켄이 티몬이랑 손잡고 우리 소영주님을 공격했지. 그래서 소영주님이 버티면서 극적으로 티몬 영주의 목을 벤 거야. 그렇지만 하르켄 놈들이 좀 독해야지."

"아하. 역시 하르켄 놈들이 말썽이야. 그 놈들만 아니면 티몬 쓰레기들을 전부 잡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내 말이!"

남자들은 연신 하르켄을 성토했다.

'여기가 케토의 땅인가?'

신운성은 피레나가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케토로 찾아오면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었다. 잠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날 뭐라고 설명해야 해? 그땐 자기소개도 안 했었는데. 그리고 골치 아픈 여자로 보였어.'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자칫하면 제대로 된 신분이 없기에 약점 잡힐 우려도 있었다.

"다 왔습니다."

남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조용히 엿듣는 가운데 배는 부지런히 강을 건넜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신운성과 서은하는 얼른 배에서 내려 조용히 나루터에서 멀어졌다.

"오빠, 뒤쫓아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

"아까 배에 탔던 사람들."

뒤를 경계하며 걷던 서은하의 이목에 남자들이 걸려들었다.

"몇 명인데?"

"4명."

"무장은?"

"검과 창을 가지고 있어."

잠시 고민하던 신운성은 소리쳤다.

"뛰자!"

신운성이 달리자 서은하도 달렸다. 그리고 슬쩍 뒤를 보니 남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 쫓아오는데?"

"역시."

아무 목적이 없었다면 앞서가는 사람이 뛴다고 같이 뛸 이유는 없었다.

외진 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뒤쫓는다면 어떤 목적이든 좋은 목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짜증나는 새끼들.'

신운성은 분노했다. 티몬에서도 질리게 쫓겼었다. 그런데 또 추적자가 붙은 거였다.

'오냐, 죽고 싶다니 죽여주지.'

신운성은 이를 갈며 주변을 살폈다.

"저쪽으로."

마침 주변에 적당히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 있었다. 숲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그냥 나무가 우거진 길이 보였다.

거침없이 나무 사이로 뛰어든 신운성은 그늘에 숨어 쫓아오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어이, 도망친 게 겨우 여기야?"

"나쁘게 하지 않을 테니까 무기 버리는 게 어때? 여자만 넘기면 곱게 보내준다. 흐흐흐흐."

'은하의 외모 때문인가?'

신운성은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은하는 매우 매력적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끌어안고 욕정을 풀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임신이 두려워 꾹 참아냈다.

'앞으로 얼굴이라도 가려야겠다.'

또 하나의 주의 사항이 추가되었다.

한편 남자들의 이죽거림과 눈길에 서은하의 가슴은 혐오로 가득 찼다. 하지만 서툰 짓은 하지 않고 꾹 참았다. 바로 앞에 있는 신운성의 등 뒤에 슬쩍 몸을 숨긴 뒤 남자들을 살펴보았다.

'한 명이 안 보인다.'

서은하는 서둘러 사방을 살폈다. 그러자 나무 사이에 숨어 살금살금 다가오는 남자가 보였다.

'흥!'

일부러 못 본 척하며 곁눈질로 남자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정면에 선 남자들은 계속 공격은 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숫자로는 유리하다 해도 상대도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기습을 한 뒤 앞뒤로 몰아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자들의 계략은 통하지 않았다.

기습하던 남자는 서은하에게 막혀 머리가 박살났다. 동시에 신운성이 바람처럼 남자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헛!"

창과 검을 내지르며 잡으려 했지만 신운성을 잡기에는 부족했다. 방패로 무기를 쳐내자 팔이 절로 돌아가며 몸이 휘청거렸다.

'괴물!'

남자들은 제대로 말도 못 꺼냈다. 아주 잠깐 사이에 한 명의 목이 부러졌다. 메이스에 가격 당하자 목이 기괴하게 꺾이는 모습이 보였다.

놀란 남자의 동료 둘은 주춤거리며 창을 찔렀다. 하지만 회전력을 이용해 휘둘러진 방패에 공격은 모두 튕겨 나갔다. 다음 순간 또 한 명이 즉사했다.

남은 것은 한 명.

"으아아아아!"

홀로 남게 되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신운성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메이스를 등에 맞고 쓰러져 부들부들 떠는 남자의 머리를 박살내고는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앞으로 얼굴 가리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응."

남자들의 돈과 귀중품으로 보이는 것을 챙긴 뒤 두 사람은 떠났다.

나중에 남자들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그냥 노상강도에게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체를 뒤지다 지나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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