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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8화 (38/109)

< -- 38 회: 퀘스트 -- >

하염없이 걸었다. 태양이 뜨고 다시 지길 반복할 때도 멈추지 않고. 쉴 수 있었지만 쉬지 못했다. 쉬려고 잠시 자리를 잡을 때면 언제나 등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기분이 신운성과 서은하를 사로잡았다. 꽤나 높은 지위에 있어 보이는 귀족을 죽인 대가였다.

복수에 미친 추적자들이 따라붙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후회는 없다.

"가자."

다만 쉬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

"그런데 퀘스트 아직 안 끝났어?"

"응."

유저 정보창에 나온 퀘스트는 그대로였다. 말을 배우는 퀘스트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이제 소통에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안 끝나네."

"혹시 글이라도 배워야 하나?"

"그럴지도."

아직도 끝내지 못한 퀘스트가 눈에 밟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러. 오러를 배워야만 해.'

추적자들을 신경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오러.

신체 능력이 비슷하더라도 오러의 사용 가능 여부는 싸움에서 큰 차이를 불러왔다. 오러를 가진 자는 사냥꾼과 같았다. 방패는 물론 무기와 갑옷도 한 순간에 갈라버리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오러였다.

'무시무시했지.'

직접 방패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무서움은 더욱 확실히 각인되었다. 때문에 불안했다. 그런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을 부하로 두던 사람을 죽였으니까.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쯤 광분해서 사방을 뒤지고 다닐 것만 같았다.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쉬지 않았다. 해가 떨어져 밤이 되었지만 신운성과 서은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하는데.......'

더 강한 힘에 대한 갈증이 신운성을 괴롭혔다. 불안하기 때문에 갈증은 더욱 심했다.

'신분이 문제야.'

말은 어느 정도 통한다. 하지만 신분이 문제였다. 무엇인가 배우려면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이방인에게 소중한 기술을 가르쳐 줄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봐야 했다.

잘 아는 사람이 부탁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은데 잘 모르는 사람이 가르쳐달라고 하면?

무시당할 것이 뻔했다. 상대를 붙잡아 협박한다면 엉터리로 가르쳐 줄 수도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과 친해져야만 했다. 그때 문득 퀘스트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받은 퀘스트는 이곳 인간들의 말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말을 배우라는 것은 사회 속으로 파고들라는 의미였다. 어떠한 교류도 할 생각이 없다면 말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대체 목적이 뭐지?'

인간성을 없애고 야생의 짐승으로 되돌려놓는 튜토리얼 뒤에는 인간 사회로 파고들게 하려 하고 있었다.

'진짜 악마라도 만들려는 건가?'

신운성은 코웃음을 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우리 집이 있을까?'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걷고 또 걸었다. 어둠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새벽까지 걸었다.

"숲이네."

"응."

동쪽으로 계속 향하다 숲을 만났다. 소름이 두 사람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좀비가 자동으로 떠오른 탓이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몸을 숨길만한 곳을 빨리 찾아 휴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넓은 곳에선 몸을 숨기기가 적당하지 않았다.

"그냥 아주 조금만 들어가자. 금방 나올 수 있게."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숲을 마냥 피해 다녀서는 위험했다. 이 세상의 모든 숲에 좀비가 있다면 피해야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숲을 이용해야만 했다.

머뭇거리며 결국 신운성과 서은하는 숲에 접근했다.

"동물이다."

사슴 한 마리가 놀라서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죽음의 숲과는 달리 살아있는 생물들이 가득한 숲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긴장이 살짝 풀렸다.

"어서 쉴 곳 찾아보자."

숲에 들어서자 여러 짐승들이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절대 깊게 들어가지 않고 조금만 달리면 숲을 벗어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 움직이다 집을 발견했다. 집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났다.

신운성은 잠시 갈등했다. 사람과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신분을 구하지 못하면 오러 연공법을 배울 기회를 잡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날 적대한다면?'

싸워야 한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 이방인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다.

'어쩔 수 없어. 이런 곳에 설마 오러를 쓰는 인간이 있을 리도 없고.'

인간이라면 언제든 잡을 수 있었다. 6명까지는 무리하면 상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 가능한 적이 있다고 해도 정보 수집은 필수였다. 싸우기 전에 적에 대한 정보를 많이 입수하는 것은 기본. 신운성과 서은하는 한 동안 조용히 집을 지켜보았다.

하루 종일 지켜보았다. 남자 하나가 가끔 밖으로 나와 장작을 패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뭘 하는지 몰라도 남자는 잘 나오지 않았다. 숲에 어둠이 깔릴 때까지 집을 찾는 다른 사람은 없었다.

저녁이 되자 집 안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조용히 집으로 접근했다.

'혼자다.'

살짝 집안을 들여다보니 남자 혼자 침대에 누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술을 마셨다.

'딱 좋다.'

신운성은 일단 정상적인 접촉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죽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다 죽인다면 사회로 진입은 어려웠다.

문 앞에 선 신운성은 세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지나가던 사람인데 잠시 쉴 곳이 필요합니다."

"뭐?"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얼굴은 불쾌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쉴 곳이 필요하면 아무데서나 자빠져 잘 일이지!"

투덜거리던 남자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런데 병사였수?"

신운성의 옷차림을 보고 뒤에 선 서은하를 본 남자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이거 귀한 분들이신 모양인데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꼬리를 마는 행동을 보이자 신운성은 의아해졌다. 하지만 이내 자신과 서은하의 복장을 떠올렸다.

'기사를 호종하는 병사로 생각했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잠시 생각하는데 남자가 비켜섰다.

"누추하지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남자가 갑자기 친절해졌다. 신분이 범상치 않은 것 같자 금방 꼬리를 말아버린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테이블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다 슬쩍 서은하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변했다.

'뭐지?'

수상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 보였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제가 가진 것이 별로 없어 기사분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자는 서둘러 움직였다. 식재료를 저장해 놓은 창고에서 훈제 고기를 꺼내옴과 동시에 술냄새가 나는 잔을 가지고 나타났다.

"먼저 드십시오."

훈제 고기와 맥주로 보이는 술이었다. 남자는 연신 웃으며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친절.

신운성은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뭔가 이상해.'

음식에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이에 신운성은 웃으며 남자에게 권했다.

"같이 드시죠."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높으신 분들과."

"괜찮습니다."

"저는 아까 먹었는데."

"또 드시면 되죠."

신운성은 억지를 부리며 강권했다. 남자는 살짝 불쾌해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시죠. 고기를 먹으려면 술이 있어야 하니 제 것도 가져오겠습니다."

남자가 다시 술을 가지러 움직였다.

서은하는 신운성의 분위기가 이상하기에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 남자가 다시 잔을 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신운성의 곁을 지나려는 순간이었다.

잔이 신운성의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신운성은 팔을 들어 이를 막았다. 그때 남자가 단검을 뽑아 찔러왔다.

간발의 차로 몸을 틀어 피하자 남자가 뒤로 물러나더니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남자를 향해 신운성은 들고 있던 메이스를 힘껏 던졌다. 남자는 척추에 메이스를 맞고는 쓰러졌다. 척추가 부러진 탓이었다.

"크헉."

남자는 부들부들 떨었다.

"대체 왜 우릴 공격한 거지?

남자는 자신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비웃음을 머금고 저주를 퍼부었다.

"티몬의 개새끼들. 네 놈들을 죽이지 못한 게 한이다."

"티몬? 무슨 원수라도 졌나?"

"원수? 내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원수가 아니면 누가 원수냐!"

"그럼 잘 가라."

신운성은 남자의 목을 부러트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옷 입는 것도 조심해야겠다."

남자의 시체를 집 밖에 내놓은 신운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

서은하가 가리킨 음식은 탐스러워보였다. 하지만 원수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던 남자가 정상적인 음식을 줬을 거 같지는 않았다.

"어쩌긴 버려야지."

서은하는 음식을 내다버렸다.

'진짜 한시도 방심할 수 없네.'

한 순간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신뢰하는 것이 아닌 의심부터 해봐야 하는 세상이었다.

'피곤해.'

신운성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피곤한 일을 잔뜩 겪은 상황이었다.

"오늘은 나 먼저 잘게. 미치겠다."

"응. 조금 있다가 깨워줄게."

서은하의 대답을 들은 신운성은 남자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리고 서은하가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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