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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7화 (37/109)

< -- 37 회: 탈출 -- >

"쥐새끼 같은 놈들."

흉갑이 찌그러진 기사가 이를 갈며 다가왔다. 신운성은 기사를 바라보았다. 방패는 들지 않고 오직 빛나는 검만을 들고 있었다.

오러.

무기에 주입된 빛의 정체였다. 기사들이 방패를 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 보였다. 오러를 주입한 무기를 막으려면 똑같이 오러를 써야만 했다. 오러를 주입하지 않은 방패를 들이 대봐야 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신운성은 방패를 내미는 수밖에 없었다. 몸을 보호할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러를 쓸 수 없으니 방패라도 써서 신경이라도 끌어야 했다.

기사는 일그러진 비웃음을 머금고 검을 들었다. 신운성은 정면으로 막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검이 움직이는 순간 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커헉!"

뒤쪽에 서있던 기사가 무너졌다. 공격하려던 기사는 깜짝 놀라 뒤로 돌았다. 그때 신운성이 달려들다 멈췄다. 뒤돌아선 기사의 등을 꿰뚫고 나온 창이 보였다.

"다시 보는 군요."

위기의 상황에서 도와준 이들은 피레나와 앨런이었다. 신운성은 자신이 공격하려던 이들이 돕자 의아해졌다.

"너무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요. 그보다 함께 움직이죠."

"왜죠?"

신운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대의 신분이 높아 보이니 함부로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쪽이 여길 도망치고 싶듯이 나도 마찬가지니까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해답이 죽은 기사들의 시체가 알려주었다.

'자기 편 기사를 죽여서까지 날 함정에 빠트릴 이유는 없겠지.'

"그럼 함께 가죠."

"좋은 선택이에요."

피레나는 웃으며 앞장섰다. 이후 네 사람은 조금 빠르게 걷는 정도로 계단을 내려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일단 갑옷을 입은 분은 제 뒤에. 앨런과 그쪽은 병사니 맨 뒤에서 따라와요."

"알겠습니다."

피레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결국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어닐을 만날 수 있었다.

"피레나? 무사하군."

"이분이 절 구해줬습니다."

고개를 숙인 서은하를 가리키자 어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그런데 놈들은?"

"죽었어요. 그런데 위쪽에 불을 질렀습니다."

"알아. 빌어먹을 놈들."

어닐은 일단 자신의 정략 도구가 될 피레나가 안전하자 안심했다. 하지만 잠시 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한 발 물러설 때였다.

"영주님!"

어닐의 뒤에 서있던 기사가 깜짝 놀라 앞을 막아서자 창이 기사의 가슴을 뚫었다.

공격을 날린 앨런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어닐을 노렸다. 그 순간 다른 기사가 무기를 뽑으며 앞을 막아섰다. 그때 신운성은 바닥을 스치듯 달려나가 검을 뽑으려는 어닐의 팔을 부러뜨렸다.

"크윽!"

메이스에 가격 당하자 검을 뽑기가 어려워진 어닐은 도망치려 했지만 신운성과 서은하가 막아섰다.

기사와 앨런의 대결은 결국 앨런의 승리로 끝났다. 어닐이 위태로워지자 기사의 신경이 분산되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앨런이 끝내버렸다.

"어이없군."

벽에 기대선 어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케토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피레나를 거두고 클리돈과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틀어졌다. 도시 안에 숨어있던 신운성과 서은하가 운명을 바꿔버렸다.

"파우론이 날 버렸나?"

위를 쳐다보며 한탄하던 어닐의 목이 떨어졌다. 앨런은 떨어진 어닐의 목을 망토로 감쌌다.

"갑시다."

앨런의 행동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전장을 누비는 에틴은 케토의 기마병을 쫓으며 크게 웃었다.

"이것들아! 도망치지 마라!"

명백한 조롱. 말을 달리던 케토의 기마병과 기사들은 조롱을 듣고도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오러 마스터인 에틴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혼자라면 숫자로 밀어붙여보기라도 하지만 혼자도 아니었다. 티몬의 기사들이 뒤를 따르며 호위하고 있었다.

케토의 기마병들은 그냥 도망치지는 않았다. 도망치는 방향을 교묘히 바꾸며 하르켄이나 티몬의 병사들을 조금씩 죽이면서 전장을 맴돌았다.

"크크크. 놀이는 여기까지다!"

적의 의도를 파악한 에틴은 기사단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홀로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케토의 기마병들이 방향을 전환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에틴은 빠르게 말을 달리며 적을 향해 달렸다. 수많은 공격이 에틴을 향해 날아왔다. 기마병들이 들고 있던 창을 일제히 에틴을 향해 던졌다. 빽빽하게 공간을 점하고 날아오는 투창을 보면서도 에틴은 미소 지었다.

이윽고 팔을 휘둘러 모든 투창을 떨쳐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휘둘러진 창이 투창을 모두 막아냈다. 이를 본 케토의 기마병들은 다시 등을 돌리려 했으나 에틴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한 가운데를 돌파하며 수십의 기마병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는 케토의 기마병을 뒤로하고 전장을 살핀 에틴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티몬이 케토를 누르고 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즐거운 기분은 잠시였다. 전투에 신경 쓰느라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태어난 티몬을 본 에틴의 안색이 변했다.

'불?'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연기가 나고 있는 곳은 내성이었다.

"성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나온 사이에 변고가 생겼다 생각한 에틴은 기사들과 기마병을 이끌고 퇴각했다.

"으아아아아아!"

하르켄군과 맞서는 케토군은 처절하게 싸웠다. 목책이 없었다면 단숨에 쓸려버릴 수 있는 상황.

"버텨라! 지원이 곧 온다!"

사기를 위해 게스톤은 거짓말을 남발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따지지 않았다. 지원이 온다 했으니 온다고 여기며 죽어라 버틸 뿐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사방이 막혀있는 상황.

싸우지 않으면 죽을 뿐이었다.

사방에서 목숨을 노리는 적이 달려드니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오로지 적을 향한 살심뿐이었다.

"죽어!"

케토군은 처절하게 싸웠다. 도망칠 곳이 없기에 악착같이 싸웠다. 하지만 하르켄의 대군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틴다고 한들 끝없는 병사의 물결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웠다.

결국 케토군은 하나둘 쓰러지며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그때 케토군의 기마병이 하르켄의 보병을 휩쓸고 지나간다.

"아아아아악!"

에틴이 성으로 물러나자 다시 집결한 케토의 기마병들은 하르켄군을 유린했다. 숫자에서는 부족했지만 실력에서 앞서는 케토의 기마병들은 하르켄의 기마병들을 물리치고 보병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거대한 말들의 돌진에 공격하던 하르켄군의 보병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옆쪽에서 계속 비명이 들려오니 불안해졌다. 불안한 상태에 빠지니 눈앞의 적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하르켄군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다.

결구 하르켄군의 공격 대열이 무너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막아! 막으란 말이야! 왜 저 놈들을 못 막아!"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하르켄의 젊은 영주 카센이 악을 썼다.

"영주님 티몬에서 갑자기 뒤로 빠진 탓입니다."

"뭐?"

"티몬의 기사들이 갑자기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성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카센은 티몬의 성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나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어느새......."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티몬의 기사들이 물러난 이유를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센은 화가 났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카센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그때 카센의 부하 프레도가 말고삐를 잡으며 말렸다.

"영주님의 실력은 알지면 모험을 할 순 없습니다. 영지와 영주님의 가족을 생각하십시오."

카센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싸우다 만에 하나 잘못돼 죽는다면 자신과 같은 운명을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었다. 아니, 이번에는 영지가 자신의 가문 사람이 아닌 아예 다른 가문에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를 영주랍시고 떠받들 기사들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영주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거나 팔아먹을 수도 있었다.

충신은 언제나 부족하다.

"후퇴한다."

더 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었다. 케토군을 이길 수도 있었지만 하르켄의 피해가 너무 커지면 상처뿐인 승리가 될 뿐이었다.

카센의 명령이 떨어지자 하르켄군은 질서정연하게 뒤로 물러났다. 이를 보고 케토군은 쫓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니 자칫하다가 반격을 당할 우려가 있어서였다.

하르켄군은 케토군이 보는 앞에서 다시 강을 건너 회군했다.

한편, 성을 나선 피레나와 앨런은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티몬의 기사들과 마주치지 않게 아예 반대 방향으로 산을 내려가 삥 돌아 전장을 멀리서 확인했다. 그리고 하르켄군이 물러나는 것을 보자 바로 게스톤을 찾아갔다.

"누구냐?"

"클리돈의 기사 앨런 바무스다! 아가씨를 모시고 티몬에서 탈출했다!"

외침을 듣자 기사들과 함께 게스톤이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성안에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틈을 타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앨런은 어닐의 목을 게스톤에게 바쳤다. 이를 확인한 게스톤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우리가 승리했다! 죄인 어닐의 목이 여기 있다!"

승리를 선언한 게스톤은 서둘러 퇴각을 명하고 기사들과 함께 케토로 향했다. 어닐의 죽음을 확인한 에틴은 뒤늦게 추격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티몬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피레나와 앨런과는 함께 하지 않았다. 마구간 앞에서 말을 탈 줄 모른다고 하자 먼저 가겠다며 떠났다. 나중에 케토로 찾아오면 후하게 보상해주겠다고 했지만 신운성은 찾아갈 생각 따윈 없었다.

"살았다."

티몬이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하자 신운성은 일단 휴식을 취했다. 물과 주먹밥을 상점에서 사먹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긴장이 풀리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 탓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다음부턴 도시 안에 들어가나 봐라."

"다음부터는 혼자 사는 사람 찾아보자 오빠."

"그래."

모두 말을 배우겠다고 도시에 접근했다가 생긴 일이었다.

"그럼 다시 가볼까? 여기서 쉬는 건 좀 그러네 사방이 트여서."

"얼른 가자."

둘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피곤하고 쉬고 싶었지만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몸을 숨겨야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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