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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4화 (34/109)

< -- 34 회: 탈출 -- >

티몬.

출진 준비가 한창이었다. 출진하는 병력은 티몬의 기마병과 기사들이었다. 움직임이 느린 보병은 성을 지키고 궁병들만이 산 아래 숲에서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다 모였나!"

"리올이 안 보입니다!"

출진 준비를 하는 어닐의 둘째 아들 에틴은 인상을 찌푸렸다. 휘하의 기사가 전투를 앞두고 소집에 불응한 것은 크나큰 중죄였다. 여간해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에틴은 리올을 잘 알았다. 평소 겁쟁이처럼 보일 정도로 싸움에 소극적이지만 싸울 이유가 있을 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남자가 바로 리올이었다.

'성내에 누군가 있나?'

얼마 전 벌어진 마구간 화재를 떠올린 에틴은 기사 셋을 남겨두었다.

"리올이 소집에 불응할 리가 없다. 분명 무슨 일을 당한 것이 틀림없으니 너희 셋은 병사와 함께 다시 수색해라!"

명령을 남긴 에틴은 소집한 병력을 이끌고 출진했다.

하르켄군은 루스강을 도하할 준비를 금방 끝냈다. 갑작스럽게 도움을 요청받은 지원군이라 볼 수 없는 준비성이었다. 신부의 납치에서 전쟁까지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하르켄의 젊은 영주는 강 건너의 케토군을 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케토의 늙은이에게 좋은 선물을 보낼 수 있겠어."

카센 우튼 반 하르켄, 하르켄의 젊은 영주는 기분이 좋았다.

"선물이라뇨?"

"게스톤의 목."

생각만 해도 짜릿했는지 카센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케토의 일이라고 하면 젊은 영주는 광기를 드러냈다. 카센의 부하 프레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힘들겠군.'

케토와의 전투만 벌어지면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갈 정도로 카센은 케토의 모든 것을 증오했다. 전대 영주인 아버지를 케토와의 싸움에서 잃은 뒤 카센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영주의 죽음으로 인해 아직 어린 후계자들이 상속 다툼에 휘말렸다. 카센은 힘없는 어린 아이였고 다른 배다른 자식들도 마찬가지. 때문에 싸움을 한 것은 외척들이었다. 서로 섭정이 되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였다. 암살 시도는 일상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르켄이 여러 조각으로 찢어지지 않은 이유는 케토가 계속 하르켄을 공격한 덕분이었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도 케토군이 도발해오면 모두 케토군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다.

매일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자란 카센은 자신의 불행이 전부 케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증오했다. 케토가 있는 한 자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덕분에 힘든 것은 젊은 영주를 모시는 부하 프레도였다.

"이것들아! 이번에도 영주님을 잘 지켜야 한다!"

"네!"

프레도의 휘하 기사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하가 시작되었다.

강을 건너는 공격이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언덕을 기어 올라가 싸워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그냥 화살이 아닌 불화살이었다. 나무로 만든 배는 불화살에 약했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온다고 멈출 순 없었다. 그러나 케토군은 적의 배를 불사르면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사람이 적다!"

하르켄은 모든 병사를 집중해 도하하지 않았다. 단지 도하하는 척 했을 뿐이었다. 배를 보낸 것은 적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하르켄의 기마병이다!"

루스강의 하류 쪽에서 은밀히 강을 건넌 기마병들이 나타났다. 보고를 받은 게스톤은 이를 악물었다.

'하르켄의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해선 기마병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티몬에서도 기사들이 나왔다.'

하르켄 쪽으로 기마병을 보낼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기마병이 비어있는 틈을 티몬에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놔둔다면 하르켄의 기마병들이 계속해서 보병들을 유린할 터였다.

'그러면 하르켄의 보병이 본격적으로 도하하겠지.'

병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희생은 어쩔 수 없다.'

"기마병은 기사 절반은 하르켄의 기마병을 잡는다! 나머지 기사들은 보병들과 함께 목책 안으로 들어간다!"

적에게 포위될 위험이 있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게스톤의 명령에 따라 강을 포기하고 보병들은 모두 미리 만들던 목책으로 만들어진 미완성의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보급을 위해 보낸 전령에게 설명을 해뒀으니 시간만 끌면 급한 대로 케토에서 지원이 온다!'

불리한 상황에 처했지만 게스톤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케토의 기마병들은 신이 나서 하르켄의 기마병들을 쫓았다. 하르켄의 기마병들은 겁에 질려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도망치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뒤를 쫓던 케토군은 이상함을 눈치 챘다. 자꾸 자신들이 전장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하르켄의 기마병들은 다시 공격하려는 듯 뒤를 쫓았다. 뒤에 적을 달고 돌아갈 수 없어 다시 싸우려하면 하르켄의 기마병은 물러났다. 이에 기마병의 대장은 적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본진으로 돌아간다."

케토군의 기마병을 이끄는 기사는 하르켄의 기마병을 무시하고 다시 본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되돌아간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강을 도하하는 하르켄군을 보았다.

"이것 때문이었군."

본진은 목책에 들어가 방어를 하고 있는 상황. 공격하러 온 군대를 오히려 반대로 포위해 섬멸하려는 목적이 보이는 작전이었다.

"하르켄을 돌파한다!"

적의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되도록 숫자를 줄이는 편이 유리했다. 본진으로 되돌아오던 케토의 기마병과 기사들은 무서운 속도로 하르켄의 보병들을 돌파했다.

막 도하한 상황이라 제대로 방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마병과 기사들의 돌파는 치명적이었다.

"으아아아악!"

"모여! 모이라고!"

자비 없는 돌파에 수많은 하르켄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흘러내린 피가 강을 붉게 물들이기에는 부족했다.

한 번 돌파한 이후 케토의 기마병은 티몬의 기사들과 마주해야했다.

"우리가 누구냐!"

"케토의 창!"

"돌격!"

마주 달려오는 티몬의 기사들에 맞서 케토의 기사와 기마병들을 주저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기사 전력에서는 케토가 불리한 상황. 하지만 전투의 흥분으로 붉게 물든 케토의 기사들은 맹렬히 돌진했다.

"이야아아아아아아!"

거리가 가까워지자 서로 괴성을 지르며 상대를 압도하려했다. 동시에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려는 발악이었다.

충돌이 일어났다. 서로를 스치듯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

티몬의 기사들 중 상당수가 말에서 떨어졌다. 목을 잃은 이들도 있었고 다리가 잘린 이도 있었다. 기마병들의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케토의 기마병들은 충돌하는 순간 말의 옆으로 몸을 낮추더니 상대 말의 옆구리를 가르며 지나쳤다.

단 한 번의 승부로 티몬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케토군 또한 마찬가지.

"정말 말 하나는 잘 탄단 말이야."

어닐의 둘째 아들, 에틴은 인상을 찌푸렸다. 에틴의 창은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케토의 기사를 말과 함께 양단해버린 후였다.

"우리도 훈련하면 됩니다."

에틴을 따르는 부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우리도 하면 되지. 매일 강가에 틀어박혀서 수적질이나 하니까 실력이 안 느는 거지만."

"이제부턴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제부턴 달라져야지! 가자!"

에틴은 달렸다. 기다란 창을 한 손에 들고 가볍게 휘두르는 모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기사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창 전체를 감싼 오러였다.

에틴의 창은 케토의 기사가 근처로 다가오기도 전에 적을 절단 냈다. 창 길이만 해도 무시무시하지만 창에서 더 뻗어 나온 오러는 평범한 오러 사용자나 숙련자가 당해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닐의 둘째 아들 에틴은 오러 마스터였다.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신운성과 서은하도 위기에 처했다.

출진하기 전에 내려진 에틴의 명령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시 수색이 이뤄지고 있었다. 몸을 숨기고 있던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미치겠네."

낮이라 휴식을 취하며 되도록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수색이 이뤄지고 있으니 난감했다. 밤이라면 어둠 속에 숨어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낮에는 꽤 먼 거리까지 사람이 볼 수 있기에 걸어 다니다보면 누군가의 눈에 보이기 마련이었다.

기사와 병사의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아군으로 생각하고 접근할 수도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는데 일단 나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지. 가자."

메이스와 방패는 또 다시 버려졌다. 적이 쓰는 장비만 들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서은하는 갑옷을 입고 검만 허리에 찬 상태였다. 신운성은 병사가 쓰는 창과 단검만을 소지한 상태였다.

"가자."

밖으로 나오자 멀리서 수색하는 이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수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자."

두 사람은 외성의 성벽을 향해 나아갔다. 멀리서 계속 함성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상황을 보아 포위망이 없다면 도망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성벽으로 향하는 도중 일단의 병사들이 서은하를 보고 접근해왔다.

"리올님 어디 계셨습니까?"

멀리서 다가오는 병사들 중 하나가 외치며 다가왔다. 기사의 차림을 하고 돌아다닐만한 사람은 리올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젠장!'

병사들의 접근을 허용하면 정체를 발각당하는 것은 시간문제. 갈등은 짧았다.

"못 들은 척 해. 천천히 날 따라와."

신운성과 서은하는 못들은 척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할 때 무기를 상점에서 구입했다.

방패와 메이스를 착용한 두 사람은 골목 안에서 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발견했던 병사들은 계속 부르며 뒤를 따라 골목까지 왔다가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소리 질렀다.

"수상한 놈들이다! 이쪽!"

도시 안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연락 받은 기사들과 병사들은 서둘러 신운성과 서은하가 도망친 주변에 포위망을 새롭게 형성했다.

"씨팔!"

신운성은 앞을 가로막은 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들자 병사는 창을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창촉이 방패를 긁고 한쪽으로 틀어지며 거리가 좁혀졌다.

메이스가 가차 없이 허공을 날아 머리를 때렸다.

투구가 우그러지며 병사가 쓰러졌다. 다른 병사 하나도 서은하의 공격에 쓰러졌다.

"꺼져!"

궁지에 몰린 사자처럼 날뛴 신운성과 서은하는 병사 다섯을 죽이고 다시 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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