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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3화 (33/109)

< -- 33 회: 탈출 -- >

신운성과 서은하가 떠난 뒤, 병사 둘이 도착했다.

"대체 어디서 싸움이 난 거지?"

"여기 근처인 것 같다고 했는데."

알폰의 집 근처에서 병사들은 다시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목격자가 있었겠지만 전시 상황이라 목격자가 없었다. 여자와 아이 등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은 전부 내성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내성에서 전쟁에 필요한 화살을 만들거나 병사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반면 남자들은 모두 병사가 되었다. 산 위에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지나가는 배를 털거나 통행세를 받아먹고 살기 때문에 특별한 직업이 없는 이상 대부분 병사로 활동했다. 더구나 전시이기에 집에 머물지 않고 단체 생활을 했다.

이것이 도시 안의 빈 건물을 더욱 많이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병사들은 건물들을 뒤지다가 지쳤다. 아무 것도 안 나온 탓이다.

"잘못 들은 거 아닐까?"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 얼마 전에 일도 있었는데."

"에이, 귀찮게."

병사 하나는 투덜거렸지만 수색에 동참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색은 이뤄지지 않았다. 단지 고함 소리를 듣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들을 전부 살펴봐도 아무도 없었다. 알폰의 집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싸움 때문에 집이 어질러져 있었으나 처음 시체를 발견했을 때 뒤진다고 엉망으로 만들어 놨기에 싸움의 흔적이 있어도 별로 위화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동료가 연신 투덜거리니 좀 더 찾아보자던 병사도 결국 의욕을 잃고 그만 두었다.

한편, 알폰의 집을 벗어난 신운성은 예전에 숨어 지내던 빈 집을 찾았다.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아 방치되었던 집은 여전히 빈 상태였다. 병사들이 뒤지고 갔는지 집 안이 어질러진 것이 보였지만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이 자식 때문에."

신운성은 기절해 있는 리올을 내려다보았다. 현장에서 죽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또 시체가 발견되면 수색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시체나 핏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데리고 움직였다.

'기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면 또 난리가 날 텐데.'

또 다시 고생하게 생겼다. 수색을 피해 숨어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될 수 있으면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화내도 변하는 것은 없다. 화낼 에너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더 나았다.

"후우......."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한 일은 리올의 목을 부러트리는 것이었다. 메이스로 목을 내려치니 힘없이 뚝하고 목이 부러졌다. 기절하거나 잠든 인간의 근육은 풀어지기 때문에 뼈를 부러트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서은하의 질문에 신운성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도시 안에 갇힌 상황은 굉장히 답답했다. 도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상태였다면 같이 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숨어들어온 이방인에 불과하기에 정체가 발각되면 쫓길 운명이었다.

"차라리 도시 밖의 산에 숨는 건 어때?"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위험해지긴 마찬가지야."

"굴 같은 거 파고 들어가서 바위 같은 걸로 입구를 막아도?"

"그러면 발견 안 될 수도 있지만....... 하루 이틀 만에 전쟁이 끝날 것 같지도 않은데 잘못되면 죽음의 숲에서처럼 계속 싸워야 할 걸."

좀비랑 싸우던 일을 떠올린 서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을 벗어나겠다고 더 큰 위험이 존재하는 곳으로 갈 순 없었다.

"차라리 바깥으로 나가서 투항할까? 그리고 탈출하는 건?"

"투항한다고 살려줄까?"

항복한다고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온갖 고문을 하면서 내부 사정을 알아내려 고문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또한 서은하를 어떻게 할지도 몰랐다.

"그럼 그냥 숨어 있어야겠다."

"그러게."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 놈 갑옷이나 챙겨야겠다. 여차하면 기사 행세하게."

"오빠한테 안 맞을 거 같은데?"

"너한테는 딱 맞을 거 같네."

결국 갑옷은 서은하의 차지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능력치중 체력과 근력을 상당히 올려둔 터라 갑옷을 입고 움직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밤이 되자 시체를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새벽이 올 때까지 은밀하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변화 없이 여전히 지루한 대치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두 사람은 죽은 도스의 집으로 향했다.

리올의 실종은 아침이 온 뒤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산 아래 케토의 진영에 변화가 생겼다. 강 건너에서 접근한 군대가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저 깃발은 어디지?"

"하르켄입니다!"

"으음......."

하르켄. 케토와는 앙숙인 영지였다.

"티몬을 도우러 온 걸까?"

부정하고 싶은 감정의 찌꺼기가 질문의 형태로 토해졌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젠장."

어닐이 전서구를 보낸 곳은 바로 하르켄이었다. 하르켄과 케토는 앙숙 지간이었다. 오랫동안 대립해온 악감정은 손익 계산을 뛰어넘어 무조건 상대를 적대하도록 만들었다. 원래 하르켄과 케토의 영주 가문들은 형제나 다름없이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함께 세력을 키우다 의견이 틀어졌다.

하르켄의 영주 가문, 우튼가는 자신들의 세력이 좀 더 크기에 자신들이 세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게스톤의 가문, 이데오스는 자신들의 기사들이 항상 선봉에서 공을 세웠기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처음부터 적으로 만난 상대라면 악감정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냥 적일뿐이니까.

하지만 우튼가와 이데오스가는 서로 중심이 되겠다고 반목했다. 반목의 결과는 혈투로 이어졌고 이데오스가문은 패배하고 쫓겨났다. 하지만 이데오스 가문은 그냥 쫓겨나지 않았다. 우튼가의 영주와 소영주를 죽이고 도주했다. 그렇게 도주해서 정착한 곳이 바로 케토였다.

이후, 우튼이 다스리는 하르켄과 이데오스가 다스리는 케토는 앙숙이 되었다. 한 세력이었다가 등을 돌리게 되니 상대를 향한 악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계속 대립하며 양 가문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고 이러한 영주들의 감정은 영지민들에게도 전염되어 양측은 서로를 앙숙으로 여겼다.

"우리가 지원을 청한 영지에서 확답은 없나?"

"아직 없습니다."

검자루를 잡은 게스톤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티몬과 하르켄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루센. 아무래도 영지는 내 동생이 이어야 할 것 같다."

"소영주님. 이대로 잠시 물러나서 상황을 봐 다시 공격해도 됩니다."

"아니야. 여기서 물러난다면 난 가문의 수치로 남을 거다. 티몬을 상대로 등을 돌려도 신부를 빼앗긴 못난 놈으로 남을 거고 하르켄을 보고 도망친다면 천하의 다시없을 겁쟁이라고 하겠지."

"소영주님."

게스톤은 돌아갈 수 없었다. 생명 연장만을 생각한다면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실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컸다.

약육강식의 시대다. 약한 자는 그대로 먹힐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약한 자가 자신들의 영주가 되길 원치 않는다. 싸우다 패배하는 것은 함께 싸웠으니 같이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도망친 것은 겁쟁이로 치부되기 딱 좋았다. 현실은 불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볼 수 없으니 결국 도망친 것이라 호도하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살아남는다면 왕이 될 거다."

분노하던 게스톤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병사들을 모아."

게스톤은 모든 병사를 한 곳에 모았다. 일을 하던 병사들이 모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들어라! 저기 강 건너에 하르켄군이 왔다!"

하르켄군이 왔다는 말에 병사들은 웅성거렸다. 일부는 화를 내고 일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적 무리에 불과한 티몬이 연약한 신부를 납치하고 배신자를 끌어들였다!"

계속되는 연설에 병사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우리는 분명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의 적은 부도덕한 쓰레기들이다! 하늘에 계신 파우론께서 우릴 지켜보신다. 우리가 불의를 보고 도망친다면 세상의 정의는 누가 세울 것인가!"

신의 이름을 언급하자 독실한 파우론 신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파우론의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승자는 결국 우리가 될 것이다!"

연설을 끝낸 게스톤은 검을 뽑아 오러를 일으켰다. 보통 기사와는 다른 무시무시한 오러가 검을 타고 흘렀다.

"신의 이름으로 저들을 처단하자!"

"우와아아아아아아!"

빛나는 검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자 병사들은 모두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전쟁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신의 정의와 함께 한다는 이야기는 병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언제 죽어도 죽을 인생이었다. 병사로 전쟁에 참여한 이상 죽음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전장에 들어서는 병사들은 무의식적으로 파우론을 찾게 된다.

사후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신의 정의가 함께한다는 연설은 병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하르켄을 향한 병사들의 악감정이 더해지니 전투 의지가 더욱 높아졌다.

오합지졸이었다면 통하지 않을 연설이었다. 그러나 케토는 병사들을 강군으로 만들었다. 뛰어난 기사들이 조련하게 되니 병사들도 강해졌다.

"훌륭하셨습니다. 역시 제 영혼의 주인은 소영주님뿐입니다."

게스톤의 심복 루센은 무릎을 꿇으며 경의를 표했다.

"시간 없다. 우선 모인 병사들은 강가에 배치하고 기마병은 티몬을 견제하도록 해. 그리고 기사단을 중간에 둔다."

게스톤은 2:1의 싸움이라고 해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봐라. 케토는 이제 끝이다."

인질로 잡힌 피레나는 높은 곳에서 전장과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어닐이 가리킨 강 건너에는 하르켄군이 도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내부에선 기사들이 출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르켄과 케토가 싸우면서 분위기가 익으면 우리 티몬이 케토의 뒤를 칠 것이다. 그럼 끝이지."

어닐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피레나를 바라보았다.

"이래도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나?"

"케토의 기사는 강합니다."

"거 참. 미리 말해두지만 나중에 선택하게 되면 좋은 대우를 기대하긴 어려울 거다."

"그거야 제 운명이지요."

"대체 뭘 믿는 건지."

어닐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반면 피레나는 담담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누가 이길까?'

자신의 운명이 걸린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피레나는 전장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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