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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2화 (32/109)

< -- 32 회: 탈출 -- >

해가 뜨자 전장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방어를 하는 티몬군의 입장에서는 케토군이 접근하지 않으니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반면 케토군은 적이 훤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접근해 공격하는 것을 꺼렸다. 이미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온 상황. 상대를 끌어낸다면 모를까 안으로 들어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케토군은 게스톤의 명령으로 계속 분주히 움직였다. 배들이 오가고 벌목한 나무를 옮겨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작업이 계속 되는 와중에도 상대를 향한 감시는 풀지 않았다.

결국 하루 종일 싸움은 하지 않은 채 다시 밤이 찾아왔다. 그러자 양측은 분주해졌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스톤은 계속 공을 거두고 있는 병사들을 투입했다.

몸이 날랜 병사들은 몇 번이나 공을 세우고 살아 돌아온 베테랑이었다. 어둠을 헤치고 능숙하게 산을 올랐다. 어두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번 오가며 지리를 어느 정도 숙지한 상태였다.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다. 서쪽만 치자."

병사들을 이끄는 대장의 말에 모두 군말하지 않고 따랐다.

게스톤의 기습 부대는 티몬의 서쪽으로 접근했다. 길이 약간 험하기는 했지만 기습 부대는 실수하지 않고 접근에 성공했다.

성벽을 만나자 병사들은 더욱 부산해졌다. 등에 지고 온 사다리를 기대어놓고 조용히 성벽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사다리를 이용한 접근은 곧 발각되었다.

"적이다!"

그 순간 성벽 아래에 있던 기습 부대는 활을 쐈다. 성벽 위는 횃불이 밝히고 있어서 조준하는 것이 가능했다.

병사들의 활 솜씨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럿이 하나를 목표로 쏘니 하나 정도는 상대를 맞추었다.

이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에 성공한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날뛰었다. 티몬군 보초들은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병력이 아니었기에 금방 뒤로 밀려났다.

"불을 지르자!"

기세가 오른 기습 부대는 근처의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티몬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들이닥쳤다.

"죽여!"

성벽 위로 올라온 기습 부대는 순식간에 제압 되었다.

일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기습 부대는 후퇴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사신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티몬의 산에서 태어나 자란 기사들은 밤에도 거침없이 산을 달릴 수 있었다. 기습이 이뤄지기 전 어닐의 명령에 따라 성벽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움직였다. 서쪽 성벽에서 소란이 일자 일제히 달려왔다.

어둠 속에서 오러로 빛나는 검을 든 기사들은 무시무시했다. 기사들은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다.

"얼른 옷을 갈아입자."

기사들은 시체들의 옷을 벗겨 갈아입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수에 비해 몸에 맞는 옷이 별로 없어서 모두 케토의 기습 부대로 위장하는 것은 어려웠다.

"옷이 부족해."

"그냥 가자. 어차피 방심을 끌기 위한 거잖아."

"가자."

옷을 갈아입은 기사들을 필두로 티몬의 기사들은 조용히 산을 내려갔다.

역습이었다. 처음에는 기습을 갔던 아군이 돌아온 줄 안 케토군은 별 다른 경계를 하지 않고 다가온 무리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이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검을 뽑아 들고 휘둘렀다. 어둠을 가르는 오러가 병사들의 몸을 양단했다.

케토군은 병사를 보냈지만 티몬은 기사를 보냈다. 케토의 야습을 역이용한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케토군이 기습으로 죽인 티몬의 병사들보다 티몬의 기사들이 죽이고 간 숫자가 훨씬 많았다.

"제기랄!"

뒤늦게 케토의 기사들이 나섰지만 티몬의 기사들은 큰 피해를 입히고 물러난 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 공격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선 물러나야."

"물러나?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부하들의 말을 듣던 게스톤은 벌컥 화냈다. 패배할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기가 저하되었다. 갑자기 기사들이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기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목책이나 서둘러서 완성하라고 해! 교대로 공사한다!"

적의 야습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방벽이 필요했다. 벽이 있다면 일단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적들이 온다면 어려워집니다."

"지원을 요청한다. 티몬과 사이가 안 좋은 영지에 연락을 넣어! 지금 당장! 함께 복수해서 티몬의 권리를 나눠 갖자고 해!"

"그럼 티몬에 대한 공격은 어떻게 합니까?"

"내버려 둔다. 기습도 하지 마."

기습 부대는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계속 보내봐야 상대에게 역이용 당할 뿐이었다. 기사를 보낸다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지만 기사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병사처럼 쓸 수는 없었다. 티몬의 기사들이 기습을 해온 것이 오히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만큼 영주들은 기사들을 소중히 대했다. 병사는 다시 징집하면 수를 채울 수 있지만 기사는 쉽게 채울 수 없었다.

"차라리 밤에 공성전을 벌이면 어떻습니까?"

"쓸데없는 짓이다. 저 놈들도 멍청이가 아니니까 이제 매복해놓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대규모 이동을 하게 되면 결국 적들도 알게 되니 낮에 공격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어."

"역시 소영주님이십니다."

"흥!"

속이 뻔히 보이는 아부였지만 게스톤은 기분을 풀었다.

3일이 지났다. 3일 동안 티몬군과 케토군은 싸우지 않았다. 양측 다 각자 요청한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니 대기하는 이들의 마음이 살짝 풀어졌다. 티몬의 기사인 리올도 마찬가지였다.

"아, 정말 싸우려면 팍팍 싸우지. 덤비면 그냥 모가지를 싹 따줄 텐데."

동료의 투정에 리올은 쓴웃음을 지었다.

"안 싸우는 게 좋지. 왜 그래?"

"어이, 네가 그런 소릴 하니까 겁쟁이 소릴 듣는 거야. 기사가 돼서 싸움을 두려워하는 거냐?"

"불필요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래서 난 영주님이 좋다."

"누가 싫데? 그냥 좀 답답하다는 거지."

동료는 투덜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갔다. 홀로 남게 된 리올은 자신의 말을 보기 위해 마구간으로 향했다.

멀리 마구간은 임시로 지어진 것이라 매우 어설퍼 보였다. 얼마 전에 침입자가 태우고 간 것이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마구간에 들어선 리올은 자신의 말을 한 번 살펴보고 나오면서 문득 의혹이 생겼다.

'왜 마구간이었을까? 여기까지 왔으면 내성으로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동안 적과 싸우는 것을 생각하느라 한 번도 품지 못한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내성에 불을 질렀다면 더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는데. 공을 탐하지 않은 건가?'

적의 행동이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지만 여유가 생기니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나라면 내성에도 불을 질렀을 텐데. 왜 안 했을까? 기사가 아니라서? 하지만 내성을 앞에 두고 그냥 돌아가? 왜? 들킬까봐?'

침입자의 행동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리올은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생각에 몰두했다.

'그날 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그 전에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응? 시체?'

리올은 벌떡 일어나 사건들을 조사하기 위해 움직였다.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다.

'가장 먼저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수색을 시작했고 수색하던 병사가 기습당했다. 하지만 상대는 병사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후 마구간에 불이 났다. 대체 왜?'

사정을 알게 되니 더욱 이상했다.

'내성이 목표라면 차라리 조용히 내성부터 치는 게 낫지 않나?'

어렵게 잠입에 성공했는데 일부러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이목을 뒤흔들기 위해서? 하지만 왜? 시체가 발견된 시점에서 이목은 다른 쪽으로 쏠렸는데?'

리올의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왜 하필 알폰이지? 그리고 병사인 도스도 죽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만 죽었다는 것도 의아했다.

'뭔가 이상해.'

계속 생기는 의문이 생겼다. 의문을 풀기 위해선 정보를 더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리올은 알폰의 집으로 향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알폰의 집을 다시 찾는 이는 없었다. 시체도 이미 치워진 상태였다. 긴장은 풀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낼 만했다. 밤이면 거리로 나와 슬쩍 정보를 수집하고 낮에는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며 휴식을 취했다.

두 사람은 이대로 계속 가다가 얼른 전쟁이 끝나길 빌었다. 전쟁이 끝난다면 얼마든지 탈출이 가능했다.

"오빠,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하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의문을 품은 리올이 사람이 없는 거리에 들어서자 발소리가 길에 울렸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기척을 살피던 서은하는 리올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긴장한 신운성은 얼른 일어나 문 뒤에 섰다. 손에는 상점에서 다시 구입한 메이스와 방패가 들려 있었다. 서은하도 얼른 움직여 신운성의 뒤에 섰다.

발소리는 알폰의 집 앞에서 멈췄다. 이어서 문이 열렸다.

'젠장!'

신운성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며 어지러워졌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대를 본 순간 모두 밀어냈다.

'기사!'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안으로 들어섰기에 신운성은 가차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순간 리올이 고개를 돌리며 반응했다.

"큭!"

리올은 간신히 팔을 들어 메이스를 막았다. 하지만 기습을 당해 오러의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메이스에 가격당한 팔은 보호 받지 못해 부러진 상태. 검을 뽑으려 했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불리한 상황임을 깨달은 리올은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신운성의 뒤에 있던 서은하가 문을 닫으며 메이스로 찔러왔다. 어쩔 수 없이 뒤로 피한 리올은 소리를 지르며 왼팔로 검을 뽑으려 했다.

그때 신운성이 달려들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리올은 발로 방패를 찼다. 신운성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검은 반 정도 빠져나왔다. 하지만 왼쪽에 찬 검을 왼팔로 뽑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어려웠다. 더구나 싸우는 도중이라 난이도는 더욱 높아졌다.

"으아아아아아!"

리올은 최대한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 적이 여기 있다고 아군에게 알릴 생각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시간을 끌면 아군이 찾아올 터였다.

"닥쳐!"

신운성은 다시 달려들었다. 리올은 다시 방패를 발로 차며 버텼다. 그러나 그 틈을 서은하가 끼어들어 메이스를 휘둘렀다. 몸을 뒤틀어 피한 리올은 다음 순간 머리를 가격 당하고 쓰러졌다. 서은하의 공격으로 생긴 틈을 이용해 신운성이 결정타를 날렸다.

"아직 죽지 않았어. 오빠."

"일단 끌고 가자."

다른 때였다면 여유롭게 처리하고 일을 처리했겠지만 리올이 고함을 지른 상황. 누군가 들었다면 달려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신운성은 기절한 리올의 팔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 다음 어깨에 메고 밖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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