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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30화 (30/109)

< -- 30 회: 탈출 -- >

소란스러운 밤이 지나갔다. 기습했던 케토의 병사들은 몇 명 죽지 않았다. 성과가 예상 밖으로 좋다는 사실이 게스톤을 흐뭇하게 했다.

"좋아. 기습에 참가했던 병사들에게 푹 쉬라고 하고 고기와 술을 내려라!"

힘들게 싸운 이들에게는 보상을 주어야 했다. 쉬게 해주어야 다음에 또 힘내서 싸울 수 있다.

"보병은 지금부터 벌목을 시작한다!"

난데없는 벌목 명령. 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벌목을 하라는 명령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 갈래 방향에서 보병이 접근했다. 모두 방패를 들고 이동했기 때문에 산 위에서 쏜 화살 공격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거대한 방패로 머리 위를 가리고 움직이자 거대한 갑각충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보병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지만 소용없었다. 이를 알게 된 티몬군은 집중 화살 공격을 중지했다.

벌목이 시작되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길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산에 접근하기 전에는 은폐물이 없어 공격을 받았지만 산에 진입하자 나무 때문에 좀 더 안전해졌다.

하지만 티몬군도 가만히 벌목을 하는 것을 지켜보지는 않았다.

"발 빠른 궁병들을 보낸다. 무리는 하지 말고 한 놈만 잡으라고 그래."

어닐의 명령이 떨어졌다. 원래부터 산에서 자란 병사들이었다. 산 속에서의 움직임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전장은 바로 자신들이 살던 산. 나무는 물론 바위의 위치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바위에 이름까지 붙일 정도로 산에 대해 잘 알았다.

길을 잘 알면 병사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궁병들이 은밀히 퍼져나갔다. 죽음을 내리기 위한 사신의 접근은 적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벌목하는 소리로 인해 멀리서 궁병들이 접근해오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부산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적의 접근을 눈치 채지도 못했다.

공격 위치를 잡은 기습대의 대장은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행여나 다른 궁병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공격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바위 위치까지 자세하게 알기 때문에 지휘는 더욱 편했다. 퇴각로까지 이미 정해진 상태.

"간다!"

시간이 되자 기습대 대장은 효시를 쏴 올렸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효시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가는 순간, 기습을 위해 자리 잡은 궁병들은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커헉!"

"적이다!"

"방패! 방패!"

기습의 피해는 꽤 컸다. 공성전에서 진격하는 적을 향해 화살망을 형성하며 쏘는 것은 빗나가거나 막힐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해 직접 노리고 쏘니 치명상을 입히는 공격이 늘어났다.

병사들이 피해를 입자 케토군을 지휘하던 보병대 대장은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 거기 쫓아가지 마! 튀어나가는 놈들은 목을 베라!"

대장의 외침에 따라 부관들이 사방으로 외쳤고 독전관들이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다시 질서를 되찾으며 뒤로 물러났다.

벌목을 해서 길을 내려던 것이 막히자 게스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가 좀 있었지만 적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서두르면 지겠다.'

산 위에 웅크린 티몬의 방어는 단단했다. 이대로라면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화공은 어떻습니까?"

부관 하나가 조언을 했지만 게스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야 예전에도 했던 일이야. 기록에 있어. 화공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산 중반에 도달하기도 전에 꺼졌다고 하더라고. 더구나 중간에는 바위가 많고 물웅덩이도 심심치 않게 발견 되는 산이야."

"방어가 단단한 이상 적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없군요."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 조금씩 기습해서 숫자를 줄여나가야지. 결국 누가 숫자가 더 많은지가 승패를 가를 거다."

게스톤은 계산을 마쳤다. 적에게 허점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리한 공격을 할 필요는 없었다. 오로지 야밤에 계속 기습해서 적의 숫자를 줄이는 것 뿐.

"우리가 적을 쉽게 공격 못하지만 적도 마찬가지야. 지금부터 산을 둘러싸고 땅을 판다! 깊게 파라!"

계속되는 게스톤의 명령에 산을 둘러싸고 대규모 공사가 벌어졌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뤄지는 공사에 티몬군은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쉽게 물러날 거라면 아예 오지도 않았어!'

게스톤은 산 정상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허허허."

어닐은 산 아래에서 진행되는 공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케토의 애송이가 어느새 이렇게 큰 건지."

게스톤의 성정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성격이 불과 같다고 했다. 화가 나면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를 발산하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어닐은 게스톤이 무작정 공격을 감행하다 큰 피해를 입게 될 거라고 계산했었다.

하지만 계산이 어긋났다.

게스톤은 성질만 급한 애송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겁 먹을 어닐도 아니었다.

"일단 협상을 시도해라.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좋은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어떤 조건을 내걸면 됩니까?"

"물러나지 않으면 신부를 죽이겠다고 해."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요?"

"풀어주긴 왜 풀어줘? 그냥 그렇게 해서 협상을 시도해."

"알겠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협상이 시도되었다. 물론 협상은 결렬되었다. 협상이 결렬되자 어닐은 신부에게 소식을 전했다.

"네 신랑은 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의리를 지킬 생각이냐?"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레나 에레스트 반 클리돈. 클리돈 영주의 무수히 많은 딸들 중 하나였다. 조용한 성격의 피레나는 정략결혼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귀족 영애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하게 된 비극도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결혼 동맹을 저지하기 위해 막히는 일은 종종 일어났다.

피레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닐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는 것.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움직이던 피레나였기에 애정 따윈 없었다. 다만 개인의 명예가 손상된다는 흠이 있었다.

'케토를 선택해 죽음을 선택한다면 명예로운 귀족 여성으로 이름을 남기지만 티몬을 선택하면 살 수 있다.'

납치당했을 때부터 고민했던 문제였지만 답을 내리진 못했었다. 협박한다고 살기 위해 결혼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존심 구긴 케토가 죽어라 계속 전쟁을 걸어올 위험이 있었다.

"걱정할게 뭐가 있지? 게스톤은 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즉, 결혼 동맹은 취소되었다는 소리. 지금부터는 티몬과 케토의 자존심 싸움일 뿐이다. 결혼은 상관없게 되었다."

"하지만 원인은 저 때문이죠."

"그래, 그렇지만 네가 케토에 실망해 티몬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면 그만이다."

"케토는 강합니다. 계속 전쟁을 하게 된다면 티몬도 무너질 겁니다."

어닐은 껄껄 웃었다.

"케토 따위에게 무너질 거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티몬을 무시하지 마라. 그리고 클리돈이 티몬과 손을 잡는다면 케토를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하다."

피레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생각했다.

'가능할까?'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어제의 동맹이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동맹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잘못된 선택은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었다.

계산을 하던 피레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래? 나쁠 것 없지. 우리 티몬의 힘을 보여주겠다."

어닐은 피레나의 속셈을 간파했다. 미래를 맡길만한 가문인지 알고 싶다는 뜻을 읽었다.

'맹랑하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지. 멍청한 여자가 아니니 똑똑한 후손을 볼 수 있겠어.'

대답을 한 어닐은 돌아가 전서구를 날렸다. 오늘과 같은 날을 위해 키워둔 전서구였다.

"가라!"

어닐은 자신의 꿈을 담은 전서구가 노을 속을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밖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신운성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운이 없게도 전쟁에 휘말렸다. 하지만 탈출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산을 둘러싸고 포위하고 있다고 했지.'

어둠이 깔리자 밖에 나가서 여기 저기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를 엿들었다. 얻은 정보는 상당했다. 낮에 있었던 공방에 대한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모조리 돌격해서 다 죽어버리지.'

케토군의 지휘관이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야? 신부가 죽어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며?"

"안중에도 없다고 하더라고. 뭐 신부만 불쌍하게 됐지."

"쉿!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한 병사가 신부를 불쌍히 여기자 동료가 주변을 둘러보며 주의를 주었다. 영주의 결정에 반하는 소리를 함부로 했다가는 좋은 꼴 보기는 힘드니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하여간 너는 입이 방정이야. 조심하라고."

"미안."

병사들이 다시 잡담을 시작했다. 정보가 될 만한 얘기가 더 나올 것 같지 않아 신운성은 물러나려 했다.

그때, 소란이 일었다.

"동쪽이다! 달려!"

예비대가 도시 동쪽을 향해 달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북쪽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적의 침입을 알리는 경종이 북쪽에서 들리자 예비대들은 갈라졌다.

'총공세인가?'

신운성이 그렇게 기대를 할 무렵 내성에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침 내성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이를 자세히 본 신운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시무시하군.'

온 몸을 둘러싼 철갑을 입은 기사들이 도시 안에서 말을 타고 달렸다. 좁기 때문에 기세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기사들이 달려간 이후 신운성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서쪽을 향해 움직였다. 동쪽과 북쪽에서 기습을 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향에서도 기습을 할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신운성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제길.'

신운성과 서은하는 도시 내부를 다시 은밀히 돌아다니며 도시를 살폈다. 정보를 수집하면서 어딘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구멍은 발견되지 않았다.

"돌아가자."

슬슬 날이 밝아올 시간이 되었다. 다시 숨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신운성은 돌아가지 못했다. 일단의 병사들과 사람들이 도시 안을 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살인이다! 쥐새끼가 숨어있다! 샅샅이 뒤져!"

대장장이인 알폰의 시체가 발각된 탓이었다.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니 당연히 대장장이가 소집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를 신경 안 썼다. 다들 어디에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알폰이 보이지 않자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후 도스의 시체도 발견되자 발칵 뒤집혔다.

신운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은 더욱 좋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눈을 빛내며 숨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사람들이 집집마다 뒤지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다. 어딘가의 골목에 숨어도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신운성은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되도록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점점 내성과 가까워졌다.

'저기로 갈까?'

문득 많은 기사들이 내성에서 나왔던 것이 떠올랐다.

"내성으로 가자."

내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수색을 피해 숨어있을 곳이 필요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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