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8 회: 탈출 -- >
이번에 표적으로 삼은 것은 경비병. 알폰과 친하다고 했던 도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도스는 알폰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다. 도스의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경비병이기 때문에 오히려 밤에 일하는 일이 많다.
사정을 훤히 알고 있기에 안으로 들어가는 데 거침이 없다. 신운성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은 무척이나 썰렁했다. 식기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 상태였다. 집이라고 하지만 그저 잠이나 자고 짐이나 쌓아놓는 창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조금 지저분하긴 했지만 휴식을 취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번갈아가며 휴식을 취하던 도중 문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바로 문 뒤로 이동했다.
인기척의 주인은 도스였다. 자기 집에 들어서는 것이기에 도스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경계 근무를 마치고 술집에 들려 한 잔 걸친 뒤에 술을 몇 병 사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얼른 편안하게 누워 술이나 좀 더 마시다 자고 싶었다.
소박한 즐거움을 기대하던 도스에게 문 뒤의 침입자는 그야말로 불행을 몰고 온 악령과 다름없었다.
신운성은 슬그머니 움직여 도스의 입을 막으며 무릎 뒤를 찼다. 놀란 도스는 무방비상태에서 당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때 서은하가 앞으로 움직여 단검을 목에 댔다. 그러자 도스의 반항이 멈췄다.
"몇 가지 알고 싶어서 온 거야. 순순히 대답하면 나쁘게 하지 않아."
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소리 지르면 알지? 바로 목을 따 버릴 거야. 대신 말만 잘 듣는다면 살려줄 수도 있어. 물론 살려주고 말고는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만."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이기는 해도 적을 향해 무조건 적의를 드러내는 남자가 아니었다. 도스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병사가 되었을 뿐이었다. 영주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은 친위대나 기사들이나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습격해서 잡아온 사람들은 어디 있지?"
신운성은 미끼를 던졌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악마로 오해 받기 보다는 차라리 누군가 구출하러 온 사람인 척 해보려는 속셈이었다.
"누굴 말씀하시는지......."
퍽!
도스의 말에 바로 주먹이 휘둘러졌다.
"모르는 척 하지 마라."
"아닙니다. 요새 잡아온 사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잡아온 사람이 많아?"
"네, 얼마 전부터 죽음의 숲 부근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을 경계하던 이들이 잡아왔습니다."
'경계하던 이들?'
문득 작은 마을이 떠올랐다.
'마적이 아니라 병사들이었던 거야?'
어쩐지 생활 기반이 약하다 싶었다.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린 신운성은 포로들에 대한 생각이 미쳤다.
'죽음의 숲 근처에 나타났다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란 소린데.'
구해줘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됐다. 하지만 구해줄 의리 따윈 없었다. 구해준 다음에 오히려 배신하고 기어를 빼앗으려 할 수도 있었다.
'우릴 악마로 만들려는 존재라면.......'
한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알폰을 죽였을 때는 기어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상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만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숲에서 함께 있던 이들은 서로 죽이면 기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모두 죽이고 최후에 살아남는 승자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가 되겠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동정심을 죽였다.
'굳이 살려야 할 이유가 없다.'
죽일 이유는 있었다. 죽이고 기어를 빼앗으면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찾아서 죽이는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존.'
지금의 세계를 파악하고 정보를 모아 생존을 위한 성역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사람들 말고. 강에서 잡은 사람들 있잖아."
죽음의 숲에서 잡힌 사람들에게 관심 없다는 듯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 그들이라면 영주성의 별궁에 감금 되었습니다."
"그래, 그 사람들 중 누가 살아있는 거지?"
"클리돈 영주의 영애와 수행원들 다수입니다. 저도 얘기만 들어서 잘......."
"감히 영주의 배를 습격하다니.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저야 모르죠. 다만 소문에는 결혼 동맹을 막으려 한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
신분이 낮은 병사이기에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럼 감시병들의 위치와 병력의 상황에 대해 말해봐. 거짓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조금이라도 틀리면 네 목부터 따버릴 테니까.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허세. 하지만 칼을 든 자의 허세였다.
두려움에 젖은 도스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주절거리며 자신이 아는 것을 떠들었다. 나중에 목을 딴다고 했으니 적어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여서 열성적이었다.
"그럼 이 성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누구지?"
"가장 강한 것은 둘째 공자님이십니다. 이제 서른이신데 오러 마스터에 오르신 천재니까요."
'오러 마스터?'
신기한 단어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납치된 사람을 구해온 사람 행세를 했지만 이제 연기는 끝이었다. 생존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오러 마스터가 뭐지?"
"네?"
"대답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단검으로 목을 살짝 누르자 도스는 겁에 질렸다.
"그게 그러니까 오러 연공법이라는 것을 익히면 오러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오러 마스터는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 주는 칭호입니다."
"오러 연공법? 그건 어떻게 익히지?"
"그거야 그걸 가지고 있는 가문에서 배우죠."
"넌 아는 거 없나?"
"저 같이 병사는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아무나 배울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오러 연공법 말고. 또 뭐가 있지?"
"네?"
"뭐가 있는지 말해. 특별한 능력 같은 거."
신운성은 계속 괴롭히며 전투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마법과 성기사에 대한 것들도 알게 되었다.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오러 연공법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데 도스는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마법사는 굉장히 보기 힘들며 그저 무섭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 성기사와 사제들에 대한 것들은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파우론이란 신을 믿게 되면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신성력이라 이거지.'
문득 기어의 존재가 떠올랐다. 파우론을 공격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진 자신. 그리고 자신을 강화 시킬 기어.
'믿음이 없으니 소모품으로 쓰기 위해 만든 건가?'
여러 가지 예측 중 전쟁을 위해 보내진 소모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파우론에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은 확실했다.
'네 마음대로 되게 놔둘까보냐?'
반항심이 치솟았다. 자신의 운명을 쥐고 흔든 자에 대한 분노가 거세게 일어났다.
'아직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신운성은 생각을 정리했다. 분노를 배출하는 것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고마웠다."
"살려주시는 겁니까?"
"잘 가라."
신운성은 도스를 살려두지 않았다. 살려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정말 살려두면 골치만 아파질 뿐이었다. 도스가 반골 기질이 있거나 심지가 굳은 성격이 아니란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정보를 얻기는커녕 격렬한 반항으로 인해 소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도스를 처리한 신운성은 밖을 확인해보았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돌아다닐 시간이었다.
'좀 더 쉬어야겠다.'
도스의 시체를 한쪽 구석에 밀어놓은 두 사람은 휴식을 취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다시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둠은 혼자 찾아오지 않았다.
게스톤 이데오스 반 케토.
케토 분지에 위치한 영지, 케토 영지의 영주의 장남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신부가 도착해야 할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다고?"
"시체가 떠내려 온 것으로 보아 납치한 당한 것 같습니다."
"어떤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게스톤은 분노했다. 자신의 신부가 될 여자를 빼앗겼다. 솔직히 이번 결혼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입장이었다. 이미 부인이 있는 상태였지만 결혼 동맹을 위해 하나 더 추가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는 클리돈 영주의 영애. 클리돈 영지는 그렇게 큰 영지는 아니다. 오히려 힘이 없어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편이다. 클리돈의 영주가 약삭빠르게 결혼 동맹을 계속 체결한 것이 생존의 비결. 딸을 팔아 영지를 지킨다는 소리가 나오는 곳이었다.
원래는 관심 없었지만 그래도 부인으로 맞이하면 나중에 생기는 자식에게 영지 상속의 권리가 생긴다. 그때가 되면 자식을 클리돈의 영주로 만들어 세력을 키울 속셈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게스톤만이 아니었다.
클리돈과 결혼 동맹을 맺은 이들의 공통적인 속셈이라 봐야했다.
어쨌거나 대단한 영지가 아니고 거리가 좀 있기에 별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빼앗아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났다.
"아마도 티몬인 것 같습니다."
"뭐? 그 수적 새끼들이?"
바로 이웃한 영지 티몬.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납득해버렸다. 티몬은 원래는 그저 그런 영지였다. 죽음의 숲과 가까워서 토질이 매우 나빴다. 농사도 잘 안되고 풀도 많지 않았다. 농사도 힘들고 목축업도 어려운 영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강에서 물고기나 잡아 수명을 연장하는 정도.
하지만 티몬의 전대 영주는 강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선박을 습격해 털어먹었다.
루스강은 굉장히 유용한 운송로였다. 육로로 움직이는 것보다 배로 움직이는 것이 몇 배나 더 빨랐다. 때문에 다른 영지에서는 티몬의 수적질을 알면서도 상단의 배를 보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육로로 가게 되면 지나쳐야 하는 수많은 영지에게 통행세를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웃한 영지하고만 거래를 한다면 모를까 좀 더 많은 수익을 얻길 원하는 이들은 좀 더 먼 곳에 있는 영지와 교역하기를 원했고 이런 이들에게 루스강은 꼭 필요했다.
티몬은 악착같이 싸웠다. 수많은 영지에서 토벌군을 보냈지만 방어에 특화된 티몬은 함락되지 않았다. 모든 토벌이 실패하자 티몬은 더욱 심하게 수적질을 했다. 결국 화해하며 통행세를 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티몬의 수적질로 피해를 많이 본 영지는 이웃이었던 케토였다. 그래서 평소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티몬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식들이 지금 시비 거는 거 맞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전쟁이다!"
시비를 걸기만 해도 얼마든지 싸워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신부가 될 여자까지 납치했으니 게스톤은 꼭지가 돌아버렸다.
"이번에야 말로 다 죽여 버린다! 빨리 서둘러!"
게스톤의 압박에 결혼 예식 준비를 하던 이들은 전쟁 준비를 위해 날뛰었다.
무기를 든 이들은 서둘러 집합했다. 그리고 바로 출격했다. 클리돈이 바로 이웃한 도시였기에 보급은 나중에 챙겨도 큰 문제가 없었다.
기마병부터 서둘러 달려 티몬에 도착했을 때는 붉은 노을이 깔린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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