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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26화 (26/109)

< -- 26 회: 생사의 경계선 -- >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배를 멈춰 세우는 존재들이 등장했다.

"티몬의 병사들입니다. 잠깐 얘기나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책임자만 올라오라고 해."

배를 책임진 기사단장 앨런은 여러 번 경험한 일이기에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루스강변에 위치한 영지 티몬의 병사들 중 책임자가 배에 올랐다.

"통행세는 얼만가?"

루스강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강변에 위치한 티몬의 영주는 지나가는 모든 배들로부터 통행세를 걷었다.

앨런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루스강을 지나 케토로 가야하기 때문에 배를 이용해야 했고 당연히 통행세를 낼 준비도 했다. 하지만 티몬 병사들의 책임자가 요구한 통행세는 과했다.

"뭐? 반을 달라고?"

"그렇소."

배에 실린 화물의 반을 내놓으란 말에 앨런은 어이없었다.

"이건 상행을 나가는 배가 아니다. 영주님의 영애께서 혼인을 위해 타고 계신 배다. 혼수를 뜯어갈 게 아니라면 요구를 철회해라."

"그렇게는 못하겠소. 반을 내시오."

티몬 병사의 책임자는 단호했다.

"지금 우리와 적대하겠다는 건가? 갑자기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뭐지?"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단순히 통행세를 걷겠다는 것뿐인데. 반을 내시오."

훤히 보이는 억지였다. 앨런은 검을 뽑으며 생각했다.

'티몬은 우리가 케토와 혼인동맹을 맺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가?'

"네가 우리 영주님의 명예를 모욕하려는 것이냐?"

클리돈 영지 소속인 앨런은 영주의 명예를 들먹이며 검을 뽑았다.

"통행세 대신 검을 뽑은 건가? 후회할 것이오."

책임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배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혼자 올라왔기에 전투가 벌어진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강으로 뛰어내리는 것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노를 저어라! 전속 전진이다!"

앨런은 바로 명령을 내렸지만 한 발 늦었다. 티몬 병사의 책임자가 배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티몬의 배들이 밧줄이 달린 갈고리를 던져 배에 걸었다. 아울러 노가 나온 부분에 접근해 부러트리는가하면 배의 앞을 작은 배로 막아섰다.

"전원 전투 준비!"

그냥 뚫고 가는 것이 어렵게 되자 전투 명령을 내렸다.

사방에서 티몬의 병사들이 배로 기어 올라왔다.

"클리돈의 영광을 위해!"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함성을 내지른 앨런은 근처의 병사 하나를 베었다. 오러를 머금은 검은 병사의 목을 단숨에 날렸다.

이후 화난 맹수처럼 앨런은 날뛰었다. 이리 저리 종횡무전하며 배로 올라오는 적들을 죽였다. 하지만 배에서의 싸움은 티몬이 한 수 위였다.

"구멍을 뚫어라."

"정말요? 배에 실린 물건이 위험해지는데요?"

"뚫어. 영주님이 명하신 일이다."

책임자의 말에 부관은 그대로 명령을 전달했다. 잠시 뒤 티몬의 병사들은 배에 더 오르지 않고 구멍을 뚫었다.

배에 구멍이 뚫리자 물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커다란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티몬의 병사들은 작은 배를 약간 떨어트렸다. 그리고 살기 위해 물 위로 나온 이들을 생포하기 시작했다.

앨런도 생포되었다. 싸우기 위해 발악했지만 멀리서 그물을 던져 움직임을 봉쇄하니 결국 잡혔다.

신운성은 전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뭐 저런?'

사람 목이 단숨에 잘려 허공에 비산하게 되는 묘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검으로 무엇인가 완전히 잘라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검으로 상대의 몸을 찍는 순간 잡아당기며 베는 것이 보통이다. 싹둑 쳐내는 것은 보통 힘과 기술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직접 해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해내는 존재가 있었다.

'저건 뭐야?'

놀라서 자세히 봤더니 검이 살짝 빛나고 있었다. 신운성은 검이 빛나는 것에 비밀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뭔지 몰라도 무서운 동네야.'

좀비가 나오는 숲에 이어 사람 목을 댕강댕강 날리는 실력자. 절대 지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인간도 물속에 들어가니 잡히네.'

사람 목을 쉽게 날리는 기인도 물에 빠지자 별 힘을 쓰지 못하고 잡혔다. 그물을 던져 움직임을 어렵게 하니 검을 든 팔이 자유로워도 몸이 자꾸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었다. 더구나 기다란 창으로 배 위에서 콕콕 찌르며 공격하니 검으로 이를 막아보려다 지쳐서 잡혔다.

'그나저나 저 놈들은 도시 사람인 것 같은데.'

물 위에 떠 있던 이들을 모두 사로잡자 일단의 배들이 도시의 부두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반면 나머지 배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수색을 하며 가라앉은 배를 인양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뭐하는 놈들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후가 되자 신운성은 서은하와 교대해 휴식을 취했다. 잠은 조금만 잤다. 해지기 전에 움직이는 편이 낫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동굴을 나와 산을 타고 올라갔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강철 체력과 근력을 넘어선 괴력이란 능력치는 산을 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최대한 사람이 안 보이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산 위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짙게 깔린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감시자들이 위치한 곳을 피해 도시 안쪽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허름한 집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집은 허름했고 안에는 나이든 남자 한 명 뿐이었다.

'좋아.'

일부러 외곽의 작은 집을 골랐는데 적당했다.

"내가 먼저 시험해 볼게."

알약을 시험하기 위해 신운성은 잠입했다. 평야에서 발견한 작은 마을에서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땐 안전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평야에서는 추적이 쉽다. 납치해봐야 멀리 가기도 힘들다. 더구나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어서 사람 하나 없어졌다는 것을 알면 모두 움직일 위험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알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달랐다. 커다란 도시에서는 누구 한 명 죽어도 외부 침입자를 의심하기는 어려웠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용의자가 많다는 소리다. 진실을 가려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신운성은 알약을 먹고 남자를 깨웠다.

눈을 뜬 남자는 누군가 입을 막고 있어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온 몸이 묶인 상태인데다 입이 막혀 있었다. 더구나 목에는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느껴졌다.

램프의 불빛을 등진 신운성의 얼굴을 본 남자는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조용히 하란 의미에서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입에 물린 천에 손을 대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몸짓을 이용한 소통은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천을 입에서 빼내자 남자는 덜덜 떨면서 질문을 던졌다.

"누구십니까?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얘기를 듣던 신운성은 남자가 말을 하자 실시간으로 상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이건 학습 수준이 아니라 아예 통역 수준이잖아?'

좋은 현상이었다.

"나. 누구? '말 배우기' 원한다?"

신운성은 남자가 내뱉은 단어를 조합해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금방 습득한 단어들이 너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아는 단어들 사이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섞여 나오자 더욱 공포에 질렸다.

"살려주시오. 원하는 건 다 주겠소."

남자는 애원했다.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이 돋보였다. 하지만 신운성은 강도질을 하려고 숨어든 것이 아니었다.

'계속 떠들어.'

상대에게 계속 말을 시키기 위해 신운성은 입에 손을 대고 떠들라는 손짓을 했다. 이에 남자는 무엇을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상대가 질문을 던진다면 무엇이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냥 말하라는 식이었다.

'대체 왜 이러지? 뭐야?'

의문은 잠깐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부터 나이 성별 직업, 인간관계 등 생각나는 걸 모두 말했다.

신운성은 그걸 들으며 말을 어느 정도 익혔다. 문법의 구조와 사용법을 파악하고 단어들을 빠르게 습득했다.

"이건 뭐지?"

이어서 신운성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전부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그제야 남자는 상대가 말을 배우려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뭐하는 자지?'

무섭고 두려웠다. 한밤중에 협박을 당하는 것도 두려운데 말을 배우는 속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자신을 방문 한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제발 좋은 존재이길. 파우론이시여. 저를 굽어 살펴 주소서.'

남자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신운성의 질문에 답했다. 집안의 물건들은 물론 몸짓을 통해 행동을 묘사하는 동사들에 대한 것도 알려주게 되었다. 수업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찾아올 사람 있나?"

"없습니다."

새벽이 되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하는 일이 뭐지?"

"대장장이입니다."

"살고 싶나?"

"제발 살려주십시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럼 살려주겠다."

"감사합니다."

"오늘 일 꼭 나가야 하나?"

"아닙니다. 일 없어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좋아. 이름이 뭐지?"

"알폰입니다."

"그게 전부인가?"

질문을 받은 알폰은 신운성이 자신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등골이 더욱 오싹해졌다.

'어쩌면 경전에 나오던 악마들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자 무서워졌다. 평소 신을 그리 잘 믿는 성격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믿으니 그냥 같은 종교를 믿어왔을 뿐이었다. 이는 생활의 일부와 같았다. 그런데 이질적인 존재를 만나니 갑자기 악마의 존재가 떠올랐다.

침을 꿀꺽 삼킨 알폰은 덜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거짓말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악마와 대항하겠다는 생각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악마는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성은 고귀한 일족이나 길드 사람들이나 가지게 됩니다. 우리 같은 평민은 그냥 직업이나 동네 이름을 붙여서 구분할 뿐입니다."

알폰은 순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대답했다. 대답을 하는 동안만큼은 더 살 수 있기에 차라리 질문이 멈추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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