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회: 생사의 경계선 -- >
광활한 벌판이었다. 사람은커녕 짐승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벌레도 보기 힘들었다.
'이상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죽은 땅 같잖아.'
땅이 죽어버리면 생명체는 살기 힘들다. 하지만 이상했다. 숲을 벗어났을 땐 물이 흐르는 시내를 발견했다. 물이 있다면 생명이 살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숲에서부터 지금까지 움직이는 생명체는 인간 밖에 없었다.
하루를 꼬박 걸었다.
다시 밤이 신운성은 계속 잠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지만 강철 같은 체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신운성도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확 트인 공간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언제 어디서 적이 다가와 목에 칼을 박아 넣을지 무서웠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지킬게. 푹 자 오빠."
서은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그래. 잔다. 무슨 일 있으면 깨우고."
"응."
신운성은 잠들었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였다.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서은하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지켜주고 배려해주던 신운성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무방비 상태로 빠져든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서은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참 많았다. 너무나 많아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크고 무서운 곳. 거기서 겨우 얻은 신뢰하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힘을 낼 수 있었다.
하루 휴식을 취하고 움직이게 되자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렸다. 강철 체력의 소유자답게 회복도 빨랐다. 두 사람은 꾸준히 움직였다. 먹을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신운성은 상점에서 계속 음식과 식수를 구입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만 해도 3만7천 포인트가 넘었다.
"포인트가 그렇게 많아?"
"응. 아무래도 기어 때문인가 봐."
서은하의 기어는 은색이었다. 행운을 100을 넘겨 강운이 되자 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강운을 얻게 되자 동전 하나에 상점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가 2배가 되었다.
하지만 신운성은 달랐다. 무려 10배에 달하는 포인트를 얻는 것이었다.
"다른 능력치를 먼저 올렸다면 색이 달라졌겠지?"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머리카락 색깔이 이렇게 변한 것도 기어의 영향 같으니까."
"그럼 체력 먼저 올린 사람은 무슨 색일까?"
두 사람은 기어를 가진 이들의 외모 변형에 대해 떠들며 계속 움직였다. 정해진 방향은 없었다. 단지 계속 남쪽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었다. 좀비가 바글거리는 숲에서만 멀어질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3일을 계속 걸었다.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은 없었다. 서은하도 상점에서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사서 신었다. 두 사람 다 움직이기에 편한 복장을 한 상태였다. 할버드는 이미 망가트려 날만 인벤토리에 넣은 상태. 방패를 등에 지고 메이스만 어깨에 걸친 상태로 계속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 법 했지만 두 사람은 별로 겁먹지 않았다. 가진 포인트가 넉넉하니 아직 음식 걱정도 없었다.
"저기 마을인가 봐."
그렇게 움직여 발견한 것은 작은 마을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음성이 들렸다.
-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됩니다.
- 상점의 상품 목록이 업데이트 됩니다.
"어?"
신운성은 서둘러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정보다.'
퀘스트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 의뢰를 넣는다는 것. 의뢰의 정보에 따라 상대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퀘스트 목록에는 많은 것들이 떠있지 않았다.
딱 하나만 존재했다.
*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라!
새로운 세계에 도착해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들의 언어를 능숙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습득하라! (언어학습알약이 지급)
성공: 스탯 포인트 10.
실패: 없음.
'언어학습알약?'
서둘러 퀘스트를 수락하자 알약이 10개 주어졌다. 언어학습알약은 먹으면 말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먹으면 1달간 효과가 지속되는데 아기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모르는 언어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퀘스트가 나왔다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소린데.'
약을 먹고 말을 배운다. 참 단순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도 낯선 세상에서 보게 되자 서로 살인을 하는 상태로 돌입했다. 하물며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에게 무작정 호의를 보일지는 미지수였다.
'운이 좋으면 일이 잘 풀리겠지만.......'
운이 나쁘면 가진 것을 전부 털리고 노예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그냥 죽을 수도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다가서는 것은 신운성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
"응."
서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을 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마을은 무척이나 작았다. 건물은 총 9채였다. 마굿간으로 보이는 곳이 하나 있었고 주변에 작은 밭이 있었다.
농사 같은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이는 곳이었다.
'대체 뭘 해먹고 사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먹을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을에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만한 식량 생산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밤이 되자 신운성과 서은하는 몰래 마을에 접근했다. 어떤 곳인지 좀 더 가까이 가서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으쓱한 밤은 두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지워주었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불이 꺼진 상태는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나무판자로 된 벽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시끄러운 소리가 집에서 들렸다.
슬그머니 다가갔지만 외부인의 접근을 알려줄만한 존재는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개라도 키웠다면 개가 접근을 알고 짖었겠지만 그런 충실한 파수꾼은 없었다.
'좋아.'
신운성과 서은하는 벽의 틈 사이로 안을 바라보았다.
안의 풍경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었다. 남자들이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뭐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말을 모르기에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른 곳들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운성은 의문을 가졌다.
'대체 뭐하는 곳이지?'
창고처럼 쓰이는 것 같은 건물 두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만 있었다. 정상적인 마을이 아니란 소리였다.
'무기가 있었어. 그렇다면 마적 같은 것일 수도 있어.'
신운성과 서은하는 조용히 물러났다.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수상했다.
수상하면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두 사람은 마을에서 조용히 벗어났다.
두 사람은 계속 남하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강을 만났다.
"살았다."
강 주변에는 많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에 바로 뛰어들거나 하지 않았다. 좀비가 나온 세상이다. 강에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강에 너무 접근하면 위험해 질 가능성이 있었다.
해서 신운성은 강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을 찾아 강가에 사는 사람을 보고 행동을 배울 생각이었다.
'분명 사람이 있을 거야. 마적 같은 놈들이 근처에 산다면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유통로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강을 따라 반나절을 더 걷자 하나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는 강가에 위치한 험한 산 위에 세워져 있었다. 산 아래에는 강을 이용할 수 있는 부두가 있었다.
'굉장히 방어적인데?'
중요한 것은 산에 위치한 도시에 접근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떤 곳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다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밤이 되자 접근은 쉬웠다. 빛이 없으니 노출될 위험이 적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움직이는 것도 어려웠다.
'장애물이 너무 많아.'
마을을 발견했을 땐 밤에 접근이 쉬웠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가는 달랐다. 발에 걸리는 것이 꽤 많았다.
때문에 이동속도가 느렸다. 손전등이라도 꺼내서 사용한다면 이동은 편해지지만 멀리서 불빛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느려진 속도 때문에 두 사람이 산 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굉장히 깊어진 상태였다.
"이대로 산에는 못 올라가겠다. 위험하니까 어디 숨어 있자.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자 했지만 앞이 보이질 않으니 결국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새벽이 다가와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자 신운성과 서은하는 빠르게 움직이며 숨을 곳을 찾았다. 산이 꽤 험했기 때문에 숨을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작은 동굴을 발견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손전등으로 안을 비춰보니 빈 동굴이었다. 잠시 비를 피할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짐승이 살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동굴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상점에서 모포를 구입했다. 업데이트 된 상점의 상품에는 각종 의류를 비롯해 많은 물품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휴지였다. 휴지가 생기는 볼 일 보는 것이 무척 편해졌다. 엉덩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텐트나 각종 현대적인 물품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물건은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
대신 두툼한 모포가 하나에 1포인트로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했다.
"모포가 휴지랑 같은 가격이라니 웃기지 않아 오빠?"
"그러게. 미친 물가야."
모포를 깔고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지금까지 계속 움직이느라 피곤했기에 쉬고 싶었다. 아직 안전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비 같은 것이 없는 곳이라 마음은 편했다.
"먼저 자."
"응."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둘 다 한꺼번에 잠들 순 없었다. 아무리 마음이 편해도 최소한의 경계는 해야만 했다.
서은하가 잠든 것은 아침. 신운성은 하루 종일 동굴 밖으로 보이는 강을 바라보며 주변을 살피기만 했다.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롭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커다란 배가 강을 타고 지나가는데 갑자기 수많은 배들이 나타나 둘러쌌다. 그리고 뭔가 얘기가 잘 되지 않았는지 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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