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회: 생사의 경계선 -- >
살인자들은 계속해서 달렸다. 좀 더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서.
처음부터 배신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숲을 벗어나자 다른 마음이 생겼다. 모두 피로에 지쳐 있는 상황. 불침번도 없었다.
'이들을 다 죽이고 기어를 빼앗는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지금도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더 많은 힘을 얻게 된다면 그야말로 초인이 될 수 있는 상황.
초인이 된다면 두려워 할 것은 더 적을 것 같았다.
또한 타인의 명령을 듣기보다 내리는 쪽이 될 것 같았다. 명령을 듣는 것은 사실 성미에 맞지 않았다.
뭉쳐야 할 상황이기에 꾹 참고 있었을 뿐. 배신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함께 움직이며 사람을 약탈하고 즐기던 이들이 성주혁의 캠프에 합류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언덕만 넘으면 숨을 수 있을 거야."
두 다리로 달리는 것이지만 바람처럼 빨랐다. 앞을 가로 막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허허벌판만이 펼쳐져 있을 뿐.
자유로운 늑대들처럼 계속해서 달린 살인자들은 결국 언덕을 넘었다.
"응? 저기 뭐야?"
언덕을 넘은 후 도망칠 방향을 정하기 위해 살피는 데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보였다.
"가보자."
그때였다. 메시지가 들렸다. 보너스와 함께 외모를 변형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적용했다. 그랬더니 몸이 커졌다.
"크크크, 이거 좋은데?"
몸이 커지며 근육만 탄탄해진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상징도 더욱 우람해졌다. 찢어진 옷은 바로 벗어 던졌다. 알몸이 된 이들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식칼을 쥐고 움직였다.
"이야, 여자다."
"크크크크."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아름다운 굴곡을 가진 여자였다. 순간 살인자들의 거시기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약탈하고 범하고. 사회의 법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이들의 천국이었다.
몸에 흐르는 강인한 힘에 취한 이들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다가섰다.
그리고 목표로 한 곳에 앉아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신운성은 처음부터 자고 있지 않았다. 서은하를 먼저 재운 이후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은 취했지만 절대 자지 않았다. 상점에서 음식과 음료를 구입해 먹은 뒤에는 새로운 옷을 사 입었다.
옷은 매우 간단한 형태였다. 헐렁한 튜닉과 바지였다. 옛날 사람들이 입을만한 옷이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옷을 사 입고 난 다음에는 가죽 부츠와 장갑을 샀다. 몸이 커지며 발도 커져서 신발도 쓸모없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장갑은 손목의 기어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손목까지 덮는 커다란 장갑을 끼자 기어는 모이지 않았다.
다음에는 벨트로 사서 허리를 조였다. 간단하게 의복을 해결한 뒤에는 인벤토리를 살폈다. 그러면서 평화로운 경치를 감상했다.
'대체 뭐하는 곳일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정신은 끊임없이 의문을 토해냈다. 답은 없었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이리저리 굴리며 상상했다.
이젠 몸까지 변했다. 마치 누군가의 농간에 의해 움직여지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손목의 기어가 몸을 제어하기 위한 도구로 느껴졌다.
현재 상황에서는 기어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기어에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떻게 되먹은 건지.'
한숨을 내쉬자 밀려들어오는 피로. 신운성은 몸을 일으켰다. 앉아있으니 눕고 싶었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하지만 불침번은 필수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잊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녀석들이 있으니까.'
성주혁 무리가 있기에 신운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 돌변해서 덮쳐올지 모르니까.
졸음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신운성은 피곤한 상태에서 계속 버텼다. 그때 음성이 들렸다.
-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어디에 쓰는지 모를 정신력이란 능력치였다.
'3일 동안 전투했는데 그건 안 쳐주나? 뭐 이래?'
정말 알 수 없는 능력치였다. 그래서 스탯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신운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움직였다. 피곤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자꾸 쉬고 싶어지기에 뭐라도 하며 졸음에 대항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냈다. 서은하는 깨우지 않았다. 푹 쉬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때 멀리서 언덕을 넘어오는 존재들이 보였다.
언덕을 넘은 자들은 금방 빛에 휩싸였다.
'유저?'
신운성은 무기를 빼들었다. 할버드는 놔두고 방패와 메이스를 들었다. 그리고 서은하를 깨웠다.
"일어나."
서은하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신운성이 계속 깨우니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났다.
"준비 해. 적인 거 같다."
적이라는 말에 서은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어서 옷을 추스르는 모습이 보였다. 살이 빠지며 옷이 상당히 헐렁해졌다. 흘러 내지리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며 무기를 든 서은하는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달려오는 이들은 모두 벌거벗은 상태였다. 신발도 신지 않았다. 모두 커다란 덩치를 지닌 근육질의 남자들이었다. 달리면서 가운데 다리가 덜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서은하는 기분이 나빠졌다.
반면 신운성은 긴장했다.
'유저. 몸의 크기를 보아 나보다 더 강하거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자들의 기세가 흉흉했다. 하지만 신운성은 겁먹지 않았다. 적에게 무기라고는 손에든 식칼뿐이었다.
"잡히지 마. 잡히면 당한다."
"응."
잡히지만 않으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신운성은 자세를 잡았다.
달려오던 이들은 곧 지척에 도달했다.
대화는 없었다. 양쪽이 다 무기를 빼들고 있는 상황. 상대의 적의를 확인한 이상 남은 것은 전투뿐이었다.
"하압!"
빠르기 휘둘러진 식칼은 방패에 막혔다. 방패를 긁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메이스가 휘둘러졌지만 바람만 갈랐다. 적은 빠르게 피했다.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 서은하가 맡은 뒤쪽에서도 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훌륭하게 방어해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한 놈이 한쪽에 놔둔 할버드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없다.'
실수였다. 무기를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은 상대가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자!"
신운성이 할버드를 주우려하는 적을 향해 달려들자 서은하도 빠르게 뒤를 따랐다. 이어서 두 사람을 포위하고 있던 3명의 적들도 따라 붙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사람이 한 박자 빠른 법. 신운성과 서은하는 따라잡히기 전에 할버드를 주우려는 자를 막을 수 있었다.
"컥!"
허리를 숙이던 적은 메이스를 맞고 뻗었다.
"뒤처리!"
신운성은 바로 뒤따라온 적들의 공격을 방패로 막았다. 그 틈에 서은하는 쓰러진 자의 머리를 박살냈다.
'위험하다.'
식칼만 들고 있을 뿐인데도 적들의 능력이 상당했다.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길!"
적들 중 하나가 외치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죽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뒤로 물러난 것이다.
'살았다.'
신운성은 뒤로 물러나는 적을 쫓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잠시만 정리 좀 하고."
신운성은 동전이 수북이 떨어진 시체 곁으로 움직였다.
'살인을 한 건가.'
몸은 변했지만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성주혁과 함께 했던 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신운성은 쉽게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사람을 죽이고 강해졌겠지. 그리고 들켜서 도망쳤고.'
근방에 다른 존재는 보이지 않았으니 결국 금방 나타난 적은 함께 했던 이들 중 하나란 소리였다. 무엇보다 죽은 자의 얼굴은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변형으로 인해 몸이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얼굴까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하진 않았다.
기어를 합성하자 엄청난 능력이 스탯 포인트가 쌓였다.
'몇 명이나 죽인 거야?'
상당히 많은 포인트였다. 신운성은 빠르게 스탯 포인트를 투자했다.
이름: 신운성
강운: 15
강철 체력: 14
괴력: 13
신속: 13
정신력: 1
골고루 분산된 능력치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도망갔던 적을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성주혁과 일행들이 나타났다.
언덕을 넘어서던 이들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변형이 시작되자 몸이 커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찢어진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된 이들은 손에 무기만 든 채 다가왔다.
24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훌러덩 벗고 무기만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도망칠 준비 하자. 할버드는 부셔."
"응."
가지고 도망가기가 불편한 무기라 창대를 파괴했다. 떼어낸 창날 부분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이기에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넣어두었다.
"신운성?"
"맞아."
"그 놈들은?"
"저쪽으로 갔어."
신운성은 경계하며 성주혁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이 시체는 내가 가져가도 되나?"
성주혁이 시체를 가리켰다. 신운성은 필요 없는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뒤에 있던 이들이 시체를 끌고 가더니 난도질했다. 조각을 내더니 사방에 뿌렸다.
"고맙다."
성주혁과 일행들은 바로 떠났다. 긴 대화는 시도하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면 신운성은 서은하를 이끌고 바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주혁은 관심이 없는지 신운성이 가리킨 방향으로 일행을 끌고 움직였다.
잠시 이들의 등을 바라보던 신운성은 서은하를 이끌고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복수전에 낄 여유는 없다.'
어떻게 되먹은 세상인지 알아내는 것이 신운성에게는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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