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2 회: 생사의 경계선 -- >
죽음과 마주한 시간이 벌써 하루가 지났다.
꼬박 하루를 좀비를 쓰러트리며 돌파하는 중이었다. 아니, 돌파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속도. 돌파보다는 행군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상태다.
"썩을 좀비."
"이미 썩었잖아. 시첸데."
타성에 젖어드는 사람들은 이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긴장 속에서 좀비를 물리치며 행군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체력 소모가 심했다. 기어를 통해 능력치를 올리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어려웠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걸까?"
"몰라. 생각하지 마. 계속 머리나 박살내."
어둠 속에서는 손전등의 불빛에 의지해서 싸웠다. 싸우다 배가 고프면 교대하고 미리 만들어둔 주먹밥을 먹고 물을 마셨다. 잠은 아무도 자지 못했다. 잠깐 숨 돌리며 떨어진 체력을 약간 보충하는 것이 전부.
사방에 보이는 것은 좀비와 나무뿐.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것은 쓰러진 좀비의 시체뿐. 지나온 길에 놓인 좀비들만이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다고 알려줄 뿐이었다.
'미치겠군.'
시체의 냄새. 부족한 수면. 계속되는 전투.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좀비들과 싸우며 공포를 어느 정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벌써 무너졌을 상황.
신운성은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아직 멀었어.'
끝이 보이질 않는다. 미칠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결국 죽음뿐이야.'
좀비 라인을 뚫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탈출해야만 했다. 다른 쪽으로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낌상 숲 전체에 좀비로 된 방벽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운성도 뚫고 가자는 말에 군말하지 않고 따른 것이다.
'조금만 더.'
다시 회복된 좀비들이 덤벼든다. 신운성은 빠르게 머리를 박살냈다. 꼬박 하루를 싸우며 얻게 된 기어로 능력치를 체력을 꾸준히 올렸기에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2일이 지났다.
사람들은 겨우 버티고 있다. 속 시원하게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그러나 좀비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달려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이제 농담도 하지 않았다.
말 할 힘도 아껴야 했다. 교대해주는 사람들도 체력도 그리 회복되지 않았다. 미리 만들어둔 음식들은 거의 다 떨어졌다.
죽음 속을 헤치고 나가는 이들의 마음에 조금씩 절망이 스며들었다.
박살내고 또 박살내고.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좀비들의 머리를 계속 박살내다보니 이제는 이골이 날 정도였다.
죽음과 마주한 상태. 여기서 쓰러진다면 바로 죽음이었다. 때문에 괴롭고 힘들고 절망스러워도 멈출 순 없었다.
생사의 경계선에 선 이들은 묵묵히 싸웠다.
좀비라는 죽음의 장벽을 돌파해야만 했다. 장벽을 돌파해야만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다.'
신운성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만약 뒤쪽에 남아있었다면.......'
숲을 탈출할 기회를 잃은 채 서로 죽고 죽이다 좀비의 밥이 됐을 확률이 높았다.
'할 수 있어!'
부정적인 생각은 멈췄다. 절망이 가슴을 쥐고 계속 흔들었지만 지금까지 온 만큼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돌격대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좀비들을 쓰러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3일째.
미리 만들어놓은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식수도 떨어져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얼마 안 남았어요!"
하지만 희망이 보였다. 숲의 끝이 드디어 보인 것이다.
멀리. 좀비가 보이지 않는 공간이 보였다.
나무만 있는 숲. 그리고 그 뒤에 살짝 보이는 평지.
평지를 보자 투지가 싸우는 자들의 가슴에는 투지가 샘솟았다.
조금만 더 가면 자유다.
"힘냅시다!"
성주혁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격려했다.
"하나!"
조형민은 구령을 붙였다. 그와 동시에 일제히 무기가 휘둘러졌다.
좀비들의 머리가 박살났다.
"둘!"
구령과 함께 한 걸음 전진한다.
"하나!"
다시 무기를 휘두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전진한다.
길고 긴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의 끝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구령이 조금씩 빨라졌다. 사람들은 숨가빠했지만 모두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하나!"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둘!"
마지막으로 막고 있던 좀비를 박살내자 사람들은 일제히 달렸다. 좀비들이 몸을 돌려 따라잡으려 했지만 사람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신운성은 뒤쫓아오는 회복된 좀비들을 박살내며 움직였다. 기어가 떨어진 것을 보았지만 줍지도 않았다. 기어에 대한 욕심 때문에 숲을 벗어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계속 달린 돌격대는 숲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좀비로 가득했던 숲을 벗어났다.
'됐다.'
숲을 빠져나온 신운성은 서은하와 함께 좀 더 걸었다. 졸려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숲 근처에서 잠을 청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인지 비틀거리며 숲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움직였다.
"여기 물입니다!"
숲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깨끗한지 어떤지 알 수는 없었으나 식수가 부족했기에 사람들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물을 떠 마셨다.
하지만 신운성과 서은하는 인벤토리에서 남은 물을 꺼내 마셨다.
갈증을 해소한 이들은 멀리 보이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하지만 숲의 나무가 보이니 잠들지 못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신운성은 피식 웃었다.
'지긋지긋하겠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3일 동안 좀비를 죽이며 돌파했던 것은 대단한 일이다. 여기에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적이란 것은 그만큼 이루기 어려운 일이란 소리다.
죽음의 공포와 싸워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숲을 바라보는 신운성의 눈도 곱지는 않았다.
"움직이자."
졸려서 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자는 동안에 좀비가 다가와 물리면 어쩌나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움직이면서 신운성은 고민에 빠졌다.
'그나저나 저 사람들하고 같이 움직여야 할까?'
신운성은 숲을 함께 헤쳐 나온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함께 싸운 전우였다. 하지만 함께 모인 목적은 끝이 났다.
숲을 빠져나가는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은 원래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난 저들을 모른다.'
전우? 동료? 좋은 말이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함께 싸웠지만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뭉쳤을 뿐이다. 어떤 이상을 가슴에 품고 의기투합한 것이 아니다.
서은하라면 믿을 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잠든 사이에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면 어쩌면 기어를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나면 영웅은 필요 없어진다.
'저 사람도 참.'
성주혁이 사람 좋게 웃으며 부지런히 사람들을 다독이며 움직였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모두 웃고 있다. 하지만 웃음의 느낌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이제부터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
신운성은 더 함께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답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 느낌 호감이 계속 이어져 죽을 때까지 친우로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년을 동료로 지내다가도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때문에 신운성은 잘 모르는 사람은 믿지 않기로 했다.
사회라는 틀이 굳건한 곳이라면 사회를 믿고 타인을 어느 정도 신뢰를 해볼 순 있다. 하지만 현재 있는 곳에는 제대로 된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누가 무슨 짓을 해도 그냥 해프닝일 뿐.'
야생이란 것이 그렇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배고파서 좀 잡아먹은 거 가지고 뭐라고 따지는 것이 우습다. 먹히기 싫으면 도망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죽이면 된다. 간단하다.
"우린 그만 가보겠습니다."
"네? 왜요? 함께 움직이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냥요. 가보겠습니다. 따라오지 마세요."
성주혁은 무척 아쉬워하며 잡았다. 하지만 신운성은 끝까지 뿌리치고 서은하를 끌고 서둘러 떠났다. 함께 있어봐야 좋을 것 없다는 예감이 그를 더욱 이끌었다.
- 튜토리얼을 완수했습니다. 보너스로 10 스탯 포인트와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1000 지급 됩니다.
- 능력치를 신체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능력치를 신체에 적용하게 될 경우 신체는 능력치를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의 몸으로 변합니다.
멀리 떨어져 숲도 그리고 사람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 메시지가 연속해서 들렸다.
"어? 오빠. 튜토리얼이래요."
"그래. 나도 들었어."
두 사람은 어이없어 했다. 메시지에 의하면 두 사람이 지금까지 겪은 일이 튜토리얼이란 소리였다.
'대체 뭘 가르치려고 했던 거야?'
제대로 된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좀비가 나타났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사방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사람은 믿을 수 없었고 급기야 서로를 죽이는 사태로 발전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것? 독심?'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을 가르쳐주려 한 튜토리얼인지 의미를 파악해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분명 이런 튜토리얼을 준비한 의도가 있다.'
난데없는 납치였다. 이유가 없을 리가 없었다.
'협동심과는 거리가 멀어. 하지만 협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어. 아니, 정말 살 수 없었을까?'
지나왔던 상황을 되돌아보던 신운성은 자신의 기어를 보다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많이 변했다는 것.
'야생의 짐승처럼 만들려고 한 건가?'
겨우 생각해낸 답이 옳고 그른지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다만 바람만이 살며시 스쳐 지나갔다.
============================ 작품 후기 ============================
오늘이 지나기 전에 겨우 써서 한 편 올려봅니다.
금요일이네요. 모두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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