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회: 생사의 경계선 -- >
임시 캠프.
48명의 인원이 모인 곳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잡동사니가 중앙에 잔뜩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움막들이 보였다.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수집 활동을 위해 밖으로 나간 탓이다.
'열악하다.'
한 눈에 보이는 환경. 신운성은 가슴이 답답했다. 캠프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 다급함이 자라났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배신의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신운성은 판단했다.
'여길 벗어난 이후에는 어찌 될지는 몰라도 일단 벗어날 때까지는 협력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큰 분쟁 없이 모여 있다는 것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습격자들이 괜히 습격자가 된 것이 아니다. 공포와 초조함, 그리고 이기심이 겹쳐 공격적으로 만든 것이다.
"작전은 내일 시작합니다. 그럼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조형민은 자리를 안내해주고는 돌아갔다. 좀비와의 전투 이전에 준비할 것은 많았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 외에도 여분의 무기를 좀 더 만들어놔야 했다. 숫자는 신운성과 서은하까지 합해서 총 50명.
더 이상 인원을 모으고 싶어도 시간을 더 낭비할 순 없었다.
조형민은 바로 성주혁을 찾았다. 자신이 본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굉장한 전력을 얻었으니 어떻게 활용할지 검토해봐야 했다.
"정말 그렇게 강하다면 전방에 세우는 게 좋을까?"
성주혁은 신운성이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는 얘기에 흥분했다. 강한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아니야. 그러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도 있어.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하긴 부려먹는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그럴 수도."
전투에서 가장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은 죽음과 마주본다는 의미와 같다. 그런데 신뢰 관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맨 앞에서 길을 뚫으라고 하면 사람에 따라 심하게 반발하기 마련이다.
"그럼 어쩌지? 너무 대우해줄 수도 없잖아."
하지만 잘 싸우는 사람을 대우해주는 것은 그 사람이 싸움에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호의를 보이고 대우해주는 것이다. 싸우게 하지 않을 거라면 호의를 보일 필요도 대우해줄 이유도 별로 없다.
"그것보다는 자율적으로 위험한 곳에 도움을 주는 프리롤을 맞기자."
"그것도 나쁘지 않네."
좀비 라인을 돌파하다 보면 분명 위험에 처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숲을 태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자칫 하다가는 모두 다 함께 불타 죽는 수가 있다. 무엇보다 얼마전까지 미친 듯이 비가 와서 잘 탈지도 의문이었다.
남은 것은 진형을 만들어 좀비 라인을 돌파하는 방법뿐이었다. 신운성이 앞장서서 길을 여는 것도 좋지만 위험한 곳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시키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먹을 것은 어떻게 할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 준비해야지. 주먹밥이나 그런 걸로."
대화 주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작전이라고 해도 정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황.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밖에 없었다.
진격의 날이 밝았다. 사람들은 모두 결의에 찬 눈으로 식사에 임했다. 식사 시간 중에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긴장 때문에 소화가 안 될 것 같아도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다.
"맛있구만."
침묵하던 이들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밥을 꼭꼭 씹는다. 찬이라고는 소금뿐인 주먹밥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음식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인근을 싹싹 뒤져 가져온 물량은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이는 중이었다.
"좋다."
숲의 공기. 햇살. 지긋지긋한 곳이지만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살아있다는 실감이 캠프에 내려앉았다. 첫 눈이 내린 것처럼. 잠시 포근한 햇살에 감싸여 밥을 먹던 이들은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이 또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휴식.
죽음이 기다리는 전투를 앞뒀다는 긴장에 도망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혹독한 야생의 법칙에 의해 이미 걸러진 상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싸워왔던 사람들뿐이었다.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며 힘을 비축하는 고요한 시간.
사람들은 잡담을 나누며 슬슬 준비하기 시작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긴다. 욕심 같아선 구했던 물자를 전부 끌고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짐을 지고 전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총기로 싸우는 것이 아닌 냉병기로 싸우는 것이기에 전투의 난이도는 더욱 높았다.
"슬슬 가볼까?"
무기를 들고 이동하는 이들의 등 뒤에 남은 캠프는 을씨년스러워졌다.
'바글바글하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촘촘한 좀비라인은 혐오스러웠다. 단체로 꼬물거리며 거북이와 같은 속도로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을 본 신운성은 무기를 꽉 쥐었다.
전투를 위해 등산 배낭과 같은 물건들은 모두 포기했다. 식량과 긴급한 상황에서 꺼내 쓸 무기와 약간의 도구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새롭게 얻은 스탯 포인트를 약간 더 투자해 강운이 벌써 11이었다. 11종류의 물건을 종류별로 100개씩 보관할 수 있기에 필수로 챙겨야 할 식량을 비롯한 물건은 넉넉히 챙긴 상태였다.
지니고 있는 것은 오직 무기 뿐. 등에 방패를 메고 허리에 메이스를 달았다. 그리고 손에 든 것은 할버드. 좀비와의 싸움에서 할버드를 이용해 타격을 주는 것이 더 편하기에 취한 선택이다.
"선봉 전진!"
선봉이 된 이들은 모두 기다란 둔기를 들고 있었다. 봉 끝에 단단한 것을 달아 급조한 무기들이였다.
'선봉이라. 잘 하네.'
선봉이 된 이들은 익숙하게 좀비를 때려잡았다. 철저하게 머리를 박살냈다. 쓰러진 좀비의 위로 다른 좀비가 밀려왔지만 그러기도 전에 다시 머리를 박살내며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
"변형!"
옆으로 움직이면서 진형이 조금씩 변했다. 일렬로 좀비들과 마주섰던 이들이 맨 왼쪽에 섰던 사람을 기준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좌측을 맡은 이들이 선봉이 된 사람의 왼쪽을 맡기 시작했다.
진형은 화살촉과 같이 변했다.
기다란 둔기가 쉴 새 없이 휘둘러졌다. 좀비는 접근을 허용하면 무섭게 돌변한다. 물리게 되면 얼마 안가 사망하게 되고 잠시 뒤 좀비가 된다. 때문에 접근 전에 확실히 처리해야 했다.
중노동과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좀비를 잡은 기어는 진형 가운데 선 이들이 지나가며 주워 바로바로 합성했다. 진형 한 가운데는 예비대와 같았다. 이들의 임무는 하나였다.
"교대!"
싸우던 이들 중 하나가 체력이 소모되어 지치자 교대를 외치며 물러났다. 그 순간 빠르게 가운데 서있던 예비대 중 한 명이 자리를 메우며 좀비를 처치했다.
휴식을 위해 뒤로 물러난 이는 물을 마시며 천천히 움직였다.
사람들이 모두 한 군데 뭉쳐 있기에 열기가 뜨거웠다.
전투의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상태였지만 사람들은 조용히 싸웠다. 마치 노동을 하는 것처럼 좀비를 잡아댔다.
'이대로라면 성공할지도.'
하지만 좀비들도 만만치 않았다.
"크아아아아악!"
좀비들을 쓰러트리며 계속 전진하는 중에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는 놈이 나타났다.
"위험!"
우측에서 갑자기 나타난 회복된 좀비는 이제 막 좀비 한 마리를 쓰러트린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기를 휘둘렀다가 회수하는 동작을 하는데 좀비가 달려드니 남자는 당황했다.
그때 남자의 뒤쪽에 서 있던 이가 창을 내질렀다.
회복된 좀비는 가슴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그때 공격당하던 남자가 얼른 머리를 박살냈다.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선봉에 선 이들이 전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머리를 쓰고 있어?'
회복된 좀비들이 어찌 된 일인지 달려들지 않고 다른 좀비들을 통제했다.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잠시 뒤 돌격대 주변으로 좀비들이 포위망을 형성했다.
'내가 나설 땐가?'
지금까지 한 일이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 자유롭게 도와달라는 것이 성주혁과 조형민의 지시였다.
"가자."
위험했지만 신운성은 서은하와 함께 대열 밖으로 나왔다.
"공격은 하지 말고 보조만 해."
"응!"
좌우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막게 하고 신운성은 서은하와 함께 전방을 향해 움직였다.
회복된 좀비들은 갑자기 돌진해오는 신운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퍽퍽퍽!
할버드가 춤을 추며 순식간에 회복된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냈다. 이에 회복된 좀비들 4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신운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공격은 몸에 닿지도 않았다. 신운성의 뒤에 서 있던 서은하가 할버드를 휘둘러 2마리를 잡았고 신운성이 나머지 2마리를 잡았다.
계속해서 손발을 맞춰왔기에 호흡이 척척 맞았다.
회복된 좀비들이 무너지자 좀비들의 통제가 약해졌다. 그때 신운성은 좀비 몇 마리를 더 처치하고는 바로 진형 가운데로 후퇴했다.
"다시 전진!"
위험한 변수를 처리해야 하는 신운성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
'역시 데려오길 잘 했어.'
돌격한지 1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좀비 무리 한 가운데에 떨어진 형국. 위기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회복된 좀비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기도 했고 좀비들을 이용해 진형을 무너트리려고 여러 방면으로 갑작스레 달려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신운성과 서은하가 나섰다.
조형민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두 사람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끝이 안 보여.'
문제는 1시간이 지났는데도 숲의 끝이 안 보인다는 것.
1시간 동안 계속 무기를 휘두르며 싸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힘을 낭비하지 않고 교대로 싸우며 조금씩 전진했다. 좀비들이 모두 인간처럼 민첩했다면 절대 선택할 수 없었던 돌격 방법이었다.
'어쩌면 며칠 동안 싸워야 할지도 몰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숲은 상당히 넓었다.
'제발 포위망이 빨리 뚫리길.'
조형민은 다른 이를 대신해 대열 앞에 서서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내며 간절히 염원했다.
손전등의 불빛에 비춰진 좀비들은 계속 인간의 살을 탐했다.
'지겨운 놈들.'
이젠 하도 봐서 끔찍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조형민은 기계적으로 좀비들을 처리하며 서서히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마전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두통이 심한데 날씨까지 점점 더워지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요.
오늘은 한 편 밖에 못 올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