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 회: 생사의 경계선 -- >
성주혁. 나이 26세.
첫날 도착했을 때 좀비를 잡아 죽인 뒤 기어를 습득했었다. 하지만 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새로운 세상에 온 충격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마치 꿈만 같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다음 날 찾아온 남자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찾아온 남자의 이름은 조형민. 특전사 출신인 남자였다. 이후 성주혁은 조형민과 함께 움직였다. 이후 여러 사람을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조형민은 전투 하나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을 이끄는 것은 성주혁이 되었다. 그것은 성주혁의 성품 때문이었다.
항상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분쟁을 중재했다.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할 순 없었지만 성주혁은 신뢰했다.
때문에 일행의 수는 계속 불어났다. 하지만 숫자가 불어남에 따라 불안도 커졌다. 사람들은 식량을 더 구하기 힘들다며 불안해했다. 그때 성주혁은 상점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상점에서 먹을 것을 살 수 있어요. 포인트를 얻는 방법만 찾아내면 되요."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금방 알게 되었다. 기습을 나온 이들과 싸우자 기어와 동전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동전을 성주혁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먹을 것과 무기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역할 분담이 생겼다.
조형민 이외에 나중에 합류한 특전사 출신인 김대영과 주민기가 사람들을 통제하며 일행을 작은 부대처럼 운영했다. 전부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금방 적응했다. 군대 생활을 해봤었기에 적응이 빨랐던 것이다.
체계가 잡히자 생존이 수월해졌다. 그리고 사람은 더욱 늘어났다.
사람들은 행운을 올리면 상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행운을 올리지 않았다.
"행운보다는 다른 능력치를 올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앞으로 강도 같은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겁니다. 모두 행운에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에요. 지금은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특전사들이 성주혁을 보호했다. 특전사들을 비롯한 남자들은 좀비를 잡거나 비인도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처리했다. 그렇게 해서 포인트를 얻게 되면 항상 식량을 샀다. 무기는 특전사들에게 지급할 때 빼곤 구입하지 않았다.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군대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만을 야기한다. 갑자기 누가 누군가의 상관이 된다니. 하지만 상황이 불평등한 상하관계를 받아들이게 했다.
어느 날 조우하게 된 좀비 무리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살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들이 뭉쳐야 한다고 모두 판단했다. 혼자서 싸울 수 없기에 누군가 필요했다. 성주혁과 특전사들은 그런 이들을 위한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것은 물론 조직을 능숙하게 다뤘다.
'더 빨리 많이 모여야 하는데.'
사람들은 식량이 빨리 없어지는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이동과 수색조가 더욱 활발히 활동하며 식량을 모으고 습격자들을 처리하며 동전을 모았다.
"사람들을 더 모을 필요가 있어요. 이 정도 숫자만으로는 좀비의 포위망을 뚫기 어려워요."
노예 같은 삶을 살던 이들의 떼죽음을 보았던 성주혁은 회의를 열어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량 배급이 곤란합니다. 지금의 숫자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상태입니다."
"힘들어도 해야죠. 정 안 되면 나무뿌리라도 삶아 먹어야죠."
"물을 구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까지는 비가 계속 내려서 골치였지만 이젠 비가 내리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숲은 금방 말랐다. 물웅덩이나 샘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모아야 합니다. 포위망에 밀린다면 우린 숲의 안쪽으로 더 몰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뭡니까??"
성주혁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언급했다.
"좀비무리의 이동거리와 위치를 그려봤어요."
성주혁은 노트를 보여주었다.
"대충 그린 거지만 좀비들의 대형은 약간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이 계속 조여들면서 점점 촘촘해지고 있어요. 이걸 토대로 생각한다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려들면서 포위망이 촘촘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주혁이 계산해서 그린 그림을 본 조형민과 다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사람을 모아서 치고 나가자는 겁니까?"
"네.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순 없어요. 일단 길을 뚫어야 합니다. 그리고 차후 안정적인 근거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죠."
성주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냥 지켜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성주혁은 이들의 침묵이 긍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얼마나 사람을 모을 생각입니까?"
"100명만 모으죠."
"너무 많습니다."
"그럼 앞으로 3일만. 3일만 사람을 모아요. 그 다음에는 부딪치는 겁니다."
성주혁의 제안은 통과되었다.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오히려 불리해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좀비 한두 마리야 쉽게 처리하지만 수많은 좀비를 처리하며 길을 뚫는 것은 많은 힘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자칫 시간을 너무 허비해 식량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싸우다가는 금방 지쳐서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포인트는 많이 남았냐?"
회의가 끝나자 성주혁과 조형민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동갑인 두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함께 거치며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래. 많이 남았어. 하지만 사람을 많이 모은다면 순식간에 없어지겠지."
"잘 보관해라. 그리고 사람 끌어오는 거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넌 너무 사람이 좋아서 탈이야."
조형민의 말에 성주혁은 피식 웃었다.
"이런 때일수록 신뢰가 중요한 거지."
"어련하시겠어."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은 각자 할 일을 위해 찢어졌다.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신운성은 3명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모두 무기는 투박했지만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 동안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강해진 것은 신운성만이 아니었다.
'하긴 오랫동안 숲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사람들이란 증거겠지.'
신운성은 긴장했다. 강자를 셋이나 만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강자라도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신운성이 그런 식으로 해치운 사람이 여럿이다. 꽤 강한 사람들로 보였지만 기회를 노려 뒤통수를 쳐서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제 이름은 조형민입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말했다.
"용건이 뭐죠?"
상대가 강해보이니 신운성은 반말로 자극하기 보다는 조금 부드럽게 나갔다.
"지금 숲에 좀비가 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싸우실 분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싸워요? 몇 명인데요?"
"지금 48명 모였습니다."
"식량은 충분한가요?"
"모릅니다. 좀비와의 전투가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신 저희 측에 상점이란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동전을 주면 음식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설마 가지고 있는 식량 내놓으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개인의 것을 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단, 그런 경우 배급에 불이익이 있을 거란 점은 명심해 주십시오."
신운성은 갈등했다. 드디어 쓸 만한 그룹을 만난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도적 집단이라면 그냥 털린다.'
마음이 끌린다고 바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솔직히 받아들이고 싶어요. 믿고는 싶은데 상황이 쉽게 믿지 못하게 만드네요."
"그렇습니까?"
조형민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 분들이 우리 인질이 된다면 일단 거기까지 가보겠습니다."
"그건 좀......."
조형민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데 무장을 해제하고 인질이 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인질이 되면 모를까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 그런 강력한 신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인질이 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죠. 그쪽 분들이 말하는 곳까지 갔는데 그게 함정이면 어떻게 합니까?"
양쪽 다 신뢰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형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에게 무기와 인벤토리에 들었던 약간의 아이템을 건냈다.
"인질은 저 하나로 하죠."
신뢰를 위해 손을 먼저 내민 것은 조형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습격자들이 습격해왔다. 상대는 10명. 중과부적인 상황이었다. 인질이 되어 있었던 조형민은 신운성의 허락을 구하고 무기를 쥐었다. 싸우기 위해서였다.
10명은 조형민과 조원들도 약간 버거운 숫자였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이 정도라니.'
신운성과 서은하는 적들의 측면으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상대를 박살냈다. 전부 처리하는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상대가 위험하다고 느끼며 등을 돌리는 순간 마지막 습격자의 머리가 깨지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조형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너무 자만했다.'
인질을 자처한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특전사 출신이었던 조형민은 기어를 얻고 나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때문에 인질이 되어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자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진짜 무섭군. 더구나 상점 무기를 쓴다는 것은 행운도 꽤 올렸다는 건데.'
무표정한 얼굴로 죽은 이들의 기어와 동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걸까?'
좀비만 잡아서 보여주기는 힘든 강함이었다.
'단 두 사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함부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신뢰를 다 얻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일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정보를 탐색하는 행위는 불쾌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
'3분도 안 걸렸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보통 싸울 때는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 숫자가 많으면 한 명이 앞에서 주의를 끄는 동안 다른 사람이 빈틈을 공격해 무너트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운성과 서은하는 숫자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순식간에 박살냈다.
압도적인 속도와 힘이었다.
'망설임이 없었어.'
조형민은 신운성이 야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를 합성하는 모습을 보니 사람을 잡아먹고 강해지는 야수 같았다.
'도움이 되겠어.'
강한 자를 영입하게 됐다고 생각한 조형민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운성이 강해서 자신을 금방 죽일 수 있다는 위험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조형민은 신운성이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려둔 것만 봐도 흥미가 있는 거야. 저 녀석들도 숲을 빠져나가고 싶은 게 틀림없어.'
두 사람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달랑 두 사람만으로 좀비 무리와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조형민은 신운성과 서은하에 태도에서 많은 것을 유추해냈다.
'우리가 숫자가 많으니 쉽게 죽지도 않아. 저 녀석들도 그걸 알 테니 사고 치진 않을 거야. 이제 됐어.'
생각을 정리할수록 조형민은 즐거워졌다. 강한 사람을 영입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였다.
"갑시다."
정리를 끝낸 신운성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조형민에게는 듬직하게만 들렸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평점 코멘트 쿠폰 후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