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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18화 (18/109)

< -- 18 회: 행운의 기어 -- >

하루 종일 움직이며 좀비를 사냥하고 기어를 합성한 김재민 일행은 늦은 오후가 되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직 더 움직일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여자 둘이 피곤해하자 김재민이 멈췄다.

"정말."

유민정은 짜증을 부렸다. 남은 여자 둘인 연승주와 이신애가 자꾸 힘들다고 호소한 것이 답답해서였다. 자신이 짜증을 부리는 것이 잘못된 것을 아는 유민정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불안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미영이 아니면 딴 사람이 범인이란 건데. 재민이는 아닌 것 같고 그럼 저 두 년 중 하나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이 생각해본 유민정은 손미영이 정말 범인이 아닌 경우를 상정하고 상상해보았다.

'그때 흉기가 옆에 놓여있다고 범인으로 의심했을 뿐이야. 어쩌면.......'

다른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도 현장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다만 흉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손미영을 의심했을 뿐.

어쩌면 지금 범인과 같이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유민정을 괴롭혔다.

'조심해야 해.'

유민정은 슬쩍 뒤에서 따라오는 연승아와 이신애를 살피면서 탐색했다.

탐색은 유민정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재민도 연승아와 이신애도 마찬가지였다.

장철수와 이도혁이 죽으며 남긴 기어는 유민정과 김재민이 하나씩 나눠가졌다. 버리고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행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김재민은 유민정과 하나씩 기어를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연승아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둘이 짠 걸지도 몰라.'

범인을 잡지 않은 상황에서 이득을 본 두 사람. 싸우는 모습도 얼마 전과는 다르게 발군이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모습은 불안한 세상에 떨어진 연승아의 마음을 매혹시켰다. 그래서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둘이 친하니까 어쩌면 둘이 짠 걸 수도 있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마음은 삐뚤어졌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존재가 있었다.

"웃기지 않아? 기어 합성해서 안 지치게 된 주제에 우리가 약해서 발목잡는 것처럼 짜증내고."

"응."

"짜증나."

이신애는 노골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끔 한 마디 던진 것 뿐. 하지만 연승아는 자신에게 동료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으며 용기를 얻었다. 혼자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었지만 동료가 있다면 달랐다.

"너무 하는 거 아냐?"

연승아가 나서서 유민정에게 따졌다.

"뭐가?"

"우린 기어 합성 못해서 체력이 떨어지는 걸 가지고 왜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구는 건데?"

"뭐?"

"지금도 그렇잖아. 짜증내면서 쳐다보고. 우리가 짐꾼이야?"

말을 하면 할수록 격해지는 감정.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 김재민이 서둘러 중재에 나섰지만 한 번 골이 파인 감정은 쉽게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결국 김재민 일행은 일찍 근처의 구조물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곤란하네."

휴식을 취하는 것이 너무 빨랐다. 신운성은 시간이 아까웠다. 잠깐 다른 곳에서 좀비 사냥을 하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다시 이동하게 되면 놓치게 된다.

"그냥 기다리자 오빠."

"그러는 게 좋겠지?"

"응, 그리고 분위기 보니까 싸우는 것 아냐?"

신운성도 그리 느꼈다. 멀리서 보고 있어서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큰 소리 치는 것 같았다. 이후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신뢰에 깊이가 없어."

"응."

등 뒤로 기대는 서은하의 체온이 느껴진다. 적당한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등을 마주 댄 상태에서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가 예전에 나 못 믿고 그랬던 거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그래?"

"응. 여긴 뭘 해도 막을 사람이 없으니까. 솔직히 법이니 뭐니 하는 건 통하지 않는 곳이잖아."

"그렇지."

"아마 저 사람들도 이제 조금씩 실감하겠지. 여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싸우고 그리고 쓸모가 있냐지."

"응."

냉정한 말을 내뱉는 신운성이 듬직하게 느껴진 서은하는 고개를 뒤로 기댔다.

"오빠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마주한 등을 통해 서로의 온기가 전해졌다.

밤이 되자 김재민 일행은 그대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김재민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반면 유민정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재민이하고만 움직이는 게 좋겠어.'

도움이 되지 않는 일행은 필요가 없다고 유민정은 판단했다. 도움도 별로 안 되는데 성질까지 부리니 더 이상 함께하기가 거북했다.

"재민아."

"응?"

"잠깐 할 얘기가 있어. 나와봐."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방에서 이를 지켜보던 연승아와 이신애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어떻게 할 거야?"

"뭘?"

"저 두 사람. 아무래도 같이 다니기 어려울 거 같아."

"왜 그러는데? 아까 싸운 것 가지고 그러는 거야?"

"아냐. 그냥 불안해. 어쩌면 미영이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럼 둘 중 하나가 범인이란 소린데 안 무서워?"

유민정의 불안해하는 얼굴을 본 김재민의 얼굴에도 불안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따로 움직이자. 우리가 처벌하고 뭐고 할 것도 없잖아. 그런 건 원래 경찰 일이야. 우리랑 상관없으니까."

책임회피.

김재민은 몹시 마음에 안 드는 방법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죽일 필요도 없고 위험에 처하지 않아서 좋고.

"그러자 그럼. 일단 오늘은 어두우니까 쉬고 내일 아침에 말하기로 하자."

김재민은 둘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저것들 무슨 속셈이지?"

"어쩌면 우릴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

"뭐?"

"생각해봐. 철수랑 도혁이가 죽고 기어는 쟤들이 다 가져갔어. 어쩌면 저 둘이 짜고서 일을 벌인 걸지도 몰라. 먼저 비명을 지른 것도 유민정이잖아."

단 둘만 있게 되자 이신애는 유민정과 김재민이 수상하다며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얘기를 계속 듣던 연승아는 이신애의 말에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둘이 저렇게 나가서 얘기하잖아. 어쩌면......."

"어쩌면?"

"오늘 밤 우리 죽을지도 몰라."

다소 떨리는 이신애의 목소리가 연승아의 가슴을 떨게 했다.

'죽어?'

연승아는 상상했다. 잠든 상황에서 가슴에 칼이 꽂히는 광경을. 잠든 상황에서 사람은 무방비 상태로 변한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간 해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다가와 칼로 찌른다면 방법이 없었다.

'싫어!'

연승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지? 쟤네는 남자도 있잖아. 기어도 있고. 싸우면 우리가 못 이겨."

"그럼 우리가 먼저 노리자. 잠들 때 기다렸다가. 쟤들도 정면으로 싸우면 다칠까봐 그냥 덤비지는 않을 거야. 그럴려면 벌써 했을 테니까."

연승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다 보니 평소보다 상황 판단이 더 빨라졌다.

"그럼 만약을 위해 우리 같이 붙어서 자자."

"그래."

잠시 뒤 유민정과 김재민이 돌아왔다. 이윽고 어둠이 찾아오자 저녁을 해먹은 네 사람은 수면을 취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든 것은 오직 두 사람 뿐이었다.

잠든 김재민은 불안했다. 연신 꿈에서 좀비에게 쫓기는 꿈을 꿨기 때문이었다. 깨어나고 싶어서 안간힘을 썼고 겨우 깨어났을 땐 어둠만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디선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응?'

누군가 옆에 있는 것 같아 김재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 누군가와 부딪쳤다.

"셋!"

"악!"

부딪친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를 부딪쳐 김재민은 충격이 있었지만 바로 몸을 굴려 한쪽으로 피했다.

"불!"

누군가 불을 밝혔다. 그 순간 김재민은 입술을 깨물고는 몸을 날렸다. 인벤토리에서 바로 칼을 꺼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항상 금방 뽑을 수 있게 준비해둔 무기였다.

허공에서 칼을 꺼낸 김재민은 빠르게 여자들을 덮쳤다. 두 여자는 동시에 공격했지만 소용없었다. 기어를 합성했을 때 민첩에 상당한 스탯을 투자했기에 두 여자의 공격을 쉽게 피해냈다.

아울러 신속한 공격에 두 여자의 목이 베어졌다.

"크헉!"

"켁!"

연승아와 이신애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런 두 사람을 확인 사살하듯 김재민은 죽였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다. 공포와 광기에 물든 눈은 시체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헉! 헉!"

확실히 죽였다고 판단되자 김재민은 칼을 놓고 물러났다.

'제기랄. 잘못 알고 있었다니.'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진짜 범인은 이신애였지만 진실이 어찌 되었든 이제 상관없었다. 연승아와 이신애 둘 다 죽었으니 위험은 제거되었다. 하지만 김재민은 안도의 한숨이 아닌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유민정은 가슴에 찔린 상처 때문에 사망했다.

홀로 남게 된 김재민은 손전등의 불빛에 비친 기어를 집어 들며 입술을 깨물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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