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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17화 (17/109)

< -- 17 회: 행운의 기어 -- >

신운성은 떠나지 않았다. 떠나는 척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동료애는 있나보네.'

김재민 일행이 쓰러진 장철수를 챙겨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신운성은 이들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움직여야 할 방향은 대충 알려주었다. 자신들이 왔던 길로만 안 가면 된다.

원래는 함께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습격자들을 처리해야만 했고 기어와 동전이 떨어졌다. 알게 될 때까지만 같이 동행하려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이 틀어졌다. 기어와 동전은 양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잔혹한 진실을 알려줘야만 했다.

'이것도 나쁘진 않아.'

떠나는 척 하고는 약간 멀리 돌아서 뒤를 밟았다.

'함께 움직이다가 싸우는 것 보다는 먼저 보내놓고 무슨 일이 벌어지나 살피는 걸 보는 것도 좋지.'

신운성은 계속해서 김재민 일행을 뒤쫓았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가 적당한 거리를 두니 김재민 일행은 뒤에 누군가 따라 붙었다는 것도 몰랐다.

좀비를 사냥하고 식품과 기타 쓸 만한 물건을 챙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일행은 구조물에 들어갔다.

'신뢰가 두터운 것일까? 아니면 아직 때가 안 된 걸까?'

신운성은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구조물로 되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생각했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각.

김재민의 일행 중 한 명이 일어났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난 것은 여자였다.

여자는 품에서 과도를 꺼냈다. 작은 칼집에 들어가 있는 과도는 귀엽게 보였다. 하지만 귀여운 과도는 살심이 가득한 여자의 손에 들렸다.

더 이상 귀여운 과도일 수 없게 되었다.

흉기.

작고 날카로운 흉기가 되었다.

여자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근처를 더듬었다. 바로 옆에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몸을 더듬자 잠깐 뒤척이는 것 같았지만 깨지 않았다.

여자는 몸을 더듬어 입을 찾는 순간 이를 악물었다.

남자의 입을 막는 순간 과도를 몸에 찔러 넣었다.

잠들었던 남자의 몸은 쇼크로 버둥거렸지만 여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한 명.'

여자는 독한 눈으로 어둠 속의 거리를 가늠하며 기었다.

또 다른 희생자를 찾기 위해.

다음 목표는 머리를 다쳤던 장철수였다. 여자는 장철수를 같은 방식으로 죽였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려다 멈췄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유민정!'

여자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여기서 다 죽일까?'

남자 2명이 죽었다. 남은 것은 여자 3명과 남자 1명.

여자는 빠르게 계산을 했지만 자신이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계획이 빗나갔다. 이에 여자는 얼른 근처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여자가 있을 것 같은 곳으로 기어갔다.

서둘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른 여자의 위치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과도를 여자의 근처에 놓고는 세차게 흔들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기어를 집었다.

합성하겠냐는 메시지에 하지 않겠다고 하자 기어는 그대로 손에 들린 상태. 빠르게 기어를 다른 방구석으로 굴렸다. 그리고 얼른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자는 척 했다.

그때 유민정이 부스럭 거리다 손전등을 켰다.

"꺄아아아아아악!"

죽은 이들을 비추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민정의 비명에 다른 사람들이 일어났다. 여자도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화들짝 놀란 김재민은 유민정이 가리키는 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그제야 여자들이 일어났다. 김재민은 손전등을 빼앗아 들고 창문과 문을 살폈다.

열린 흔적은 없었다.

'범인이 이 안에 있어!'

김재민은 서둘러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다 피가 묻은 과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옆에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앉아 있는 손미영을 보았다.

"손미영!"

"응? 왜?"

"너 그거 뭐야!"

자다가 깬 손미영은 갑작스런 고함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에 있는 피 묻은 과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때였다.

한 쪽 구석에서 자던 이신애가 죽은 남자에게 다가가 몸을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도혁아! 도혁아!"

비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공기는 삽시간에 무거워졌고 다른 이들은 차가운 눈으로 손미영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범인이라고 의심한 순간 믿음은 깨졌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손미영은 억울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살인 누명을 쓰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난 아니야! 그냥 자고 있었어!"

"그럼 그건 뭐야!"

죽은 이도혁을 안고 있던 이신애는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분노로 가득한 외침에 손미영은 살짝 기가 죽었지만 금방 독하게 눈을 빛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몰라! 자고 일어났더니 옆에 있었어!"

"손미영. 정말 네가 한 게 아니야?"

"그래. 아니야. 믿어줘 재민아."

김재민은 갈등했다. 손미영이 강하게 부정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동료가 죽었다. 옥신각신 다투다 그냥 갈라선 것보다 더 악질적인 일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니 뜻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두고 김재민은 화내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동료를 죽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원래라면 제대로 조사해야 하지만.'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문제가 있었다. 현재 있는 곳에선 과학수사 따윈 불가능했다. 경찰을 보지도 못했다.

좀비가 돌아다니는 숲. 기어라는 이상한 물품으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

'의심을 풀 수 없다.'

용의자로 지목된 순간 의심은 점점 커져갔다. 이성은 아직 확증이 없다고 하면서도 감정이 뒤섞이자 범인으로 만들 구실을 계속 찾고 있었다.

"네가 안 했을 수도 있어. 그래. 그건 인정해."

"재민아. 고마워......."

손미영은 안도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김재민은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널 믿을 수도 없어. 네가 안 했다는 증거도 없어. 네 말만 믿고 함께 계속하기가 어렵다."

"뭐?"

"지금부터 따로 움직이자."

"그게 무슨."

손미영이 따지려고 할 때 유민정이 나섰다.

"난 재민이 말에 찬성."

"나도."

"나도."

남은 두 여자가 찬성했다. 남은 것은 이신애 뿐.

"안 돼! 도혁이가 죽었단 말이야! 어떻게 살인자를 살려 보내!"

"신애야. 그만 해."

김재민이 나서자 이신애는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흘렸다.

"두 명이 죽었어. 범인은 우리 안에 있고. 원래라면 경찰에 신고해야겠지만 여긴 경찰서도 없고 우린 계속 움직여야 해.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범인을 잡을 여력은 없어. 그러니까 용의자하고는 같이 움직이지 못해."

김재민의 설명에 손미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빴어. 진짜 아닌데."

억울함이 사무친 손미영은 자신의 짐을 챙겼다.

"좋아. 간다. 가!"

손미영은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 새벽.

신운성은 일찍 일어났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지만 일찍 일어나 김재민 일행을 뒤쫓지 않으면 놓칠 가능성이 컸다.

일찍 밥을 든든하게 해먹고 쉬었던 원룸에서 대충 맞는 옷을 골라 갈아입었다. 비가 계속 오기 때문에 비에 젖은 옷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움직이면서 대충 손에 넣은 옷을 연달아 갈아입고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자."

희미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구름 뒤에서 세상을 비추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기억을 따라 김재민 일행이 잠든 구조물 근처로 갔다.

'음?'

얼마 안 있어 김재민 일행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숫자가 이상했다.

'4명?'

숫자가 4명밖에 안 된다는 것에 신운성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갈라 선 건가? 아니면 무슨 일이?'

확인해 봐야 할 일이었다.

김재민 일행이 떠나자 신운성은 조용히 김재민 일행이 머물렀던 구조물에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벌거벗은 남자 두 명이 보였다.

'장철수, 이도혁.'

소개 받았던 두 남자가 죽어 있었다.

'두 사람을 해치운 건가? 하지만 나간 사람은 4명. 1명 부족한데?'

신운성은 머리를 굴렸다.

'2명 죽고 1명이 빈다. 죽이고 도망친 건가? 아니면 죽을 까봐 도망간 건가?'

신운성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하나는 2명을 죽인 범인이 모두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도주한 것. 또 다른 하나는 패가 갈라져 싸움이 났고 1명이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것.

'어느 쪽일까?'

신운성은 무척 궁금해졌다. 하지만 호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과연 쓸 만한 놈들일까? 두고 보면 알겠지.'

신운성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현재 상황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를 얻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타인의 기어를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살인이 일어났다.

괴상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항상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미친 짓이라고 신운성은 생각했다.

'쓸모없으면 모두 죽인다. 좀비에게 죽기 전에 먼저 죽여야 해.'

좀비에게 물려 회복된 좀비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 하나라도 더 줄일 생각이었다.

신운성은 계속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김재민 일행이 움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컨디션이 좀 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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