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 회: 행운의 기어 -- >
'음?'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에 신운성은 멈췄다. 신운성이 멈추니 서은하는 자동으로 멈췄다.
"이봐요! 잠깐만요!"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신운성은 긴장했다.
'7명. 무기는 빈약.'
급조한 무기들만 들고 있었지만 전원 무장한 것도 아니었다. 남자 3명만 무장했고 여자 4명은 큰 가방을 맨 상태였다.
'싸울까?'
신운성은 잠시 갈등했지만 무리지어 움직이는 좀비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길. 어쩌지?'
좀비 무리를 상대하려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일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위험했다.
'좀비 무리만 아니었어도 이런 고민은 안 하는데.'
싸우거나 도주.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비 무리를 생각하니 서은하와 단 둘이서 살아남기가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고민하는 사이에 가장 앞에서 달리던 남자가 근처에 이르렀다. 이에 신운성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잠깐요! 가지 마세요! 잠깐만요!"
남자가 화들짝 놀라서 애원하자 신운성은 다시 멈췄다.
'말하는 걸 봐선 나쁜 놈 같지는 않네.'
어쩌면 같이 싸울 동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은 신운성은 잠시 얘기나 해보기로 했다.
"3미터. 3미터 이상 접근하지 마."
신운성은 싸울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서은하는 자동으로 등 뒤로 움직이며 신운성이 보지 못하는 방향을 살폈다.
"에?"
남자가 당황했는지 얼빠진 소릴 했지만 더 접근하지는 않았다.
"원하는 게 뭐야?"
"저기 싸우려는 게 아니고 그냥 얘기 좀 하려고요."
"무슨 얘기?"
남자가 당황을 수습하는 동안 남자의 동료들이 도착했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나요?"
"몰라."
"역시......."
남자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무기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방패랑 무기는 어디서 구하신 거죠?"
남자의 질문을 받은 신운성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놈 상점에 대해 모른다.'
상점에 대해 안다면 하지 않을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상점에 대해 모른다.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
메이스는 간신히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방패는 커서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녀야만 했다.
'좋은 무기를 놔두고 그냥 다닐 인간은 별로 없겠지.'
위험이 난무하는 숲이었다. 인간들끼리 습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를 손에서 놓고 다니는 것은 사실 위험했다. 기습을 받게 되면 무기를 꺼내기도 전에 당할 수 있었다.
'순진하거나 음흉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일행들도 그렇고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뒤쪽에 누구 있어?"
"없어."
뒤쪽에서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고 서은하가 확인해주었다.
'순진한 쪽에 가깝다. 그럼 이용할 순 있겠어.'
동료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험이 뒤에 있으니 대비를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남자의 말에 신운성은 코웃음을 쳤다.
"미친. 자다가 습격 당해본 적 없지? 있으면 그런 말 안 나오지."
"어떻게 그런 일이......."
"어디 박혀 있었는데 모르는 거야? 어디 식량 창고라도 있었나?"
"아, 우린 편의점에 있었어요."
"편의점?"
신운성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거기 계속 있지 왜 돌아다녀?"
남자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했다. 편의점에서 지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먹을 것이 거의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떠나왔다는 것까지.
"전 김재민입니다. 이쪽은 민정이 누나고요."
남자는 안심시키려는지 한 명씩 소개를 시작했다.
'일단 함께 움직이면서 관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계속 경계를 한다면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곁에는 서은하도 있으니 돌아가면서 경계한다면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었다.
"저 쪽에 좀비 무리가 있어. 숫자는 나도 몰라. 어쨌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좀비에게 먹히겠지. 그리고 좀비한테 동료가 물리면 동료 머리도 박살내는 게 좋을 거야. 좀비한테 물리면 좀비가 되니까."
신운성의 말에 김재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무기는 어디서 구한 거죠?"
"비밀인데."
"뭐가 그렇게 비밀이야! 거 속고만 살았나?"
김재민의 뒤에서 소리 친 것은 장철수였다.
"편의점에서 편히 놀고먹어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나 보네?"
"뭐?"
"여기선 좀비만 무서운 게 아냐. 사람은 더 무서워. 잘 가다가 뒤통수 치고 가진 식량 빼앗으려는 인간도 있고 힘 약한 사람들 끌고 다니며 부려먹는 사람도 있어."
"웃기지 마. 그게 무슨."
"왜? 거짓말 같아? 난 내가 본 거 말하는 건데. 못 믿겠으면 나중에 직접 경험해보던가."
신운성이 진지하게 말하자 장철수는 침묵했다.
'아직 심각한 일은 겪은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면.......'
등을 맡길 정도는 안 되지만 함께 움직여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선 신운성은 경계를 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 쪽으로 가봐. 한 시간 정도 가면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신운성은 자신이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이제 대충 알려줄만한 건 다 말해 준 거 같네. 같이 움직일 거면 지금 가자고."
신운성은 함께 해서 반갑다 뭐다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동료로 받아주길 바랄 때 하는 행위. 서은하 한 명 받아들이는 데도 의심 때문에 힘겨워 했던 신운성은 다른 사람들과 그리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동행. 함께 같은 길을 잠시 걷는 정도였다.
"함께 하자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어차피 움직일 거 길만 같이 가자는 거지.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땐 서로 돕고."
"그러죠."
김재민은 사람 좋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리고 다가서려 하자 신운성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냥 같은 방향으로만 가자니까. 친구처럼 굴지 마."
김재민은 새로 만난 동료가 경계심 많은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의심이 많은지 절대 다가오는 법이 없었다. 무리의 후미에 서서 묵묵히 따라올 뿐이었다. 어차피 길을 아는 사람은 없기에 누가 앞장서든 상관없었다.
'차차 나아지겠지.'
비밀이 많지만 무엇인가 경험이 많아서 든든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다.
길을 가다 갑자기 맨 앞에서 움직이던 장철수가 쓰러졌다. 이어서 돌멩이가 잔뜩 날아왔다.
"왼쪽!"
뒤에서 들리는 신운성의 음성에 돌아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는 총 7명. 몽둥이를 든 남자들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남자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덤벼들었다. 김재민과 일행들은 당황스러웠지만 무기를 쥐고 싸울 준비를 했다. 그때 신운성이 앞으로 나섰다.
방패를 든 신운성은 맨 앞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던 남자를 막고는 메이스를 휘둘렀다.
순식간이었다.
머리가 깨지고 남자가 힘없이 쓰러졌다.
덤벼들던 남자들은 앞장섰던 남자가 쓰러지자 신운성을 목표로 덤볐다. 하지만 남자들의 공격은 방패를 든 신운성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쟨 뭐하는 거야?'
의문이 든 것은 서은하가 싸우지는 않고 신운성의 등 뒤에 서서 뒤쪽과 옆쪽만 경계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기습할까봐 경계하는 것 같잖아.'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김재민은 서운했지만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저 새끼들 죽여!"
신운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무엇보다 장철수가 돌에 맞고 쓰러졌다.
그냥 보내줄 순 없었다.
김재민과 일행 중 유일하게 싸울 수 있는 또 다른 남자인 이도혁은 신운성의 왼쪽으로 돌아 남자들을 덮쳤다. 야구 배트와 대걸레 봉으로 급조한 둔기를 들고 덤비자 남자들의 신경이 한 순간 분산되었다.
그때, 신운성의 번개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
방패로 상대를 밀쳐내곤 메이스를 휘두를 때마다 머리가 박살났다. 5초가 지나기도 전에 3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공격하던 남자들이 주춤거렸다. 그때 신운성은 돌진했다.
맹렬하게 돌진하는 모습은 전차 같았다. 방패를 앞세워 돌진해 한 남자를 들이 받았다. 남자는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이어서 다른 두 남자는 등을 돌렸지만 금방 신운성에게 따라 잡혔다.
두 남자를 처리하고 마지막에는 날려 보냈던 남자의 머리를 박살냈다.
"은하야. 3명만 챙겨."
순식간에 상황에 종료되자 김재민을 비롯한 일행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벌어진 일들은 갈등을 일으켰다.
신운성과 서은하가 죽은 이들의 기어를 합성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
이어서 갑자기 물건들이 사방에 떨어졌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경계하며 동전을 줍고 물건을 챙겼다.
"설마......."
기어에 대한 것은 김재민도 알고 있었다. 좀비를 잡으면 기어가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행운을 올리면 인벤토리가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타인의 기어를 빼앗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
"봤잖아. 타인의 기어를 합성하는 거."
기어에는 더 많은 비밀이 감춰져 있음을 김재민은 깨달았다.
"빼앗고 싶지 않아?"
신운성은 시험을 하듯 질문을 던졌다. 문득 김재민은 신운성의 강함이 기어를 합성해 얻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인간과는 동떨어진 움직임이었다.
"싸우지 말자. 그래도 동행이잖아. 안 그래?"
김재민은 웃으며 의심을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그래? 하지만 말 뿐이잖아. 안 그래? 그걸 어떻게 믿지?"
신운성은 차갑게 대답하고는 따라오면 죽인다고 경고하고는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나자 가장 먼저 정신 차린 김재민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정리하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일행들은 서로 눈치를 봤지만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김재민은 안도했다.
'제길. 이거였나? 그래서 믿지 못한다고 한 건가?'
김재민은 신운성이 극도로 경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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