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회: 행운의 기어 -- >
"피자 먹자."
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마음을 흔든다. 좁은 거실에는 따끈한 피자가 먹히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풍경.
'집이구나.'
가슴이 따스해지는 느낌에 신운성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 공부하느라 힘들지? 많이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피자의 치즈가 쭉쭉 늘어난다. 보기만 해도 탐스럽다. 하지만.......
"맛있냐?"
섬뜩한 목소리가 질문한다.
아버지가 있던 곳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등산 장비를 입은 남자.
'내가 죽인 놈.'
놀라서 벌떡 일어난 신운성은 주변을 살폈다.
"맛있냐? 너 혼자 이런 거 먹고."
남자는 비웃음을 머금고 피자를 들어 씹는다.
"비겁한 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둘러 뒤돌아본 신운성은 서둘러 거실 구석으로 물러났다.
"왜? 왜 죽인 거야? 왜?"
벌거벗은 4명의 남녀가 원한에 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꺼져!"
신운성은 악을 쓰며 소리 질렀다. 가슴 속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머리가 뜨거웠다.
'싸워야 해.'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래서 죽였다!"
순간 손에 메이스가 생겼다. 신운성은 미친 듯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등산 장비의 남자의 머리를 박살내고 4명의 남자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박살난 시체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떠오른 것은 악의와 분노.
"죽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머리를 박살냈다. 끝없이 싸웠다.
"허억!"
눈을 뜨는 순간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든 신운성은 서둘러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런 이상은 없었다. 서은하도 옆에서 조용히 자고 있었다.
'빌어먹을 꿈.'
어슴푸레한 빛이 창을 통해 실내로 스며들어 어둠을 밝혔다. 악몽의 현장과 다른 곳이라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한 느낌이었다. 불쾌감이 전신을 타고 돌아 짜증이 났다.
생생한 악몽이었다. 약간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다시 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잠들면 다시 악몽을 꿀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응?'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다.
신운성은 조용히 일어나 메이스를 챙겼다. 문에 귀를 대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라고 소곤거리는 소리.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밖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서은하를 조용히 깨웠다. 서은하는 일어나며 말을 하려 했으나 신운성의 손에 막혔다.
놀라는 순간 고개를 흔드는 신운성을 확인하자 긴장했다.
손짓으로 밖을 가리키자 서은하는 이내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곤 조용히 일어났다.
두 사람은 절대 말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몸짓만으로 의사를 주고받았다. 짐은 모두 놔뒀다.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대신 빈 인벤토리에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만 챙겼다.
잡다한 물건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구할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모두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방패와 메이스는 신운성이 들었다. 서은하는 할버드를 들고 뒤에서 대기했다. 무거워서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들고 있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신운성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비오는 풍경.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 누구야?"
신운성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문에서 한 걸음 떨어진 상태에서 말했다.
"이거. 눈치가 꽤 빠른 놈이네."
문의 좌우에서 남자 둘이 나타났다. 손에는 연장을 들고 있었다.
"이야. 어디서 났는지 몰라도 대단한 걸 들고 있네."
건들거리는 모습은 자신으로 넘쳐보였다.
'기어를 차고 있다.'
신운성은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기어를 손에 넣지 못한 사람이라면 겁이 많은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반대로 기어를 가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독기와 실력을 품었다는 증거가 된다.
신운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뭐야?"
"어린 새끼가 말하는 거 하고는."
회칼을 든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냥 조용히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낫을 든 남자는 점잖게 타일렀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무기부터 내려놓지?"
"지랄."
신운성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새끼들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 목적은?'
신운성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빈틈을 만들려는 게 확실해. 하지만 그것뿐일까?'
"창문 조심해!"
신운성의 외침에 서은하는 할버드를 들고 창문 쪽을 경계했다. 그때 창문이 깨졌다. 신운성은 고개를 돌리는 척 했다. 그와 동시에 낫을 든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걸렸다!'
낫을 든 남자와 신운성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결과는 신운성의 승리로 돌아갔다. 낫을 든 남자의 공격을 방패로 가볍게 막아낸 신운성은 메이스를 휘둘렀다.
허공을 가른 메이스는 정통으로 남자의 머리를 강타하며 박살냈다. 스탯을 올려 근력이 강해진 만큼 메이스에 담긴 파괴력은 더욱 증가했다. 수박처럼 머리가 박살난 남자가 쓰러지자 회칼을 든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신운성은 어렵지 않게 회칼을 든 남자까지 처리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상황은 끝나 있었다. 서은하가 든 할버드는 창문을 타고 들어오던 남자의 가슴에 박힌 상태였다.
짧은 시간에 전투는 끝났지만 신운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더 있을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문 앞에 섰다. 하지만 고개를 내미는 일은 두려웠다. 고개를 내미는 순간 누군가 머리를 박살낼까 두려웠다. 그때 서은하가 얼른 움직였다. 방에 굴러다니는 거울을 들고 왔다. 전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거울을 눕혀 밑으로 내밀자 문 옆의 상황이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양쪽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이후에는 짐을 챙겼다.
이후 전리품을 빠르게 챙긴 뒤 구조물 근처를 수색할 생각도 하지 않고 숲으로 도망쳤다.
'제기랄.'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몇 명이나 숲에 있는 거야?'
천 단위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만 명? 십만 명?'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공격적으로 변했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좀비는 느려 터져서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두려워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굶주린 인간은 좀비보다 더 무서웠다.
어두워지고 있는 상황이라 멀리 가지는 못했다. 습격자들을 만난 곳에서 3개 정도 구조물을 건너뛰고 찾은 곳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굉장히 좁은 골방이었다. 안에는 잡동사니와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잠을 잤던 흔적이 있었다. 창문은 굉장히 작았다.
'문만 확실히 막으면 된다.'
얼른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문을 잠그고 숨을 골랐다.
"어디 다친 데 없어?"
"응, 오빠는?"
"괜찮아."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밖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어두운 상황에서는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을 걸로 판단했다. 어둠 속에서 이동하다가 못 보고 좀비 근처에 가기라도 한다면 잡혀 먹힐 테니까.
"오빠 나 합성하고 민첩하고 근력 스탯 생겼어."
14 스탯 포인트를 얻은 서은하는 근력과 민첩에 7씩 투자했다. 신운성은 그제야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신운성.
행운: 70
체력: 26
근력: 21
민첩: 21
정신력: 0
스탯 포인트: 35
자신이 죽였던 두 남자의 기어를 흡수해 총 35 스탯 포인트를 얻었다. 상점 탭으로 넘어가니 118포인트가 적립된 상황이었다.
'더 강해져야 해.'
체력과 근력 민첩에 10씩 투자하고 행운에는 5를 투자했다.
스탯 분배가 끝난 뒤에는 상점을 둘러보았다. 변화는 없었다.
"방패랑 메이스 좀 들어봐. 어때? 쓸 수 있겠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장이었다. 습격을 받고 나니 무장을 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서은하는 간단하게 방패와 메이스를 사용했다. 근력과 민첩이 더해지자 보통 성인 남자처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30 포인트를 써서 방패와 메이스를 구입해 서은하를 무장시켰다.
"가지고 다니다가 싸움이 나면 바로 착용해야 해. 알았지?"
"응."
두 사람은 에너지바로 배를 채웠다. 밥을 해먹고 싶었지만 행여나 다른 이들이 찾아올까 두려웠다.
신운성의 예상대로 숲에서는 살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된 이들은 함께 움직이던 동료를 죽이기도 했다. 모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살기 위해 비굴하게 굴복하던 이들이 반기를 들기도 했다. 사람이 비굴해지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식량 부족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자 비굴함은 사라지고 살의가 가슴을 채웠다.
자신들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는 때를 노려 상전으로 군림하던 이들의 목을 따버렸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나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고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비명과 저주가 뒤섞여 숲을 울렸다.
그것이 숲의 망자들을 계속 자극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비명을 들은 망자들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사람들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계속.
그 중에는 몸을 회복한 좀비들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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