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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기어-12화 (12/109)

< -- 12 회: 행운의 기어 -- >

비 온 뒤 땅 굳는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그 말을 절감했다. 키스 이후 세상이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둘 사이에 있던 약간의 거리감이 사라졌다.

"오빠, 나 행운만 올릴까?"

거리가 가까워지자 서은하는 좀 더 밝아지며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니야. 일단 체력부터 올려. 행운은 조금씩 올리는 게 좋을 거 같아."

서은하는 신운성의 곁에 바짝 붙었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얘기하는 게 좋았다.

따스한 체온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서은하도 알고 있었다. 신운성이 가진 불안과 불신을. 목숨이 오가는 세상이었다. 신운성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그런 사람이 등을 맡기겠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다 끝내버리려고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날 믿어주는 사람.'

가슴이 뜨거워졌다. 서은하는 좀 더 신운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꼭 감싸 주었다. 행복이 차올랐다. 무섭고 힘들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행복했다.

'좋아.'

거짓말 같은 행복이었지만 서은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신운성에게 맡기고 싶었다. 항상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커지며 이미 타오르는 애정에 기름을 부었다.

서은하의 머릿속은 온통 신운성으로 도배되었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알았어. 그럼 체력부터 올릴 게. 이제부터 짐은 다 나한테 맡겨."

신운성은 서은하를 꼭 끌어안았다. 이후 다시 키스가 이어졌다.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듯이.

불안한 세상에서 겨우 찾은 버팀목을 숭배하며.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생각 같아서는 마냥 애정행각을 벌이고 싶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신운성은 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뜨거운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지 않았다.

'할버드 20 포인트. 방패 20 포인트. 메이스 10 포인트'

상점에서 무기를 구입했다. 꽤 많은 지출이라 할 수 있었다. 비상시를 생각한다면 남겨 두었다가 음식을 사먹는 것이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신운성은 과감하게 무기에 투자했다.

'사냥한다.'

사냥의 목표는 좀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사냥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일단 방패랑 메이스를 들어."

서은하는 내미는 무기를 받았다.

"나 못 싸우는데?"

"일단 가지고 있어. 만약을 대비 해야지. 그리고 내가 달라고 하면 바로 건네주고."

"알았어."

"일단 연습부터 좀 하자."

연습은 간단했다. 무기를 잠깐 휘둘러보는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 구입한 무기들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할버드는 좀비를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 방패와 메이스는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였다. 처음에는 숏소드를 살까 고민했었지만 신운성은 메이스를 선택했다.

검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검을 들고 몽둥이처럼 휘두르느니 차라리 메이스가 더 나아보였다.

잠깐의 연습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감각을 익힌 이후에는 바로 움직였다.

사냥이 시작되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빠르게 움직였다. 움직이며 좀비를 사냥할수록 체력은 점점 더 올라갔고 그만큼 많이 움직여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신운성이 좀비를 잡을 땐 서은하가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누군가 다가오면 바로 대처를 하기 위함이었다.

새로 얻은 할버드의 위력은 굉장했다. 공기를 가르며 나는 소리는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좀비의 머리를 가르고 가슴까지 파고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좀비가 느려서 거의 가만히 있는 수준이라 작정하고 온 몸을 이용해 타격을 준 것도 한몫했다.

'좋았어!'

급조한 무기와는 다른 안정감이 느껴졌다. 비에 의해 좀비의 피와 살점이 씻겨 내려갔다. 신운성은 기어를 서은하에게 양보했다.

"일단 체력부터 올려. 같이 다니려면 비슷해야지."

서은하는 감격했다.

"고마워 오빠."

"얼른 움직이자."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서은하는 얼른 기어를 합성했다. 이후 신운성은 바로 움직였다.

빗속을 움직이는 두 사람은 피로를 잊었다.

그렇게 계속 서은하의 체력을 올려주던 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발견했다.

'모두 4명.'

남자 3명에 여자 1명이었다.

'전원 기어를 착용하고 있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조용히 뒤를 밟았다. 비로 인해 시야와 청각이 제한되어 4명은 뒤따르는 추적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안정적이다.'

좀비를 사냥하는 모습은 안정적이었다. 급조한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체력의 낭비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휴식 할 땐 서로 챙겨주는 모습도 보였다.

신운성은 살짝 고민했다. 보아하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보였다. 서로 상하 관계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동료애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저들도 상대의 기어를 빼앗을 수 있다는 걸 알면 저럴 수 있을까?'

무리 안에 들어가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었지만 신운성은 고개를 저었다.

'은하 하나면 충분해.'

무리를 짓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서은하와 같이 진심으로 믿으며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이제 곧 식량 사정이 나빠질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미쳐서 날뛰겠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나고 있었다. 숲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판단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식량 쟁탈전이 벌어지면 오히려 가진 걸 빼앗길 거야.'

서은하가 있는 한 좀비를 상대하다 등 뒤를 털릴 일은 희박했다.

'적당한 숫자는 두세 명 정도. 그 이상은 필요 없어.'

식량 소모를 최대한 줄이며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숫자를 정하자 4명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사냥한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이 빗속에서 번들거렸다.

사냥감을 찾은 이후 신운성과 서은하는 좀비를 잡지 않고 4명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다녔다.

4명은 사냥을 하면서 다니다 휴식을 취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어둠이 내리자 모두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들어갔다.

신운성과 서은하는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구조물을 주시했다.

"졸리면 좀 자둬."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자 아직 남은 에너지바를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번갈아 가며 아주 조금씩 잤다. 어둠 속에서 지낸 적은 없기에 잔뜩 긴장 됐지만 두 사람은 버텨냈다.

'어떻게 할까? 안으로 쳐들어갈까? 아니면 아침에 나올 때 기다려서 때려잡을까?'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잠들었을 때 몰래 숨어들어간다면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이 잠겼을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문 정도는 잠그고 자겠지.'

반면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나올 때 덮치면 확실하게 한 명을 잡을 수 있었다. 남은 3명이 문제가 되겠지만 문을 틀어막는다면 숫자가 많아도 동시에 덮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루한 대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불을 질러?'

아이디어 하나에 순식간에 계획이 세워졌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인 그림자들은 구조물의 문 앞에 섰다.

"일단 준비하고 있어."

"응."

서은하는 대답과 함께 라이터와 종이 뭉치를 꼭 잡았다.

신운성은 조심스럽게 문에 다가가 손잡이를 잡았다. 손전등의 불빛이 어둠 속을 더듬는 수고를 줄여주었다.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힘을 주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잠겼군.'

역시 예상대로였다.

"2번으로 가자."

"응."

2번 계획은 간단했다. 창문을 확인해 보는 것.

조심스럽게 이동해 창문을 확인해보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창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좀비만 경계하는 모양이군.'

상대가 인간을 상대로 싸우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차올랐다.

신운성은 모든 짐을 내려놓고 메이스만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인간을 상대하는데 긴 무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 알았지?"

다행스럽게도 화계인 3번 작전은 쓸 필요가 없어졌다. 서은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신운성은 조심스럽게 연 창문 안으로 넘어 들어갔다. 약간의 소음이 났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서은하가 내미는 메이스를 잡았다. 그리고 손전등으로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해보곤 피식 웃었다.

'병신들.'

4명의 남녀는 모두 옷을 벗은 상태로 자고 있었다.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무엇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신운성은 제일 가까이 있는 남자의 가슴에 있는 힘껏 메이스를 내리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가슴이 함몰 되었다. 소음이 났기에 재빨리 다른 이들을 살펴봤지만 깊게 잠들었는지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신운성은 계속 남자들을 처치했다. 그 때 여자가 뒤척이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메이스가 휘둘러졌다. 여자의 머리는 그대로 박살이 났다.

잠든 이들은 작은 방심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신운성은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은하야. 얼른 와."

어둠 속에서 떨고 있던 서은하는 남은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며 서둘러 문으로 왔다.

"괜찮아?"

"응. 괜찮아."

사람을 죽인 후유증은 없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일이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평범한 정신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대신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일수록 인간이 아닌 맹수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신운성을 서은하는 꼭 끌어안았다.

"오빤 잘못 한 거 없어."

눈치가 빠른 서은하는 신운성을 위로해주었다. 따스한 온기를 느낀 신운성은 그제야 찝찝한 마음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전리품은 상당했다. 4개의 기어. 그리고 83개의 동전을 입수할 수 있었다.

'서로 공평하게 나눠가졌던 모양이군.'

기어를 합성하자 총 83의 스탯 포인트를 얻은 것이 확인 되었다. 2개를 합성한 서은하가 41 스탯 포인트를. 신운성은 42 스탯 포인트를 얻었다.

"체력만 너무 올리면 좀 그러니까 행운도 좀 올릴게."

서은하는 포인트를 투자하기 전에 보고했다.

"그래."

가장 중요한 기어와 동전을 챙긴 뒤에는 옷과 장비, 그리고 물품을 확인했다. 기어를 합성하자 주변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인벤토리에서 나와 굴러다녔다. 대부분 생수병과 식량이었다.

신운성은 그것을 빠르게 챙기고 서은하를 데리고 떠났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빈 구조물에 들어간 신운성은 문을 잠그고 창문도 확실히 막았다. 그리곤 기절하듯이 서은하와 함께 잠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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