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회: 행운의 기어 -- >
한바탕 눈물을 뺀 이후 서먹한 시간이 흘렀다. 밥을 먹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은하는 신운성의 비밀을 어느 정도 눈치 챘다.
'그 남자가 죽으면서 기어를 남겼어. 그리고 합성하고 나서 이상해졌으니까.'
서은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신운성의 행동에서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분명 기어를 합성해서 뭔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을 거야.'
사람을 믿기 힘들게 만들 정도의 효과가 있어야 했으니 신운성이 아주 강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기어를 빼앗으면 그만한 효과를 보겠지.'
말은 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사태만으로 서은하는 짐작이 가능했다.
'가슴을 열어서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서은하는 신운성이 무엇을 숨기고자 하는지 짐작했지만 그렇다고 배신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빠한테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위기의 순간 나타나 구해준 사람이었다. 이후 다른 여자가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해주었다. 세상에서 가족 빼고 제일 믿을만한 사람은 신운성 뿐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서은하는 몸을 웅크리고 고민에 빠졌다.
한편, 신운성은 자신이 바보 같았음을 깨달았다. 서은하를 슬쩍 보며 반응을 살폈다.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진짜 미치겠네.'
믿고 싶지만 믿기 힘들다. 신운성은 서은하가 자신이 말하지 않은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조금만 상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일이었다.
'믿는다고 했지만.'
목숨이 걸린 이상 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운성은 꾹 참았다.
'믿는다고 했어.'
서은하가 보여줬던 모습에 가식은 없었다. 연기가 아니었다. 아주 잠깐 지켜본 결과 연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운성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의심이란 괴물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한 번쯤 속아 줄 수도 있다. 목숨이 걸린 일만 아니었다면 속은 뒤에도 그저 웃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목숨이 걸린 일만 아니었다면.......
'젠장.'
하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냥 믿어주기가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상대가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무작정 사람을 믿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닌 인구는 전체 인구의 4%.'
어디선가 읽었던 정보는 의심을 더욱 키웠다. 0.4%도 아니고 4%였다. 100명중 4명. 25명 중 1명이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녔다는 소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사람을 속이는 일은 얼마든지 하는 존재가 소시오패스였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신운성은 알고 있었다.
'젠장.'
새롭게 얻게 된 정보만 아니었다면 믿어줄 수도 있었다. 좀비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상태에서는 굳이 목숨을 노릴 이유가 없으니까.
소시오패스라면 오히려 사람을 살려두고 이용해 먹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때릴 것 같았다. 그 정도에서 끝난다면 신운성도 모험을 걸어볼만하다 생각했다. 믿을만한 동료를 찾을 때는 이런 점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타인이 소유한 기어를 합성해서 놀라운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타인의 것을 빼앗으면 자신이 그만큼 안전해진다.
계산이 빠른 신운성은 점점 불신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믿고 싶다. 하지만 믿을 수 없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서은하는 신운성이 아직도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벌거벗고 섹스라도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신운성이 자기를 믿어준다면 얼마든지 할 생각이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버려진다면.......'
의심 끝에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몸이 떨려왔다. 참을 수 없었다.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고민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서은하의 정신은 점점 망가졌다. 지금까지 간신히 버틴 이유는 신운성이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운성의 의심을 받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버려져서 혼자 남게 된다는 상상을 하면 참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 그냥 죽는 거 아닐까? 오빠가 날 안 믿어주면 버려지는 거 아닐까? 오빠를 죽이면 내가 살 수 있나?'
신운성을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 점점 망가지던 정신은 결국 극단적인 상태로 돌입했다.
'차라리 죽을 거라면.'
서은하는 과도를 꺼냈다.
"오빠."
섬뜩한 목소리에 신운성은 화들짝 놀랐다. 서은하의 표정이 이상했다.
'위험해.'
신운성은 긴장을 하며 무기를 꺼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몽둥이였다. 언제든지 위급한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도록 열어놓은 칸이었다. 몽둥이는 의자 다리를 이용해 만들어 짧았다. 하지만 과도보다는 길기 때문에 상대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왜?"
몽둥이를 들고 일어서자 서은하가 천천히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받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과도. 하지만 서은하는 날을 잡고 자루를 내밀었다.
"뭐야?"
"더 이렇게 살 수 없을 거 같아."
"뭐?"
"오빠가 날 죽여줘."
의외의 말에 신운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어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거 합성해서 얻은 게 너무 뛰어나니까. 아마 그렇게 하면 죽은 스탯 포인트를 많이 얻는 거 아냐?"
굉장히 날카로운 추리였다. 신운성은 숨기려고 한 사실이 쉽게 드러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랬구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서은하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다 알았으니까 됐어. 오빠. 날 죽여."
"왜 이러는데?"
"나 더 못 버틸 것 같아. 오빠가 나 의심하잖아. 오빠 없으면 못 살 것 같은데."
신운성은 서은하의 말을 들으며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무서워. 오빠가 날 믿지 못하는 것도 무섭고. 오빠 없이 이런 곳에 남게 된다는 것도 무섭고. 그러니까 그냥 끝내자. 오빠가 날 죽여. 그럼 내가 모은 것도 다 오빠 차지가 될 거 아냐."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서은하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오빠가 죽여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참 울어서 빨개졌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다 흘러내렸다.
"오빠 진짜 미운 거 알아? 정말 죽이고 싶어. 그런데 나 혼자 못 살겠어. 그러니까 오빠라도 살아. 그냥 그렇게 끙끙거리면서 살아."
"미안하다."
신운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연기일까? 진짜일까? 진짜 같은데. 하지만 진짜가 아니라면?'
속으면 죽는다. 죄책감과 갈등으로 뒤죽박죽이 된 신운성은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가혹했다. 신운성은 평화로운 사회의 사회초년생이었다. 이런 식의 갈등은 겪어 본 적도 없었다.
신운성이 갈등하며 머뭇거리자 서은하는 한 걸음 다가섰다.
서은하가 다가선 만큼 신운성은 뒤로 물러났다.
"안 할 거야?"
신운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던 서은하는 입술을 깨물더니 과도의 자루를 쥐었다. 과도의 끝은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씨발!'
모든 것이 확연히 보였다. 서은하가 과도로 목을 찌르기 위해 힘을 주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신운성은 움직였다.
턱!
약간 있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서은하의 팔을 잡았다.
"놔."
"미안하다."
"놔!"
"은하야."
신운성은 과도를 잡은 손을 풀고 과도를 빼내려 했으나 서은하는 반항했다.
"놔! 놓으란 말이야!"
하지만 신운성의 손을 뿌리칠 순 없었다. 강한 힘에 서은하의 반항은 몸부림으로 끝났다. 과도를 빼낸 신운성은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정말 미안하다. 믿을게."
"진짜 미워."
"미안하다. 믿을게. 믿어. 이제 믿을 수 있어."
신운성은 서은하를 꼭 끌어안았다.
이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극단적인 행동에서 서은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심이란 괴물은 그것조차도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속삭였지만 신운성은 무시했다.
'내가 틀렸다면 죽겠지.'
신운성은 죽음을 각오했다. 품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서은하를 믿지 못한다면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불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싸운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서은하의 눈물과 각오는 신운성의 가슴에 전해졌다.
진심이 행동을 통해 겨우 전해졌다.
"믿긴 뭘 믿어. 또 의심할 거면서. 그냥 지금 끝내."
"아니야. 믿어. 내 등은 너한테 맡길게."
"바보! 멍청이!"
서은하는 팔을 휘둘렀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주먹으로 신운성의 몸을 두드렸다.
"믿는다니까. 내가 잘못했어."
"진짜. 또 그러지 마."
"그래."
울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퉁퉁 부은 눈은 볼품없었다. 엉망으로 잘린 머리. 살찐 얼굴. 무엇 하나 매력적인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가혹한 신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신뢰라는 마법은 신운성의 가슴을 열었다.
신운성은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얼굴을 움직였다. 서서히 다가오는 온기에 서은하는 훌쩍거리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살짝 마주쳤다.
불신과 원망이 부드러운 키스에 녹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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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때문에 잠에서 깼네요. 본격 모기 시즌인가 봅니다.
모두 모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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